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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소멸 이유와 회복 전망

by 데오스앤로고스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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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웨슬리학회, 정기총회 및 논문발표회 개최

신임 회장으로 서울신대 교수 박창훈 박사 선출

장기영 박사, '메소디스트 부흥운동' 분석 논문 발표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현대 복음주의의 부흥에 큰 기여를 했던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소멸 이유를 분석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웨슬리학회가 지난 12월 16일(토) 오전 10시 서울신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2023년 정기총회 및 논문발표회'에서 장기영 박사(서울신대)는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소멸, 그리고 회복의 전망>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힘이 약화된 메소디스트 부흥운동

장기영 박사는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은 18세기에 영국의 교회와 사회를 갱신했고, 19세기에는 미국의 최대 교단이 되었을 뿐 아니라, 꺼져가던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불길을 되살린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통해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초교파적 영향을 끼쳤으며, 세계적으로도 현대 복음주의의 부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라며 "하지만 현재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은 그 특유의 힘과 에너지가 약화되어 개신교 전체의 활력에 과거와 같은 기여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태동과 변천

먼저 장 박사는 "18세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은 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신자와 교회가 거룩해야 한다는 성경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으로 여겨 그 일에 전념했다"라며 "웨슬리를 비롯해 메소디스트들은 나라,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온 땅에 성경적 성결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신 소명임을 거듭 확인하면서 사회의 부도덕한 문화에 대항하는 등 사회 운동과 사회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웨슬리 사후에도 메소디스트들은 엄청난 활력으로 부흥운동을 이어나갔다"라며 "부흥운동은 엄청난 전파력, 이동성, 적응력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 세계로 뻗어가 새로운 세계질서로 변화하는 여건에 가장 탁월하게 적응하면서 다른 어떤 교단보다 매력적이고 강력한 종교 선택의 길을 제시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장 박사는 "19세기의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이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특징과 활력을 상실해 가자, 그 쇠퇴를 감지한 메소디스트들은 '감리교를 갱신하기 위한 운동'으로, '오직 성결의 은혜를 추구하고 체험하며 전파하는 운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성결운동을 추구했다"라고 피력했다.

 

장 박사는 "결국 19세기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18세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명맥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오벌린 완전주의',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삶 운동, '케직 사경회'를 포함해 장로교회, 회중교회, 성공회, 침례교회, 퀘이커회를 포괄하는 개신교 타 전통에까지 초교파적으로 거룩함의 중요성을 각성시켰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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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된 메소디스트 부흥운동

하지만 장 박사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은 소멸됐다며 그 이유를 8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부흥운동의 자연적 생명주기다.

부흥운동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초창기 세대가 가졌던 활력과 열정을 잃고, 결국 그 조직과 함께 의식, 실천, 교리만이 남게 되는데, 사실상 기독교의 모든 운동에 적용되는 것으로 18세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 역시 1~2 세대의 열정이 3~4 세대에까지 동일하게 전해지지 못했고, 19세기 성결운동 역시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는 것.

 

둘째, 메소디스트 근본 교리의 변형과 왜곡이다.

하나님과의 실존적 만남을 위해 성경적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던 것에서 진리의 이성적 증명으로 신학의 초점이 옮겨졌으며, 원죄의 유전된 죄책과 유전된 부패성 모두를 강조하던 것에서 점차 죄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인간의 도덕적 자유를 강조했고, 하나님의 거룩성과 구원에서의 은총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가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한 강조로 바뀌는 등 초기 메소디스트들이 성결의 진리 선포와 성결의 은혜 체험을 강조하던 방법론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변형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것.

 

셋째, 메소디스트 교역자 양성의 허점이다.

복음적 체험과 자기희생적 헌신, 전도의 열매를 특징으로 삼았던 메소디스트 설교자 전통이 사라지면서 긴장과 희생이 없는 교회와 교단 형태로 변모되고 말았다는 것. 특히 점차 메소디스트 교회에서도 목회는 사람을 다루는 기법이 되고, 사역은 사회 정치적 행위가 되었으며, 얕은 철학이 신학을, 기업 경영 기술이 교회 행정을 대체하고, 또 상담과 심리요법이 성결 체험을 대신하게 되었고, 영혼 구원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에 대한 관심은 교회성장운동으로 변질되는 등 목회자와 교회가 복음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

 

넷째, 메소디즘의 부르주의 현상과 세속화다.

물질주의를 비롯해 현대화와 세속화의 질병 속에서 성결집회는 세상 문화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웨슬리안들이 점차 높은 수입과 교육을 누리게 되면서 성결을 강조하는 이상한 분파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음으로 스스로의 신학적, 윤리적 특징을 약화시키게 됐다는 것.

 

다섯째, 포괄적 성결론의 상실과 성령론적 축소다.

웨슬리와 초기 메소디스트들이 점진적 성화의 과정과 순간적 완전 성화 사이를 균형 있게 가르친 것에서 이탈해 성화의 점진적 요소에 치우치게 됐다는 것. 19세기 성결운동은 초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강점이었던 정기적 소그룹 모임을 통한 친밀하고 지속적인 영적 훈련 체계를 지속하지 못했고, 성결의 방법 역시 은혜 안에서의 점진적 성장과 순간적 은혜 추구를 균형 있게 추구하지 못하고, 순간적 성결체험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것. 결국 19세기 성결운동에서 포괄적 성결 이해는 죄성 근절이라는 인간론적 이해와, 성령세례라는 성령론적 이해로 매우 축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여섯째, '교회 속 교회' 운동 상실과 고립된 섹트화다.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갱신을 목적으로 했던 웨슬리안 성결운동이 교단을 이루어 분리됨으로 복음주의 전반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었다는 것. 메소디스트 부흥운동과 웨슬리안 성결운동이 기존 교단들과 협력하며 더 넓은 복음주의 운동 내에 성결의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을 축소시킨 것이 더 넓게는 성결운동의 쇠퇴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

 

일곱째, 사랑의 용광로에서 '복음 VS 사회복음'의 분열이다.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에 관심을 특징으로 했지만 산업혁명의 부작용의 많은 부분을 흡수해 사회적 약자 보호와 전반적 사회 안정에 기여했을 정도로 활발했던 사회적 봉사와 섬김의 노력은 이후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사회복음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매우 약화되었다는 것.

 

여덟째, 전인적 관계성에서 결의론적 율법주의로의 축소다.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이 강조했던 경건과 자비를 통한 내적, 외적 온전성이 바리새주의적 행위로 변질됐다는 것. 성결운동에 동참한 사람들 중 일부가 율법주의적이고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성결운동가들은 반대 극단으로 기울어 행동에서 자유주의자가 되었고, 과거 일부가 세상과 접촉을 끊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세상에 동화되었다는 것. 

 

장 박사는 이와 관련해서 데이비드 햄튼(David Hemption)의 주장을 인용해 아래와 같이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소멸 이유를 언급했다.

 

"부흥운동의 쇠퇴는 도덕적이며 영적인 타락, 순회교구의 누수현상, 역동성을 잃은 속회, 자녀에 대한 부모 세대의 신앙교육 실패,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열광주의를 상실한 천막집회, 공동체에 유행하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교육, 거대한 도시 채플을 짓기 위해 빚을 지고 기타 자원을 고갈시키는 물질화된 영성, 잊혀진 환상이 되어버린 완전 성화, 경건한 믿음에서 비롯한 진취적 사회적 행동에서 비인격화된 사회복음으로의 와해, 열정적 예전과 새로운 예배 갱신이 사라지고 형식화되고 무감각해진 예배와 예전, 주변 문화의 개혁이 사라지고 무비판적 수용으로 끝남, 초월적인 것이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짐, 영혼을 담은 각종 목소리들이 단순한 소리로 전락함, 성화의 추구가 존경의 추구로 변질됨 등에서 비롯되었다"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회복 방법

메소디스트 부흥운동과 이를 계승한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쇠퇴와 소멸의 원인을 분석한 장 박사는 초기 메소디스트들이 처음 지녔던 교리(doctrine)와 정신(spirit)과 훈련(discipline)이라는 관점에서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본질적 내용과 에너지, 영향력 회복의 바람직한 방안을 제안했다.

 

첫째, 교리의 회복이다.

장 박사는 "웨슬리에게 포괄적 성결 이해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성결이 성경이 포괄하는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드러낼 때 가장 온전한 진리가 될 뿐 아니라, 개신교 내 타 신학 전통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성결의 진리를 확장시키는 일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라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의 회복은 웨슬리 사후 축소되어 온 성결 교리의 성경적 포괄성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둘째, 정신의 회복이다.

장 박사는 "메소디스트 신학은 차가운 이성적 이해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균형 있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죄인들로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만나게 하고 참된 '마음의 종교'를 갖게 해야 한다는 초기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라며 "나아가, 성결을 가르칠 때도 이론화, 개념화해 화석화된 유물처럼 여기게 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상태이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핵심 내용이 되게 하고, 은혜 안에서의 성장의 동기와 에너지와 목표가 되게 하며, 실제적 체험이자 삶의 모습이 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셋째, 훈련의 회복이다.

장 박사는 "웨슬리는 성결을 개념적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성결을 추구하는 방법을 중했다. 그는 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등 다양한 메소디스트 조직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영적 성장 단계를 고려해 각 사람에게 적합한 그리스도인의 훈련을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라며 "주님과 동행의 훈련이 '회심'만이 아니라 웨슬리의 특징적인 강조점인 '성결'의 토대로도 제시하면서 오늘의 교회가 성결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장 박사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성결의 메시지를 가장 목말라하고 있다"라며 "국내 메소디스트, 웨슬리안들이 과거 메소디스트 부흥운동과 웨슬리안 성결운동이 힘썼던 성결의 선포와 사회적 섬김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발전시켜 오늘의 한국 교회를 위한 새로운 부흥운동을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웨슬리를 넘어서라

한편, 논찬자로 참여한 이찬석 박사(협성대)는 "오늘날 웨슬리 후예들에게 던져진 과제는 웨슬리의 답습이라기보다는 웨슬리의 확장이 되어야 하고, 웨슬리의 회복을 넘어서 웨슬리 넘어서기’가 되어야 한다"라며 "웨슬리 학자들이 성화에 있어서 웨슬리의 성화 개념을 개인적 지평으로 제한하지 않고, 사회적 · 우주적으로 확장하여 사회적 성화와 우주적 성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성결도 개인적 성결을 넘어서 사회적 성결로 더 확장시켜 나가야 하고, ‘개인적 성결에서 사회적 성결로의 동선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결에서 개인적 성결로의 동선도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박사는 "현재 3040 세대들은 전통적인 교회 활동보다는 사회적 실천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 공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를 더 선호한다"라며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사회봉사 활동의 장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웨슬리 부흥운동과 성경적 성결의 회복을 위한 소그룹의 구조화를 신중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라며 "예배에만 참석하는 수동적 기독교인을 성결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적극적인 기독교인으로의 변화에 있어서 웨슬리가 구조화한 소그룹을 포스트모던(post-modern)화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웨슬리학회는 정기총회를 통해 부회장이었던 서울신대 박창훈 교수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으며, 김영택 박사(성결대 교수)를 부회장으로 선출하는 등 새 임원진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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