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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신학ㆍ경건의 실천(2) - 마틴 루터

역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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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기도-루터를 중심으로 / 강치원 목사 / 2015년 2월 16일 기사

 

바른교회아카데미가 지난 2월 9일부터 10일까지 ‘기도의 신학, 경건의 실천’을 주제로 제18회 연구위원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길선주, 이용도, 손양원, 한경직, 문준경, 함석헌, 이현필, 문익환 목사 등을 비롯해 조나단 에드워즈, 웨슬리, 볼룸 하르트, 본회퍼, 루터, 칼뱅, 카타리나 쉬즈 젤, 존 오웬, 슈페너 등 세계 및 국내 개신교 전통에서 기도의 신학과 경건을 실천한 신앙선배들의 신앙과 신학을 조명했다. 이에 본지는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중심으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바라본 과거 신앙위인들의 기도의 신학과 경건의 삶의 모습을 간단히 정리하며, 한국 교회에서의 적용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종교개혁과 기도:루터를 중심으로>
강치원 목사(모새골교회)


1530년에 루터가 몇 달간 코부르크 성(Veste Coburg)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의 루터를 지켜본 바이트 디트리히(Veit Dietrich)는 멜랑히톤에게 보내는 6월 30일자 편지에서 루터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적어도 세 시간씩 기도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루터의 기도생활은 수도사로서 수도원에서 익힌 기도습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루 일곱 번 실시되는 전례기도에 익숙해 있던 루터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삶을 살았으며, 특별히 아침, 점심, 저녁에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 마틴 루터(1483~1546)
루터가 수도사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더 이상 렉치오 디비나가 이전처럼 수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영적인 훈련으로 간주하는 전통은 남아 있었으며, 세 시간이나 기도하였다는 것은 바로 이런 영적인 수행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기도란 묵상하는 기도요, 묵상이란 기도하는 묵상이라는 전통이 루터에게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묵상은 앎과 이해를 추구하는 지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묵상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기도 안에서, 기도와 함께, 기도를 통해 수행되는 것이다. 이럴 때 바위에서 통찰과 이해의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바울을 두드리는 묵상’, 바로 ‘기도하는 묵상’을 통해 종교개혁사상을 발견하였다는 고백은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값진 유산이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은 루터가 수도원적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평범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영적 수행이 유럽의 지축을 뒤흔드는 개혁의 물꼬를 트고, 교회의 영적인 지도를 다시 쓰게 하는 변혁을 가져왔다. 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를 건강하게 회복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은 지금도 모세와 함께, 바울과 함께 성경을 두드리는 것이다.

묵상과 기도가 밀접히 연관된 루터의 영적 수행에 있어서 독특한 것은 요리문답 묵상과 기도다. 루터는 뜻도 잘 모르고 그냥 읊조리는 전례기도서보다는 성경 자체나, 요리문답을 한 두장 읽고 기도할 것을 권한다. 이런 요리문답 기도는 개신교 안에서 요리문답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구송기도(口誦祈禱, oratio vocalis)

기도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기도에서 소리의 문제가 대두e된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소리가 없는 읽기는 지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수도원을 통해 내려오던 전통도 다르지 않았다.

성경읽기는 눈으로는 텍스트를 보고, 입으로는 소리내어 읽고, 귀로는 듣고, 마음으로는 그 뜻을 새기는 인간의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전인적인 수행이었다. 그래서 ‘청각적 독서’라고도 불린다. 물론 침묵 가운데 행해지거나, 낮은 목소리로 읽는 독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독서에 대해 언급할 때는 독서라는 말에 다른 말들이 첨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 ‘청각적 독서’가 가장 많이 수행되던 시간은 전례기도 시간이다. 하루에 일곱 번 수행되던 이 전례기도는 소리 내어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수도승 생활의 핵심이다. 매일 되풀이되는 전례기도에 깊이 몸을 담았던 루터에게 있어서 소리가 있는 기도와 곡조가 있는 기도와 공동체적인 기도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제안하는 아침, 점심, 저녁 기도는 성경이나 요리문답을 소리 내어 읽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이나 요리문답에 매이지 않는 자유 기도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혼자 있는 곳을 추천한다. 이 ‘외적인 소리’를 강조하는 것은 내적인 조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령 열광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루터에게서는 마음으로 드리는 묵상기도보다는 구송기도가 더 선호된다. 이것은 수도승 생활을 통해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널리 만연된 ‘관상’의 문제점을 피하려고 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기도의 언어군(言語群)에서 소외된 관상(contemplatio)

‘관상’이라는 말이 기도와 관련된 루터의 언어군에서 비중있는 단어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수도원 전통을 통해 내려오던 렉치오 디비나를 루터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적 수행을 자신의 종교개혁적인 인식에 따라 수정한다.

그래서 기도가 맨 처음에 나온다. 루터는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가지게 된 순수 이성인 ‘어두워진 이성’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조명된(계몽된) 이성’을 구분한다.

루터는 순수 이성의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온전히 깨닫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조명을 간구하는 겸손한 기도다. 이런 의미의 기도는 자기 스스로가 성서 해석의 권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란 자신과 다른 신학자들의 능력과 권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텍스트의 영에 귀를 기울이고, 이 텍스트의 영이 말씀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론, 사변, 관상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되거나, 그에 예속되는 정신적인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육신이 된 말씀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빵을 떼어주시며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향하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 또한 능동적인 인간의 행위라기보다는 수동적이다. 관상의 소외 현상은 렉치오 디비나의 마지막 단계로 나오는 관상이 루터에게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에서 더욱 드러난다. ‘수동적인 삶’을 기독교적인 유일한 삶으로 자리매김한 루터는 ‘관상’의 자리에 ‘영적 경험’(tentatio)을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알고 깨닫게 된 것을 실존적인 삶의 자리에서 경험하고 체화시키는 측면을 부각시킨다. 루터가 말하는 경험이란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한 경험을 말한. 하나님 말씀과의 경험이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에 대한 지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서 우리들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살아있는 신앙의 경험을 말한다.

왜냐하면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은 단순히 지적 사변을 위해 주어진 책(Lesewort)이 아니라, 행함을 위해 주어진 삶의 말씀(Lebewort)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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