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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육•윤리와 신학

개혁교회 신앙교육에서 배운다① 제네바 교회와 신앙교육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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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교육 실시하라 / 안상혁 교수(합신대)

 

2014년 11월 13일 기사

 

한국교회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신앙과 신학의 깊이도 매우 낮아졌다.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장년의 교회 출석률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 목회현장에서는 다양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오후 2시 목동에 위치한 지구촌교회(담임:조봉희 목사)에서 합신대 정암신학연구소 주최, 합신대 총동문회 주관으로 진행된 ‘제26회 정암신학강좌’도 한국 교회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자리였다. 특히 ‘개혁교회와 신앙교육’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좌는 한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신앙과 신학교육의 질적 저하에 있다고 판단, 과거 개혁주의신앙 선배들이 추구했던 신앙교육의 모습을 되짚어보며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신앙교육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합신대 교수들이 발표한 세 편의 연구논문을 ‘개혁교회 신앙교육에서 배운다’는 시리즈로 요약정리함으로써 개혁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신앙교육의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제네바 교회와 신앙교육-칼뱅의 제1차, 제2차 ‘신앙교육서’를 중심으로>


칼뱅은 ‘제네바 신앙교육서’(교리문답서)를 그의 제네바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위치에 자리매김했다. 신앙교육서에 대한 칼뱅의 강조는 “하나님의 교회는 신앙교육서 없이는 결코 보존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그의 진술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칼뱅의 ‘제1차 제네바 신앙고육서’(1537년)와 ‘제2차 제네바 신앙고육서’(1542년)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갖는다. 칼뱅은 신앙고백서의 형식을 취한 제1차 신앙교육서와는 달리 제2차 제네바 신앙교육서의 경우에 ‘문답’ 형태로 기록했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예정론’의 경우 제1차 신앙교서는 그 교리를 명시적으로 다룬 반면에 제2차 신앙교육서는 에정론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특히 칼뱅의 신앙교육서는 루터의 ‘대/소요리 문답서’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주요한 차이점도 있다. 제2차 신앙교육서는 기존의 ‘십계명-사도신경’의 순서를 바꾸어 ‘사도신경-십계명’의 순서로 내용을 구성했다.

 

# 칼뱅의 ‘제네바 아카데미’, 학위수여는 없었지만

종교개혁은 교육개혁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성직자의 주된 역할이 바뀌었다. 중세의 사제가 미사와 성례를 집례했다면 개혁된 교회의 성직자들은 주로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쳤다. 설교자로 훈련받기 위해 예비 성직자들은 성경 원어를 학습해야 했다.

또한 복음을 설득력 있게 변증하기 위해 그들은 인문학적인 소양과 수사학적인 훈련도 받았다. 종교개혁 초기부터 비텐베르크대학은 루터와 멜랑히톤의 지도 아래 성경과목과 성경원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과과정 개편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이것은 성경말씀과 관련해 보다 실력을 갖춘 성직자를 배출하기 위한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의 원리에 따라 학제를 개편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했고, 이에 따라 고등교육을 받은 성직자의 수 역시 급속하게 증가했다. 물론 대학 졸업자의 비율로 개신교 성직자의 교육 수준을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개신교 신학 교육기관들이 학위를 수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1560년 경에 이르면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고수한 기존의 대학들에서 개신교인들은 사라지게 된다. 로마 가톨릭의 편에 선 대학들이 개신교인들의 입학을 거부한 이유도 있었고, 개신교인들 스스로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가르치는 학교를 회피한 이유도 컸다.

칼뱅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제네바 아카데미도 학위수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럽 전역으로부터 많은 학생들이 제네바 아카데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신학수업을 받았다. 이것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진 성경연구와 신학 수업 그리고 학문적 훈련이 당시 다른 대학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해준다.

 

 

#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어닥친 제네바 교회

제네바는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로마 가톨릭 신앙을 표방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제네바 시민은 개신교 신앙을 수용한 후에 주교와 투쟁하기 시작했다. 1533년 초부터는 개혁신앙에 따른 예배와 성례가 시행됐다. 1534년에는 도시 전 지역에서 우상파괴 운동이 일어났고, 감독제도가 폐지됐으며 주요 수도원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

그 결과 1535년 10월에는 로마 가톨릭의 미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됐고, 연말까지 도미니크와 프란시스수도회를 포함한 주요 수도원들이 문을 닫았다. 요컨대 1535년 말까지 제네바는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도시에서 종교개혁의 도시로 변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세의 교구조직은 그대로 보존된 상황이었다. 각 교구에서 개혁된 신앙을 교구민에게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충분한 수의 성직자를 공급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1544년까지 적지 않은 수의 교구들은 옛 사제들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했다. 1546년에 이르러서야 각 교구를 포함하는 제네바 도시 전체의 종교개혁이 비로서 안정화됐다.

1546년 칼뱅에 의해 ‘제네바 목사회’가 조직됐다. 이후로는 각 교구를 담당하는 성직자들의 교육수준이 그 이전보다 눈에 띄게 높아졌으며, 이와 더불어 성직자들의 사회적이며, 경제적 수준 또한 상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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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교육서의 저술목적은?

1536년 제네바에 도착한 칼뱅은 제네바 종교개혁에 가담한다. 도시 안에서 진정한 교회개혁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개혁신앙에 의한 체계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성직자들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칼뱅은 교구민과 그들의 자녀들을 바른 교리로 교육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사용할 신앙교육서의 필요성을 점검했다.

1537년 1월 16일 칼뱅은 시의회에 ‘제네바 교회의 조직에 관한 사안’을 제출했고, 이 안에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같은 해 제1차 신앙교육서를 불어로 집필했다. 모두 33개 항목으로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들을 비교적 간략하게 해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1차 신앙교육서는 칼뱅의 기대만큼 활용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뱅은 화렐과 더불어 제네바로부터 추방당했기 때문이다(1538년 4월). 3년 후 칼뱅은 제네바 시의회의 초청을 받아 다시 제네바로 돌아오게 된다.

본격적인 교회개혁을 착수하기에 앞서 칼뱅은 ‘교회법규안’을 작성해 시의회에 제출했고, 시의회는 그것을 같은 해 11월에 ‘교회법규’로서 공표한다. 교회법규에서 칼뱅은 신앙교육을 담당할 교회의 두 직분을 지적했다. 첫째, 목사의 직분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교사들이다.

칼뱅에 따르면 교사들의 사명은 “신자에게 건전한 교리를 가르쳐서 복음의 순수성이 무지나 잘못된 견해로 인해 부패되는 것을 막고, 또한 하나님의 교리를 보존하며, 목사들과 사역자들의 부족으로 인해 교회가 황폐케 되지 않도록 도움과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교회법규’가 공표된 지 얼마 후 칼뱅은 불어로 작성된 제2차 신앙교육서(1542)를 출판했으며, 3년 후 동일한 내용을 라틴어로 번역해 출판했다. 라틴어 서문에서 칼뱅은 신앙교육의 필요성을 또다시 강조했다.

즉, 교리문답 교육을 통해 교회를 갱신하고, 순수한 교리를 보존하며, 그것을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 목표임을 밝힌다. 아울러 제2차 신앙교육서(1545) 서문에서 또 다른 중요한 목표를 제시한다. 그것은 ‘교리의 일치’에 기초한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칼뱅의 ‘신앙교육서’는 신앙교육을 넘어서는 중요한 목적, 곧 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리의 일치’를 지향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칼뱅의 신앙교육서는 작게는 지교회의 신앙교육과 성례를 집행하는데 사용되고, 크게는 복음의 순수성과 개혁된 교회의 유지 및 전수에 필요하며, 가장 넓게는 공교회의 교리적 일치와 연합에 봉사하는 목표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 제1차 신앙교육서의 구조와 특징

제1차 신앙교육서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일 년 전(1536년)에 출판된 ‘기독교 강요’의 요약문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칼뱅의 신앙교육서와 기독교 강요는 ‘과연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의 질문에 의미 있는 답변을 제시한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성경 전체로부터 이끌어낸 포괄적인 교리적 주제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핵심 진리의 총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

칼뱅은 개혁된 교회 안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교리교육을 통해 “우리 종교가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에 대한 핵심을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칼뱅에게 있어 교리 교육의 출발과 목적은 모두 성경에 있고, 특별히 성경 전체의 포괄적인 진리의 체계를 요약적으로 학습시키는데 있다.

칼뱅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루터의 ‘대소요리문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루터의 ‘소요리문답’ 제1장의 구조는 ‘십계명-사도신경-주기도문-성례’의 순서로 되어 있다. 칼뱅의 제1차 신앙교육서 및 기독교 강요의 구조와 동일하다.

이것은 루터와 칼뱅 모두 율법과 복음을 구분하고, 루터 이래 종교개혁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칭의의 복음을 신앙교육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매김 했음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칼뱅의 그의 ‘신앙교육서’에서 십계명 주해를 마친 후, 율법의 정죄 및 복음적 기능을 순서에 따라 논의한다. 연이어 이신칭의의 복음을 명시적으로 다룬 후에 사도신경 주해로 옮겨간다.

특히 칼뱅은 신앙교육서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단어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직접적으로 논박하고, 그들과 논쟁을 하기보다는 공교회의 바른 교리를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바른 신앙교육을 하는 것을 주된 특징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제2차 신앙고백서의 구조와 특징

제2차 신앙교육서는 기존의 내용을 ‘문답식’(373개의 질문과 대답:55주 분량으로 구분)으로 바꾸고, ‘사도신경-십계명-주기도문’의 순서로 배열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칼뱅의 제2차 신앙교육서가 제1차 신앙교육서에 비해 갖는 장점 첫 번째는 어린이를 위한 학습효과가 효율성의 측면에서 좀 더 증대됐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일한 분량의 내용을 암기할 경우 서술형보다는 문답형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그만큼 기억하기 쉽다.

둘째, 학습효과의 효율성과는 별도로 내용에서의 변화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존의 신앙교육서에서 보다 일찍 등장한다. 제1장의 마지막 문답에서 목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고 어린이는 세 가지로 대답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믿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율법),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함(기도)” 등이다.

칼뱅은 제2장의 주제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의 근거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 이것은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과 최고선(영생)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서 신앙교육서 전체의 핵심주제이기도 하다.

셋째, 제2차 신앙교육서는 어린이로 하여금 특히 까다로운 신학적 주제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용이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무엇보다 칼뱅은 제2차 신앙고백서에서 1차 신앙고백서에서 별도로 다루었던 ‘예정론’을 삭제했다. 이는 신앙교육서에서 다루는 신학적 주제들을 되도록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결정됐을 것이다. 아마도 어린이가 이해하기 힘든 까다로운 신학적 주제라고 칼뱅이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 칼뱅의 신앙교육서, 목회적으로 적용할 수 있나?

칼뱅의 신앙교육서는 공교회의 보편적인 교리적 합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성경진리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가르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앙교육서는 그 분량에 있어 ‘기독교 강요’보다 매우 짧다. 그럼에도 다루는 주제는 기독교 강요의 내용만큼 포괄적이다.

이것은 신앙교육의 내용이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된 다양한 교리적 주제들을 매우 폭넓게 포함해야 함을 시사해 준다. 칼빈의 제2차 신앙교육서 내용은 믿음, 율법, 기도 등의 주제로 55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55주간의 신앙교육을 통해 학습자는 성경에 계시된 다양한 교리적 주제들을 학습할 수 있다. 여기에는 칼뱅 당시의 신학적이며 실천적으로 쟁점이 된 다소 예민한 항목들도 포함돼 있다. 일례로 성찬과 관련해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의 문제도 다룬다.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떡과 포두주로 변화된다고 가르쳤다. 루터파츼 공재설 역시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 가우데 실재적으로 임재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칼뱅은 여기서 화체설과 공재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각각의 오류를 핵심적으로 논박한다.

또한 칼뱅은 당시 제네바 교회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취급됐던 성찬 참여자들의 자격에 관한 문제 역시 ‘신앙교육서’의 마지막 부분에 포함시킨다. 우선 질문자(목사)는 성찬을 받기에 부적당한 사람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후, 보다 까다로운 문제, 곧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선자의 문제를 다룬다.

칼뱅은 성찬에 대해 현실적이며 균형 있는 접근을 시도한다. 무엇보다 이 거룩한 예식을 잘못 시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거나 교회가 추문에 휩싸이면 안된다. 이를 위해 교회는 반드시 부적격자들을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동시에 칼뱅은 위선자의 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취급한다.

칼뱅이 수찬 참여의 문제를 ‘신앙교육서’의 끝에서 상세하게 다룬 것은 교리문답의 실천적인 목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제네바 교회는 어린이들을 성찬에 참여시키기 전에 교리교육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칼뱅은 현실적인 문제에 다소 유연성 있게 대체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 교회가 목회현장으로 접목시킬 때 두 번째로 고려해 볼 사항에 해당한다. 곧 교회는 현실의 필요에 따라 유연성 있게 적용하라는 것이다.

칼뱅은 일 년에 걸친 교리문답 교육을 계획하고 또한 실천했다. 매 주 주일 오후에 이루어지는 교리문답 교육에 참여하는 학습자들은 매 주일 한 두 개의 주제만을 공부했다. 이것은 목사와 피학습자 모두에게 그리 큰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특히 성찬을 앞두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칼뱅은 보다 짧고 간단한 유아용 신앙교육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받기 원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문답서”-의 활용을 허락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칼뱅의 신앙교육을 그의 가르침의 사역 전반을 통해 조명해보고 그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 주일의 요리문답 교육이 역시 매 주마다 이루어진 그의 강해설교와 병행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칼뱅은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강해함을 통해 성경 말씀을 매우 깊이 있게 가르친 교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진행되는 강해설교는 주어진 본문의 의미를 매우 자세하고 깊이 있게 드러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성도로 하여금 성경 전체의 큰 그림을 보여주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약점도 있다.

이러한 약점을 잘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교리문답 교육이다. 이같은 칼뱅의 신앙교육과 강해설교는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 전체를 그 폭과 깊이에 있어 균형 있게 소화하는 것을 지향한 공동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칼뱅은 그의 ‘신앙교육서’를 공교육의 현장으로까지 연결 지으려 시도했다. 제네바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은 제네바 교회가 사용하는 신앙고백과 ‘신앙교육서’에 포함된 모든 교리들을 서약한 이후에야 학교에 입학살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것을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교교육과 교회교육의 유기적인 관계를 시도하려는 기독교 사립학교의 경우는 제네바의 역사적 선례를 참고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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