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은 폭력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신다. 계명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백성들과 이방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실 폭력에 가깝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과연 폭력적일까?
한국구약학회(회장:서명수 박사, 합신대 교수)가 지난 4월 21일 협성대 웨슬리관에서 <구약성서와 폭력>을 주제로 '제122차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날 주제강연을 비롯해 주제분과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의 주된 내용을 일부 정리했다.
하나님의 폭력성의 정당함
<하늘의 폭력과 신정론:구약의 천상의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한 기민석 박사(한국침신대 교수)는 "하나님의 폭력은 그의 백성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마땅히 기대되며, 이 정당성은 야웨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 간의 고유한 언약 관계에 근거한다"라고 주장했다.
기 박사는 "하나님의 폭력이 고대 이스라엘 야웨 신앙 체제 안에서 반드시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폭력도 합당한 목적성을 취하여 정당화되는 것처럼 신의 폭력은 더욱 그러하다"라며 " 하나님은 그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적을 잔혹한 폭력으로 진멸할 것이 기대되며 때론 이스라엘만을 위한 정의를 구현해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구약성서 하나님의 폭력은 그 거룩한 속성에도 기인한다. 정결치 못한 세속의 것은 거룩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음을 맞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인간이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됐다"라며 "세속은 거룩함을 감당할 수 없기에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거룩 자체가 폭력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태양이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뜨거운 고유 속성 때문에 근처의 모든 것은 태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 신성한 폭력은 윤리적 논란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반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폭력이 항상 정당화되고 윤리적 보장을 얻는 것은 아니다. 야웨 하나님의 계약 백성에게는 야웨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호하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성격과 그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고뇌하는 신음이 구약성서 곳곳에는 새어 나온다"라며 "비일관적이고 독단적인 야웨의 성격은 그를 유일한 신으로 믿고 따르는 그의 백성에게 그리고 성서의 독자에게 충분히 폭력적이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폭력성과 신정론
무엇보다 기 박사는 "구약성서는 '신정론'(사회와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어떤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전혀 책임이 없다고 선고하려는 시도)으로 하나님의 폭력성을 변호하고, 옹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신정론은 하나님의 폭력의 문제를 일관성을 가지고 변호하지 못한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기 박사는 "신정론은 구약성서 본문의 표면 아래 깊숙한 곳에서 작동하는 힘이며, 악과 고통의 문제로 위기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야웨 유일신 사상을 구원하기 위한 신학적 기제다. 그러나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 신정론은 끊임없이 인간의 죄를 강조해야 했으며, 모든 것을 섭리 안에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내부적으로 일관성을 잃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의 영역을 인간의 마음이나 초월과 신비의 영역으로 옮기는 신정론은 실질적 효과는 있지만 궁색하다. 궁극적로 가장 효과적인 신정론은 미력한 인간에게 신의 초월성과 절대적 우월성, 폭력적 힘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일방적인 신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 박사는 구약성서 안에서의 신정론은 묵시적 문헌의 '종말사상'이나 '천사론의 확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영역에서 '천상의회'(신들이 모여 주요한 의결을 하는 모임이나 그 의회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확장된 천상의 존재들의 역할과 지위 그리고 지연된 종말은 여러 각도로 야웨 하나님을 그의 백성의 원망과 비난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기 박사는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묵시문헌과 천상의회에 대해 대루는 본문(이사야 6장, 열왕기상 22:19-23, 욥기 1-2장, 시편 82편, 스가랴 3장, 다니엘 7:9-14 등)에서는 야웨를 폭력과 악의 책임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여지를 정교하게 제공하고 있다"라며 "민족적 재앙을 겪은 포로기 이후의 묵시문헌과 개인적 사회적 고통이 배경인 천상의회 본문 형성에는 야웨 유일신 신앙의 위기가 공통적으로 있다. 결국 고대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유일신 신관은 그 위기 가운데 슬며시 안정적인 다신론적 요소를 취하였으며, 이를 통해 야웨 하나님을 거센 항거로부터 피신시킬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폭력에 대한 욥의 인식
<하나님의 폭력과 욥의 패러디>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류사라 박사(백석대)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과 보호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데 거침이 없다. 이방 민족을 쫓으시고 악행과 죄악을 제거하기 위해 남김없이 진멸한다. 폭력적인 사랑으로 비칠지라도 후회 없이 행하시고 마침내 그의 백성을 되찾으시며 회복하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향한 헌신과 신실은 거룩함과 정의의 결과를 위한 것이며 지속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이스라엘에 선을 제공하신다. 이스라엘 안에서든 밖에서든 하나님의 폭력 목적은 뚜렷하고 일관적이다. 창조자요 주권자로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창조세계를 보호하시기 위해 폭력을 사용, 승인하시기 때문이다. 폭력은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안전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류 박사는 "욥에게는 하나님의 폭력이 다르게 인식되었다. 그가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폭력은 고대 근동 신들과 다르지 않은 이유 없이 잔인하고 거칠고 비인격적이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회복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비록 욥이 자신에게 익숙했던 고대 근동 환경과 극심한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고립되었다 할지라도,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했다"라고 피력했다.
이와 관련 "욥은 고대 근동 신들의 속성을 패러디하며 하나님의 존재론적 본질을 자극했다. 그들과 다른 하나님이라면 대답하시라는 질문이었고, 의심이었다"라며 "욥은 고대 근동 신들과는 다른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고자 했다. 신들과 인간과의 비인격적인 관계, 억압과 통제를 위한 폭력의 신들이 아닌 인격과 정의의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던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류 박사는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했고 욥은 자극했다. 죄의 기준도 없고 목록도 없이 악의와 자기 과시로 힘자랑을 하는 신들이 아니라 죄와 악에 대한 정의의 징벌과 심판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자신이 하나님의 폭력의 대상이 된 이유를 알려주시라고 긴장을 제기한다"라며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욥의 의심과 고립된 인식에 대하여 하나님은 대답하셔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존재론적 추궁은 하나님을 분명히 자극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해하기 힘든 구약성서
<헤렘의 하나님은 비윤리적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사야 박사(남서울대 교수)는 "구약성서 안에는 현대인의 인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산재한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질투심 많고, 자만하며, 마음이 좁고, 불의하며, 부정한 지배광처럼 보이는 등 가장 불쾌한 캐릭터이다"라며 "과연 현대의 윤리적 개념으로 구약성서를 읽는 것이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이 박사는 "구약성서에는 덕, 이상 등 현대 윤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거의 결여돼 있다"라며 "게다가 윤리(Ethics)라는 용어 자체가 구약성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윤리적, 도덕적인 삶보다는 인간의 모든 판단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가나안 족속들을 향한 폭력
그리고 하나님의 윤리
이 박사는 "구약성서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이슈들 가운데 가장 설명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가나안 일곱족속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이다"라며 "한편으로는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는 선민사상을 강조하면서(신 7:6)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민족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대량학살과 멸절을 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리고 정복과 파괴, 라합과 그의 가족의 구원, 아이성에서의 패배, 아간과 그 가족의 죽음 등 헤렘(진멸)의 하나님에 대해 설명한 이 박사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헤렘을 윤리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윤리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우선 우리 자신을 고대 이스라엘의 입장에 놓아보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체험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체험이 공동체로서의 그들의 실제적인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헤렘의 하나님과 윤리
이 박사는 "여리고성의 헤렘은 가나안의 비윤리적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과연 그 족속들은 완전히 멸절을 당할 정도로 악한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의 우상숭배가 민족의 멸종을 정당화시킬 정도로 악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논의는 비껴갈 수 없다는 한계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라합의 이야기는 이방인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아간의 이야기는 개인의 윤리는 곧 공동체의 윤리를 보여준다"라며 "특히 아간의 이야기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포로후기의 공동체가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 있고 바른 삶이 공동체 전체의 존폐를 가늠하게 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구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방 민족과의 불가피한 적대적 감정들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상황은 오늘날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윤리적 이슈들을 제기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헤렘 본문은 여리고 성 주민에 대한 헤렘만 담고 있지 않다. 라합 이야기를 통해 이방 민족이 심판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주의 사상과 아간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도 심판받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동시에 전하고 있다"리며 "아울러 개인의 윤리를 공동체의 윤리와 하나로 묶음으로써 포로후기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윤리를 모색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선민 이스라엘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과 윤리적 삶을 분명히 혹은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떤 윤리적인 사고와 행위들이 고대 이스라엘을 규정하고 있는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약은 어떤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주제분과에서는 정대준 박사(광신대)가 <사사기 19-21장의 폭력적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기>라는 제목으로, 백승훈 목사(숭실대 박사과정)가 <폭력의 연쇄반응: 구약의 성폭력 내러티브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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