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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묻는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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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뜻인가:악과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권연경 교수

 

2014년 7월 28일 기사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 앞의 보험중개인이 자신이 어떤 교회 집사임을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다.”
 

1. 하나님의 뜻이라는 고상한 표현이 내 의도를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게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 행동 자체가 신앙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행동의 속내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혼란스런 조작이 제거되어야만 드러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나의 삶이나 우리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해석의 틀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2. 원론적으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한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사실상 하나님의 섭리 개념과 다르지 않다. 이런 관점은 말하자면 신학적 ‘전체 조명’에 해당한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큰 호흡으로 바라보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3. 하지만 이 포괄적 조명이 우리 삶의 모든 구석을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두 발로 걷는 삶의 구석구석에는 이런 ‘전체 조명’으로는 밝혀질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어두운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도덕적 굴곡이 존재한다. 구체적 삶의 현장 속에서 인간의 삶이란 대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대결의 구도 속에서 펼쳐진다. 이 구체적 문맥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경우, 이는 언제나 우리 삶의 도덕적 상황을 밝혀줄 도덕적 조명으로 작용한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은 사실상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라는 의미에 접근한다.
 
4. 전체조명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섭리)과 부분조명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요구)은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얽힌다. 성경은 결코 사람이 저지르는 악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삶 전체를 조망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신앙적 고백이 우리 삶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덮어쓰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 일상의 행보를 놓고 늘 선과 악을 따지며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큰 틀을 짜면서도 그 틀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5.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신학적 전체조명으로서의 ‘하나님의 뜻’과 실천적 부분조명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은 그 속내가 다른 것이다.
 
6. 물론 성경에서도 이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이 얽히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큰 호흡으로 역사 배후에 놓인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 표면에 드러나는 도덕적 책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이미 예고된 일이라는 점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준 것은 하나님의 뜻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도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다.
 
7. 우리가 겪는 혼란은 많은 부분 이런 두 용법의 혼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세월호 침몰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직접 연루된 당사자들의 저급한 이기심에 충격을 받았다. 개인들은 자신의 목숨만을 따지고 회사의 자기 이익만을 따지고 해경이나 정부와 같은 다양한 조직들은 조직 유지와 확장의 본능에만 충실했다.
 
8. 우리는 이런 본능이 수많은 승객들, 그것도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의 적나라함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도덕적 충격이다. 당연히 우리는 그런 희생을 야기한 불법적 행태에 분노하며 그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런 도덕적 부분조명을 끄고, 보다 느슨한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한다. 곧 하나님께서 (무고한) 학생들을 희생시키셨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배후에는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려고”라는 해석이 붙는다.

 

 

9. 이런 해석의 의미가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순간, 그 사건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일은 중단된다. 대신 우리는 더 이상 그 희생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이런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기회에 마음을 모으고,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불행한 사태와 관련된 ‘불편한 도덕적 물음’으로부터 서둘러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10. 문창극 씨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일제 36년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남북분단 및 동족상잔의 비극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큰 틀 속에서 해석했다.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는 것처럼 아직 도덕적 판단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사안, 그래서 가해자들은 도덕적 책임을 제대로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그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11. 그런데 그는 이런 도덕적 차원을 사뿐히 건너뛰고 큰 호흡으로 이 불행 배후에 놓은 하나님의 뜻을 논하려 했다. 그리고 이 ‘뜻’의 사례들로 종래의 미개함과 누추함 대신 서구의 발달된 문명이, 한반도의 공산화 대신 분단이라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경제 성장이라는 축복들이 거론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전체조명 속에 많은 진실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뜻인가?:악과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성서학적 통찰), 권연경 교수

 

* 위의 내용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지난 25일 오후 7시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사태로 비추어 본 한국 교회와 신학’(부제:고통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우정의 신학)을 주제로 진행된 긴급포럼에서 발표된 것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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