한바울 박사가 말하는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
2014년 7월 3일 기사
“바벨탑 사건은 언약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시도는 아무리 힘을 합치고, 지식을 모아도 결국엔 어리석고 쓸모없음을 보여준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 중에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다양한 상징들과 언어적 기교로 교훈하고 있다.”
성경사역연합(대표:이진섭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가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영동교회에서 개최한 ‘성경삶사역회 여름 컨퍼런스’에 발제자로 나선 한바울 박사(런던 신학대 /MA, PhD)가 이같이 강조했다.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창 11:1~9에 대한 주석적 연구’ 주제로 발표한 한 박사는 “바벨탑 이야기는 셈과 에벨과 욕단의 후손들 이야기”라며 “에벨에게 두 아들(벨렉과 욕단)이 있었는데 그들이 태어났을 때 세상이 나뉘었다(10:25)고 말한다. 바벨탑 이야기는 욕단 계보의 목록(10:26~29)에서 이어지고, 바벨탑 이야기 후에는 벨렉의 계보 목록(11:10~26)이 아브라함의 출현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두 계보가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씨의 약속은 셈, 에벨, 벨렉, 아브라함의 계통을 따라 성취되는데 반해 셈, 에벨, 욕단의 계통은 언약 밖에 있는 부류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언약 안과 밖에 있는 두 계통을 비교하는 가운데 바벨탑 이야기는 언약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모습을 다양한 측면에서 상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러티브”라고 주장했다.
해당 본문의 해석사, 주석, 양식과 구조에 대해 설명한 한 박사는 “창세기 10장에서는 인간 사회의 다양성을 인간공동체가 자람에 따른 자연스러운 긍정적인 결과로 언급하고 있는 반면, 바벨탑 이야기는 같은 현상에 대한 인간의 실패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제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바벨탑 쌓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냐
한 박사는 인간들이 바벨탑을 짓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언급했다. 단, 그것을 세우려는 인간의 동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 4절에서 사람들은 ‘이름을 짓고’에서 볼 수 있듯이 탑을 높게 세워 스스로를 드러내고, 높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구약에서의 작명은 작명자가 작명받는 자에 대한 지배권(참조 창 2:19)과 소유권(왕하 23:34)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스로 이름을 짓고자 하는 것은 다른 누구의 지배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하나님도 포함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의 이름을 내어 영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즉, 유명한 이름이 길이 남듯이 높은 탑을 세워 자신들의 이름을 길이 남기려는 ‘영원을 향한 갈망’이 하나님을 떠나 추구될 때 바벨탑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온 땅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는 말은 인간 두려움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서로 힘을 합쳐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과도 같다. 한 박사는 “서로 힘을 합쳐 미래를 준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만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안정을 보장하려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행위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연합은 진정한 사랑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기반을 둔 허술한 연합임을 알 수 있다”고 피력했다.
무엇보다 불신앙과 두려움에 기반을 둔 연합으로 흩어짐을 면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의 “땅을 정복하고 땅에 충만하라”(1:28, 9:1)는 명령에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것.
한 박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흩어져 땅을 채움으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은 스스로의 꾀와 교만에 빠져 성과 탑을 세움으로 영광과 안정을 추구했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이 인간을 더욱 제한시키고, 비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강조했다.
#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나?
“우리가 내려가 그들의 언어를 혼돈시켜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인간들의 연합이 선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6절)을 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한 박사는 “인간들끼리만 연합할 때, 인간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며, 방종에 빠질 수 있고, 그것을 방치해 둘 경우 더 큰 재앙과 심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언어 혼잡과 흩어짐은 하나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인류를 위한 보호조치로서 더 큰 심판을 피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심판이 은혜인 또 다른 이유는 비록 그들이 두려워하는 ‘흩어짐’을 당했지만 그것이 바로 그들이 온 땅에 충만하여 번성하라는 창조자의 섭리를 이루기 때문에 은혜가 된다는 것. 한 박사는 “그들이 가지고자 했던 영광과 안정은 창조자의 원리에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흩으신 것은 단순히 바벨탑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만이 아니다. 한 박사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연합해 영광뿐만이 아니라 ‘안정’도 찾으려는 시도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안정은 창조주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힘을 합쳐 안정을 꾀한다 해도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바벨탑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무엇?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과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 인간적 노력과 성취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여주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창조된 목적을 제한함으로 스스로를 더 못한 상태로 끌어감을 볼 수 있게 한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뜻에 맞게 살 때 풍성한 삶과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흩으신 것은 그들의 교만과 불순종에 대한 심판이자 동시에 은혜다. 왜냐하면 그들이 흩어짐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명령, 즉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온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 이루어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불순종과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점이다. 바벨탑 이야기에서는 노아와 아브람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없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결국 인간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도 불통이 되어버렸다. 즉,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심각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
한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격 없는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이 은혜는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잘 드러나게 된다”며 “불통되었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들과의 관계가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심으로 ‘통’하게 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죽으심은 스스로 영광과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교만과 두려움에 빠진 인간을 향한 가장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됐다”고 역설했다.
이어 “인간은 하나님과 통하는 관계에 있다면 성과 탑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관계에 있다면 자신들의 ‘고통’을 달래보려고 무엇이든 할 것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인간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다양한 상징들과 언어적 기교로 교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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