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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 초기 신앙고백, 신앙적 정체성에 관심

역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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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의 총회와 신앙고백의 역사 / 김요섭(안양대, 역사신학)

 

“장로교회는 그 처음부터 지상에서 완전에 이르는 조직을 만들어 내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항상 개혁되는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해왔다.”

김요섭 교수는 “이런 개혁적 노력이 한 국가의 교회 단위로 실천된 것은 개혁주의 교회가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었던 1559년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며 “프랑스 개혁 교회는 국제적, 국내적 정치 상황 속에서 많은 박해를 받았고, 종교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순히 정치적 결집만을 추구하지 않고, 개혁주의 신앙을 통한 교회의 일치와 개혁주의적 신학의 정체성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론 부분에서 이 연구의 목적에 대해 “초기 프랑스 개혁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발전의 과정을 살피고,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항상 개혁되는 교회를 세우고자 했으며, 또 그들의 노력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피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프랑스 교회가 채택하고 개정한 ‘갈리아 신앙고백’(1559)의 교회론과 관련된 조항들을 칼빈의 교회론과 다른 개혁주의 신앙고백들과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분석할 것”이라며 “이런 고찰들의 결론으로서 한국장로교회의 총회 설립 당시 개혁주의적 교회론이 어떤 면에서 반영됐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 미래를 위해 기억해야 할 개혁주의적 교회론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제안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들어가는 말
Ⅱ. 16세기 프랑스 개혁주의 교회의 역사
1. 16세기 프랑스의 종교개혁의 역사
2.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의 역사
Ⅲ. 갈리아 신앙고백의 교회론
1. 교회의 직분
2. 교회의 표지
3. 교회의 제도
Ⅳ. 맺음말: 초기 프랑스 개혁교회와 한국장로교회

 

# 발표내용 중에서

1. 프랑스 개혁교회들은 전국적인 총회를 통해 전국에 산재해 있던 개혁주의 교회들의 연대를 강화했다. 총회를 통한 연대는 단순히 교회 조직을 체계화하거나 프랑스 내에서의 정체적 세력 확장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 총회는 가톨릭적 정권의 박해와 각종 이단의 도전에 맞서 개혁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개혁교회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2. 정부의 박해와 이단의 도전에 맞서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초기 프랑스 개혁교회의 노력은 1559년 제정된 ‘갈리아 신앙고백’이 고백하는 교회론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갈리아 신앙고백의 교회론은 1559년 그 최종판이 출판된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교회론과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갈리아 신앙고백이 일방적으로 칼빈이나 어떤 신학자의 이론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맞게 교회론을 고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신앙 고백이 말하는 교회의 직무, 바른 교회의 표지, 그리고 총회 소집에 대한 고백은 그들이 추구했던 개혁교회의 이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3. (교회의 직분) 교회의 세 가지 직분에 대해 “참 교회에 관해서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질서를 따라 다스려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교회에는 목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이 있어서 참된 교리가 가르쳐지고, 잘못된 것들이 교정되고 억제되며, 가난한 자들과 모든 고통 당하는 자들이 그들의 필요를 따라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4. (교회의 표지) 갈리아 신앙고백은 “이 믿음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 고백되지 않는 곳, 그리고 성례가 행해지지 않는 곳에는 합당하게 말할 때, 어떤 교회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5. 교회 표지에 대한 갈리아 신앙고백의 여러 조항들은 개혁주의의 종말론적인 교회 이해를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조직을 갖춘 전체 교회의 질서와 체계를 위해 말씀에 대한 순종을 포함시킨 프랑스 개혁교회의 발전된 교회론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 (교회의 제도) 갈리아 신앙고백은 전국 교회의 치리와 관련해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치리를 시행하는 감독의 필요성과 역할을 인정한다. “우리는 또 감독자들로 선출된 사람들이 전체 공동체를 다스리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채용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유익하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또한 갈리아 신앙고백이 보여주는 전체 교회의 치리에 있어 목회자들과 교회들의 평등함을 강조한 것은 개별 교회의 차원이든, 전체 교회의 차원이든, 교회는 그 치리에 있어서든, 그 머리이시며 유일한 우주적 감독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의 일관된 교회들의 원리를 반영하는 고백이다.

 

# 맺음말 중에서

1. 한국장로교회는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첫 노회를 열고, 독노회를 조직했다. 이 평양 첫 노회는 선교사 공의회와 한국인 총대가 연합해 구성한 장로교 공의회가 1906년부터 준비해 열렸다. 장로교 공의회는 이 첫 노회를 위해 목사안수 절차를 정하고,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으로 ‘12신조’를 상정했다.

2. 1907년 독녹회는 12신조를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다. 비록 한국인들의 손으로 작성된 신앙고백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 교회가 첫 노회를 구성하면서 신앙고백을 상정하고 채택한 것이다.

3. 한국장로교회의 12신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 하나님의 성품, 삼위일체 하나님, 창조의 사역, 인간의 창조, 타락, 그리스도의 속죄,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성령의 일, 성례, 기독교인의 의무,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12신조의 신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서술돼 있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처럼 충분한 신학적 논의들을 전개하고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4. 특별히 12신조는 갈리아 신앙고백과 같이 교회론과 관련해 교회의 직분이나 참된 교회의 표지, 교회 제도 등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이는 종교개혁이라는 상황 속에서 로마 가톨릭과 급진적 제세례파의 교회론에 맞서며 신앙을 고백했던 16세기 후반 프랑스 교회와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을 처음으로 접하고, 1907년 대부흥 운동을 통해 처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20세기 초 한국 교회의 시대적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총회에서부터 신앙고백을 채택하고 개혁주의적 교회제도를 세우고자 했던 그 동기는 16세기 프랑스 개혁교회나 20세기 초 한국 교회 모두 공통적이었다.

5. 한국장로교회도 첫 독노회부터 신앙고백을 채택한 것은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신앙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을 따른 지속적인 제도적, 실천적 노력을 통해 교회를 항상 개혁하려고 했다. 한국장로교회가 개혁주의 교회론을 표방한다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들에 맞서 개혁주의 신학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새롭게 세워가야 한다.

* 위의 내용은 한국장로교신학회 논문집 제9호(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지1, 주제: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장로교회와 신학’에서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김요섭, “개혁주의 교회의 총회와 신앙고백의 역사: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와 신앙고백”, 장로교회와 신학, 제9호(2012), pp5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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