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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한국 장로교회 신학은 ‘장로교 신학’에 부합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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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신학의 기원과 형성 / 문병호 교수(총신대, 조직신학)

 

“한국장로교 신학을 논의할 때 우리의 관심을 초기 선교사들의 교단적 배경이나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만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국장로교 신학이 장로교 신학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야 한다. 즉, 진정 그것이 성경-역사적 장로교를 구현한 역사적 장로교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문병호 교수는 연구의 서론에서 “한국장로교 신학에 대한 논의는 단지 역사적으로만 추구돼서는 안되며 조직신학적 당위성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문 교수는 이 연구에서 역사장 장로정치 제도가 어떻게 칼빈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정초됐으며, 녹스에 의해 실제적으로 수립되었는지에 대해 일차적 관심을 가졌다. 다만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신학적 의미에 주목했다.

문 교수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 두 치리서,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이를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장로교 신앙의 특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서론:성경-역사적인 역사적 장로교
Ⅱ. 장로교 신학
1. 칼빈 교회론의 장로교적 특성
2. 녹스와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
3.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장로교 신학
Ⅲ. 한국장로교 신학
Ⅳ. 한국장로교 신학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

 

# 연구내용 중에서

1. 장로교 교회 정치의 두 요소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교회에서 지체로서 참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자의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질서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2.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함께 성도들 상호 간의 형제적인 사랑을 강조했다. 교회의 교리적 일치는 이러한 유기적 구조의 질서로서 추구됐다. 성령의 은사는 직분의 조건이 되기보다 오히려 직분을 예비한다. 성도들은 직분에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고 고백하는 자마다 교회의 사역에 참여한다. 칼빈의 이러한 직분론은 교회의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3. 칼빈은 교회의 권세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세는 영적이다. 이는 ‘교리권’, ‘사법권’, ‘입법권’으로 나누어진다. 교리권은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권세다. 교회의 입법권은 하나님의 규범에 관한 것으로써 사람의 전통에 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입법자이시므로 절대적으로 의로운 재판장이 되신다.

 

 

4. 교회의 재판권은 복음의 감화와 관련된 영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열쇠의 권한’에 부합한다. 권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그것을 내적으로 수납하고 추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위해 시행된다.

 

5. 칼빈은 기독교인은 ‘영적 통치’와 ‘국가적 통치’라는 이중적 통치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적 통치는 성령의 임재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좇아서 살아가는 성도의 감화에 기초한다. 국가적 통치는 일반은총의 산물로서 이로써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핑계할 수 없게 한다.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국가에도 미친다. 하나님의 은총은 창조와 섭리 그리고 구속에 모두 미친다.

 

6.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핵심은 정치와 행정이 아니라 신학 혹은 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과 신학을 강조하는 녹스와 멜빌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 이후 125년 동안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집대성했다. ‘오직 성경’의 신앙을 철저하게 구현한 칼빈의 신앙과 신학이 충실하게 계승됐다. 삼위일체와 기독론 교리가 역동적으로 다루어졌으며, 구원론에 있어서도 구원서정과 성도의 삶이 함께 강조됐다. 특히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를 통한 중보로 인한 의의 전가와 이로 말미암은 성도의 거룩한 삶이 강조됐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근저에는 칼빈의 신학과 이에 바탕을 둔 언약신학이 흐른다. 가히 성경의 진리에 대한 최고의 고백서라 할 것이다.

 

 

8. 죽산 박형룡 박사는 장로교회의 신학을 “구주대륙의 칼빈 개혁주의에 영미의 청교도 사상을 가미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국장로교 신학을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부르며, 그 특징으로 ‘성경의 신성한 권위를 믿는 믿음’, ‘하나님 주권에의 확신’, ‘안식일의 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 ‘성실한 실천’, ‘천년기전 재림론’을 들었다. 죽산의 교회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거의 여과 없이 따르고 있다.

 

9. 죽산은 편협한 전제주의적 신학이 아니라 성경적 개혁주의를 추구했다. 죽산은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형식적 원리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실질적 원리를 ‘프로테스탄트주의의 2대 건설적 원리’라고 부르면서 정통신학에 대해 “신구약 성경을 천계와 영감으로 말미암아 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가진다”고 정의한다.

 

 

10. 한국장로교를 한국 교회의 전부로 여기는 것은 합당치 않다. 다양한 교파들이 병립하여 한국 교회를 이루었다. 다만 장로교는 그 중심이 됐다. 그 중심성은 신학에 있어서 특히 현걱하게 나타났다. 장로교 신학은 한국 신학을 주도했다. 특히 장로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하나님 주권과 말씀의 무오성, 그리고 전적 타락과 전적 은혜의 교리는 대다수 한국 교회를 이끄는 중심사상이 됐다. 장로교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쟁은 한국 교회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기본적으로 장로교 사상이라는 대하에 편승했다.

 

11. 장로교 신학은 역사적으로 추구되어야 하지만 그 본질은 성경의 가르침 자체와 일치한다. 한국장로교는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도 서로 간의 연합을 강조했다. 선택받은 백성들의 확신이 강조됐으며, 그 가운데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청교도적 가치가 강조됐다.

 

12. 한국장로교 신학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은 단지 신학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과 삶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일반 문화와의 역동적 관계에 주목했다. 한국장로교가 다시 일어나야 하는 당위성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의 자명함 때문이다.

 

* 위의 내용은 한국장로교신학회 논문집 제9호(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지1, 주제: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장로교회와 신학’에서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문병호, “한국 장로교 신학의 기원과 형성:총회 설립 100주년을 즈음해서”, 장로교회와 신학, 제9호(2012), pp7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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