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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율법 이기는 그리스도의 승리 VS 율법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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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연구(02) *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

/ 장기영 교수(서울신대)

 

장기영 교수는 서론 부분에서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에게 있어서 율법은 단순히 많은 신학 주제들 중 하나가 아니라 기독교신학 전반을 꿰뚫는 중심주제였다”며 “그들의 율법관은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인간론, 기독교 윤리 등의 주제들을 형성하며, 그 주제들과 잘 조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루터,
신중심적 신학 확립 도모

 

장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는 율법관을 중심으로 두 신학자의 조직신학적 주제들을 비교하는데 있다”며 “루터의 신학은 지성주의와 도덕주의를 통한 인간 중심적 종교로서의 가톨릭교회가 그 배경이 된다. 

 

루터는 이신칭의와 하나님의 두 왕국 교리를 신학의 주된 뼈대로 삼아 하나님의 자족성과 자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성령에 의한 영적 시련과 위로, 신앙에 의한 칭의와 성화, 세상적 피조물로서의 인간, 의인이자 죄인으로서 신자, 하나님의 두 왕국 등의 주제를 통해 ‘신중심적 신학’을 확립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웨슬리,
균형잡힌 율법신학 추구

 

이어 “웨슬리의 율법 신학은 루터의 종교개혁적 오직 은총을 토대로 삼되, 가톨릭의 율법주의 뿐 아니라 루터의 부정적 율법관이 야기한 개신교 내에서의 율법무용론적 경향을 균형 잡힌 율법신학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웨슬리는 성결(거룩한 사랑)과 은총(값없는 은총과 협력적 은총)을 신학의 핵심 주제로 삼아 하나님의 사역, 그리스도의 삼중직, 성령의 증거와 능력부음, 신앙에 대한 사랑의 질적 우의성, 성화를 위한 율법의 사용, 하나님 형상 회복으로서의 구원, 상화의 윤리 등 다양한 주제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토대 위에 율법의 역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는 신중심적 동기를 가진 루터의 율법관과 하나님의 은총의 토대 위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 웨슬리의 율법관이 각각 그들의 기독론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발표내용 중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율법-마틴 루터>

마틴 루터

1. 루터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기초로 여겼다. 루터는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신 능력이라는 점,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 역시 삼위일체의 통일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기독교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능력을 가지셨으므로 그리스도는 ‘완전한 의미에서…하나님’이시다.

 

2. 하지만 루터는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비록 죄가 없으셨지만 ‘연약하고, 피곤했으며, 두려워했고, 위험으로부터 도망친’ 분이셨고, 때로 분노와 혐오, 슬픔과 미움으로 가득하셨음을 발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 능력을 연약함 아래, 그 지혜를 어리석음 안에, 그 선하심을 고통 아래, 의로우심을 죄 아래, 자비를 진노 아래’ 감추신 채 역설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심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역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명명하면서, 루터는 이 신학을 ‘영광의 신학’과 반대되는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루터와 십가가 신학

 

3. ‘영광의 신학’이라는 말을 통해 루터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파악하려 하고, 도덕적 행위로 은총을 얻으려 했던 스콜라주의의 지성주의와 도덕주의 모두를 지칭했다. 루터가 영광의 신학에서 문제라고 본 것은, 영광의 신학이 인간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 신학이 추구하는 영광의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데서 영광을 받는 신’이라는 점이다.

 

4. 루터는 우상숭배적이고 인간중심적 종교를 반대하며 ‘십자가 신학’을 가르쳤다. 루터가 십자가의 신학으로 가르치고자 한 것은 첫째, 하나님은 교만과 탐욕을 좇는 영광의 신학자들로부터 자신을 감추신다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는 영광의 신학을 정죄한다는 것이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는 성례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따라 우리의 옛 사람이 죽어야 하는 모범이다. 결국 신자들은 십자가를 견뎌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낮고 버림 받고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십자가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된다. 십자가가 영광의 신학을 제하려 버렸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성을 참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율법-존 웨슬리>

 

1. 웨슬리는 칼케돈 신조와 영국 국교회의 39개조를 따라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과 참 인간’으로 가르쳤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보다 신성을 더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경향은 아마도 ‘육체를 따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웨슬리와 율법의 교사

 

2. 하지만 웨슬리의 율법 이해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가 ‘율법 아래’ 살게 되셨음을 의미한다. 그는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심을 통해 희생제물로 자신을 준비하셨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교부들이 가르친 대로 인간이 타락한 모든 부분에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보이셨다. 성육신을 통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셨고, 율법의 교사가 되셨다. 성육신을 통해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보다 나은 지식을 제공해주셨고, 이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더 깊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율법에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율법-마틴 루터>

1. 루터는 그리스도는 율법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복음을 주신 분이심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가르치신 것을 우연적이거나 부차적인 사역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 설명을 보완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행하셨다는 의미라고 단언했다.

 

율법은 복음을 의존한다

 

2. 루터가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가르친 것은 율법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은 복음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그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언자 그리스도와 율법-존 웨슬리>

1. 웨슬리는 하늘의 비밀을 선포한다는 의미와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 중에서 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을 말한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예언 사역의 근거를 그의 삼위일체적 통일성에서 발견한다. 이 통일성을 인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분명한 형상… 특징, 각인, 살아있는 인상’으로서 그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 수 있게 된다.

 

율법과 인간의 책임

 

2. 또한 이 통일성으로 인해 그리스도는 율법을 가르치는데 있어 특별한 권위와 무한한 우월성을 지니신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다고 하는 말을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하게 순종하셨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가 율법의 의미를 완벽하게 설명하셨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충분히, 순수하게, 영적으로 등의 말들을 통해 웨슬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내적인 율법의 우월성을 표현했다.

 

3.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대하는데 있어 인간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그가 행하셨듯이 하는 것은 율법의 핵심적 요구다. 그리스도께서 진실되고 견고한 교리들을 권위 있게 가르치실 때, 우리는 책임 있는 해석자들로서 그 말씀들을 받아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전달하는 전달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율법-마틴 루터>

1. 루터는 만족과 형별 두 가지 모두를 가르쳤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대신해 형별도 받으시고, 또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셨다는 것이다. 루터의 속죄관의 주된 특징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죄인들이 연루돼 있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면제시키는 경향들에 반대해 루터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곧바로 하나님의 진노나 사랑에 연결시키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못 박은 유대인들처럼 우리 자신들도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인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죄인들의 죄됨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율법을 깨뜨린 죄인들뿐만 아니라 은총을 거부한 죄인들도 연루돼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우리는 형벌 받으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자기희생적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공로임을 알게 된다.

 

3. 루터는 하나님은 은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믿는 믿음을 의존하는 것까지도 역시 우리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도께서 신앙 안에 현존하시지만 그 현존은 불완전한 신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은총에 의한 것이다. 불완전한 신앙을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일 뿐이다.

 

4.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행복한 교환은 부분적인 속성의 교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우심과 죄인들의 심히 죄인됨 사이의 교환이다.

 

5. 루터는 이 세상에서 완전한 의로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했다. 성령께서 육체를 점차적으로 제압하셔서 종속적인 위치에 두기 시작하시기 때문에 신자들은 육체를 성령께 굴복시키기 시작하지만 완전히 굴복시킬 수는 없다. 신앙은 죄를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하지는 못하다. 인간의 죄라는 상처는 싸매어지고 돌봄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다.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신앙은 율법을 성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완전히 성취하지는 못한다.

<제사장 그리스도와 율법-존 웨슬리>

1. 그리스도의 제사직분이 필요한 것은 율법을 깨뜨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다. 진노란 죄를 향한 하나님의 의의 표현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성취를 그가 죄인들을 위한 형별대속의 자격을 얻으셨다는 사실에 연결했지만 신자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형벌 받으신 것으로 성취됐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시다는 이유로 신자들을 의롭게 여기시지는 않는다. 웨슬리는 전가의 교리가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저해한다고 가르쳤다. 웨슬리는 속죄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의 모두가 믿는 순간 신자에게 전가됨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전가를 반대해 온 이유는 전가의 개념 자체보다는 전가를 오해함으로 야기되는 율법무용론적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능동적 의보다
수동적 의 강조

 

3.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의 보다는 수동적 의를 더 강조했다. 전가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그것을 칭의만 연결시켰지 성화와는 연결시키지 않았고, 전가는 의라는 표현 이후에는 즉시 신자의 의가 뒤따라야 함을 덧붙여 강조했다. 웨슬리에게 성화란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것보다 신자 자신의 성품과 기질과 감정과 의도를 의미했다.

 

4.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가르칠 때 웨슬리는 두 가지 동기를 가진다. 한편으로 칭의에서 인간의 어떤 공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자 자신의 의가 무시될 때 생겨나는 어떤 율법무용론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가르침을 거부함으로써 웨슬리는 은총을 바탕으로 성도 자신이 율법을 성취한다는 의미에서 성화를 위한 자리를 남겨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율법-마틴 루터>

1. 루터는 자주 그리스도의 사역을 죄, 죽음, 사탄, 지옥, 율법,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승리로 묘사함으로써 율법과 하나님의 진노를 악한 권세들과 동일한 범주로 분류했다. 루터가 율법과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적들로 묘사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율법과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2. 적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죄를 극복하는데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무력한 채로 죄, 죽음, 세상, 마귀와 모든 악을 이기시는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루터는 악을 정복하고, 구원을 주시는 것은 오직 ‘신적인 능력’에 속하는 일로 설명하면서 승리의 비결을 그리스도의 신성에게 돌렸다. 그리스도의 죽임이 승리였음을 입증하는 것이 그의 부활이다.

 

3. 루터의 승리 유형은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의 자족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셨고,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셨고, 형별을 받으셨고, 동시에 그는 율법과 죄와 죽음에 대해 승리하셨다. 대리적 만족과 승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의 부분들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우리의 것이기에 그는 우리의 모범도 되신다.

 

<왕이신 그리스도와 율법-존 웨슬리>

1. 웨슬리는 율법 수여자의 권위를 신적 권위로 묘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왕직을 그가 창조주, 통치자, 위대한 율법수여자와 심판자가 되신다는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그의 성육신 이후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영원한 직분이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믿음을 입증시킨다

 

2. 웨슬리는 창조주로서 율법을 만드시고, 통치자로서 율법을 보존하시고, 심판자로서 율법의 유효성을 확증하시는 그리스도의 왕직과 율법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기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구별했다. 즉, 예언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왕직 그리스도께서 이미 제정하시고 인간의 마음에 새겨놓으신 율법을 다시 선포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가 율법을 선포하거나 전달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처음부터 율법을 제정하시고, 인간의 마음에 새기셨다는 의미에서의 율법 수여자이시다. 웨슬리는 특별히 율법의 근원과 권위와 적절성을 가르칠 때, 그리스도의 신성 및 그의 권세와 지혜의 탁월성을 강조했다.

 

4. 웨슬리는 현재적 칭의에서는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만 요구되지만 최종 칭의에서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믿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즉, 성화가 현재적 칭의의 조건은 아니지만 최종 칭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최종 칭의시 유일한 조건, 즉, 참 신앙을 입증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 용납되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율법이신 그리스도(십자가의 신학) VS 율법의 교사이신 그리스도

1. 루터는 그리스도의 율법이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에 더하신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구약의 율법은 이미 풍부한 영적이고 내적인 율법과 최고의 영성의 표현들을 담고 있다. 구약 신자들의 영적 시련은 구약 율법이 영적 의미들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율법의 영적 특성을 설명할 때, 루터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율법을 구분하지 않았다.

 

율법,
루터와 웨슬리의 다른 시각

 

2. 루터가 그리스도를 율법으로 설명할 때, 그는 율법의 내용보다 전달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이 율법을 무시하고, 오용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일한 내용을 다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충격적인 방법으로 죄인들이 교만과 탐욕을 다루시는 것이다. 즉, 죄인들이 자신들의 신학과 자신들의 율법사용을 옹호해주시는 분이라 믿었던 그리스도가 자신들을 정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의지하는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의 율법이 되시는 것이다.

 

3.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영광의 신학에 대한 공격이다. 겸손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상화하는 죄인들을 반대하신다. 그의 십자가 죽음은 죄인들이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을 꾸짖는다. 십자가 신학이 심판의 요소를 지닌 것이다. 그리스도는 본받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율법으로 작용하신다.

 

4.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되심으로써 죄인들은 복음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찾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자신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복음이 되어야 한다. 루터의 신중심적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되시고, 복음이 되시고, 또 모범이 되신다. 소위 말하는 율법의 제3용법도 그리스도로 대체된다.

 

5.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율법을 이해하는데 있어 루타와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도는 유법을 완벽히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완벽히 설명하심으로 율법을 성취하셨다. 그리스도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을 능가한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위와 죽음, 모든 것이 율법으로서의 깊은 의미를 가진다.

 

칭의, 성화와 율법의 관계

 

그리스도 자신의 순종으로 율법을 성취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대상이다. 외적 행위로만 율법을 지켰던 구약의 신자들에 비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율법에 순종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구원의 핵심적인 부분들이다.

 

전가된 의로서 그리스도 VS 성도 자신의 의를 위한 그리스도

1. 루터에게 칭의와 성화 모두는 전가로 이루어진다. 루터의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은 그의 의의 전가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의 신학의 신중심성을 보여준다. 루터의 가르침에서 신자는 의인이자 죄인이라는 ‘동시성’, 신자 자신의 의는 세상에서 시작되지만 완성될 수는 없다고 하는 ‘시작’의 특성 등은 인간의 의의 결함과 하나님의 은총의 완벽함을 의미한다.

 

2. 루터의 신중심적 강조점과는 달리 성화를 위한 율법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의 삼중직 설명에서 나타난다. 그가 속죄에서 전가를 반대한 이유는 전가의 교리는 신자가 스스로 율법을 성취할 필요를 경시하게 하는 율법무용론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웨슬리에게서 완전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을 통해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지만 완전 상화 전후 은혜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신자가 율법에 순종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삼중직과 성화에서 인간의 책임을 축소시키지 않는다.

 

 

율법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승리 VS 율법을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

1. 웨슬리는 율법을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생각했다. 율법 속에 담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본성이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삶에 새겨지면 율법은 그 본성을 통해 ‘죄의 적’으로서 활동한다. 성결의 은혜를 통해 왕이신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죄를 정복하는 것’ 이상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 따라서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심으로 자신의 승리를 얻으셨던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율법을 극복하느 것이 아닌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계속적으로 승리하신다. 웨슬리는 이러한 승리를 복음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은혜로 가르쳤다.

 

율법과 그리스도

 

2. 칭의와 성화 모두를 그리스도의 삼중직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웨슬리의 기독론은 종교개혁 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웨슬리는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추종자들에게서 나타난 도덕적 방종과 사랑의 부족이 율법의 ‘거룩한 명령’을 소홀히 여긴데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율법에 대한 적절한 가르침이 없이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만 가르치고, 신자 자신의 의를 강조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새로운 교리와 예배 형식만 가지고는 신자들의 ‘마음과 삶과 … 성품과 실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3. 루터는 자신이 율법에 대해 아주 신랄하게 묘사한 것은 ‘훌륭한 평가절하’라고 설명하면서 바울이 율법을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갈 4:9)으로 모욕적으로 묘사했음을 예를 들어 자신을 정당화했다. 율법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 신성모독처럼 보일지라도 율법이 정죄만 하고, 복음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아니다. 바울이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라고 말한 것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죄인과 율법을 모르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위선자들 중에서 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4. 루터에게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율법의 행위로 얻어질 수 없고, 오직 우리를 위해 율법을 극복하시고 승리를 얻으신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율법의 성취에 관한 루터의 생각은 분명하다. 바로 “율법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위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와 한국교회사학회가 공동으로 지난 2013년 3월 23일 오전 10시 서울신대 우석기념관에서 ‘한국 교회의 위기와 대안’을 주제로 개최한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28차 논문발표회 및 한국교회사학회 제118차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에서 일부 발췌 및 요약 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할 경우 해당 단체에 문의하면 된다.

장기영,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 비교”,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ㆍ한국교회사학회-논문발표회 및 정기학술대회‘, 2013년 3월 23일, 서울:서울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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