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연구(03) *
예수와 사회정의:마가복음 11:15~17
/ 이태호 교수(숙명여대, 기독교윤리)
“매매자를 쫓아내고 환전상의 테이블과 비둘기 판매상의 의자를 뒤집어엎으며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하는 네 가지 행동을 하신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은 모두 선지자적인 정의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태호 교수는 “예수님의 행동이 유월절 전야에 일어난 것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날이 유월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을 보는 가장 그럴듯한 시각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이 전체적인 성전체제의 부정의와 이것을 희생제사로 덮으려는 것에 대한 선지자적이고 메시아적인 상징적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예수님이 보여준 선지자적인 정의의 개념, 즉 가난한자에 대한 돌봄과 억압에 대한 저항, 비폭력적 행위 그리고 집단으로부터 배제됨에 대한 저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교회는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한국에서 정의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정의에 대해 목마르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반증”이라며 “무엇보다도 정의를 주장하며 정의를 위해 사신 예수님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정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가복음 11:15~~17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리고 덧붙였다.
‘예수와 사회정의:마가복음 11:15~17’을 주제로 한 이태호 교수의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서론
2. 성전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
2.1 메시아의 성전 청결
2.2 브랜든의 혁명적 행동견해
2.3 이방인을 배제한 것에 대한 비판
2.4 성전의 파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동
2.5 성전 제사제도의 종말
3. 선지자적 정의를 위한 주장
3.1 예수님의 행동
3.2 예수님의 말씀들
4. 결론
# 연구내용 중에서
1.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아직도 통일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견해인 성전을 거룩하게 하려했다는 설부터 구약의 예배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시도라는 설까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2. 우선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마가복음 11:15~17에 나타난 성전사건은 유대교의 타락과 그로 인한 백성에 대한 경제적 억압, 즉 성전체제의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선지자와 메시아로서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즉, 예수님의 메시아의 두 가지 사명 중 하나인 정의의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신 사건이 바로 이 성전사건인 것이다.
3. 마가복음 11:15~17만큼 해석이 복잡하고 대립되는 구절은 없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진영의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한다. R. Hiers, M. Hengel, C. Cranfield, B. Witherington Ⅲ, M. Hooker, J. Fitzmeyer, R. T. France 그리고 R. Gundry는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행동이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예수님은 성전의 바깥뜰에 있는 상업적 행위가 거룩한 예배의 내적이고 영적인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분노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의 문제는 성전 뜰에서의 상업적 활동이 성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허용됐다는 점이다. 많은 다른 경건한 유대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왜 유독 예수님만이 분노하셨는가가 의문이다.
4. V. Epstein은 30년 경 대산헤드린(Great Sanhedrin)이 올리브산으로 이동하고 나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성전 뜰에 동물시장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H. Betz는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행위는 헤롯 성전의 이방화와 상업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한다. P. M. Casey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물건을 들고 지나는 것을 금지한 것이 사건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행동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시도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봤다.
5. C. Evans는 예수님의 성전행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한 학자인데 그는 전통적인 견해를 지지한다. 그는 요한복음 전승의 성전정화의 동기가 공관복음의 성전정화의 동기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면서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성전정화 활동이 성전 회랑 안에서의 진행된 상업활동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6. 이와 같은 성전정화의 견해에는 적어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1) 성전에서의 상행위는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환전상은 성전의 관리였다는 사실이다. (2) 성전의 의식적인 정결이 예수님에게 중요했는가가 의문이다. 마음의 내적 순수함의 중요성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3)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행동을 정화라고 볼 수 있는가이다. 성전의 정결을 유지하는 것은 제사장들의 임무이고, 이것은 매일 정결례를 통해 행해지고 있었다…. 이밖에 이태호 교수는 여러 문제점을 제시한다.
7. ‘성전의 파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동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기에는 3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행동이 종말론적 메시아적 행동이라는 견해와 선지자적 행동이라는 견해, 그리고 비 메시아적 종말론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8. 예수님의 성전사건을 다루는 문헌들을 검토해봤는데 문제는 학자들 간에 하나의 확립된 견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정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 구절을 자세하게 해석해 그 의미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마가복음 11:15~16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4가지 행동과 17절에 나와 있는 2가지 말씀을 분석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과 말씀을 1세기의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9. 그 당시를 연구한 문헌에 의하면 성전체제에 의해 운영되는 억압적인 경제제도가 존재했다. 성전이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유대 팔레스틴의 경제를 지배했는데, 그 체제는 가난한 자들에게 불리한 제도였다.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렸고, 빚더미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체제의 중심에 대제사장과 그 가문이 존재했다. 대제사장들은 성전 내에 상점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성전경제 체제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4가지 행동과 2가지 말씀은 선지자적인 정의의 개념을 보여준 것이다. 즉,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은 전체적인 성전체제의 부정의와 이것을 희생제사로 덮으려는 것에 대한 선지자적이고 메시아적인 상징적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10. ‘매매자를 쫒아내신 것’과 관련 문제는 상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거래를 통한 정의롭지 못한 이득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의 시장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지배계층의 이익을 공격하신 것이다. 이것은 독점과 정의롭지 못한 이득에 대한 공격이었고, 따라서 선지자적인 정의 중 하나의 모티브인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환전상의 테이블 뒤집어엎기’ 또한 성전이 조직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을 비판하고 계신 것이다.
11. ‘비둘기 판매상의 의자를 뒤집어엎기’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한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비둘기는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의 제물이다. 문제는 비둘기를 제물로 받아들이는 성전의 검사가 까다로워서 성전에서 파는 비둘기를 사야 검사를 통과하는데, 성전 안에서 파는 비둘기의 가격은 시중보다 5배나 높았다. 따라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단순히 상거래를 공격하는게 아니라 성전체제가 종교를 빙자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12.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함’은 해석하기 힘들다. 심지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도 이 기사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해석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당국이 제사시스템을 운용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보는 것에 대한 공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적 정의의 개념에서 촉발된 사건인 것이다.
13. 네 가지 행동을 하신 후 예수님은 이사야 56:7과 예레미아 7:11의 말씀을 하셨다. 흔히 학자들은 이사야는 기도와 이방인을 강조하고, 예레미야는 성전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56:7을 기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구절은 선지자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이 구절은 억압당하는 이방인에 대한 왕적인 돌봄을 의미한다. 예레미아 7:1~15은 성경에 있는 가장 신랄한 성전에 대한 공격이다. 예레미야 7장의 맥락은 하나님이 성전을 저주하는데, 그 이유는 성전관리들이 모세의 언약을 어기고 사람들로부터 재물을 갈취해 성전에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과 대제사장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14. 예수님은 성전체제가 선지자적인 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종교적인 행위로 덮으려 한 것을 비판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성전행동을 하신 것이다. 그 당시 사회적인 상황은 억압적인 농업중심의 사회경제 체제가 있었다. 무거운 세금과 십일조 그래서 지게 되는 빚, 또한 타락한 대제사장과 그들이 누리던 성전운영으로부터 얻는 부당한 이익 등이 바로 문제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서 성전행동을 하신 것이다.
15. 예수님이 보여준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과 억압에 대한 저항, 비폭력적 행위, 그리고 집단으로부터 배제됨에 대한 저항과 같은 선지자적인 정의의 개념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정의를 주장하며, 정의를 위해 사신 분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정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마가복음 11:15~17이 주는 교훈이다.
* 위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집 ‘성경과 신학’에서 일부 발췌 및 요약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이태호, “예수와 사회정의:마가복음 11:15~17”, 성경과 신학, 제61권(2012.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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