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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한국장로교, 근대사회와 근대문화 형성에 기여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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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가 한국문화에 미친 영향 / 이은선 박사(안양대)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을 수용하면서 한국의 문명화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은선 박사는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의 근대화를 통해 근대문화를 형성하는데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의식과 더불어 문학, 음악, 미술, 체육, 그리고 출판 등을 통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구별되는 서양의 근대문화를 유입하며 한국의 근대문화 발전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서양의 근대의식과 근대문화를 전해주는 가운데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문화와 충돌한 측면도 상당히 있었다”며 “결국 아직도 한국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 생활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분석했다.

이 박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이러한 반감과 관련해 기독교가 한국인의 전통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한국인의 심성에 호소할 수 있는 건전한 토착화의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의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들어가는 말
Ⅱ. 장로고 선교사들의 문명개화론과 한국인들의 수용
Ⅲ. 장로교회의 성경번역과 한글보급과 발전에 미친 영향
Ⅳ. 서양근대문화 수용 통로로서 장로교회의 영향
1. 음악과 체육
2. 성경책과 기독교 서적과 신문, 잡지의 간행을 통한 출판문화의 발전
3. 기독교 미술
Ⅴ. 전통종교에 대한 장로교의 영향
Ⅵ. 장로교의 구습 타파와 제사
1. 금주, 금연문제
2. 조혼과 축첩 제도 비판
3. 제사와 상장례
Ⅶ. 나가는 말

 

 

# 연구내용 중에서

1. 언더우드가 1897년 4월 1일부터 발행한 ‘그리스도 신문’을 통해 장로교 선교사들은 문명개화론을 주장했다. 이 신문(‘인종과 개화의 등급’이라는 기사)에 드러난 선교사의 문명관은 1) 문명은 높고 낮은 등급이 있어 낮은 데서 높은데로 진보한다. 2) 문명의 단계는 야만 상태, 미개화, 반개화, 문명개화의 4등급이 있다. 3) 가시적인 개화의 정도는 농사, 장사, 공장의 발달 정도에 달려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실한 학문, 즉 실학이다. 4) 실학이 발전할수록 부국강병할 뿐만 아니라 법률과 윤리의식에서도 진보한다. 5) 조선은 청국이나 인도, 그리고 아시아 중의 허다한 인민과 같이 반개화한 나라다 등이다.

 

2. 이 신문은 문명화된 나라는 첫째로 물질적인 차원에서 실용적인 학문, 지식, 기예가 발달해 농공상이 발전하고, 둘째로 공정한 법률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위정자와 국민이 단결돼 정치가 안정된 나라, 셋째로 정신적 차원에서 애국적이고 계몽되 도덕이 발전된 나라다.

 

3. 한글 성경 번역은 지금까지 무시되던 한글의 가치를 재발하여 문맹퇴치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성경사경회는 남자들의 경우에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지만 여성들에게는 지금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교육의 기회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유교와 전혀 다른 여성상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성경을 통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고,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녀 차별, 반사의 신분의 차별 등을 극복할 수 있게 됐고, 새로운 근대적 자아의식과 근대문명에 대한 접촉의 통로를 만들었다. 실질적인 학문을 통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근로의식, 주권재민에 의한 민주주의 의식 등을 배우면서 근대민족구각 건설의 토대도 구축하게 됐다.

 

 

4. 찬송가를 통해 서양음악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근대음악이 형성됐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장로교 학교들에서 찬송가 교육을 통해 근대적인 음악교육이 시작됐다. 근대체육도 장로교가 세운 학교들을 통해 보급됐다. 병식체조와 함께 도수 체조, 곤봉, 철봉 등 다양한 기계체조가 보급됐다. 체조를 비롯한 다양한 구기 종목도 장로교회가 세운 학교들을 통해 국내에 소개돼 근대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밖에 미술, 건축, 문학, 일상생활을 비롯한 다양한 근대문화도 소개했다.

 

5. 선교사들을 통한 기독교의 수용은 한국의 전통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낳게 되었고, 그에 따른 갈등도 불가피했다. 이러한 전통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 전통적인 유교의 제사를 우상숭배로 거부하게 됐고, 결혼의 조혼풍속과 축첩제도의 폐지를 촉구해 일부일처제의 정착을 가져왔다. 그와 함께 경건과 경제적인 이유와 건강상의 이유로 금주와 금연 등의 절제운동을 전개하며 사회개혁도 추진했다.

 

6. 장로교회가 미친 영향을 살펴볼 때 과제도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한국인의 전통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한국인의 심성에 호소할 수 있는 건전한 토착화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다종교와 다문화 사회 속에서 종교 간의 갈등과 충돌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존하면서도 선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어려운 시기다. 그러므로 과거의 한국문화와 장로교와의 만남을 반추하면서 공존과 함께 선교의 방향을 깊이 있게 모색해야 한다.

 

7. 전통문화와 기독교와의 만남은 개혁주의 문화관이 요구하는대로 문화변혁적 사명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기독교가 한국인에게 믿고 싶은 종교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전통문화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길이 모색되어야 21세기에 기독교가 한국사회의 주류로서 올바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내용은 한국장로교신학회 논문집 제9호(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지1, 주제: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장로교회와 신학’에서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이은선, “한국장로교회가 한국문화에 미친 영향”, 장로교회와 신학, 제9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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