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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예정론'과 다른 하나님의 섭리(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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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는 예정과는 달리 태초의 창조 이후에 창조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지시하며,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단번에 시행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섭리가 성서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수고와 노동'”(사 43:24)42)으로 이해되는 것은 적절하다."

 

예정론과 섭리론의 차이

 

예정론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주목하는 반면, 섭리론은 창조세계의 환경과 조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활동방식에 주목한다며 예정과 섭리는 각각 창조 이전과 창조 이후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성과 하나님의 활동방식으로 구분지어 사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박영식 박사(서울신대)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비록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활동에서 합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예정은 하나님의 구원활동 이전의 영원한 결의와 결정을 뜻하는 것이며, 섭리는 창조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지시한다"고 주장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박영식 박사의 <섭리의 신학-세월호 이후 우리는 신의 섭리에 대해 어떻게 책임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한국기독교학회, '한국기독교신학논총', 제115집(2020.01).

 

 

* 아래는 박영식 박사의 연구논문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세월호 사고처럼 터무니없는 일, 
원인을 알 수 없는 일,
과연 섭리신앙으로 극복될까?

 

박 박사는 "섭리를 전체주의적 관점이나 결정론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섭리와 예정을 날카롭게 구분하지 못하고 섭리를 단순히 예정 개념의 연장선상에 둠으로써 섭리의 역동성을 삼켜버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을 사유하는 신학은 세월호 사건 이전의 신학적 패러다임으로 결코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호소에 직면하며, 현실 세계의 고통과 악을 낙관주의와 결정론적으로 이해된 신적 섭리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무마시킬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박 박사는 "만약 전체주의적이며 결정론적 섭리 이해에 기초하여 세계의 고통과 악을 신적 섭리의 일환으로 파악해 버리면, 그 실질적인 책임은 신 자신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고통과 악의 실질적인 유발자인 그러한 신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섭리와 예정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전제한 그는 섭리와 예정의 차이점을 제시하며, 섭리론을 구원론이 아닌 창조론과 연관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섭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후, 피조세계의 우연성과 자율성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섭리방식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섭리와 예정, 무엇이 다른가?
섭리: 창조론과 관련
예정: 구원론과 관련

 

섭리론은 창조론과 관련된 내용이고, 예정론은 구원론과 관련되는 내용이다. 박 박사는 "신학사를 보면, 창조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예정론의 관점으로도, 섭리론의 관점으로도 설명되곤 하지만 양자를 날카롭게 대비시킨다면 예정론은 하나님의 본질이나 속성에 근거한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를 사유의 주제로 삼는 반면, 섭리론은 창조세계와 관계하고 있는 하나님의 활동방식을 사유한다"고 설명한다.

 

즉, 예정론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주목하는 반면, 섭리론은 창조세계의 환경과 조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활동방식에 주목하며, 예정론은 영원한 의, 곧 창조 이전의 영원에 초점을 두는 반면, 섭리론은 창조 이후의 시간에 주목한다는 것.

 

따라서 예정과 섭리는 각각 창조 이전과 창조 이후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성과 하나님의 활동방식으로 구분지어 사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예정은 하나님의 구원활동 이전의 영원한 결의와 결정을 뜻하는 것이며, 섭리는 창조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지시한다."

 

 

창조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 활동 세 가지

 

루터파 정통주의는 '섭리'를 창조 이후의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이라고 표현한다. 즉, 섭리는 예정과 달리 창조 이전에 일어난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가 아니라 태초의 창조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이러한 견해는 개혁파 정통주의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혁파 정통주의도 섭리를 ' 계속되는 세계창조'로서 하나님의 행위로 파악했다"고 설명한다. 

 

루터파 정통주의의 경우, 하나님의 섭리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하나님은 이미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신다. 둘째,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협동'하신다. 셋째, 모든 것을 '조정'하고 이끄신다. 

 

박 박사는 "섭리의 첫째 기능인 보존을 무로부터의 창조와 구분하여 '계속된 창조'(creatio continuata)라고 표현한다"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창조세계를 유지, 보존하며 창조세계의 사건과 연동하고 추동하면서 이 세계를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원적 활동을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결합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피력한다.

 

 

즉, 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구원사건은 단절된 별개의 두 사건이 아니라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일회적이거나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창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활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역으로 하나님의 창조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하나님의 구원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박사는 "섭리를 좁은 의미의 구원론에서 탈출시켜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 활동과 연관시킬 때, 하나님의 섭리는 우주와 생명과 인류의 역사를 포괄하는 거대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하나님은 작품세계에 심취해 자신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으면 파괴하고 다시 창작하는 그런 예술가가 아니다. 뒤틀리고 병든 창조세계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동행하시며 창조세계를 치유하시는 창조 활동을 지속하신다"고 강조한다.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섭리는 어떻게 구현될까?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처럼 이유를 해명하기 어려운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여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박 박사는 "칼뱅의 경우 섭리를 예정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우연성을 섭리 안에 포괄하기보다는 배제해 버렸다"며 "하지만 우연성을 배제한 섭리는 세상사의 고통과 악의 원천을 신에게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들며, 더 나아가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에게 자율성의 자리를 허락지 않게 된다. 우연성이 배제된 섭리는 세계를 하나의 잘 짜인 프로그램 이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섭리를 창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서 섭리와 삶의 우연성의 관계를 결코 배타적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섭리신앙의 존재론적 근거로서, 가시적인 우연성의 계기조차 깨어진 시간의 조각들이 아니라 새로움을 잉태하는 창조의 계기들로 인식하게 한다. 창조와 섭리의 결합은 섭리의 범위와 방향을 보편적으로 확장시키며, 우연성의 계기에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연성의 계기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성과 관계하며, 하나님은 자연적인 사건과 사건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 섭리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박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섭리의 존재론적 근거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초자연적으로 물리세계에 간섭하는 어떤 물리적 행위로 파악되기보다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도록 '보존'하며, 또한 이들과 '협동'하며 이들을 추동하여 존재와 생성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근원적인 창조 활동의 연속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창조세계에 부여한 자율성과 우연성을 보존하고 연동하면서 궁극적으로 마지막 창조에서 실현될 영광의 나라로 이끄는 창조의 존재론적 역동성으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결정론적이며 운명론적인 폐쇄적 힘들이야말로 창조세계에 풍성한 생명의 약동을 희망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반하는 반(反)생명적, 반창조적, 반섭리적 세력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결정론적, 운명론적으로만
세상과 삶을 해석하면 안된다

 

박 박사는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창조세계의 자율성과 우연성의 존재론적 기반과 힘으로 이해한다면 섭리를 초자연적인 개입이나 전체주의적 결정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일상과 자연세계 속에서 피조물들과 함께 연동하며 추동하는, 쉼 없이 지속되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섭리는 예정과는 달리 태초의 창조 이후에 창조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지시하며,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단번에 시행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다는 것. 

 

 

섭리론: 하나님의 수고와 노동

 

이와 관련 박 박사는 "섭리가 성서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수고와 노동'(사 43:24)으로 이해되는 것은 적절하다. 섭리신앙에 따르면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창조세계의 병든 모습을 굽어 살피시며 수고와 노동을 아끼지 않으시며 돌보시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섭리의 하나님은 앞서 정해놓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자가 아니라 일상의 여정을 동행하시며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다"라고 강조한 그는 "섭리신앙을 어설프게 결정론적 사유와 결합시켜 세상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오용해서는 안 되며, 섭리를 예정의 연장선상에 놓고 세상사의 모든 일을 용인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신학적으로 허용되어서도 안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박영식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I. 문제제기
II. 섭리와 예정
III. 섭리와 창조
IV. 섭리와 우연성
V.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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