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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고난받는 교회 ②] 고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하나의 과정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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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한 칼빈의 이해들 / 안인섭 교수


2014년 10월 22일 기사

 

현재 한국 교회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 사실 개혁은 고난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개혁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가 현재 겪는 고난에 대해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 교회 스스로 자기욕심에 끌려 고난을 자초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국개혁신학회가 지난 10월 11일(2014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개혁신앙과 고난 받는 교회’를 주제로 제37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 교회 고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개혁신앙에 근거한 참된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마련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을 '고난받은 교회' 연재형식으로 일부 정리해서 싣는다. <편집자 주>


고난에 대한 칼빈의 이해 / 안인섭 교수(총신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사건은 구약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 어떻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발행했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잔인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이런 난해한 질문에 대해서 루터는 우리가 어두움의 세계(a world of shadows)에 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해답을 찾는다. 이 어두움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명백한 하나님의 부재로부터 오는 것이다.

 

 

칼빈의 경우 이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의 숨어계심(Hiddenness of God)이라는 신학적 개념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고난 가운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그렇지만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을 훈련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논제는 칼빈의 경우 성화와 신자들의 훈련이라는 문맥에 정초된다.

# 인간과 하나님의 숨어계심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근원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시는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피조물로서의 인간 자신의 본래적인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칼빈의 의도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숨어계시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그 하나님을 잘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의 강조점은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자신의 규범에 따라 저울질 하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즉시 손을 뻗어 응답하지 않으시면 곧 용기를 잃고 심지어 절망하기 까지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고난 속에서 외치는 자신의 소리를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고난들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인간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비록 숨어 계시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백성들과 이 창조 세계를 위해서 부지런이 일하신다고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우리들에게 드러나지 않으시기도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감추시기도 하신다. 인간이 자연 세계와 인간사회로부터 고난을 겪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시편 주석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구름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을 박탈 할 때도 구름으로 당신의 얼굴을 덮으신다. 더 나아가 칼빈에 의하면 심지어 하나님 스스로 당신을 감추시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하나님은 숨어 계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으로부터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기도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은폐하실 때 이 세상은 혼란을 야기하는 어둠 속에 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다시 보여주실 때 질서가 회복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돕고 보호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일시적으로만 자신을 감추신다고 할 수 있다.

 


#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의미

칼빈은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자신의 십자가 신학 위에서 세우고 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의 옷을 입고 있었다. 칼빈이 이해하는 십자가의 신학은 이처럼 어떤 것의 반대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때로는 당신이 의도하는 것의 정반대를 행하심으로써 당신의 행위의 목표를 감추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고난을 도와주시기를 미루시는 것은 그의 백성을 눈물과 탄식으로 단련하시기 위함이다. 칼빈이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설명할 때 칼빈은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행위에 의도가 있음을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칼빈은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묘사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에 즉시 개입하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삶에 너무 매달리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이 자신의 은혜와 자신 그 자체까지도 우리 앞에서 은폐하시기도 한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더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침묵하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존이 인간의 삶의 현장과 고난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때 인간은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은 이처럼 침묵하시고 숨어계실 때 조차도 긍정적인 일을 하시고자 하신다고 보고 있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고난 가운데서도 숨어 계시면서 자신의 섭리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교육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숨어계심은 교육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부당하게 고난을 받는 자들을 즉각적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는 책임을 중지하지는 않으신다.

칼빈이 해석하는 바는, 하나님이 신자들의 고난 속에 숨어 계시면서 신자들의 인내를 훈련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고난 속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칼빈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믿음은 구름을 뚫고 하나님의 감춰진 정의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얻어지는 믿음을 통해서 그 간격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고난으로 인해서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파할 수 있다. 칼빈에 의하면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추신 그 구름 위로 올라가서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날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인간이 이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발견할 수 있으며 또 우리 인간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모습을 감추고 계실 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며, 또 그것을 통해서 고난의 자리에서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숨어 계심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고난에 대한 칼빈의 전반적인 견해

칼빈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맞게 되는 고난에 대해서 묵상을 하였다. 특별히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인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시대였다. 그 격변의 시대 속에서 성경에 근거한 종교개혁적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곧 일련의 고난과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을 이미 각오하는 것을 의미했다.

칼빈은 현실적으로 당시에 존재하고 있는 고난을 신학적으로 묵상하였다. 칼빈 자신도 박해의 위협 속에서 고국인 프랑스를 탈출했던 사람이었다. 고난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칼빈의 고난에 대한 신학은 스토아적인 사상과는 다르다.

둘째, 칼빈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목회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면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로 및 격려하고 있다.

 

 

셋째, 경건한 자들의 고난은 구원의 서정의 맥락에서 성화의 과정에 위치한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의 성숙을 이룩하게 되어 고난은 성화와 관련된다.

넷째, 칼빈에게 있어서 신자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독론적인 의미가 있다.

다섯째, 칼빈은 신자의 고난을 종말론적인 맥락에서 해석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칼빈에게 있어서 고난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17절과 같이 먼저 성도가 고난을 당한 후에 최종적으로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최후의 심판이 있게 된다. 즉 칼빈은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필연적인 하나의 과정이라고 신학적으로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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