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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파이파 박사가 말하는 설교(상) - 설교의 네 가지 특성

목회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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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설교’ 정기세미나 / 2015년 2월 26일 기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서창원 목사)이 지난 2월 23일부터 26일까지(2015년) 세곡교회당에서 제29기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설교’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미국 그린빌신학교 총장인 죠셉 파이파(Joseph A. Pipa) 박사가 주강사로 참여했다. 파이파 박사의 주된 강의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설교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설교는 네 가지 중요한 요점을 지니고 있다. 설교는 소통의 독특한 방편이며, 독특한 권위를 지니고 있고, 독특한 역할과 함께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 설교는 전달(소통)의 독특한 형태다

설교란 설교하도록 임명된 자에 의해서 권세 있게 공적 영역에서  구어적으로 선포한다는 차원에서 독특한 행위다. 설교는 언제나 구음이다. 그리고 공적인 선포이다.

일반적인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설교사역에 부여해 준 권위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는 가르칠 때 몇 가지 가능한 해석들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불확실한 상태에 남겨두기도 한다. 하지만 설교는 언제나 권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속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설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교자가 경험한 진리를 전파함에 있어서 분명히 개인적인 증언의 요소들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증언의 내용은 설교와는 다르다. 간증과 같은 것을 설교행위와 간주해서는 아니다. 따라서 설교가 전파하고 가르치고, 증언하는 요소들은 지니고 있지만 설교와 혼돈해서는 안되는 복음과 교리적인 전달의 독특한 형태들이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구음의 공적 선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달자로서, 왕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구어로 전달하는 전권대사로 생각하게 하는 근거는 신구약 성경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 설교의 행위는 독특한 권위를 갖는다

   
▲ 죠셉 파이파 박사(미국 그린빌신학교 총장)
설교는 그 권위에 있어서 독특하다. 설교는 그 임무에 위임받은 사람의 일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직무의 일로서 설교할 것을 명령했다(딤후 4:5). 디모데는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전도자의 일을 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이루기 위해 설교해야만 했다. 설교는 그의 직분에 따라오는 기능이다.

설교와 직분과의 관계는 ‘케룩스’(kerux)라는 용어에 함축돼 있다. ‘케룩스’는 위임받은 사자(또는 전령)였다. 사실 설교자들 없이는 선포도 없다.

참된 선포는 성경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강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눅 4:21). 하나님은 책들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들을 보내신다. 이러한 직임을 감당하도록 개개인을 선택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설교자의 직분을 세우신다. 모든 성도들이 설교하도록 부름 받은 것은 아니다.

피에르 마흐셀(Pierre Marcel)은 “오직 설교하라는 사명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자, 그리고 그 일에 수반되는 약속들을 받은 자만이 말씀 사역을 세우며 설교의 합법성을 가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나님 말씀의 설교는 교회가 고안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받은 사명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사명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단지 이 사명을 받아 그것을 반복할 따름이며 거기에 순종해 교회의 순종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의 권위를 그리스도께서 임명해 주신 것으로부터 찾는다. 위임받은 자가 설교할 때,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권위와 함께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메시지를 선포할 때, 그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설교자의 말씀 선포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능력과 효력을 간직한다. 따라서 선포된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 제1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교회 안에서 합법적으로 부름을 받은 설교자들에 의해 설교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선포된다는 사실과 그 말씀이 신실하게 받아들여져야 함을 믿으며, 또한 이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된다든지 하늘로부터 올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되는 말씀 자체가 존중되어야 할 것을 믿는다. 그 설교자가 악하며 죄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참되며 선하다.…” 등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위임받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설교할 때, 성령 하나님은 선포된 신적이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시고 설교자를 통해 독특하게 말씀하신다. 따라서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따로 세운 사람에 의하여 권위 있게, 공적으로, 언어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참된 설교 가운데 특별한 방식으로 임재함으로써 초자연적으로 말씀하신다.

# 설교는 독특한 기능을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설교를 통해 그의 나라를 확장하신다. 로마서 10:14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들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다고 선언한다.

존 스토트는 설교를 가리켜 구속을 적용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스토트는 “설교에 의하여 하나님의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실제로 만드신다. 십자가는 과거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독특한 역사적 행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리고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만드시지 않는 한 그것은 과거의 책들 속에만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기적을 이루신 것을 사람들을 통해 나타내시는데 바로 설교에 의해서다. … 하나님은 설교자들의 선포를 통해 사람들을 실제로 구원하신다. …”고 했다.

그러므로 설교는 은혜의 가장 주요한 방도이며, 따라서 교회사역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설교가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인 은혜를 높이시기 위해 설교를 은혜의 주요한 방도로 제정하셨다.

물론 설교가 전도나 혹은 교화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모든 복음 사역의 중심자리에 놓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도 설교와 상호작용을 가진다.

마흐셀은 “말씀을 읽는 것은 말씀의 선포와 손에 손을 잡고 가야 한다. 개인적인 읽기를 통해 얻어지는 은혜들은 선포된 말씀, 또는 세움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해설되고, 설교된 말씀에 의존돼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다른 합법적인 복음의 수단과 교리적 전달의 수단들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설교와 관련되어야 한다. 설교로부터 흘러나와야 하고, 설교 속에 들어가야 한다.

# 설교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설교의 내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의 독특한 능력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설교는 반드시 성경의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설교자는 언제나 성경이 자신의 설교 주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설교자의 목적은 성경의 진리를 해설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설교 내용은 반드시 전적으로 성경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의 세 가지 목적을 말한다. 교훈하고,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설교의 목적은 성경의 의미를 가르치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성경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는 성경의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설교 가운데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모으시고 온전케 하신다(살전 2:13, 고전 1:21 등).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반드시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해야 한다. 설교는 성령의 복주심에 의해서만 이러한 신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성경은 성령께서 죄인들의 회심과 성화의 일에 주요하게 사용하시는 도구다. 성령의 일은 조명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성령은 독자나 청중들이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명하신다. 설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따라서 성령은 설교를 사용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신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실 때,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설득력 있도록 만드시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떠나 그 말씀 자체만으로는 어떤 설득력도 가지지 못한다.

성경은 설교의 효력은 설교를 효과 있는 것으로 만드시는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에 달려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요 3:8). 따라서 설교의 일은 성령에 반드시 의존해야 한다. 설교 준비와 선포에 있어서 설교자는 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의존해야 한다.

설교 준비와 관련해 설교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먼저 설교자 자신에게 성령에 의해서 설명이 되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말씀만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매일 성령에게 호소해야 한다.

성령은 설교자가 설교할 본문을 이해하도록 조명해주신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 준비를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의 힘으로 설교를 준비하려고 한다. 본문을 어떻게 주해하고, 설교문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께서 본문을 설명해 주시도록, 그리고 성령께서 회중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구하면서 설교사역을 해나가야 한다. 성경의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설교의 내용을 위해서도 기도해야만 한다.

설교자는 회중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능력 있게 설교할 수 없을 것이다. 회중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필요를 위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설교의 선포와 관련해서 준비된 설교만이 실제 설교 행위에서 성령님의 복주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있는 말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설교를 준비하면서 연구하는 것과 실제 설교로 선포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둘은 다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설교문은 서재에서 준비하는 것이며, 설교는 강단 위에서의 행위다. 아주 좋은 설교문을 갖고 나쁜 설교를 할 수도 있으며, 나쁜 설교문을 갖고도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말씀선포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 성령의 ‘부어주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설교자는 성령의 권능과 자유하게 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설교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성령께서 설교를 통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 그래서 설교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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