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 한국 교회 성경 읽기 현주소 진단
박정관 박사, 자의적 영적 해석, 문자 집착의 문제점 지적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심각한 성경 읽기의 위기이자 해석학적 혼란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설교 강단에서는 본문의 역사적 맥락과 문법적 구조를 무시한 채 설교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자의적 ‘영해(영적 해석)’가 난무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문자에만 집착하여 율법주의적 독단에 빠지는 경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이에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가 지난 9월 18일(금) 오후 3시 양재 온누리교회 화평홀에서 <제120회 월례학술포럼>을 개최하고, 한국 교회의 성경 읽기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박정관 박사(문화연구원 소금향 원장, 풀러신학대학원 겸임교수)는 '성경의 문자와 영: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위한 성경 읽기'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한국 교회의 바른 성경 해석과 적용을 위한 신학적 길잡이를 모색하는데 집중했다.
특히 박 박사는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펼쳐진 서구 성서해석학의 역사를 정밀하게 조망하면서, 성경해석의 네 가지 핵심 요소인 ‘본문(Text)’, ‘지시내용(Reference)’, ‘저자(Author)’, ‘독자(Readers)’의 유기적 통섭을 통한 ‘바른 성경 해석’의 대안을 제시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성경해석 방향 달라졌다"
우선 박 박사가 18세기에 주목한 이유는 이것이다. 18세기부터 여러 성서해석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계몽주의를 통해 성경의 진정성에 대한 도전이 일어나면서 성서 해석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 제안된 성서신학과 그로 인해 일어난 성서학(역사비평)은 전제부터 범주와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해석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여파로 여러 가지 해석법이 출현했다. 따라서 그 시기에 일어난 일을 이해해야 오늘날의 해석 동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박 박사는 "종교개혁가들의 해석법은 ‘역사적 문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세워졌는데, 그것은 ‘본문’(문법)과 그 본문이 ‘지시’하는 것(역사)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18세기에 그 일치에 대한 의심이 일어났다.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기적, 역사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 등에 대한 의심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신학자들과 문헌학자들 중에서도 성경을 비과학적이면서 역사적인 오류가 있는 문헌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런 경향 속에서 19세기 역사비평이 출현했으며, 역사비평이라는 해석법의 출발점은 '본문'과 '지시내용'의 불일치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자면, 본문에는 홍해가 갈라졌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비평의 작업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과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어났다고 쓴 ‘저자의 의도’를 밝히는 것에 집중되었다"라고 덧붙였다.
"20세기부터 역사비평 비판 시작"
그러나 20세기가 되면서 서구 사상계가 계몽주의를 배경에 둔 사상 동향을 재검토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20세기 중반이 되었을 때는 성서학계에서도 역사비평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면서, 본문의 역사적 배경이나 저자의 의도보다는 ‘본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공시적 연구법(synchronic analysis)이 출현했다는 것. 이와 함께 ‘독자 공동체’의 해석 전통을 중시하는 독자 반응(reader response)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박 박사는 "이와 같은 과정을 보면 해석의 네 요소 중 ‘본문’과 ‘지시내용’ 사이의 일치에 대한 의심으로 네 요소(본문, 지시내용, 저자, 독자)의 유기적 연결이 와해되면서 ‘저자’의 의도에 관심을 가지는 역사비평이 시작되었고, 나중에 ‘본문’에 초점을 맞추는 공시적 분석과 ‘독자’에 주목하는 독자 반응이 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날 박정관 박사는 이와 같은 시각을 갖고 성서학, 성서신학, 성서해석학의 차이를 설명한 다음, 18세기부터 성서해석의 전제와 방법론의 특성, 변화를 파악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한국 교회가 직면한 해석학적 문제를 살펴보고 바른 해석법을 제시했다.
아래 내용은 박정관 박사의 발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성서학, 성서신학, 성서해석학의 지형도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박정관 박사는 성경을 연구하는 세 가지 핵심 학문 분야인 성서학(Biblical Studies), 성서신학(Biblical Theology), 성서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의 개념적 차이와 지형도를 설명했다.
1. 성서학: 본문의 구성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는 학문이다.
접근 방식에 따라 과거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통시적 연구(역사비평: 양식·전승·자료·편집·본문비평)와, 현재 주어진 최종 형태의 본문 자체를 연구하는 공시적 연구(정경적 접근, 수사적 Analysis, 서사 분석, 독자 반응)로 나뉜다.
박 박사는 서구 학계와 달리 국내에서는 공시적 접근에도 습관적으로 '비평'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오류를 지적하며, 공시적 접근은 전통적 비평 기법과 달리 본문의 과거를 추적하지 않는 '분석법' 또는 '접근법'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2. 성서신학: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찾는다
성서학이 구약학과 신약학으로 세분화되어 차이점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성서신학은 구약과 신약의 정경적 연속성을 추구하며 신학적 관점에서 본문을 관찰하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차일즈는 구약학자이지만, 성서신학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성서신학 체계를 세웠다.
3. 성서해석학: 언어학, 수사학, 서사학 등의 방법론 채택
성서해석학은 언어학, 수사학, 서사학, 문학이론 등의 파편화된 공시적 접근법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여기에 신학적 전제를 결합하여 성서신학과 삶의 적용으로 나아가게 하는 종합적 통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성서해석학은 여러 분야를 통합해서 신학적인 결론에 이른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가들의 해석을 생각나게 한다. 루터와 칼빈이 언어학, 논리학, 수사학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개혁가들을 이어가는 해석법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흐름: 계몽주의의 도전과 역사비평의 파탄
그렇다면 성경 연구는 어쩌다 오늘날처럼 파편화되었을까? 박 박사는 그 역사적 출발점을 18세기 계몽주의라고 짚었다.
18세기: 신학과 성서학의 분리
18세기 전까지 신학은 모든 학문을 통합하는 보편 학문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과학과 역사학이 대두되면서 성경의 과학성과 역사성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1787년 요한 필립 가블러(J. P. Gabler)는 알트도르프대학교 교수 취임 강연에서 '성서신학과 교의신학의 구분'을 제안했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성경 내의 '인간적인 것(고대 저자의 주관적·비과학적 서술)'과 '신적인 것'을 구분한 뒤, 신적인 것만 교의신학으로 넘기자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계몽주의와 기독교 사이에서 일종의 절충안을 제안하는 것 같은 이 논지에서 ‘인간적인 것’이란, 당시 과학과 역사학의 기준에 맞지 않는 성경의 내용, 곧 ‘고대 저자의 주관적 입장에 근거한’ 서술이라는 함의를 가진다.
19세기: 역사비평의 등장과 '범주오류'
19세기에 이르러 벤저민 조엣(Benjamin Jowett) 등은 일반해석학적 원칙을 성경에 적용하며 "성경을 다른 일반 책처럼 해석하라"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성경의 이차적·신학적 의미는 배제되었고, 역사비평학이 성서학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역사비평의 출발점은 종교개혁가들이 견지했던 '본문(문법)'과 '지시내용(역사)'의 일치에 대한 의심이었다. 홍해가 갈라지거나 예수가 부활했다는 본문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실제 일어난 역사를 재구성하는 한편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록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찾는 데 몰두했다.
박 박사는 미국 신학자 한스 프라이(Hans Frei)의 분석을 인용하여, 역사비평이 '범주오류(Category mistake)'에 빠졌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 데카르트의 이분법(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마음을 '기계 속의 유령'으로 본 것)을 비판했듯, 역사비평가들은 본문과 저자의 의도를 분리한 후 의도가 본문 뒤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고 보았다. 즉, 역사비평은 해석학을 저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심리학'으로, 그리고 본문의 배경을 재구성하는 '문화사'로 혼동하는 본질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20세기 해석학의 반전: "본문 뒤"에서 "본문 앞으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본문의 진위성을 집요하게 의심하던 19세기 역사비평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이 일어났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일으킨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와 현대주의(Modernism)에 대한 깊은 반성을 불렀고, 성서학계 역시 '본문 뒤로 가기(Go behind the text)'에서 '본문 앞에 서기(Stand before the text)'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했다.
* 공시적 접근법: 본문의 자율성과 통시적 통일성 회복
문학비평, 서사학, 수사학 등을 도입한 공시적 접근법은 역사비평이 파편화해 놓은 성경 본문을 다시 하나의 완결된 '의미적 통일체(Semantic Entity)'로 복원시켰다.
* 독자반응법과 가다머의 해석학: '해석적 직관'의 회복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 G. Gadamer)는 계몽주의가 외쳤던 '선입견 없는 순수한 객관성'이야말로 "선입견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허상임을 폭로했다. 관점 없이는 해석도 불가능하다.
박정관 박사는 이를 언어학의 '원어민의 직관(Native speaker's intuition)'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원어민이 문법책을 외워서가 아니라 언어 공동체 안에서 수많은 일상 정황을 겪으며 언어 수행 능력을 터득하듯, 성경 해석 역시 '해석적 직관(전이해)'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해석적 직관은 학술적 지식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삶을 지속할 때 의식 저변에 형성된다. 독자반응법과 가다머 해석학은 성경 해석에서 '신학'과 '교회 전통'의 당위성을 재발견하게 해 주었다.
언어학적 진단:
역사비평과 한국교회가 범하는 주요 오류
박 박사는 역사비평학자들과 현대의 일부 설교자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 공통적으로 범하는 대표적인 언어학적 오류 세 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1. 어원 추적의 함정 (Etymological Fallacy): 단어의 의미는 세월에 따라 변한다(의미 확대·축소, 의미 양화·악화).
* 사례: 창세기 11장의 '바벨(Babel)'에 대해 역사비평가들은 본문의 문맥에 명시된 히브리어 동사 '발랄(balal: 혼동시키다)'을 무시하고,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아카드어 '바빌루(bab-ilu: 신의 문)'에서 어원을 찾는다.
* 비판: 단어의 의미 확정에는 본문 속 '문맥(Context)'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단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음운론적 이유만으로 문맥을 무시한 채 타 언어의 어원을 끌어오는 것은 치명적인 세만틱(의미론적) 오류다.
따라서 어원 추적은 현재 의미와 연속성이 확인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어원과 현재 단어 사이에 의미적 연속성이 있고, 과거의 의미가 현재 단어의 의미에 남아 있는 경우에만 적절성을 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의미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2. 단어와 문맥의 상호작용 무시
자연어의 단어는 둘 이상의 의미층을 지니는 '중의성(Polysemy)'을 갖는다. 단어의 구체적 의미는 본문의 문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확정된다.
* 사례: 요한복음 3:14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라는 구절에서 '뱀'을 무조건 사탄이나 마귀(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면,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대응되어 심각한 교리적 파탄이 일어난다. 본문의 문맥(민수기 21장)상 여기서의 뱀은 상징이 아닌 문자 그대로 모세가 만든 '놋뱀(금속체)'을 가리킨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인간 언어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단어와 맥락의 상호작용을 인지하고 있어야 잘못된 해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3. 알레고리(비유) 해석의 오류: 알레고리와 유형론의 혼동
한국 교회 강단에서 흔히 남발되는 '영해'는 알레고리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에 편중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의 비유 중에는 알레고리가 아닌 유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 사례: 사무엘하 12장의 '가난한 자의 암양 새끼 비유'(나단 선지자의 비유). 이 비유의 요소들을 알레고리 방식으로 '부자=다윗', '가난한 자=우리야', '암양 새끼=밧세바'로 1:1 매칭하려 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본문에서 암양 새끼는 '딸'처럼 여겨졌고 비유에서는 암양이 죽지만, 현실에서는 우리야가 죽고 밧세바는 살아남기 때문이다).
* 바른 해석: 이 본문은 유형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비유의 구조는 '많이 가진 자(부자)가 하찮은 욕구(행인)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은 아끼고, 하나밖에 없는 자(가난한 자)의 유일한 것(암양)을 빼앗은 사건의 유형'이다. 나단은 일대일 인물 매칭이 아니라 사건의 구조적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다윗이 저지른 죄악의 심각성을 하나님 앞에서 고발한 것이다.
이처럼 유형론적 해석은 본문과 현실 간의 유형적 대응을 파악함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본문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려 하면 해석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서해석자와 설교자는,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도, 유형론적 성서해석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 교회를 위한 대안:
리쾨르의 ‘이차적 순진성’으로의 도약
박정관 박사는 발표를 마무리하며서 발표 초반에 제시한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유명한 개념인 ‘이차적 순진성(Second Naïvety)’을 한국 교회가 지향해야 할 성경 읽기의 표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바른 해석법을 제시했다.
역사비평과 비판적 학문의 거친 의심을 통과하기 이전의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읽기가 '일차적 순진성(First Naïvety)'이라면, 역사비평의 집요한 의심과 검증을 거친 후 성서해석학적 통합 장치를 통해 본문 자체의 신학적·영적 권위를 깊이 있게 회복하는 단계가 바로 '이차적 순진성'이다.
박 박사는 종교개혁가들(루터, 칼빈)이 당대의 언어학, 논리학, 수사학을 동원해 본문과 지시내용의 일치를 파악하고 신학적 정수를 끌어냈듯, 현대 한국 교회 역시 19세기 역사비평의 폐해를 극복하고 최신의 성서해석학 도구(언어학, 수사학, 서사학, 문학이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 성경의 본질: 성육신적 유비 (Analogy of Incarnation)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한계와 특성을 매개로 오셨듯,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역시 인간의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록되었다. 따라서 성경의 문학적·언어적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2. 성경해석: 문자와 영의 통합(Letter and Spirit)
사도 바울은 "율법 조문(Gramma, 문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Pneuma)은 살리는 것"(고후 3:6)이라고 경고했다. 기도가 동반된 신학적 성찰 없이 영적 차원과 분리된 채 문자에만 집착하는 성경 읽기는 독단과 율법주의에 빠져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3. 배움과 묵상, 그리고 삶에서의 적용
"성서해석의 궁극적 목표는 학술적 지식의 자랑에 있지 않다. 성경 해석을 통해 찾아낸 의미, 즉 성경의 '문자'와 '영'이 만나는 지점에서 보게 되는 그 신학적 의미를 우리의 일상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박정관 박사는 한국교회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향해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한 끊임없는 배움과 깊은 묵상을 당부했다. 18세기 이후 출현한 다양한 해석학적 도구들을 두려워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문의 풍성한 의미를 드러내는 도구로 삼아 '이차적 순진성'의 신앙으로 성경 앞에 설 때, 한국교회 강단과 성도들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회복될 것이라는 메시지로 발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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