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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신앙교육에서 배운다② 취리히 교회와 신앙교육

교육&윤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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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가정, 학교와 연계하라 / 박상봉 교수(합신대, 역사신학) / 2014년 11월 17일 기사

 

한국교회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신앙과 신학의 깊이도 매우 낮아졌다.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장년의 교회 출석률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 목회현장에서는 다양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오후 2시 목동에 위치한 지구촌교회(담임:조봉희 목사)에서 합신대 정암신학연구소 주최, 합신대 총동문회 주관으로 진행된 ‘제26회 정암신학강좌’도 한국 교회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자리였다. 특히 ‘개혁교회와 신앙교육’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좌는 한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신앙과 신학교육의 질적 저하에 있다고 판단, 과거 개혁주의신앙 선배들이 추구했던 신앙교육의 모습을 되짚어보며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신앙교육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합신대 교수들이 발표한 세 편의 연구논문을 ‘개혁교회 신앙교육에서 배운다’는 시리즈로 요약정리함으로써 개혁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신앙교육의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취리히 교회와 신앙교육>

   
▲ 박상봉 교수(합신대, 역사신학)
성경이 표명하는 믿음과 행위에 관한 신앙교육(교리교육)은 단지 지나간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교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신앙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종교개혁은 복음적으로 개혁된 교회와 신학의 실현으로써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예전과 직제의 변화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동시에 거짓된 신앙내용을 극복하기 위한 사도적이고 교부적인 가르침에 근거한 신앙고백의 변화도 가져왔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논쟁적인 주제의 토론, 성경 주석,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기본적인 설명,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공적인 신앙고백, 성인들과 어린이(청소년)들의 신앙지식의 습득을 위한 신앙교육 등과 관련된 저술들을 기술하는데 많은 관심을 집중했다.

특히 신앙교육의 교리적인 내용은 교회 안에서 예배 때 낭독됐으며, 각 주제들은 작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규칙적이며 개별적으로 설교되거나 해설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종교개혁 도시들에서 중세말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의 의무로써 책임지워진 가정 신앙교육 뿐만 아니라 또한 신앙교육서가 직접적으로 수업자료로 활용됐던 학교 안에서 신앙교육이 수행됐다.

이 신앙교육은 ‘참된 교리’를 왜곡, 위조 그리고 남용으로부터 경계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했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동시대의 사람들과 다음 세대에게 전파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의 유산은 한편으로 신학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계승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설교와 함께 더 효과적으로 신앙교육을 통해 계승됐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종교개혁 시대의 신앙교육 방식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교육과 관련해 교육을 받는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내용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뒀다. 즉, 청중들의 수용능력에 맞게 내용이 가르쳐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신앙교육적인 면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즉, 교육환경에 있어서 매우 열악했다. 성경이 사제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신자를 위한 것이라는 신앙의식의 성장과 그의 실천으로서 성경이 모국어로 번역됐고, 평신도들도 자유롭게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모든 가정들이 성경을 소유하는 것은 15세기 구텐베르그에 의해서 혁명적인 인쇄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 때문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종교개혁 당시에 신앙교육을 받은 모든 신자들이 인쇄된 신앙교육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당시 교회 안에서의 신앙교육은 부유하고 글을 아는 일부의 신자들이 성경과 신앙교육서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교리 설교나 해설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는 많은 제약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성경과 신앙교육서를 지참하고 이루어진 신앙교육은 당시에 부유한 가정이나 학교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최상의 신앙교육은 규칙적인 시간 속에서 각 연령대의 구성원들에게 신앙교육서가 해설되거나 그 내용이 문답적인 방식으로 확인되는 것과 관련이 깊었다.

# 울리히 쯔빙글리와 신앙교육

쯔빙글리는 루터가 1529년에 저술한 ‘대ㆍ소요리문답’과 같은 신앙교육서를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루터보다 훨씬 앞서 청소년들의 신앙적인 양육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쯔빙글리의 청소년 신앙교육서인 ‘존귀한 청소년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울리히 쯔빙글리의 권면’은 1523년 1월 29일 첫 번째 취리히 논쟁 이후로 본격화된 취리히 종교개혁의 과정 속에서 그로스뮌스터 교회 부속학교의 개혁의 일환과 연계돼 출판됐다.

이 신앙교육서는 많은 학생들이 목회자로 길러지는 것과 관련해 종교개혁 사상에 근거한 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과 기독교 시민으로서 깊은 신앙지식과 윤리적 소양을 갖도록 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쯔빙글리의 신앙교육서는 서문을 제외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것, 그리고 삶의 책임 등으로 꾸며졌다. 이 신앙교육서에는 종교와 교육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 종교개혁 사상에 토대를 둔 기독교적인 삶 전체에 대한 진술이 담겨져 있다. 인문주의 색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중심에 깊은 성경적인 가치가 녹아 있는 토대 위에서 종교개혁의 신앙과 경건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하여’에서 쯔빙글리는 우리 안에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밝힌다. 신앙은 외적인 말씀 자체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인 역사를 통해서 발생됨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성령, 복음 그리고 믿음에 대한 인식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어떤 삶으로(생의 태도로) 이끄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 복음을 아주 정확하고 성실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것에 관하여’에서는 쯔빙글리는 바른 삶을 위해서 바른 가르침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적인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언어 능력의 중요성 외에도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신중할 것도 조언한다. 언어의 내용뿐만 아니라 언어의 습관에 대해서 주의를 시킨 것이다.

또한 절제에 대해서도 당부한다. 술, 음식, 의복 등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연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젊은 때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여성에 대한 순결함을 잃지 않도록 당부하고 있다. 그밖에 이교적 작가들의 글, 음악과 수학, 전투훈련 등과 관련해서도 어떻게 감당하는 것이 좋은가 권면한다.

‘삶의 책임에 관하여’에서 쯔빙글리는 기독교적인 삶에 대해 강조한다. 기독교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청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의, 성실, 정절을 훈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덕성들을 지녔을 때, 그리스도의 공동체, 즉 극과와 시민을 바르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쯔빙글리는 젊은 때의 즐거움을 빼앗지는 않는다. 적당한 오락과 다른 사람들과의 건전하고 절제 있는 교제를 권장하고 있다. 또한 고 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부모 존경,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도 조언하고 있다. 젊은 날에 관심 가져야 할 용무들로 신체를 단련하는 것, 친절함, 말과 행동의 진실함 등에 대해서도 충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쯔빙글리의 신앙교육서는 교리적인 지침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그리고 참된 경건의 삶을 위해서 마음과 신체적으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쯔빙글리의 신앙교육서인 ‘존귀한 청소년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울리히 쯔빙글리의 권념’은 체계적인 교리지식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청소년들이 어떤 신앙정신과 경건으로 무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선명한 지침을 주는 안내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레오 유트와 신앙교육

쯔빙글리의 사망 이후 취리히에서는 공적으로 어린 세대의 신앙교육을 위한 새로운 길이 열렸다. 1532년 10월 6일에 공포된 ‘설교자와 총회에 관한 규정’에서 취리히 의회는 어린 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에 관한 입장을 표명했다.

특별히 신앙교육서에 관한 수업의 틀 안에서 어린이를 위한 설교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 강조됐다. 사도신경, 기도, 십계명 그리고 성만찬에 대한 이해가 담긴 신앙교육서를 규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취리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신앙교육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1525년 레오 유트에 의해 ‘벽보신앙교육서’(Wandkatechismus)가 작성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교리적인 설명이 없는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그리고 마리아 찬가를 하나의 큰 종이 위에 인쇄해 놓은 rejt으로 신앙교육적인 면에서 거의 실용성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1535년 취리히 총회는 다음 해 모임 때까지 신앙교육서를 집필할 것을 유트에게 위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트는 1534년과 1539년 사이에 교회, 학교, 가정에서 사용된 세 권의 공적인 신앙교육서들을 작성했다. 그리고 유트에 의해서 오늘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신앙교육서도 작성됐는데 아마도 종교개혁 당시 개혁주의 교회에서 거의 유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트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대요리문답’을 작성했는데 네 가지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십계명 해설(20문답) △하나님의 은혜에 관하여:사도신경 해설(66문답) △성도들의 기도에 대하여:주기도문 해설(5문답) △성만찬에 관하여(9문답) 등 100문답으로 구성된 유트의 ‘대요리문답’은 취리히 교회의 신앙교육을 위해 출판된 최초의 공적인 문서자료다.

서문을 쓴 블링거는 이 신앙교육서가 단순히 청소년들을 위해서만 쓰여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부모를 위해서도 쓰여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각 가정에서 부모들은 이 신앙교육서를 갖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해야 했다.

하지만 유트의 ‘대요리문답’은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트는 1535년 대요리문답보다 내용은 축약되고, 그 대신에 문답은 더 세분화된 형식의 ‘소요리문답’을 작성했다.

‘소요리문답’은 대요리문답과 동일한 구조 속에서 제목을 달리했다. △하나님과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하여(65문답) △믿음에 관하여(96문답) △하나님의 어린이들의 기도에 관하여(35문답) △거룩한 성례에 관하여(16문답) 등으로 구성했다.

이 신앙교육서는 총 212 문답으로 구성됐는데, ‘대요리문답’보다는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내용이 정리됐다. 이러한 조치는 당시 교회교육의 현실 속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그에 따른 즉각적인 반응으로 발생된 것이다.

이 ‘소요리문답’은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 다른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신앙교육서들과 함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트는 또한 자신이 작성했던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과 다른 구조 속에서 ‘짧은 신앙 문답집’(1539)을 저술했다. 이 신앙교육서는 △참된 종교에 관하여 △인간의 인식과 죽음에 관하여 △죄에 관하여 △그리스도와 믿음에 관하여 △회개와 거듭남에 관하여 △사도신조에 관하여 △기도에 관하여 △성례에 관하여 △교회의 사역자들에 관하여 △관원들에 관하여 등 10가지 신학적인 주제로 구성됐다.

이 신앙교육서의 많은 부분은 칼뱅이 1537년에 출판한 제네바 신앙교육서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유트가 칼뱅의 신앙교육서의 내용을 가져올 때, 예정론이나 권징 같은 주제를 의도적으로 삽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주제들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아직 학생들이 배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트의 또 다른 저술은 ‘소요리문답’안에 첨부된 ‘아주 작은 어린이들을 위한 문답집’이다. △하나님에 대하여(1문답)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5문답) △십계명에 대하여(15문답) △믿음에 대하여(14문답) △기도에 대하여(3문답) △주기도문을 위한 질문들(14문답) △세례에 대하여(2문답) △주님의 성만찬에 대하여(2문답) 등으로 구성됐다.

이 문답집은 1535년 ‘소요리문답’과 함께 출판됐거나 혹은 그 직후로 얼마 되지 않아서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유트는 초등부보다 더 어린 유치부 아이들을 위해서 이 문답집을 저술한 것이다. 이 신앙교육서는 교회 현실 속에서 드러난 어린 아이들의 지식습득 능력과 관련해 발생된 문제에 대해 직시하고 반응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종합적으로 레오 유트는 개혁주의 영역 안에서 신앙교육서를 가장 먼저 집필한 인물에 속한다. 그의 신앙교육서들은 종교개혁 당시 취리히 교회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 하인리히 블링거와 신앙교육

블링거는 종교적인 혼란이 가장 극심했던 1550년대 취리히에서 신앙교재로 활용된 두 권의 신앙교육서를 집필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요해’(1556)와 ‘성인들을 위한 신앙교육서’(1559)를 집필한 블링거의 절대적인 관심은 당시 종교개혁 이후의 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은 믿음과 삶이 신앙지식과 경건으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신앙교육서에는 어린이들, 학생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성경적인 교리가 체계적이며 요약적으로 담겨져 있다.

‘기독교 신앙의 요해’는 1556년 2월에 독일어로 쓰여진 초판이 나온 이후 1608년까지 총 31판이 인쇄됐다. 라틴어, 프랑스어, 화란어 그리고 영어로 번역돼 유럽 전역에서 읽혀졌다. 이 신앙교육서는 중요한 ‘신앙교육자료’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대중적인 ‘신앙서적’이었다. 지식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고,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쓰여진 블링거의 대표적인 저술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요해’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헤센의 선제후 빌헬름 6세에게 바치는 헌사 △당시 여러 시사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는 서론 △10가지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본문 △요한계시록 14:6~7로 끝맺고 있는 결론이다.

특히 블링거는 서론에서 매우 빈번했던 신학적인 논쟁들과 관련해서 당시 신자들의 불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블링거는 개신교 신자들의 신앙일치, 성경의 바른 가르침,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계 등을 목적으로 이 신앙교육서를 집필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기독교 신앙의 요해’는 총 10가지 신학적인 대주제 아래 101가지 소주제로 구성돼 있는데, 각 내용들은 수많은 성경의 증거구절들로 채워져 있다(성경,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적 사역, 죄와 그 죄에 대한 조치,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 믿음, 기도, 성례, 신자의 선행, 종말).

무엇보다 블링거는 학문적인 성격보다 신자들을 바른 진리로 섬기기 위한 목회적인 관심 속에서 저술했다. 배움이 있는 사람과 배움이 없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심리적인 장벽도 없이 모두가 성경적인 교훈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의도 속에서 시도된 것이다.

청소년들, 청년들 그리고 배움이 없는 성인들이 큰 어려움 없이 기독교 신앙지식에 도달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 성경 진리를 통해 블링거는 모두가 신앙과 삶의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런 차원에서 ‘기독교 신앙의 요해’는 모든 신자들이 일상의 언어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독교 대중서적이었으며, 동시에 성경적인 믿음과 그 성경에 근거한 삶을 자세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신앙교육서였다.

‘성인들을 위한 신앙교육서’(1559)는 학교교육을 위한 신앙교육서로 집필됐다. 취리히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라틴어로 만들어진 이 신앙교육서는 복음적인 진리의 근거와 확신을 주기 위해서 취리히 학교의 신앙교육 교재로 활용됐다.

이 신앙교육서는 학생들에게 매우 유용하고 핵심적으로 교리적인 내용을 제공했는데, 목회자가 되기 위해 치리히 학교의 상급과정에 입학할 때, 많은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신앙교육서는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돼서 가정과 각 개인의 신앙영역 속에서 기독교 교리의 이해를 위한 소책자로 읽혀지기도 했다.

‘성인들을 위한 신앙교육서’는 헌사가 담긴 서문과 7개의 큰 신학적인 주제(거룩한 성경,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언약, 율법과 십계명, 믿음과 사도신경, 기도와 주기도문, 성례)들 안에서 294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본문 등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블링거는 종교개혁의 지속성과 관련해 청소년들과 일반 신자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그에게 신앙교육서는 교회, 학교 그리고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의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구심점으로 이해됐다. 이러한 분명한 지침에 근거해 어디에서는 동일한 신앙정신이 가르쳐지도록 한 것이다.

블링거가 교회, 학교 그리고 가정의 신앙교육을 통해서 의도한 것은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 믿음과 삶은 깊이 있는 신앙지식(신학)과 경건과도 결코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블링거에게 신앙교육은 모든 세대와 관련이 있었다. 먼저 어린이들(청소년)은 교회, 학교 그리고 가정의 신앙교육을 통해 경건한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했고, 다음으로 성인들은 교회의 분열 이래로 새로운 믿음의 질문들에 대해서 바른 성경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와 관련해 블링거의 강조점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 경건의 삶을 강화시키고, 그리고 신앙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모든 연령층을 위한 신앙교육은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회 프로그램으로 간주된 것이다.

# 취리히 교회의 신앙교육 풍경

취리히에서는 전통적으로 시의회가 인정한 신앙교육서가 1년 혹은 2~3년 주기로 매주일 교회에서 해설되고, 가정에서도 사용됐다. 당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매 주일 예배에 보내야 했다. 예배에 참석한 아이들은 교회의 교사로부터 믿음의 내용(신앙교육서 해설)을 배웠다.

주일 저녁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질문했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은 주중에도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서의 내용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는 부모가 많은 것을 설명하기보다는 예배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신앙교육서의 내용을 조금씩 암기하는 식으로 교육이 진행됐을 것이다.

라틴어 학교와 독일어 학교에서 학생들은 매주 토요일과 주일 오후 3시에 신앙교육서 해설을 청강했으며, 또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매주 목요일 오후 수업시간에 신앙교육서를 공부했다. 종교개혁 당시 취리히에서 신앙교육이 아무런 계획이나 고려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어린이와 청소년(초신자)은 자신의 연령대와 신앙지식의 정도에 따라서 교회, 가정 그리고 학교에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취리히 교회 신앙교육이 말하는 실천적 의미

취리히 신앙교육서들은 기독교 교리가 신앙학습자들을 위해서 내용적이고 방법적으로 어떻게 설명(서술)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한 좋은 모범을 제시한다. 특별히 우리가 블링거의 신앙교육서들을 읽는다고 할 때, 그것들은 집중적으로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들을 향해서 한 교회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전수되어야 할 신앙교육을 위해 어떤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된다.

신앙교육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의 인식과 교리적인 무지에 대한 극복에 있다. 종교개혁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것으로, 이 용무는 과거나 현재나 교회가 이 땅 위에 항상 존재하고 바르게 보존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다원화된 사회로 급속하게 변모해가고 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현대의 학교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그 전제 아래서 모든 것을 학습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사회의 황금만능주의는 인간의 가치와 존재성을 논하기 앞서 인간의 기능적인 능력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현재 아이들은 기계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신앙의 원리와 삶의 절대가치로 전달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교회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속에서 신앙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과 여러 신앙적인 도전들에 대한 시대적인 파고를 넘기 위해서 성경적인 가르침을 위한 신앙교육서 집필과 신앙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린 신자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교회를 통한 신앙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교회를 통한 신앙교육은 전(全) 신앙교육의 한 부분일 뿐이지 중심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당연히 교회와 가정의 조화와 협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처럼 교회, 가정 그리고 학교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현실과 다원화되고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인생의 최고 가치가 하나님께만 있음을 설득력 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시대보다는 훨씬 더 깊이 있게 교회와 가정의 연계를 강화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앙교육에 대한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대안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제와 함께 믿는 자들의 수가 많아질 수 있도록 하는 선교적 책임 역시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급조되지 않고 잘 준비된 예배, 설교, 찬양, 기도 등과 함께 신앙교육을 위한 교재(신앙교육서) 개발과 전달방식 연구, 교육 대상에 대한 더 깊은 관심, 전도에 대한 당위성, 신앙적인 안목으로 시대를 볼 수 있는 세계관 등은 우리에 짐지워진 몫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신앙교육의 문제는 개교회만의 고민이 아니라 전체 교회에 속한 과제다. 신앙교육의 극대화를 위해서 우리가 표명하는 신앙정신에 근거한 지속적인 연구와 물질적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깊이 있는 신앙교육을 통해서 모든 세대에게 설교가 감당하지 못하는 복음의 심오함을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구속의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또한 신앙교육을 통해 한국 교회 안에 만연돼 있는 무질서한 가정, 세속적인 삶, 불경건한 쾌락의 추구 등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성경 진리에 대한 무지와 오류를 기초로 세워지는 사단의 왕국이 더 이상 가정과 교회 안에 침범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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