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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설교자의 인격강조, 위험성은 없나?

데오스앤로고스 2019. 8. 21. 12:51

이승우 박사, "설교자의 어떠함이 설교의 권위를 결정지을 수 없다" 강조

개혁논총에 실린 '설교 사역에서 지나친 설교자의 인격 강조의 위험성' 연구논문에서

 

"설교자의 인격은 설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지만 자칫 이러한 강조가 지나칠 때 설교의 균형은 깨질 수 있다. 설교자의 인격 강조는 설교 본문의 중요성의 지속적인 강조와 설교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와 함께 강조될 때, 그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목회자들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신념이 됐든, 이념이 됐든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적 관점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켜 설교하는 등 국론분열의 중심에 서 있는 목회자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문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인 목회자들의 인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설교의 효과적인 전달에 목회자의 인격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설교자의 인격강조가 설교사역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설교자의 인격 강조의 위험성과 관련된 연구논문이 발표돼 소개한다. 개혁신학회가 발행하는 개혁논총(2018년, 제48권)에 실린 이승우 박사(대신대)의 '설교 사역에서 지나친 설교자의 인격 강조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다.

 

이승우 박사는 설교자의 인격은 설교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설교자의 인격과 삶이 설교사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설교자의 인격에 관한 부분은 설교와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의 인격의 중요성은 최근에 불거진 목회자들의 문제들과 더불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박사는 설교자의 '어떠함'이 설교전달과 그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원하지 않는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자의 인격에 대한 강조가 현재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상황에 따른 반작용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상황에 따른 시각은 균형을 잃을 위험성을 가진다"라고 강조한다.

 

# 인격이 좋은 설교자의 설교는 좋은 설교인가?

 

이 박사는 설교자가 좋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은 설교를 담보할 수 있는지, 설교 전달의 효과가 좋다고 좋은 설교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질문하며 미국 조엘 오스틴 목사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의 좋은 인격과 도덕적 삶이 효과적 설교전달 면에서는 긍적적이고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조엘 오스틴의 설교와 신학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본문 중심의 설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설교를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사용하는 그의 설교는 가장 잘못된 예 중 하나다. 그의 설교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교 속에서 사용하는 성경구절은 설교 주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의 설교에서 복음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번영신학이 복음의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인간의 죄성을 전혀 지적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품는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그의 가르침은 반쪽 복음(sub-gospel)이 아니라 반 복음(anti-gospel)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 박사는 찰스 스펄전의 경우도 설명한다. 스펄전 목사는 우울증으로 지속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것. 그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약함이 설교사역에 부정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도 위대한 설교자, 설교의 왕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스펄전 목사를 볼 때, 설교자의 연약함이 늘 설교에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 인격의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가?

 

설교자가 좋은 인격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설교자의 인격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인격의 수준은 무엇인지 등이 객관적일 수 없고, 매우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이 박사는 "설교자의 인격을 좋다 혹은 나쁘다고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설교자 본인인가? 아니면 청중인가? 만약 청중이라면 청중은 설교자의 인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며 성적 문제로 물의를 일으켯던 한 목사를 예로 든다. 성적 문제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청중들에개 좋은 설교자로 인기를 얻어왔다는 것. 즉, 설교자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청중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설교자는 자신의 어떠함을 가지고 설교단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지하고, 진리가 되는 말씀을 의지해 서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어떠함을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의 평가는 왜곡될 수도 있고, 오해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 수사학에서의 에토스

 

이 박사는 설교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수사학에서는 설득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에 대해 설명한다. 로고스는 말하는 내용이 얼마나 논리적인가에,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에, 그리고 파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열정과 감성에 관련된다는 것. 그는 "이 중 에토스와 파토스는 도덕적이고 주관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는 반면, 로고스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청중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로고스와 파토스보다 에토스를 강조해 왔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설교학에서 자주 인용되면서 설교작 인격의 중요성을 논증하는 근거가 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에토스는 연설가 혹은 설교자의 진실한 인격이나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연설 속에서 연출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그만큼 만들어지고 조작된 이미지라도 청중들의 메시지 수용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설교 현장에서 청중의 설교자에 대한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 가능성이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며 "설교자와 청중간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청중은 설교자의 인격에 관해서 알기 어렵고 설교자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설교자의 보이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에토스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수사학의 강조가 설교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설교의 목적은 설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청중을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고, 그 말씀을 청중들이 체험하고 깨닫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설교는 설득만이 아니라 선포이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수사학에서 말하는 에토스의 강조의 논리를 곧바로 가져와 설교자의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율법주의와 도덕주의적 경향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

 

이 박사는 설교자의 인격 강조는 자칫 율법주의나 도덕주의적 경향을 낳을 수 있음도 지적한다. 설교자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자칫 새로운 형태의 도덕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도덕은 세상적인 윤리와 도덕을 뛰어넘는다. 이 말이 더 높은 윤리수준을 요구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일반 윤리와는 다른 차원의 기준을 가진다는 말도 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배제한 구제는 무의미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 향유옥합을 깨어드린 마리아의 행동을 비난했던 가룟유다의 평가에 대한 예수님의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의 어떠함이 강조됐을 때, 설교의 효과가 설교자의 도덕적 수준과 행동에 귀속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박사는 윤리와 도덕이 성경본문을 대체할 수 없고 성령의 역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설교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도덕적, 윤리적 인격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성경적 인격이다"라고 주장한다.

 

# 설교에서 인간의 어떠함에 하나님이 종속되는 위험

 

특히 지나친 설교자의 강조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간의 어떠함에 종속되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지는 것은 설교자가 어떠하기 때문이 아니라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능력이나 인격이 성경말씀의 권위를 대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부족하고 악한 설교자도 사용하신다. 대표적인 예가 요나다...... 이런 역사는 요나의 어떠함에 의지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달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설교자가 전하는 메시지 그 자체에 있다."

 

이밖에도 이승우 박사는 초대교회 시대에 있었던 도나투스 논쟁(도나투스주의 논쟁은 교회가 박해 받을 때 신앙을 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것, 특히 배교자 감독들로부터 받은 안수를 인정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로 번져나가면서 단순한 안수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과 성례론에 관한 신학적 문제로 불거짐)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거스틴은 성례의 유효성은 그것을 주는 사람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칼빈 또한 사람이 세례를 집례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세례라면 누가 집례하든지 그 세례는 권위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개혁주의 전통은 성례에 대한 효과와 권위를 성례 시행자의 어떠함에 두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즉, 설교의 권위는 설교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설교자의 어떠함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설교의 결과는 인간의 반응이나 설교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박사는 설교자의 인격의 강조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단, 설교본문의 중요성의 지속적인 강조(설교 전달의 효과는 설교자의 인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의 지속적인 강조(청중들이 설교를 들을 수 있게 하고, 청중들이 들은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다)라는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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