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서와 부림절은 메시아가 이 세상의 올 것을 준비하는 일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은 성경으로서의 에스더서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성경신학회(회장:현창학 박사)가 지난 8월 17일(목) 오후 2시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제51차 정기논문발표회'를 개최했다.
<에스더서 주해와 설교>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정기논문발표회에서는 김성진 박사(고신대학원 교수), 강규성 박사(한국성서대 교수), 이승구 박사(합신대 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여해 에스더서 주해와 설교의 방법을 제시했다.
'에스더서의 흐름과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김성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에스더서는 바벨론 포로기(주전 605-540년) 이후 페르시아 치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5년) 재임 시절 중 주전 483-473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 박사는 "이 시기는 페르시아 고레스 왕(주전 539-530년)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의 1차 본국 귀환이 이뤄지고(주전 538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후(주전 516년), 에스라 때의 2차 유대인 귀환(주전 458년)이 있기 전의 시점이다"라면서 포로지에 남아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배경으로 하는 에스더서를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설명했다.
에스더서의 신학적 메시지
"종말론적 소망"
하나님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에스더서의 문학적 특징과 구조의 흐름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김 박사는 에스더서의 신학적 메시지를 (1) 언약에 신실하시며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 (2)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3) 인간의 믿음의 반응, (4)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의 승리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 등으로 정리했다.
특히 김 박사는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패배와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의 최종 승리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을 제시한다"라며 "하나님은 특히 자기 백성의 ‘위기’를 반전시켜 ‘잔치’로 바꾸셨는데, 에스더서가 보여주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는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결국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탄과 악한 세력들은 몰락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은 승리하여 영원한 ‘잔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에스더서의 부림절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인 승리와 ‘잔치’를 내다본다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에스더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라며 "에스더서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성도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 위에 서있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반전’의 역사는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며,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의 위기를 ‘잔치’로 바꾸신다"라며 "이 세상 나라와 권력자들은 결코 성도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들과 세상 나라들”은 결국 몰락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을 오직 세상의 참 왕이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만 고정해야 한다. 마지막 날 성도에게 임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고대하며(계 19:1-8) 우리는 변함없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모르드개, 그는 구원자다"
하나님 이름 등장하지 않지만
에스더서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
'모르드개와 그의 의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강규성 박사는 에스더서를 장별로 분석하면서 에스더서가 묘사하는 모르드개에 대해 설명했다.
강 박사는 "에스더서는 모르드개를 유다인의 구원자로 묘사한다. 에스더 2:5-7에서 저자는 모르드개를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에 대비하며 아말렉 족속에 대한 그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라며 "에스더서 저자는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르를 모반에서 구하고 유다인을 멸절에서 구하는 자로 말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모르드개는 유다인의 통치자 혹은 리더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아하수에르와 하만은 항상 자기 주도적이지 않고 주변인들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또한 그들의 정서는 기쁨과 분노가 교차한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여인들의 집, 왕의 문에서 그의 태도와 정서는 늘 일관된다. 그는 충성스러운 사람이고 권력에 물든 자에게 굴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모르드개 그는 리더이지만 때로는 조력자로서 충실한 역할을 한다. 그는 에스더의 명령을 따라 유다인들을 금식의 자리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그는 역사의식이 분명한 자이다. 그는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가 유다인의 구원을 위해, 또한 자신의 현재가 유다인의 구원을 위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행동하는 자다"라고 덧붙였다.
강 박사는 "에스더서에 하나님이란 단어도 기도라는 단어도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포로인 유다인의 멸절위기에서 구원을 이끌어 낸 것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질 수 없다. 그 역사의 흐름의 변화에 하나님이 계셨다. 에스더서는 강력한 하나님의 부재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역설적인 책이다"라고 역설했다.
에스더서의 주인공은 하나님
'하만 아이러니와 부림절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승구 박사는 먼저 "에스더 이야기가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강력한 왕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 세상을 통치하는 진정한 왕(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임재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하만은 자신이 높아지고 모르드개를 낮추고 결국은 그와 그 민족을 진멸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모르드개를 죽여 달아 놓으려고 준비한 오십 규빗 되는 나무에 자신이 매달려 죽고, 모르드개는 매우 높여지는 대반전이 이루어졌다"라며 "유다인은 전멸의 위협에서 구해지고 생존하게 됐고, 유다인에게 영광, 즐거움, 기쁨, 존귀함이 있게 됐다는 것이 에스더서가 말하는 표면적 메시지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에스더서의 주인공은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아하수에로도 아니다. 이 일의 놀라운 일을 하신 주인공은 이 문서에서 한 번도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신 분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덧붙였다.
부림절은 무엇을 말하나?
부림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이 박사는 "에스더서와 부림절은 메시아가 이 세상의 올 것을 준비하는 일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라며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은 성경으로서의 에스더서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현재 부림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부림절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속한 사람들로서의 의식을 철저히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며 "에스더서가 말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국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도록 유대인들이 보존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특히 "부림절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생각할 수 있다"라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이 연속성의 중요한 요인이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과 멸망에서 구하신 일을 기억해 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이루신 더 큰 구원을 경축할 수 있다는 것이 신약의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십자가에서 구약의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신 것을 믿는 우리는 아직 이 완성케 하는 제사가 이루어지기 전인 구약 시대의 절기들 중 하나인 부림절을 지키지 않는다"라며 "그러나 부림절의 의미는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어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한다>(빌 1:6)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에스더 시대에도 그리하셨던 것과 같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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