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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원문] 한국교회,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걸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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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길을 가니라 / 지형은 목사(한복협중앙위원,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

 

2014년 9월 12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9월 12일(2014년) 강변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와 우리의 책임’을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주최 측의 제공으로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원문으로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시대가 어지럽습니다. 터까지 흔들리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를 느끼고 있다고 보입니다. 하나는 무엇인가 근원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생존에 심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생존의 욕구는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반응입니다. 삶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기본 현상입니다. 반면 근원적인 해결은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희망에 대한 확신을 기초로 하여, 상황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종합적이고 깊은 분석을 거쳐, 서로 연대하는 의지적 행동으로써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입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습니다. 삶의 현실적인 토대와 정신적인 가치관이 붕괴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터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머리로는 근원적인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동시에 몸의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느끼도록 촉발시킨 사건이 4·16세월호참사입니다. 많이들 지적하는 것처럼 이 비극은 오래전부터 내재해 있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임계점을 넘으면서 터진 것입니다. 구조적인 모순의 바닥에 있는 실체는 성공 지향적 물신주의, 퇴폐적 쾌락주의, 소집단 이기주의 등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 구조와 남북 분단이 배태한 동아시아의 갈등 상황이 그 배후에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정신적 가치를 왜곡하면서 달려온 경제 선진국의 집착이 배경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슬픈 현실은 위에서 언급한 부정적 상황들이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저런 예외가 있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교회도 우리 사회의 궤도와 거의 같은 축을 따라 걸어왔습니다. 교계 안의 교권과 금권을 중심한 타락한 정치 구조가 이런 현실의 민낯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마땅히 교계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봐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각 교단의 총회장을 중심으로 공적인 결정권을 가졌던 사람들 또 현재 가진 사람들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대형교회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나를 더 지적한다면 교회나 교계에서 지도적인 직책을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 리더들의 우민화 현상과 연관돼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인 예측이 힘듭니다. 더 처절하게 얻어맞고야 깨닫고 돌이킬 것이라는 예레미야서의 메시지가 지금의 한국 교회에 적합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의 매를 더 맞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상황도 어렵지 않게 떠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라는 표현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느끼면서 무엇인가 책임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거기에 참여할 결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처절한 연구와 묵상과 결단입니다. 시대는 늘 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각 시대에 전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늘 필요한 중심 과제였습니다. 특히 변동이 극심할 때 그랬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시대의 틀이 변할 때마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글이 나온 것이 그래서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의미는 무엇인지 66권 성서의 말씀으로 들어가서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비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가치관이 교회의 중심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독교의 정체성을 다시 물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 교회가 걸어가는 이 사회와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정확한 통찰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제에서,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다른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연구와 통찰력이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창조 신학 또는 자연신학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인도적 인륜도덕, 둘째는 법치의 민주주의, 셋째는 상생의 시장경제입니다. 비기독교적인 근원에서 나온 세속적인 물신주의와 성공주의를 따라가면서 교회가 지금의 참담한 현상에 빠졌는데, 다시 기독교의 근원인 성서로 돌아가 거기에서 말씀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신학의 재건입니다. 지금 말하는 ‘신학’은 오늘날의 신학교육 기관에 연관된 신학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적 성장이 한국 교회의 건강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아니지만 그를 통해 이런저런 분석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임은 분명합니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이 꺾이기 시작한 90년대 중반은 한국 교계에 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 교계의 신학이 본질적인 의미의 신학적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신학의 본디 기능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금방 눈에 띄는 결과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한 세대 정도는 기간을 잡고 젊은 세대를 겨냥하여 기독교의 근본적인 구조를 다시 훈련해야 하리라 봅니다. 기독교의 사역에 경제, 경영, 심리, 행정 등이 필요는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모든 기독교 사역은 건강한 신학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예레미야서 28장 11절입니다.

“…… 자기의 길을 가니라.”

한국 교회가 그동안 마땅히 교회가 걸어야 할 길을 가지 못한 것과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그동안 그리스도인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은 것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작업을 적어도 10여 년은 해야 하리라 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아들과 손주 세대에게 머리를 들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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