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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방언기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보아야 하나?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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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연구(1) * 


 

공헌배 박사, ‘제9회 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서 방언기도 비판

 

2014년 5월 12일 기사

 

“개혁교회의 신학에서는 방언기도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도 없고, 제대로 된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 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학적,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가끔씩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신앙생활의 깊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기준이었던 ‘방언기도’. 현재도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는 방언기도를 매우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교회 신학에서는 방언기도를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조직신학회(회장:배경식 교수, 한일장신대)가 지난 9일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한국 교회를 위한 신학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제9회 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공헌배 박사(한국기독교학술원 연구교수)에 의해서다.

 

공헌배 박사는 ‘방언기도에 대한 개혁신학적 고찰’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방언기도는 교파에 따라 그 이해가 다르지만 적어도 종교개혁의 운동 중, 칼빈파 교회(개혁교회)의 교리들에서는 방언기도를 금했을 뿐만 아니라 방언기도를 일컬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까지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회들 중에는 자신들이 채택한 교리에서조차도 금하는 방언기도를 서슴치 않고 행하거나 방언이라는 은사를 체험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강요한 사례까지 있었다. 특히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 중 중요한 특징이라도 되는 양 흠모하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 박사는 이날 방언기도의 근거나 타당성의 여부를 신학이라는 기준에서 평가했다. 그는 칼빈의 교리문답(1545)과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방언기도론과 칼 바르트의 설교 및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드러난 고린도교회 은사 문제를 중심으로 방언기도에 대한 개혁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고찰했다.

 


# 방언기도에 대한 칼빈과 칼 바르트의 입장

일단 개혁교회의 교리들에서는 방언기도에 대해 부정적이다. 칼빈의 경우 “방언기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위선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고전 14)라고 말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그리고 만일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공 박사는 “결국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는 기도, 즉 방언기도에 대해 금했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칼빈은 방언으로 하는 기도를 일컬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칼빈은 무아지경과 같은 기도를 권했다기보다는 맑은 정신의 지성적 기도를 권했다. 또한 기도를 할 때는 말로써만이 아닌 헌신이 뒤따라야 하며, 기도에는 반드시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칼빈은 기도자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남용하거나 하나님의 위엄을 조롱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마음의 감동이 없이 입술이나 목구멍에서만 나오는 가식적인 기도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공 박사는 “방언기도에 대한 칼빈은 지성적 기도는 방언기도보다 우월해야(초월해야) 하고, 방언기도는 개인기도를 위해서는 불필요하다고 봤지만 내적 감정의 힘이 부족해 스스로는 기도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거나 감정이 격렬해져서 자연적으로 방언이 터져 나오는 경우에는 예외를 뒀다”고 설명했다.

즉, 칼빈은 방언기도를 인정했지만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웬만하면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고, 지성과 헌신이 따르는,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도하라고 주문했다는 설명이다.

칼 바르트의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방언기도와 같은 고린도교회의 은사활동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공 박사는 “칼 바르트는 고린도교회는 인간숭배적 요소가 강한 곳이었으며 종교적 혼합현상에 노출된 곳으로 정당하게 성령의 체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교회로 봤다”고 설명했다. 즉, 칼 바르트는 방언기도에 대해 고린도교회에서 다양한 은사현상들의 하나로 봤으며, 이와 같은 방언기도도 교회를 혼란하게 만든 원인으로 해석하는 등 방언기도에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개혁신학과 방언기도

공 박사는 “종교개혁자들도 기도에서 방언기도와 같은 몽상적이거나 위선적이거나 삶과는 괴리가 있는 황홀경험적인 기도를 하지 않고, 정직한 기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방언기도는 종교개혁가들의 기도에도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방언기도의 경우 일단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한다는 점, 그 기도의 정당성을 판별해 줄 성경적, 신학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무의식의 반영인지, 사회의 문화에 익숙한 이교적 기도와의 혼합적 절충인지, 아니면 방언을 할 줄도 모르면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 등이다.

공 박사는 “방언기도는 개인의 성향이나 무의식의 반영을 극대화할 수도 있는 기도의 형태이지만 신앙인들의 기도는 개인의 자의식이 극대화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즉, 기도에도 신학이 있어야 하며, 성경의 근거나 공동체의 고백이 담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도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아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언기도의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지를 분별할 수 없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 박사는 “개혁교회의 신학이나 전통에서는 이미 방언들에 대한 언급들이 여러 곳에서 있었다”며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개혁교회에서는 방언기도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해주어 교회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해주어야 했지만 신학과 교회와의 괴리로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일어난 사태들에 대해 신학자들이 정당한 응답을 해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혁교회의 기도신학이나 목양의 방식을 따를 때, 기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개혁교회에 속한 각 교파들이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신학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건강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 과연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방언를 금지하는가?

반면, 공헌배 박사의 발표에 대해 논평한 김화영 교수(연세대)는 “과연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방언자체를 금지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발표자는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방언기도를 금하거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비판한다고 단언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교파의 편협성과 배태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웨스트민스터고백 21장에서는 방언기도를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웨스트민스터고백 21장은 ‘방언의 은사는 통변의 은사와 직접 연관되며 예언의 은사와도 연관된다…(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교회 당시 방언으로 기도하던 신앙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언기도라는 자기의 생각에 따라 마음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도하게 하시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도 개인적인 판단과 욕망에 따라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시는 대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영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영의 흐름에 대한 식별과 식별을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교리와 헌법보다 성서 자체가 더욱 중요한 식별기준이 되어야 한다. 교리로 말미암아 제약을 받을 수 없고, 성서 본문 자체를 갖고 해석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방언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서의 방언(행 2:5~13)뿐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로서의 방언(고전 14:2~30)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은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방언기도의 활용에 있어서는 특별히 성경적 식별과 지도가 필요한 영역임은 인정해야 한다”며 “무엇이 진정으로 성경적인 것인가는 개혁주의 신학이 놓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방언은 소통해 공동체의 청중과 일치할 때만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따라서 방언기도는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데 유익한 은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하나님과 자신의 사이에 암호화된 언어를 해독해 공동체에 덕을 끼치도록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방언기도의 중요한 존재이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한국조직신학회는 ‘동아시아 신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2014년 한중일신학포럼’도 함께 진행했다. 일본의 코이치 키무라(Koichi Kimura) 박사, 중국의 왕 친성(Wang Xinsheng) 박사, 한국의 김용복 박사(한일장신대)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또한 ‘한국 교회를 위한 신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전국대회에서는 공헌배 박사의 발표 이외에도 △안셀무스의 기도의 신학과 한국 신학의 미래(김영원) △진화이론들을 통해 구성하는 ‘사이-존재론’:인간 이후 시대의 사건적 존재론(박일준) △율리우스 뮐러의 죄: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죄 논의의 선구 △라깡과 함께하는 지젝식 ‘기의 없는 기표’로 본 한국신학과 한국 교회(강응섭) △기독교대학 정체성 회복을 위한 연구(이신형) 등의 논문도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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