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연구(5)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예정론'이라고 한다.
칼빈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De aeterna Dei praedestina-tione, 1552)에 표명된 예정론은 개혁교회의 핵심모토인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논증하는 중요한 교리다.
'이중예정론'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따른 구원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구원을 얻고, 또 어떤 이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또한 하나님께서 영원한 선택과 영원한 심판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알리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결정은 언제나 의롭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 기술된 예정론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조용석 박사(안양대 연구교수)는 " 칼빈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이중예정을 강조하지만, '섭리'(providentia)에 대한 부분을 추가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전망 속에 서 하나님의 이중예정을 조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을 언급한 조 박사의 주된 주장을 정리해본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조용석 박사의 <칼빈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 연구>, 한국개혁신학회, '한국개혁신학', 제70권(2021년).
기독교 강요 속 예정론
'예지와 예정'
칼빈에 의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조 박사는 "칼빈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의 개입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유기를 통한 이중예정으로서, 성도들의 선행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 채,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한 선택이다"라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에 따라 영원한 선택의 은혜를 베푸신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라고 볼 수 없다. 인간의 선행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평등하지 않게 전달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은혜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복음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온 인류에게 동일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 조 박사는 "칼빈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의 선행과 타락을 예견하는 하나님의 예지를 중시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들이 교묘하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고 있다고 간파한다"며 "예지(미리 앎, praescientia)를 인간의 선행과 관련하여 의미를 규정하고, 예정(praedestinatio)을 인간의 선행과 무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근거한 자유로운 영원한 선택의 행위로서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만인구원론자들과의 논쟁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논쟁이 일어났다. 네덜란드 가톨릭 신학자 피기우스가 주장한 만인구원론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구원의 주도권이 있음을 전제한다.
조 박사는 "그러나 칼빈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근거한 이중예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선행과 무관하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영원한 선택만이 성도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원인이라고 역설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행과 무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에 대하여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즉,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인간의 유한한 사유의 능력으로는 결코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유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독자적인 구원사적 사건이다.
조 박사는 "하나님의 '예지'를 주장하며, 인간의 선행 및 자발적 신앙의 수용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피기우스에 대해 칼빈은 '예지'는 인간의 선행과 타락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미리 앎을 의미한다면, '예정'은 이와 전혀 무관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의미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성도들의 조상이며, 구원이 선택된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라고 주장한 시칠리아 베네딕트 수도사 게오르기우스와도 논쟁한 칼빈은 아브라함 또한 선택된 자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조 박사는 "파기우스 및 게오르기우스와 논쟁한 칼빈의 핵심주제는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이에 대한 찬반여부를 만인구원론과 하나님의 이중예정의 결정적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이중예정의 관점에서 인간의 자유의지 및 이와 연관된 만인구원론의 허상을 과감하게 비판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조 박사는 "칼빈이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중요한 이유는 성도를 위한 위로로서,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향유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이 세계의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은 악의 원인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논리적 모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 박사는 "이와 관련하여 칼빈은 결코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역설한다"며 "칼빈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하여 악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땅에서 올라오는 구름이 태양의 빛을 흐리게 함으로써 그 빛이 인간의 눈으로 들어오지 못하지만, 태양은 여전히 빛을 발하며 남아 있다. 인간의 무가치함(hominum vanitas)은 수증기와 같이 많은 장애물들을 발생시켜 하나님의 정의의 모습을 없애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온전하게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조 박사는 "칼빈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는 중요한 특이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칼빈이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서 섭리론을 신론 이후에 배치하고, 예정론을 2권의 구원론적 맥락에 배치시켰던 것과 달리,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에서 섭리론을 결론 부분에 위치한 것은 예정을 섭리의 지평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함의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만인구원론의 한계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대한 확신'
조 박사는 칼빈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이중예정의 성경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간의 자발적인 선행을 강조함으로써,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참여공간을 확보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의 영역과 권한을 축소시키는 만인구원론자들의 주장을 극복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다.
조 박사는 "칼빈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이중예정의 전망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로부터 연유하는 것으로서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유기에 대한 근거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경외를 요청한다"고 설명한다.
조 박사는 "칼빈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하여>를 통해 인간의 구원의 역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이중예정이 하나님 섭리의 우주적 지평과 절대주권의 영역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며 "유한한 인간의 사유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중예정을 논리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하는 인간의 교만한 간계를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칼빈은 인간이성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정의 신비를 결코 파악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한, 이는 결코 구원의 불확실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밝힌다.
[조용석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I. 글을 시작하며
II. 본 연구를 위한 신학적 전제: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의 예정론 개요
III. 피기우스 및 게오르기우스와의 논쟁
1. 네덜란드 가톨릭 신학자 피기우스와의 논쟁
2. 시칠리아 베네딕트 수도사 게오르기우스와의 논쟁
3. 피기우스와 게오르기우스와의 논쟁에 대한 해석
IV. 섭리와 예정
V. 글을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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