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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신학ㆍ경건의 실천(3) - 손양원 본문

역사와 신학

기도의 신학ㆍ경건의 실천(3) - 손양원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3:46

 

손양원의 기도신학 / 정주채 목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 2015년 2월 23일 기사

 

바른교회아카데미가 지난 2월 9일부터 10일까지(2014년) ‘기도의 신학, 경건의 실천’을 주제로 제18회 연구위원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길선주, 이용도, 손양원, 한경직, 문준경, 함석헌, 이현필, 문익환 목사 등을 비롯해 조나단 에드워즈, 웨슬리, 볼룸 하르트, 본회퍼, 루터, 칼뱅, 카타리나 쉬즈 젤, 존 오웬, 슈페너 등 세계 및 국내 개신교 전통에서 기도의 신학과 경건을 실천한 신앙선배들의 신앙과 신학을 조명했다. 이에 본지는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중심으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바라본 과거 신앙위인들의 기도의 신학과 경건의 삶의 모습을 간단히 정리하며, 한국 교회에서의 적용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손양원의 기도신학> / 정주채 목사

손양원(1902-1950)은 한국교회의 보배요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어떤 사람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성자이며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에 해와 같이 빛나는 또 한 분의 귀한 인물입니다.

# 손양원의 신학사상

   
▲ 손양원 목사(1902-1950)
손양원이 자신의 신학사상을 정리하여 저술한 논문이나 책은 없습니다. 주로 그가 남긴 설교원고들과 옥중서신들과 그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남겨진 신문조서 등에서 그의 신학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체포되어 여수경찰서에서 받은 신문에 대답한 기록을 읽으면 무슨 신학 교과서라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책이나 참고할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리된 내용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분명하게 진술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신앙이 그의 생활과 아무런 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신학은 철두철미 성경중심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설교론을 설파한 적이 있는데 “성경에서 성경을 전부로 삼고, 성경으로 성경을 풀고 싶습니다. 서론도 성경이요 내용도 성경이요 결론도 성경이 되게 하고져 합니다. 즉 성경으로 시작하여 성경으로 마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신학의 모토는 ‘오직 성경’이었으며 그의 신앙생활은 철저히 성경중심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그의 신앙고백은 일본 고등계 형사의 신문에 대답한 말에 더욱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하여 여하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나에게 있어서는 생명으로도 바꿀수 없는 절대적인 기록입니다. 나는 교리를 굳게 믿고 인생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신조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고로 성경은 나의 유일한 신조요 신앙의 목표입니다. 성경 중에 기록된 것은 전부 그대로 굳게 믿고 전부가 실현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손양원의 신학사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을 따르는 종말신앙이라는 점입니다. 그의 이런 신학사상은 그의 설교에서 그리고 특히 신사참배반대로 구금되었을 때 남겨진 신문조서들에서 아주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손양원의 말세론에 크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측면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국교회의 말세사상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도피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현실도피적인 염세사상에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으로 기울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풍미하게 된 세대주의 종말론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 말세론의 중심이 되어 있었던 바, 손양원 역시 강한 세대주의적인 종말론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보다 더 중히 여기며 살았고, 주를 위한 고난이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달게 받았던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성읍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실천적 복음주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손양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도래를 대망하는 사람이었지만 내세주의적인 이원론에 빠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복음전도자로 살았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접근하기조차 무서워했던 나환자들을 자기 몸을 사랑함 같이 사랑하며 섬겼던 인물입니다.

그가 48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고 사역기간도 길지 않았지만 그의 신앙과 사랑의 삶은 천대까지라도 이르게 될 만큼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를 알면 누구나 그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그는 “작은 예수”였습니다.

손양원은 순교신앙을 추구했습니다. 손양원의 설교에는 현세적 축복을 약속하는 설교가 없었습니다. 손 목사의 복음은 고난과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난이 바로 복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내가 항상 말하거니와 고난은 참으로 큰 복이외다. 꿀 같이 달게 받으사이다. 참고 견디기만 하면 이보다 더 큰 대복은 없는 법이외다.”

손양원이 순교자가 된 것은 돌발적인 사건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순교적인 삶을 살았고 그것의 결과가 순교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설교했던 대로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반대하였고 감옥에 가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위험을 기어이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민군이 여수 가까이까지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피난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목자가 양들을 두고 어디로 가겠느냐”며 끝까지 애양원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잡혀서 순교했습니다.

# 손양원의 기도신학

손양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나환자들을 섬기는 일을 위하여 온갖 고난을 견디며 남다른 희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이며 기독인은 ‘기도의 사람’이라”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학교에 다니던 전도사 시절부터 많은 교회들을 순회하며 설교하였고, 8.15 광복으로 출옥한 후에는 “손불”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수많은 부흥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손양원이야말로 사경과 기도 사역에 탁월한 실천가요 지도자였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손양원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특별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손양원은 “하루 중 제일 가치 있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했으며 “일 중의 일이요 생활 중의 생활이 바로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에 실패하면 만사에 실패한다”는 것이 손양원의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독자의 실패가 기도에 있고 기독교의 흥망이 기도에 있으니 실로 기도여하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 주여, 나에게서 모든 힘을 빼앗아갈지라도 기도하는 힘 하나만은 남겨주소서.”라고 절규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서 기도는 영적 전쟁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영적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자신은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인생을 마치고자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선언대로 그는 기도하다가 잡혀가 순교했습니다. 인민군들이 그를 체포하러 왔을 때 그는 교회당에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피난을 가자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를 기어이 뿌리치고 강대상 앞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것입니다.

손양원은 한국 교회의 보배입니다. 그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예수님의 사랑의 삶을 따라 산 선한 목자입니다. 그는 용서와 화해의 사도였고, 헌신과 희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으로써 순교자가 되었지만 그의 삶과 사역 역시 순교였습니다. 손양원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새삼스럽게 주목해야 할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보다 귀히 여기며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큰 확신과 성령과 능력”으로 뜨겁게 말씀을 강론한 설교자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의 동력은 기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도의 자리가 영적인 에너지의 발전소였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선뜻 이해가 안되는 대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기도를 많이 강조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예사롭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반대로 교회의 공적책임을 강조하고 사회선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 정주채 목사
그러나 사실 이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지 못한 사람이 영적인 일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다거나 그것들을 수행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하나님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사람이 공적인 책임에 둔감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손양원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모든 지도자들에게 훌륭한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나아가 하나님나라의 큰 일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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