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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남용해서도, 오용해서도 안돼

한 권의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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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인가 주문인가 / 정요석 / 세움북스 / 291쪽 / 13,000원 / 2015년 5월 6일

 

 
 
“모든게 엄마의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원 원장의 기도빨(?)이 장난 아니게 셉니다.”
“○○○ 목사가 40일 금식기도를 7번이나 했다고 하네요. ”
“할렐루야를 지속적으로 외치다보면 방언이 터집니다.”
“등뼈가 휠 정도로 소리질러 기도하세요.”
“말씀 한 구절만 반복해서 말하다보면 기도가 터집니다.”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지 못하면서 무슨 천국에 가겠다고 그럽니까?”
“원하는 예배당 부지가 있나요?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돌았듯이 그 주변을 계속해서 돌면서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장소를 허락해 주실겁니다.”
“원하는 배우자가 있나요? 얼굴형, 키와 몸무게, 무슨 대학 무슨 과, 직장명 등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그런 배우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 병원에 가나요?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불치병도 다 낫게 해주십니다.”
“냉장고나 TV가 고장났다고요? 저는 거기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다 고쳐지더라고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도만 하세요. 하나님이 다 허락하실 겁니다.”

기도에 관한 설교든, 간증이든, 책을 통해서든 한 두번 쯤은 접해봤을 이야기다. 물론 기도에 관한 이와 유사한 내용들도 수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질문해보자. ‘이게 과연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본질일까?’라고.

우리 주변에서 이른바 기도에 올인(?)한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기도가 무슨 보물상자처럼 느껴진다. 손만 넣어 집기만 하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기도가 도를 닦는 것 같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득도’를 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하는 기도는 언제나 응답받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가 주문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도대체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수리수리 마수리’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과연 이러한 기도들이 성경이 말하는 기도일까? 아니면 주문일까? 최근에 출판된 ‘기도인가 주문인가’(정요석 저, 세움북스)는 기도의 남용과 오용,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는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기도의 형태들이 기독교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며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집에 드나들고, 작명소에서 자녀나 손주의 이름을 짓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신년이 되면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낮에는 역술인을 찾아가 토정비결로 일 년 운수를 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진짜 기도의 맛을 보지 않고, 무속신앙이나 이방인들의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도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우리가 이방 종교와 일반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사람이나 우상하게 하는 기도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말한다.

특히 “기도하면 다 응답되고, 만사형통한다는 말은 기독교를 미신화하고, 희화화하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과 인생의 다양함과 깊이와 넓이를 제거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전술”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구약시대 유대인들도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무당의 굿과 같은 기도를 했었다고 설명한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와 영적 대결을 벌이는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며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언부언하거나 간청하는 끈기와 인내보다 하나님과 기도자 사이의 관계”라고 강조한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 중에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오해되는 것들 중 하나인 솔로몬의 일천 번제 기도에 대한 문제점도 이야기한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一千 燔祭)를 ‘일천 번 제’(一千 番 祭)로 오해하는 경우다.

여기서 번제의 ‘번’(燔)은 굽거나 태우는 것을 뜻하지만 한국 교회는 횟수나 차례를 뜻하는 ‘번’(番)으로 강조함으로써 일천 번의 기도와 헌금을 은근히 강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대학 입학시험을 보는 자녀를 위해 부모가 일천 번 제를 드리면 좋은 대학에 합격한다는 미신이 교회에 파고들었고, 하루에 새벽과 점심과 저녁에 세 번씩 기도하면 산술적으로 334일이면 일천 번의 횟수를 채울 수 있다는 등 끈기와 간청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본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또 ‘축도’는 목사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저자는 “교회 회중에게 축도할 경우이지 꼭 목사에게만 축복을 비는 권한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비는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교회의 질서를 위해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내용으로 축도하는 경우에만 축도가 목사에게 한정된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기도인가 주문인가’라는 책은 기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또한 그런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무한하심을 알 때, 우리의 기도는 바뀔 것이며,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기도를 향한 우리의 열심과 의지 이전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밝히 드러내는 것이 참된 기도이며, 그런 기도를 통해 진정한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기도인가 주문인가’는 이방인의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기도 응답, 무한(광대)하신 하나님의 기도 응답, 중보자 하나님의 기도 응답, 기도의 실제 등 총 5부로 구성됐으며, 기도의 오해를 바로잡는 16가지 주제가 담겨져 있다.

특히 각 주제에 따라 성경공부와 토론문제까지 수록함으로써 교회 내 소그룹 모임을 통해 보다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을 위해 ‘기도인가 주문인가’가 말하는 기도에 관한  극히 일부 문장들을 정리해봤다.

“이방인의 기도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면 기독교인의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p_33)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수준과 욕구에 따라 무엇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에 대한 믿음으로 현재를 감사하게 감당할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p_46)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사람의 생각과 길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우리에게 맞추는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p_51)

“기도하면 다 응답되고 만사형통한다는 말은 기독교를 미신화하고, 희화화하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과 인생의 다양함과 깊이와 넓이를 제거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전술입니다.”(p_75)

“기도는 나에게 좋은 것과 유리한 상황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p_93)

“어디서 어느 시간대에 얼마만큼 기도하느냐보다 기도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기도 응답이 잘되는 시간대와 장소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과 기도 응답에 더 관심을 갖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p_128)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열심과 기도와 실천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이 있고, 우리를 위한 ‘기도’가 있으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이 있는 것입니다.”(p_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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