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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켈트영성: 구속교리 중심의 칙칙한 기독교 영성, 어떻게 바로잡을까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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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박사, 창조론 오픈포럼서 켈트 전통의 ‘창조영성’ 필요성 강조

 

2014년 7월 14일 기사

 

 

켈트영성, 서방교회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어
삶보다 교리를 앞세우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켈트 영성은 몇 가지 오해의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이원론을 거부하고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통전적 세계 해석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큰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교리보다 삶의 문제를 앞세웠던 켈트영성은 삶보다 교리를 앞세우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2일 오전 9시30분 서울교회(담임:박노철 목사)에서 개최된 ‘제15회 창조론 오픈포럼’에 참여했던 양승훈 박사(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의 주장이다. 양 박사는 한국 교회의 치우친 신앙을 바로 세우려면 켈트 전통의 창조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의 뉴웰(John Philip Newell, 1953~)은 자신의 ‘켈트영성 이야기’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영성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지중해 영성이다. 이 영성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서구 유럽과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지중해 영성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을 강조하는 구속 교리 중심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구속 영성의 대표적 인물로는 어거스틴, 마튼 루터, 요한 칼빈 등을 들 수 있으며, 인간의 타락과 죄를 강조했다.

 

 

둘째는 동방(동방정교회) 영성이다. 이 영성은 창조영성에 가깝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예수기도로 유명한데, 요즘 한국 교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관상기도’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 영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켈트영성이다. 원래 켈트족들은 유럽 중심부에 있었는데 로마와 게르만에 밀려서 스페인과 프랑스 북부, 영국과 아일랜드로 흩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후에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 땅으로 건너오면서 웨일즈와 북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밀려났다.

 

켈트영성의 특징은 자기들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기독교 신앙과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켈트영성은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나는 창조의 선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켈트영성을 달리 표현한다면 창조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 교회, 치우친 신앙의 균형 잡아야

 

양 박사는 “세 가지 영성 전통들 중에서 오늘날 서구와 한국 교회 영성의 기초를 이루는 구속 영성에서는 인간의 죄악됨을 강조하면서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에만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다보니 창조세계의 선함과 아름다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의 선하심과 아름다움, 신성과 거룩함을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자비로 인한 구원의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요소임은 분명하고, 인간에게 남은 타락의 지울 수 없는 흔적, 즉 원죄의 문제도 부인할 수 없다”며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점점 희미해지고 죄와 인간의 타락성만 점점 더 크게 부각됐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로 인한 사죄의 기쁨, 자유, 누림, 해방, 평강은 사라지고 기독교 영성은 죄의 무게에 짓눌린 칙칙한 회색의 영성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치우친 신앙이 균형을 잡으려면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를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창조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켈트영성, 혹은 창조영성이 강조하고 있는 기독교와 창조의 선함 및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창조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켈트 전통의 창조영성은 ‘회복된 창조’, 혹은 ‘창조의 회복’을 강조하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통하는 점이 있다”며 “켈트영성의 곳곳에는 기존의 지중해 영성, 서방 영성, 구속 영성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보화들이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승훈 박사의 주요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켈트영성은 창조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1. 이 전통은 예정론을 반대하고 자유의지를 강조했던 펠라기우스(390~418)로부터 시작해 5세기 수사이자 이집트 수도원 전통을 유럽에 도입했던 존 카시안(360~435)으로 이어졌고, 다시 본격적인 수도원 공동체를 시작했던 6세기 성 베네딕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카시안과 켈트 전통의 공통점은 창조의 선함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자연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2. 이러한 켈트전통은 초대교회 어거스틴 등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펠라기우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을 생명이 있는 만물 중에서 현존하시는 분으로 봤다. 그래서 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웃사랑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부분은 펠라기우스의 사상이 범재신론 혹은 만유재신론으로 기울어져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3. 현대 복음주의 전통에서 본다면 펠라기우스는 충분히 자유의지 내지 이단성 시비에 휘말릴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가 서방교회의 구속 영성에서 간과한 부분을 제시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의 본질적 성함을 강조하는 켈트 영성은 창조된 모든 것들 안에 하나님의 선함과 은혜가 있다고 봤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에는 심오하고도 생명력 있는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4. 켈트영성에서는 자연을 찬양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강조했다. 즉, 켈트영성에서는 창조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켈트신학은 오늘날 생태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통한 축복은 켈트영성의 특징이다.

 

 

# 켈트영성은 삶의 일상성을 강조한다.

 

5. 켈트영성에서는 삶의 일상성을 중시하며, 일상의 모든 것이 영적인 것과 관련돼 있다고 보았다. 켈트영성에서는 이원론을 배격하며, 일과 예배, 기도와 노동, 정치와 선교,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별개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켈트 그리스도인들은 주일과 평일, 이 세상과 저 세상,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개인과 공동체를 분리하지 않았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개신교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상적 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6. 켈트영성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열정적으로 임재하신다고 본다. 켈트의 많은 기도문들을 보면 삶의 모든 것이 은혜요, 축복이다. 켈트영성은 소박하다. 기독교 전통 중에서 켈트영성 외에 인간의 모든 감각을 다 표현하는 기도문을 만드는 곳이 있을까? 켈트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현존과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음을 표현했다.

 

7. 일상성에 대한 중시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말하는 통전적 신학, 균형 잡힌 신학과도 연계된다. 기독교 세계관은 19세기 후반, 아브라함 카이퍼를 비롯한 유럽의 신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됐지만 켈트 교회에서는 이미 천년 이상 전부터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삶의 통전성, 어떤 의미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천하고 있었다.

# 켈트영성은 인간성의 선함을 날마다 고백했다.

 

8. 켈트영성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인간성의 선함을 날마다 고백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봤다. 특히 아가들은 하나님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지니고 있다고 봤다.

 

9. 인간의 선함과 의지를 강조한 켈트전통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인간의 성욕까지도 바르게 표출되는 한 선하고 아름답다고 봤다. 서방교회의 전통과는 달리 켈트 전통에서는 창조는 본질적으로 선하며, 출산으로 이어지는 성관계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한다. 켈트영성에서는 몸과 영혼이 분리돼 있다는 이원론을 배격한다.

 

10. 켈트영성에서 창조세계에 대한 관심과 창조세계의 선함과 아름다음을 찾으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가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패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현세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가졌던 서방교회 영성과 크게 대립되는 부분이었다.

 

 

# 켈트영성은 평등과 관계를 강조한다.

 

11. 켈트영성은 수평적인 평등 혹은 관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이들의 평등 영성은 개인이나 공동체 삶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켈트교회는 서방 교회에서보다 훨씬 더 여성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6세기 킬데의 수도원장은 성 비르짓이라는 여성이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종교적 공동체인 킬데의 대표가 여자였다는 것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켈트교회에서는 서방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

 

12. 켈트영성에서는 공동체도 중요하게 여겼다. 사막 교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켈트교회의 공동체적 영성은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과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또한 공동체를 통해 내가 누군지 알아가기 때문에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13. 켈트영성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갈 때, 동반자들이 필요한데, 그 사람들을 영혼의 친구, 혹은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한다.

 

# 켈트영성은 전통문화에 대한 긍정적이다

 

14. 켈트영성의 마지막 요소는 전통문화에 대한 강조이다. 켈트문화는 로마 전통의 기록문화보다는 구전문화가 강하다. 이런 구전문화의 중심에는 수도사, 사제, 음악가, 시인, 교사 등이 있었다. 그러므로 켈트족들의 일상적 삶은 매우 언어적이고 시와 찬미가 일상 속에 맞닿아 있었다.

 

15. 켈트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기들의 문화유산과 전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켈트 수도사들은 자신의 역사와 문학과 신비주의적 이야기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문화가 완전히 적그리스도교적이 아닌 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6.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한다면 켈트전통은 자연에 대한 경외, 하나님에 대한 친근성, 원죄에 대한 강조보다는 인간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강조, 창조에 대한 본래적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17. 이것은 기독교의 주류가 된 어거스틴의 서방교회 전통을 거부하고 켈트전통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켈트전통에 그동안 서방교회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리보다 삶의 문제를 앞세웠던 켈트영성은 삶보다 교리를 앞세우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 비록 켈트영성이 초대교회 이단으로 정죄된 펠라기우스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신관, 인간관, 구속론 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켈트영성의 곳곳에는 기존의 지중해 영성, 서방 영성, 구속 영성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보화들이 많이 있다.

 

19. 아이를 목욕시킨 후 목욕물만 버려야지, 아이까지 버리면 안되듯이 저들 영성의 껍데기에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비성경적 요소들은 버리되,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의 아이까지 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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