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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예레미야서 설교 포인트, "이렇게 설교하라"

by 데오스앤로고스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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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 하나냐는 '마사지'하는 설교자의 전형이다. 반면, 예레미야는 '메시지'였다. 청중에게는 위로의 마사지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경고와 책망의 메시지도 필요하다. 청중의 귀에 달콤한 말씀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거짓 힐링(healing)은 사람을 킬링(killing)할 수도 있다."(렘 27-28장)

 

"포로지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정착할 곳이다. 포로지는 원한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대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이다. 포로지는 기도하는 곳이고, 희망의 하나님을 새롭게 배우는 곳이기에, 결국 선교지이다."(렘 29장)

 

"희망은 한계에 이른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어쩌면 희망이란 아무도 예기치 못할 때 주어지는 삶의 약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부르짖으라고 하신다"(렘 33장)

 

 

한세대 구약학 교수인 차준희 박사가 구약 예레미야의 설교 방법을 목회자들에게 제시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의 성결섬김마당이 지난 2월 2일(목) 오전 10시 평택성결교회(담임:주석현 목사)에서 신년하례회를 겸해 <구약의 예언서, 이렇게 설교하라>라는 주제로 '제34차 포럼'을 개최했는데, 이날 차준희 박사는 예레미야서를 전체적으로 개괄하면서 설교 방법을 소개했다.

 

 

예언서는 연대를 알아야 한다

차준희 박사는 "예언서는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특정한 대상을 향하여, 특정한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라며 "따라서 예언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본문의 연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예언서는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라며 예레미야서의 전체적인 구조와 예레미야의 활동 연대를 소개했다.

 

(1) 요시야 시대(주전 627-609년): 렘 1-6장
(2) 여호아하스(살룸) 시대(주전 609년): 렘 22:10-13
(3) 여호야김 시대(주전 608-598년): 렘 7-20장; 25-26장; 35-36장
(4) 여호야긴(고니냐) 시대(주전 597년): 렘 22:24-30
(5) 시드기야 시대(주전 597-587년): 렘 21-24장; 27-29장; 32-34장, 37-39장
(6)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시대(주전 587년 이후): 렘 40-44장

 

또한 차 박사는 예레미야의 전체적인 구조를 4개 부분으로 나누고, 각 장의 주제를 간략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1장~25장: 유다에 대한 심판 선포 △26~45장: 예언자의 활동과 고난에 관한 이야기 △46~51장:이방나라를 향한 심판의 말 △52장: 부록-예루살렘 함락과 바빌로니아 포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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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기구한 운명의 예언자

예레미야 1장부터 52장까지를 시대별로, 구조적으로 나눠 간략하게 소개한 차 박사는 "예언자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이 통치한 지 13년째 되는 해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다"라며 "그는 주전 587년 유다의 멸망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 유일한 문서 예언자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순서로 다섯 왕이 통치하던 유다 왕국 말기시대에 유다를 대상으로 예언활동을 하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이집트에 강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아마도 주전 585년경에 사역과 생애를 마감한 것 같다(렘 44장)"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세는 40년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반면, 예레미야는 40년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자신도 결국 이집트로 잡혀가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던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간 기구한 운명의 예언자이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예레미야의 중심 내용과 사상
이 내용을 설교하라

차 박사는 예레미야서의 주요 내용과 중심 사상을 총 18가지로 나눠 설명하면서 설교 주제 및 핵심적인 설교 포인트를 제시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예레미야의 소명(렘 1장: 요시야 시대)

 

예레미야는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직접적으로 소명을 경험한다. 예레미야의 소명 패턴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이 있고(렘 1:5), 이에 대한 부름 받은 자의 ‘거절’이 뒤이어 나오고(렘 1:6), 하나님의 ‘설득’(렘 1:7)과 하나님의 동행을 보증하는 ‘약속’(렘 1:8)으로 이루어진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부름 받는다. 열방이란 유다를 포함한 이방나라 전체를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정이나, 교회나, 교단이나, 민족이나 국가 등)의 이익만을 대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몰두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소명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2.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렘 7장: 여호야김 시대)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세상에서 온갖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성전에서 적당한 제사만 드리면 모 든 것이 용서가 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의 눈에 이 성전은 하나님은 떠나시고 오직 도적들만 우굴거리는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 아니라 ‘도적이 행세하는 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레미야 성전 설교는 오늘의 교회를 향한 메아리다. 오늘날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예배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예배의 삶도 회복되어야 한다. 여기서 세상에서의 예배적 삶이란 ‘도덕적인 삶’이며, ‘공의의 삶’이며, ‘약자 돌봄의 삶’을 말한다.

 

3. 예레미야의 탄원(고백록: 여호야김 시대)

 

예레미야의 탄원기도는 진솔하고 파격적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고 신세를 한탄한다(렘 15:15). 급기야 하나님을 사기꾼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렘 15:18). 불평과 탄원이다.

 

하지만  불평과 탄원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을 향하여 토해내면 그것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절절한 기도가 된다. 하나님은 그 어떠한 기도도 소화할 준비가 되어계신 분이다. 어쩌면 그런 기도를 더 듣기 원하시는 분이다.

 

4. 유다 왕가에 대한 말씀(렘 21-22장: 시드기야 시대)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한다. 그는 또한 백성에게 두 가지 길을 소개한다. 적군인 바빌로니아에게 항복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길”이 예비 되어 있고, 저항하는 자에게는 “사망의 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우선 왕의 임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는 일임을 분명히 한다(렘 22:3; 참조. 시 72편). 예레미야는 이어서 정의와 공의를 기준으로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에 대하여 차례대로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한다(렘 22:10-30). 지도자의 본질적 책무는 정의와 공의를 통하여 약한 지체들을 돌보고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5.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말씀(렘 23장: 시드기야 시대)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근본적인 구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유무에 달려있다(렘 23:9, 16).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9-12절). 거짓 예언자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물질을 탐하거나, 권력과 결탁되어 있다(13-15절). 거짓 예언자들은 근거 없는 평안의 예언을 남발한다(16-22절). 거짓 예언자들은 주로 구원‘만’ 예언한다(23-24절).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꿈(야망, 욕망)에 의존한다(25-32절). 이러한 차이점들은 오늘날에도 참 메시지와 거짓 메시지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6. 두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렘 24장: 시드기야 시대)

 

첫 번째 환상들(렘 1장)은 유다 백성 전체를 향한 심판을 암시한다. 그러나 두 번째 환상(렘 24장)은 유다 백성을 심판의 대상과 구원의 대상으로 구분한다. 예언의 말씀이 대상에 따라 구원과 심판으로 나뉜다는 점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점이다.

 

예레미야는 첫 번째 소명 환상을 통해 심판 예언자로 시작하였지만, 두 번째 환상으로 심판 예언자인 동시에 구원 예언자로 새롭게 사역을 시작한다. 그런데 구원 예언의 대상은 심판을 경험한 이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심판 이후,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자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7.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과 이방나라에 대한 심판(렘 25장:여호야김 시대)

 

예언자는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전했지만 유다 백성은 전혀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다가 70년 동안 바빌로니아를 섬길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기간은 '인간의 수명'(시 90:12)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은 살아서 유다로 귀환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주변의 모든 나라들에 대하여 심판(진노의 술잔을 마심)을 예고한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제한된 민족의 신이거나 국가의 신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며, 우주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부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앞서 열방의 유익 즉, 공공의 유익(공공성)을 우선해야 한다.

 

8. 성전설교 이후 예레미야의 운명(렘 26장: 여호야김 시대)

 

진정한 메신저는 주어진 메시지를 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하는 메신저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청중도 필요하다. 쓴소리와 비판적인 소리가 억압되지 않고 허용되고, 적절하게 소통되며, 그 소리를 달게 받아야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9. 거짓 예언자들과의 갈등(렘 27-28장: 시드기야 시대)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예언에 현혹되지 말 것을 홀로 용감하게 호소한다. "항복하면 살고 저항하면 죽는다"는 것이  거짓 예언이 들끓던 당시 예레미야의 메시지다. 물론 굽혀야 할 때도 있다. 곳곳하게 고개를 쳐드는 것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전 3:6)를 기억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이었다. 하나냐는 '마사지'하는 설교자의 전형이다. 반면, 예레미야는 '메시지'였다. 청중에게는 위로의 마사지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경고와 책망의 메시지도 필요하다. 청중의 귀에 달콤한 말씀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거짓 힐링(healing) 은 사람을 킬링(killing)할 수도 있다.

 

10.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렘 29장: 시드기야 시대)

 

포로지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정착할 곳이다. 포로지는 원한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대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이다. 포로지는 기도하는 곳이고, 희망의 하나님을 새롭게 배우는 곳이기에, 결국 선교지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서 있는 곳은 그 어디라 할지라도, 즉 포로지라 할지라도 알고 보면 선교지이고,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포로가 아니라 선교사이다.

 

11. '위로의 소책자'(렘 30-31장: 시대 불투명)

 

패망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은 하나님의 행동변화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먼저 돌이키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백성의 돌이킴이 가능하다. 우리의 돌이킴은 하나님의 선행적인 돌이킴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하나님의 회개가 우리의 회개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회개도 은혜이다.

 

12. 아나돗의 땅 구입-상징행동(렘 32장:시드기야 시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땅을 매입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상징적으로 예고한다. 국가 멸망 이후의 새로운 삶이 있을 것이다. 포로에서 반드시 되돌아 올 것이다. 따라서 고향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어떤 절망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이후의 삶이 반드시 있다.

 

 

13.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구원 말씀(렘 33장: 시드기야 시대)

 

예언자는 투옥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감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미래를 바라보고 계신다. 즉,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하신다. 희망은 한계에 이른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어쩌면 희망이란 아무도 예기치 못할 때 주어지는 삶의 약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부르짖으라고 하신다(렘 33:3).

 

14. 시드기야의 배신과 레갑 족속의 충성(렘 34-35장: 여호야김 시대)

 

두 본문은 예루살렘과 유다(특히 지도층)가 그들의 하나님이 제정하신 언약을 상습적으로 부주의하게 불순종한 것과 레갑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이 물려준 원칙에 한결같은 열정으로 순종한 것을 대조시킨다. 

 

즉 ‘최근의 약속도 냉담하게 어긴 사람들’과 ‘오래된 약속도 모범적으로 지킨 사람들.’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과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하나님과의 약속(언약)도 시류에 따라 뒤집는 사람들’과 ‘사람(조상)과의 약속(명령)도 한평생 지켜낸 사람들.’ 언약을 어기면 언약의 복도 무너진다. 언약을 지켜내면 언약의 복은 세워진다.

 

15. 바룩이 받아 쓴 두루마리와 운명(렘 36장: 여호야김 시대)

 

이 이야기는 예언자의 ‘말’(言)이 예언자의 ‘책’(書), 즉 ‘구두 예언’에서 ‘문서 예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약성서에서 유일한 본문이다. 하나님은 ‘말’로 안 되면 ‘글’을 남겨서라도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제한적인 ‘선포 사역’이 무제한적인 ‘문서 사역’으로 바뀐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 속에 던져졌지만 그러나 완전히 타서 소멸되지는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책이 낭독되었을 때 자기 옷을 찢었던 아버지 요시야와는 달리(왕하 22:11), 여호야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기 옷을 찢기를 거부하고(렘 36:24),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찢어 불태웠다. 남을 찢으면 내가 죽고, 나를 찢어야 내가 산다.

 

16. 예레미야의 수난사(렘 37~44장: 시드기야 시대와 주전 587년 이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마지막 몇 년 동안 모진 고난을 당한다. 이를 예레미야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철회하거나 왜곡시키지 않는다. 항복을 주장하는 예레미야와 항전을 주장하는 고관들이 충돌한다. 하나님의 뜻은 항복하면 살고 항전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의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힘없는 신앙적 애국주의는 힘 있는 호전적 애국주의 앞에 무력하다. 그래도 진실은 침묵되지 않는다.

 

17. 바룩을 향한 구원의 말씀(렘 45장:여호야김 시대)

 

하나님은 바룩의 야망은 질책하신다. 지금은 생존이 문제이다. 유다 왕국과 권력자들을 집어 삼키는 끔찍한 파멸 가운데서 보잘것 없이 작고 미미한 한 사람이 생명을 약속받는다. 희망은 중앙이 아니라 주변에 존재한다. 국가는 망해도 민초들은 남는다. 희망은 연약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시작되고 나타난다.

 

18. 이방 나라를 향한 심판의 말씀(렘 46-51장: 여호야김, 시드기야 시대)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열방을 다스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방의 모든 나라는 하나님을 모른다 할지라도,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 신이나 국가 신이 아니라, 열방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우주적인 하나님이시다.

 

19. 바빌로니아의 몰락(렘 50-51장)

 

악이 영원히 승리하지는 못한다. 교만, 탐욕, 공격, 폭력, 죽음은 궁극적으로는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은 압제가 영원히 지속되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 압제의 상징인 바빌로니아는 어느 시대나 존재한다. 그러나 바빌로니아는 시한부이다. 언젠가는 돌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20. 부록-예루살렘 함락과 바빌로니아 포로(렘 52장: 시드기야 시대)

 

예레미야가 심판을 예언한대로, 시드기야는 처형됐고,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히 파괴됐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은 당대에는 거절되었으나 역사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의 구원 예언도 예기치 않은 다윗의 후손 여호야긴의 사면 복권으로 희미하게나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렘 52:31-34). 이는 단지 작은 희망의 빛이지만 예레미야의 구원 예언을 상기시키는 확실한 빛이다.

 

 

이제 예레미야서를 설교하라

예레미야서의 각 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교 포인트를 정리해 준 차준희 박사는 "예레미야의 외침은 오늘의 한국 교회에게도 크게 돌려온다"면서 예레미야서 설교를 할 것을 주문했다.

 

차 박사는 "구약의 정경 예언자 가운데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주전 587년)을 실제로 체험한 유일한 예언자가 바로 예레미야다"라며 "그는 국가와 성전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랑(헤세드)과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의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을 섬긴 것에 있음을 줄곧 선포해 왔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적 우상숭배와 도덕적 악행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상숭배는 야웨를 버리는 것이다. 야웨를 버리는 것은 야웨의 길을 버리는 것이다. 야웨의 길에는 종교적인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 영역의 긍휼과 정의가 포함된다"라며 "이런 측면에서 목회자들은 반드시 예레미야서를 설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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