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오정호 목사, 이하 한복협)가 지난 2월 13일(금) 오전 7시 은혜광성교회(담임:박재신 목사) 4층 아가페채플실에서 2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지역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된 발표회에서는 이은선 박사(안양대, 역사신학 교수)가 <교회 내 지역주의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양준석 박사(국민대 교수)가 <정치-사회적 지역주의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두 발제자의 발표 내용을 두 편으로 나눠 요약해서 정리한다' <편집자 주>

정치적-사회적 지역주의,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양준석 박사(국민대 교수)
양준석 박사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단순한 '감정'의 차원이 아닌, 권력 구조와 경제적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모순으로 분석하면서 권력 배분 방식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내 정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지역주의를 갈등 관리와 협력의 자원으로 재설계하는 국제적 수준의 거버넌스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주의의 현재적 실태와 문제의 본질
반복되는 정치적 수사와 현실의 괴리
한국 정치권은 매 선거 국면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역주의는 소멸하기는커녕,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언어와 형식으로 재포장되어 나타나고 있다. 2021년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영남 역차별론'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수혜 지역이었던 영남이 이제는 역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프레임을 통해 지역 갈등을 다시금 중앙 정치의 전면에 부각시킨 사례다. 이는 지역주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판단의 기본 틀로 작동하는 지역성
지역주의의 심각성은 단순한 투표 행태를 넘어 국민의 헌법적 가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2025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호남 지역과 대구·경북(TK) 지역 간의 찬반 견해차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는 탄핵이라는 중대한 헌법적 사안조차 법리적·논리적 판단보다는 '내가 속한 지역의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필터를 통해 해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주의가 한국인의 정치적 무의식을 지배하는 '기본 틀(Frame)'로 고착된 것이다.
정책적 대응의 한계: 지방시대위원회의 사례
이재명 정부 역시 '지방시대위원회'를 통해 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하며 지역주의 해소를 시도하고 있다. '5극 3특' 다극 체제라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했으나, 이에 대한 시장과 학계의 평가는 냉정하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부족하고,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기업 이전 및 투자 확대 전략의 반복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역주의가 단순히 정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있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님을 방증한다.
지역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 원인
역사적 기원의 허구성 대조
흔히 영호남 갈등의 뿌리를 삼국시대(신라와 백제)로 소급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과거 백제의 중심지는 현재의 충청·경기 지역이었으며, 후백제의 경쟁 상대는 신라보다 고려였다. 즉, 현재의 지역 갈등은 유구한 역사적 산물이라기보다 1971년 대선(박정희 vs 김대중) 과정에서 정치적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신라 대 백제'의 구도를 차용한 '발명된 전통'에 가깝다.
정치·행정 엘리트 충원의 편중
지역주의를 공고히 한 실질적인 요인은 인사(人事)의 불균형이다. 제3공화국 이후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 배출에서 영남 출신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반면, 호남과 충청 지역은 지속적으로 소외되었다. 이러한 엘리트 충원의 불평등은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 지역 출신이 집권해야 우리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지역주의를 비합리적 감정이 아닌 '권력 접근을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변질시켰다.
경제 개발 과정의 구조적 불균형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경부축(울산, 포항, 창원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산업 인프라가 영남권에 집중되면서 호남권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고, 이는 대규모 인구 유출과 농촌 황폐화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지역주의의 기저에는 '국가 자원 배분에서의 소외'라는 강력한 경제적 불만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대결 구도와 결합하면서 해소하기 어려운 구조적 균열을 만들어냈다.
한국 지역주의의 독특한 특성과 전개 양상
중앙 권력을 향한 '구심적' 경쟁
일반적인 의미의 지역주의(Regionalism)는 중앙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자치권을 강화하려는 '원심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주의는 "누가 국가 권력의 중심에 서서 혜택을 배분받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구심적' 성격을 가진다. 즉, 지역 발전을 위해 중앙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앙 권력을 독점하여 지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쟁의 형태다.
비대칭적 지역주의의 고착화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지역주의의 양상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비대칭성'이다.
- 영남 지역: 2002년 대선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며 정치적 유연성이 증대되었다. 특히 경남권(PK)은 노동자 계층의 성장과 함께 경쟁 체제가 도입되고 있다.
- 호남 지역: 반면 호남에서는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극히 저조한 상태로 고착되어 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트라우마, 보수 정치권의 실언, 인재 유입의 단절이라는 악순환이 겹친 결과다. 한쪽은 열리고 다른 한쪽은 닫혀 있는 이 비대칭성은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서울 중심성과 중앙정치의 투사
지방 정치는 독자적인 의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중앙 정치의 대립 구도에 종속되어 있다.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는 지역별 '싹쓸이' 결과를 낳고, 이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압살한다. 모든 유무형의 자원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역주의는 결국 '서울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기 위한 지역 간의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전략적 제언
서울 중심성 해체와 점진적 분권
지역주의의 근본 원인이 '서울에 집중된 자원 배분권'에 있다면, 해결책 역시 서울 중심성을 약화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단순히 행정 기능을 분산하는 수준을 넘어, 예산과 결정권을 지역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급격한 기능 분산이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행정 효율성을 고려한 점진적이고 정교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제도적 개혁: 선거제도의 변화
유권자의 의식 변화만을 기다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점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중대선거구제 도입: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선출하여 사표를 방지하고 소수 정당의 진입을 도와야 한다.
- 권역별 비례대표제: 지역구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음으로써, '호남의 보수'와 '영남의 진보'가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보수 정치의 호남 정책 전환
보수 정당은 호남을 단순히 선거 전략적 소모품으로 보지 말고,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공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호남 내부에 존재하는 보수적 가치를 지닌 유권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호남의 소외'를 보수 정당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위기에 대한 대응: 수도권 대 지방
이제 지역주의는 영호남 갈등을 넘어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거대한 분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비수도권의 소멸 위기는 국가 생존의 위기로 직결된다. 또한, AI와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 환경은 지역적 확증편향을 더욱 강화할 우려가 있다. 기술 발달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디지털 리터러시와 정보 편향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 협력과 통합의 자원으로서의 지역주의
국제정치학에서 지역주의(Regionalism)는 갈등이 아닌 '협력'의 용어다. 유럽연합(EU)의 사례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공통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설계하고 갈등 관리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때 지역주의는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 역시 '배제와 증오'의 수단이 아닌, 각 지역의 특색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다원적 경쟁과 협력의 모델'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 정치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지역 통합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권력 배분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담대한 정치가 요구된다. 지역주의 극복은 단순히 감정의 화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구조를 선진화하는 구조 개혁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