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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원문] 복음으로 돌아가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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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래와 우리의 책임-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담임)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9월 12일(2014년) 강변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와 우리의 책임’을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주최 측의 제공으로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원문으로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1885년 부활절에 들어온 두 명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된 한국교회가 내년이면 선교 130주년을 맞는다. 1972년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와 1974년 ‘엑스폴로 74’를 통하여 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한국기독교는 소수의 종교에서 다수의 종교가 되었다. 이 부흥의 역사는 1995년까지 약 20여년이상 지속됨으로 경의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소위 부흥의 황금기를 누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가장 큰 장로교회, 감리교회를 비롯해서 외형적으로 대형교회들이 우뚝우뚝 선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지도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세계교회를 리더 할 만한 교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의 때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1995년~2005년, 10년 동안의 ‘한국종교 인구변동추이’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동안 막연하게 1,200만 명이라고 알아 왔던 한국기독교인구가 900만 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10년 동안 막연하게 성장둔화, 침체되고 있다고 걱정해오던 한국교회가 -1.6%라는 깜짝 놀랄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7년 단기선교 팀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를 기점으로 ‘종교편향’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는 현저하게 역차별대우를 받게 됨으로 선교의 자유가 상당히 위축되었다. 여기에 목회자세습과 교회지도자 과열선거와 불투명한 교회재정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선배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교회를 개척하여 한국교회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한 교회를 모범적으로 섬기시다 은퇴를 하신 목사님은 후배목회자인 저에게 하신 말씀이다. ‘최 목사, 참 미안하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는 말이야, 한국교회성장의 시기라 그냥 열심히 하기만하면 거의 모든 교회들이 부흥을 경험할 수가 있었는데, 앞으로의 한국교회는 참 어려운 시기를 맞을 것이네. 이런 어려운 때에 바통을 물려주게 여간 미안하지 않네.’

정말 그 선배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 한국교회는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저 출산은 모든 종교들이 다 맞고 있는 동일한 상황인데 유독 한국기독교만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수적 감소라는 현실을 동반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어디에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이 때 목회자는 강단에서 무엇을 설교해야하고 또 어떤 설교를 할 수 있는가?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도대체 어떻게 서야하는가?

대답이 쉽지 않지만, 성급한 결론처럼 보이지만 대답은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더 이상 목회를 교회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음과 교회와 성직자와 성도됨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헝클어진 실타래의 한 올, 한 올 풀어가는 길이다.

 


1. 복음으로 돌아가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혼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핵심적인 진리이고 성경 66권에 계시된 진리이다. 교회는 복음의 진수를 믿는 믿음의 정도를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의 변화, 신앙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
 
2. 예배를 예배되게 하자.

예배가 하나님중심의 예배이기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이벤트성으로 바뀌면서 강단의 권위가 추락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경건보다 은혜 받는 수단이 되었다.
 
3. 교회를 교회되게 하자.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피 값으로 사신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 사람들의 모임이 중심이 아니라 임재하신 삼위일체하나님이 그 중심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재현하는 작은 예수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4. 성도와 성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세상의 소금과 빛 그리고 산위의 있는 동네는 세상적인 출세나 성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충만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인격의 변화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직임이 겸손히 십자가를 짐으로 섬김의 길을 가는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금년 여름 나는 기독교초기 사막의 교부들의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을 읽었다. 그는 다키아(오늘날 루마니아)에서 360년경에 출생하여 게르마누스와 함께 베들레헴에 거주다가 이집트 사막수도원 스케테로 가서 영성의 수도사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 영성생활에서 얻은 수덕적 지혜를 전해주는 본보기들을 421~426경에 두 권의 책 ‘제도집’과 ‘담화집’ 집필하였다. 이집트수도원을 소개하는 이 두 권의 저서는 널리 읽혔고, 서방수도원제도와 영성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서방의 위대한 교사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70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어렴풋이 성직자와 성도가 가야할 길을 볼 수 있었다. 요한 카시아누스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준 한 사람 ‘피누피아스’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이집트의 ‘파네피시스’ 근처에 있는 큰 공주수도원에서 원장이었다. 자신의 명성을 듣고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혐오스럽고 헛된 인기 때문에 혹시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상을 빼앗기지 않을까가 두려워서 수도사들의 수행지인 ‘타벤나’로 갔다.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늙어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수도원을 찾은 사람처럼 섬기며 헌신했다. 정원사의 책임을 맡은 젊은 형제를 돕는 일을 하고, 밤이면 허드렛일을 하며 3년간 놀랄 만큼 겸손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가 떠나온 이집트지역에서 그를 알고 지내던 한 형제가 그곳에 도착함으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는 다시 베들레헴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5. 교회는 하나임을 잊지 말자.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 교훈을 믿지만 우리는 이미 분열된 교회나 기관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억지로 하나 되게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 내려놓고 한국교회의 공통의 이슈를 위해서 서로 양보하고 힘을 모아 하나로 가는 길을 지향해야 한다.
 
오래 전 선배목사님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목회자로 살려면 돈, 명예, 이성의 유혹을 주의하라’ 오늘 거룩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성직자인 나는 과연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날마다 물어보고 또 회개하며 주님을 따르려고 기도한다. 부족하기 때문에 여전히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오늘도 무릎으로 눈물로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선배목회자들이 쥐어준 한국교회의 영성의 고귀한 바통을 꼭 쥐고 정도를 열심히 달려서 우리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깨끗이 트랙에서 물러나자. 주님 오실 때까지 한국교회의 경건의 영적전통이 살아있어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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