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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원문]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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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홍 교수(한신대, 교회사)

 

2014년 6월 14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6월 13일 오전 7시 분당한신교회(담임:이윤재 목사)에서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원문으로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기독교인이 된 강원용 목사의 이중적 정체성과 같이 그의 민족주의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제하의 고난 받는 민족의 구성원이었던 그는 민족의 해방을 바라던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그에게는 민족의 해방보다 더 큰 인간의 해방을 바라는 에큐메니스트가 되었다. 이러한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를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글은 강원용의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를 그의 생애의 절정기인 70년대에 발표한 통일관련 논문을 중심하여 몇 가지로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민족의 분단 상황에서 강원용 목사의 통일인식은 그의 민족주의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1. 고난과 민족주의

“외세에 의해 강요당한 국토분단의 비극”은 강원용 목사로 하여금 남북의 통일 노력과 염원을 멈출 수 없게 하였다.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한국이 “얄타비밀협정과 같은 강대국들의 범죄의 결과”로 민족분열을 가져왔다. 해방이후 남북의 분열된 이데올로기와 체제갈등은 얼마나 많은 민중을 죽이고 더욱이 6•25전쟁은 한국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어려서부터 민족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강원용 목사는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이기를 누구보다도 바랬다. 그러나 그 바램은 허물어졌다.

민족의 분단을 가져온 8.15 해방은 민중고난의 서막이었다. 강원용 목사는 땅의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국가나 정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은 또 다른 제국적 힘의 대립과 갈등을 불러왔다. 이것이 2차 세계대전이후의 냉전(Cold War)구조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의 패권경쟁은 한국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남•북의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을 가져왔다. 강원용 목사가 본 민족의 비극은 분단구조와 대결체제를 조성하고 심화시키는 미•소를 중심한 제국들의 국가이기주의와 또한 이를 지지하고 보존하는 남북한 사회의 반통일 지배세력들의 집단 이기주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의 긴 역사의 밑바닥에는 비록 그 형태는 바꾸면서도 대체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에는 넓은 금이 항상 그어져 있었고 이로 인해 서로 마음으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유지해 왔다. 이것도 사실은 대부분 외부의 강대세력에 의하여 조종되는 균열(龜裂)이었다.

남북 분단의 1차적 피해자는 민중이다. 즉,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 층이다. 일제식민지와 해방정국, 그리고 6.25 전쟁에 이르는 민족의 분단현실을 살아온 그의 민족주의는 민중의 고난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분단구조의 모든 부담은 민중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에는 민중을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역사의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한국 속담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미국과 소련의 거대한 힘의 갈등 속에서 한반도는 희생양으로서 고난을 겪은 것이다. 따라서 강원용 목사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분단을 강요당하고 또 그 분단을 현실에서 짊어져야하는 민중의 고난 속에서 민족주의를 찾는 것이다.

 


2. 인간화와 민족주의

강원용 목사는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논평에서 “민족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원칙”에 공감하면서도 이것이 낭만적이고 감상적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외세를 배제한 민족자주와 사상, 이념, 제도를 초월한 대 단결이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세를 통제할 중간집단의 형성과 민족을 이끌 새로운 지도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원용 목사는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형성할 중간집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통일을 이루기위해서는 민족의 지도이념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둘 다를 거부한다. 이유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가 모두 물질적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강원용 목사는 물질이 아닌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지향하는 통일 사회를 말한다. 민족공동체는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이념을 가지고 가치를 추구한다. 19세기 서구의 낡은 유물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으로서는 남북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민족의 새로운 지도이념이 될 수 없다. 이미 실험이 끝났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남북을 분단시키고 민족공동체를 물질주의로 파괴하고 있다. 강원용 목사는 유기적 생명체로서 민족은 그 이념을 인간화에 두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우리가 찾아야 할 지도이념의 방향은 ‘인간화’의 방향이다. 인간은 신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인간과 인간과의 공동체 형성 속에서만 인간화가 가능한 것이므로 양성간의, 세대간의, 종족간의 모든 대립이 지양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공동사회의 건설에서 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강원용 목사의 이와 같은 인간화의 주장 속에는 신과 인간, 신과 자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져야할 새로운 민족공동체의 구상이 깃들어져있다. 강원용 목사는 한국민족이 추종해온 서구의 근대화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서구문명은 기술문명이다. 기술문명은 신을 역사에서 추방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정복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오늘날 물량주의의 서구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신과 적대하게 하고 인간의 삶을 물량주의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의 모든 활동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고 방편일 뿐이다. 모든 가치의 기준은 인간화에 있다. 따라서 강원용 목사의 통일은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절충한 통합체제가 아닌 그와 다른 서양문명의 물질주의를 넘어서는 인간화를 지향하는 민족국가형성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치이념이 인간을 도구화하고 경제성장이 인간을 물질화하며 문화와 교육이 인간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는 구조 속에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강원용에게 있어서 인간화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두 이념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3. 평화와 민족주의

강원용 목사에게 통일방안은 그것이 유엔(UN)의 총선거이거나 중립화론이건 문제는 평화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자주적 통일을 전제로 한 그의 평화통일론은 전쟁이나 무력수단을 통하지 않고 민족구성원 전체의 합의된 국민통합과 외세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 민족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통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보장된 민주적인 통일이어야 하고 또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삼천만 동포가 사는 이쪽에서 먼저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실현된 민주사회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이 선결문제이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을 극복하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분단현실에서 이것을 내재화하고 심화시키는 한국사회의 반민주, 반평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통일은 먼저, 한국사회안에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와 정의, 질서가 확고히 세워진 민주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우방국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민주화는 평화통일의 선결과제이다. 특히 강원용 목사는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던 그 시대에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민주화이다. 공업 일변도의 경제개발은 사회를 도시와 농촌으로 갈라놓고 농촌의 빈곤화를 조장하였다. 특히 전체인구의 15.8%의 서울 시민이 남한 사회 76.2%의 경제적 부를 독점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상황에서 평화통일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금력을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절대 가치로 내걸 때 평화는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 통합이 무너지는 것이다. 강원용 목사는 민족분단현실이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와 함께 민족 공동체 안에 위정자와 국민 대중, 농촌과 도시, 부유층과 빈민층, 경영자와 근로자, 세대간의 균열과 마찰을 심화시켰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사회안에 반민주적인 억압과 통제, 부정과 부패를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민주화를 통한 사회 통합은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다. 남북 분단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남남분단이다. 그것은 강원용 목사의 말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자유와 정의 질서와 평화가 바로 서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너희가 평화의 길을 알았다면”(눅19:42)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놓고 눈물을 흘렸던 예수에게 민족주의는 유대 사회 안에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를 향한 호소이었다. 강원용 목사는 민족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민주화가 곧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평화통일의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4. 맺음말

우리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과업을 완수하려면 공산주의자와 민주적인 방법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하루 속히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상적인 무장을 하는 길이다.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는 침략적 민족주의나 저항적 민족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시대를 여는 민족의 지도이념이다. 그는 민족지상주의자나 민족우월주의자가 아니었다. 민족과 민족사이의 대립과 갈등에서 고난 받는 민중에 관심한 그의 민족주의는 인간화와 평화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민족주의이다. 통일은 보이지 않는 사상의 전쟁이다. 그 사상의 전쟁에서 주체사상과 같은 그릇된 민족주의를 이겨야한다.

강원용 목사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세계와 공존, 번영하는 통일을 이루는 민족주의만이 곧 그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확고히 믿었다.

* 내용의 원활한 게재를 위해 각주는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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