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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워라”

목회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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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노령인구 거주 농촌지역 교회 개척의 필요성과 그 실천 방안 / 김한옥 박사 / 2015년 3월 3일 기사

 

“교회는 커야 하고, 재정적으로는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입관이 오늘날 농촌을 비롯해 소수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용기를 꺾어놓았다.”

“교회 개척은 모든 상업적이고 경영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교회에 대한 투철한 이해와 그것의 과감한 실천을 필요로 한다.”

농촌지역에서 목회하고 싶은 목회자가 있을까? 특별한 목회비전을 가진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수도권을 비롯해 적어도 중소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재 농촌에 있는 교회들의 경우 규모가 작아지거나 없어졌고, 새로 교회를 세우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로 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노인이 되어 토지를 지키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농촌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가 세워져야 하지만 재정적인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농촌지역 목회의 현실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경영과 상업의 논리로 교회 개척지를 결정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 김한옥 교수(서울신대, 실천신학)
이와 관련 서울신대 실천신학 교수인 김한옥 박사는 “신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에 직면해 교회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된다”며 “이상적인 교회, 즉 성경적인 교회와 신학적인 교회는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할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막상 구현되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나 경영의 문제라는 사실이 혼란을 가증시킨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특히 김한옥 박사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해 온 고향(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하원리)에 3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현재까지 목회를 해오고 있는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현재 그는 6가정을 전도해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가 고향 땅에 교회를 세운 이유는 딱 한가지다. 교회의 생활 형태보다 존재의 형태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자립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교회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비결이기는 하지만 잃은 양을 찾아 나서고, 사회적인 약자를 향해 손을 펼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면 자립할 가능성이 있는 교회만 세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날까지 미자립 교회로 남아 있을 교회도 세워져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영혼,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소외된 지역에 교회개척 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교회 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소외된 농촌지역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노후를 믿음 안에서 평안히 지내도록 돌보는 일은 온 천아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한옥 박사가 교회를 개척한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하원리는 동해안을 끼고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농촌 마을로서 전체 43가구에 약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평균 연령은 69세이며 대부분 소규모의 토지를 갖고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연 소득은 가구당 평균 500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 빈촌이다.

김한옥 교수는 한국실천신학회 논문집 ‘신학과 실천’(제 42권, 2014년 겨울)에 ‘소수의 노령인구 거주 농촌지역 교회개척의 필요성과 그 실천 방안’이란 논문에서 자신이 개척하고 목회하고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농촌 지역 교회개척의 필요성과 함께 실천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농촌지역에 교회가 서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경제적인 자립이 어려운 농촌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그동안 도시의 대형 교회들이 방치해 온 농촌지역 복음화의 공동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둘째,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기 위해서다. 셋째, 지역 주민들을 구원해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김한옥 박사는 이와 같은 당위성을 갖고, 교회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그는 “교회 개척의 소명을 확인하고,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기도를 했고, 교회 개척이 마음으로 확정된 이후에는 기도의 후원자를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를 함으로써 영적인 방어진을 견고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게 교회가 그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에 유익한 일들을 했고, 마지막으로 주민들 중에 특히 외롭고 병들거나 외톨이가 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치료하고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몇 사람을 구원하셔서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을 섬기며 마을 주민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한옥 박사의 ‘소수의 노령인구 거주 농촌지역 교회개척의 필요성과 그 실천 방안’이라는 논문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 소수의 노령자 거주지에 교회가 서야 하는 이유

1. 도시의 대형 교회들은 이제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의 소수 인구를 전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미래교회의 설계가로 유명한 칼 조지(Karl F. George)는 장차 교회가 붙잡혀야 할 비전과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교회의 구조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 네 가지를 예견했다.

첫째, 단시일 안에 모든 것을 다 완수하려고 하지 말고 광대한 미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둘째, 인구의 도시 밀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도시교회들은 더 커질 것이다. 셋째, 작은 교회들은 시간제 목사를 둘 것이다. 넷째, 거대 교회들은 교인들을 세심하게 돌볼 수 있을 만큼 작아질 것이다.

따라서 미래교회는 규모는 훨씬 더 커지면서도 중앙집회 장소가 아니라 소그룹 사역의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래에는 목사와 교회 지도층이 각 구역 담당자들에게 체인점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도록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 마을의 교회 개척은 철저하게 교회의 본질을 강조하지 않으면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미래의 교회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교회로서의 존재의미가 있겠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의 노인들이 주민의 주류를 이루는 농촌에 교회가 세워지면 마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믿고 친밀한 성도의 교제 안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교회와 교류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보다 큰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풍성함을 누리며 사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절박하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지역사회 주민들을 섬기기 위해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금도 농촌지역 노인들은 가족 및 사회적인 관계망을 주로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용하며 독거노인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고 있다.

건강상태 역시 악화돼 자녀들로부터 받는 용돈과 정부로부터 받는 노령연금도 주로 병원비나 약값으로 지출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으니 여가활동이나 여행을 하는 것은 계획조차 세우기 어렵다.

농촌지역의 노인들은 경제적인 필요와 소외감을 해결하지 못한 채 무료한 나날을 보내며 그날이 그날인 막막한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들도 가정에서 위축되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교회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할 때(행 16:9), 곧 바로 그곳으로 가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오늘도 교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가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교회의 봉사는 단순히 결핍의 보상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영생을 위한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외되어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는 농촌 노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농촌에 반드시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3. 노인들의 영혼구원과 돌봄을 위해 농촌에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다. 교회가 ‘많은’ 영혼에만 관심을 갖는 한 농촌에 교회를 세우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농촌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약한 자를 편드시며 돌아온 탕자를 위해 살찐 소를 잡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농촌마을의 노인들은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복음에 대해서 아직 들어보지도 않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농촌. 여전히 토속신앙인 조상제사를 지내며, 성황당을 섬기고 있는 농촌.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농촌. 이런 곳에 교회가 세워져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삶의 지지자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저들은 어둠의 영들의 노예가 되어 살다가 영원히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 밖에 저들을 어둠의 영들에서 건져낼 방법이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밖에는 삶의 무게가 날마다 더해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이 몰리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결단을 해야 할 때다.

이는 모든 상업적이고 경영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교회에 대한 투철한 이해와 그것의 과감한 실천을 필요로 한다.

# 소외지역 교회개척을 위한 실천 방안

1.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 땅에 건축하는 것이므로 개척자는 강력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개척자(나)는 5년 간의 시간을 갖고 준비 기도를 드렸다. 이 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개척자가 현직 교수이고 학교와 교회 개척지의 거리가 300Km가 넘어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멀고 외진 동네였기 때문이다.

개척자는 매일 저녁 가정예배와 새벽기도 시간에 교회 개척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개척할 마을의 조용한 계곡에 기도처를 만들어 놓고 매월 4주째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기도처로 내려와 기도하다가 저물면 읍내에 나가서 자고, 다음날 다시 기도처로 돌아와 아내와 주일예배를 드렸다.

주일예배 이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기를 5년 간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계속했다.

교회 개척을 위해 두 번째로 드린 기도의 유형은 개척자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기 위해 지혜가 있어야 했고, 지역의 우상들과 어둠의 영들을 대적하기 위해 능력이 필요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간절히 기도했다. 그 다음으로 드린 기도의 유형은 1주간의 특별기도였다. 겨울방학을 맞아 마을에 내려와 읍내에 숙소를 정해놓고, 매일 아침 일찍 기도처로 들어와 해질 무렵까지 기도드렸다. 마지막 이레째 되는 날은 기도처에서 혼자 철야기도를 드렸다.

그러는 중에 개척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가 더욱 견고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이 생긴 이래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어둠의 골짜기에 교회를 세우는 일은 개척자의 결심만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여러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이룬 한 몸이다. 따라서 기도의 동역자를 붙여주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기도의 용사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은 어둠의 영들을 대적하는데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그 결과 약 30여 명의 기도후원자를 얻을 수 있었다.

개척 준비과정에서 구했던 또 다른 기도는 마을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등 다양한 기도의 방법을 따라 상황에 맞게 준비기도를 드렸다.

개척자는 개척의 소명을 받아서 교회를 개척하지만 현실에 직면해 그것에 붙들려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소명을 계속 재확인하면서 과업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2. 개척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그 지역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척자는 마을에 유익한 일을 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했다.

첫째, 매년 해마다 마을 전체 주민이 마을회관에 모여 그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회의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노는데, 그 때 드는 잔치비용을 개척자는 부담했다. 먼저 이장을 만나 잔치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고, 음식 재료를 구입하는 비용과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의 수고비 일체를 지원했다.

교회 공동체가 아닌 모임을 위해 물질을 사용한 것은 헌금이 아니라 단순한 기부금에 불과하지만 돈의 쓰임은 매우 의미 있고 합당했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길을 여는데 사용됐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농촌의 노인들을 위한 잔치에 쓰였기 때문이다. 잔치가 있던 날 모든 주민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고, 어떤 분은 마을이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둘째, 마을회관에 가서 거기에 모인 주민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었다. 비록 그들의 놀이는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고, 담배와 술이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모인 사람들의 놀이는 주로 화투인데 10원 동전을 주머니에 가득히 넣어가지고 와서 읽고 따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세속적인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함께 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지만 그들 역시 개척자를 쉽게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간에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차문화의 이해가 필요했다.

물론 개척자가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성경적인 관점에서 상화화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거리를 상호 인정하고 나니 만남이 자연스러워지고 대화가 통했다.

셋째, 마을의 유익을 위해 시도한 일 중에 하나는 농산물을 도시교회에 팔아주는 것이었다. 토지가 많지 않아 생산량은 적지만 고추나 감자 같은 것은 가격이 하락하면 판로가 막혀 거두어들인 것을 판매할 길이 막연했다.

개척자는 도시 교회에서 목회하는 지인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줬고, 이로 인해 큰 교회가 작은 교회, 도시 교인과 농촌 교인이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넷째, 개척자가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시도한 일 중에 하나는 ‘목사는 평화의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교육적인 혜택을 적게 받고 산골에서 각박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용서, 평화, 양보, 섬김과 같은 단어는 어리석은 말장난처럼 들리기 쉽다.

회의를 할 때도 발언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발언하니 목소리 큰 사람이 잘난 사람처럼 인식된다. 따라서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더 큰 소리를 내다보니 남을 무시하게 되고, 이는 곧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같은 마을에 살아오면서 서로 원수처럼 외면하고 사는 사람도 여러 명이 있다. 처음 교회에 나오는 어떤 분은 아무개가 교회에 오면 자기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실천한 것이 남을 비방하지 않고 칭찬하기, 내가 손해 보기를 기뻐하기, 절대로 소문을 퍼뜨리지 않기, 누구든지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기 등 생활의 기본적인 예절을 철저히 지키려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다.

3. 하원리 마을 전체가 43가구인데 그 중 28가구가 65세 이상이고, 6명은 독거노인이다. 60세 이하인 가구는 3가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을 전체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가고 홀로 남아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개척자는 이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러 들어가서 노인들의 상실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 점점 희박해지는 관계의 공백을 메우는 일에 청지기적 사명을 갖고 임해야 한다.

개척자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있어야 한다. 기꺼이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명자의 손은 돌보는 손일 때 하나님께서 기뻐 사용하시는 손이 된다. 십계명의 근간을 이루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서도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척자는 강한 지도자이면서도 동시에 강하게 섬기는 지도자여야 한다. 개척자는 노인들의 친구가 되어주며,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강력한 영적 지도력과 함께 섬김의 지도력도 구비하기 위해 자신을 많이 채찍질했다.

교회를 개척하러 마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많이 한 일은 바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는 일은 특히 어려웠던 것 같다. 노인들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대화하고, 개척자는 시간을 아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노인이 계속하시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선에서 제한해야 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송구스러웠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은 간단한 상처를 치료하고, 혈압을 측정해주고, 경우에 따라 병원으로 이송해주는 의료적 봉사였다. 그 외에 음식을 만들기 귀찮아서 반찬을 잘 해먹지 않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반찬을 만들어 전해줬다.

가장 빈번하게 하는 일은 농사일을 돕는 것이었다. 농번기에는 어디를 가든지 일손이 부족해 심방을 하는 집마다 조금이라도 일을 도와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면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일들이 간격이 넓은 그물을 친 것이었다면 개개인의 필요를 돌보는 일들은 간격이 좁은 그물을 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간격이 넓은 그물은 고기를 직접 잡을 수는 없지만 간격이 좁은 그물이 상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교회 개척자는 두 개의 그물을 양겹으로 쳐서 많은 고기를 안전하게 잡도록 해야 한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교회의 개척은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의 개척은 경영의 논리보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우선시해야 한다. 실패가 계속되더라도 교회는 끊임없이 개척되어야 한다.

교회는 커야 하고,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입관이 오늘날 농촌을 비롯해 소수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용기를 꺾어놨다.

오늘날 왜곡된 교회의 모습을 갱신하고, 성장이 정체된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소외된 사람들, 고독하고 가난한 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데 있다. 다라서 도시의 중대형 교회들은 아직도 교회가 없는 곳을 찾아 소규모의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큰 교회의 도움 없이 개척자가 단독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방식도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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