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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의 암울한 현실,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라”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5:12

 

차정식 교수, 신학도의 미래 진단 및 성서 읽기의 방향성 제시 / 2015년 4월 2일 기사

 

“신학생들의 분주한 사역 현장 … 적은 사례비 등 현실적인 열악함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맡겨진 사명을 꿋꿋이 성실하게 감당하며 견뎌낸다 할지라도 안일한 일상에서의 대응만으로는 현실을 벗어나기 힘들다.”

“신학생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감추인 보화’를 찾을 수 있는 인생 역전의 기회는 거의 오지 않는다. 이러한 우발적인 은총은 평생 잘해야 한두 번 경험할 뿐이다.”

   
▲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성서에는 단 하나의 모범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학적인 입장이 혼재돼 있다. 극도로 보수적인 가부장주의 지배층 신학에서 극도로 혁명적인 진보적 신학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 이 중에서 어떤 신학을 끌어들여 나의 신학과 목회의 신학, 공동체의 신학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사역과 삶의 콘텐츠가 채워지게 될 것이다.”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가 한국 교회 신학생들에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서울신대 기독교신학연구소가 지난 4월 1일 성봉기념관에서 ‘말씀의 성찬, 성서로의 초대’를 주제로 진행된 콜로키움에 강사로 나선 차 교수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 열심히 사역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이라 믿는 어리석은 믿음,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하지 못하는 신학생들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낸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목회가 됐든, 또 다른 사역의 현장이 됐든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대하는 방법, 신학을 추구하는 방법 또한 당부했다.

# 신학도들의 미래, 과연 보장될까?

우선 차 교수는 신학도의 암울한 현실을 진단했다. 신대원 졸업 후 전임사역지가 배치되는 비율이 졸업생의 50% 수준이라고 설명한 그는 “기존의 교회 일터가 좁아지고, 작은 골목 교회를 개척해 교회 사역과 별도로 생계벌이형 일을 하는 이중직 또는 자비량 목회자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특히 신학교의 교육환경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신대원 3년의 학습 기간 중 신학과 목회의 제반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교과과정을 이수하지만 충분한 인성과 영성, 목회적ㆍ신학적 역량을 갖춘 목사후보생을 배출하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차 교수는 “성직자 양성 차원에서 신대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교단의 시스템도 빈곤한 상태”라며 “가톨릭교회의 경우와 비교할 때 매우 열악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신학도들의 미래는 과연 장밋빛 삶이 보장될까? 차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두 개의 비유를 들어 현실에 안주하거나 허황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부질없는 행동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인생 역전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성경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마 13:44)의 비유가 등장한다. 한 가난한 소작농이 식민지 로마체제에서 남의 땅을 붙여먹으면서 농사를 짓다가 우연하게 예기치 않은 보화를 발견한다. 이른바 ‘쨍하고 해뜰날’,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그 농부는 그 보물을 숨겨놓고,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하며 기쁨을 누린다.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선용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차 교수는 “이러한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는 이따금씩 발생할 수 있다”며 “하지만 소작농이 남의 밭에 들어가 땅을 판다고 늘 보화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우발적인 은총은 평생 잘해야 한두 번 경험할 뿐이다. 여기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일한 일상에서의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신학도들은 3년간(대학원) 학칙에 규정된 대로 수업을 듣고, 학점을 이수하고, 학교 채플에 참석한다. 경건훈련과 영성훈련 등 교내외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석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사역하고, 방학 때면 교회의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삶을 보낸다. 작은 사례금으로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은 늘상 벌어지는 일이고, 별도로 학비까지 벌어 충당해야만 하는 암울한 현실에서 살아간다.

차 교수는 “이와 같이 현실이 매우 고단하고 미래 또한 매우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신학도들은 꿋꿋이 성실하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견뎌낸다면 예기치 않은 기회가 올 것으로 믿는다. 즉, 자신들에게도 중요한 결단과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렇게 안일한 일상에서의 대응만으로는 기발한 인생 전환의 기회가 생길 가능성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우연하게 발견하는 것만큼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진주 상인의 비유’(마 13:45~46)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진주 상인의 경우 값진 보화를 찾아 삼만 리의 여정을 감당했다. 이는 ‘구하는’ 구체적인 목표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는 우발성의 계기보다는 꾸준한 탐색과 탐구를 통한 도전적인 노력의 결실로 인과응보의 법칙이 작용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신학도의 3년, 또는 7년 간의 여정 가운데 무엇이 구체적으로 값지고 귀한지,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현실 안주의 길에서는 이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 진주 상인처럼 정확한 정보력을 갖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담대하게 모험할 줄 아는 투지와 도전정신이 신학도들에게 매우 긴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이 말씀은 무엇이든 기도로 간구하면 하나님이 다 응답해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보면 기도의 교훈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며 “이 말씀의 핵심은 질문하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진리에의 갈증과 실험적인 탐구 정신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상상하며, 다르게 보려는 관점을 가지라는 용기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성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ㆍ적용할 것인가

   
 
차 교수는 성서를 대하는 신학생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당부했다. 사실 성서를 대할 때 신학도들은 보통 세 가지 관점을 유지한다. 성서를 경전으로, 텍스트로, 운동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경전으로서 성서를 대하는 것과 관련해 차 교수는 “가장 전통적인 관점으로써 말씀의 권위를 강조한다. 말씀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고, 말씀의 종교적 진리성을 강조하며, 윤리적 규범의 표준성에 집중한다”며 “하지만 이 관점으로만 성경을 대할 경우 문자주의와 주관적 QT와 같은 자폐적 학습의 폐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그렇다면 텍스트로서 성서를 대하는 자세는 괜찮을까? 이 관점은 성서의 역사성과 문학성을 강조한다. 본문의 이면과 배경, 행간에 감추어진 다양한 사실과 상황들을 추출해 해석의 다층성과 역동성을 중시한다.

성서의 과학적인 분석과 해석을 위해 각종 비평방법과 주석기술을 계발하는 등 텍스트로서 성서의 미학적 층위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계시적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운동으로서 성서를 대하는 자세는 어떨까? 차 교수는 “이 관점은 성서의 신학, 이념적 기능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의 변혁과 체제를 개조시키려 하고, 교회 개혁을 위한 말씀의 특정 원리를 추출해 적용한다”며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각종 정치신학에서 강조하는 헤체주의적 독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서가 형성된 배경에 개입한 사회계급적 의식과 정치적 헤게모니, 가부장주의적 독점권력 등이 해석의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성서의 메시지를 우리 시대 맥락에서 어떻게 변혁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에만 해석의 무게를 두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세로 성서를 대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차 교수는 “성서에는 단 하나의 모범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학적인 입장이 혼재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극도로 보수적인 가부장주의 지배층 신학에서 극도로 혁명적인 진보적 신학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고 설명했다.

성서를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험하는 신앙생활에 대한 메타적 성찰의 작업으로 정의할 때, 성서에는 창조 신학, 신명기 신학, 레위기(제사장) 신학, 지혜 신학, 왕조 신학, 예언자 신학, 묵시주의 신학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신약에는 예수의 신학, 바울 신학이 있다. 예수에 대한 신학에도 Q의 신학, 마태의 신학, 누가의 신학, 사도행전 신학, 히브리서 신학, 목회 신학 등 두루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성서에 담겨진 다양한 신학을 어떤 목표로 끌어들여 자신의 신학, 목회를 위한 신학, 교회공동체의 신학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사역과 삶의 콘텐츠가 채워지고, 선교적 방향 또한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목회에 성서의 메시지를 적용할 때도 해석의 객관성과 함께 적용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즉흥주의적 직통계시나 심리적인 조종술의 도구로서 성서를 거칠게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는 “하나님 나라와 작은 지교회 사역의 간극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며,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에 대한 성서신학적 통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전통적인 성직자주의, 성전으로서의 교회 관념, 위계주의적 권위의식 등 기존 목회의 관행에 대해서도 반드시 성서신학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성서를 읽는데 있어서도 무한과 영원, 충만의 관점을 유지하며, 인간의 삶의 현장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역사적, 현실적, 신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창조신학과 구원신학의 사이, 고난의 신학과 향유의 신학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오감으로 성서를 읽고, 오감으로 행간의 메시지를 살아내는 일상의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 삶 속으로 성서를 깊이 끌어들여 피와 살이 되도록 하는 ‘제2의 성육신 사건’을 경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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