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한국요한문헌학회(회장:문우일 박사,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연구교수)가 지난 10월 25일(토) 오전 9시 30분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초교회(담임:최재성 목사)에서 제19차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요한복음과 필론, 요한계시록>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가운데, 문배수 박사(대신대 교수)가 '필론의 로고스론 연구'라는 제목으로, 문우일 박사가 '왜 요한복음에 축제(ἑορτἠ)가 많이 나올까?'라는 제목으로 요한문헌 연구발표를 했으며, 이필찬 박사(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소장)가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교회론적 기능:쿰란 문헌과 비교하여'라는 제목으로, 안용성 목사(그루터기교회 담임)가 '다니엘서 7-12장과 누가복음 21장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의 두 이야기 합류 구조'라는 제목으로 요한계시록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 필론의 로고스론 연구
필론(또는 필로)의 로고스를 분석한 문배수 박사는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필로의 천지창조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글을 비교했을 때, 단어와 글의 취지에서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다. 플라톤 사상을 이은 스토아 학파에서 로고스는 내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필로의 천지창조에 이데, 이데아, 힘들, 로고스 단어들이 나온다. 이데는 개념, 이데아는 개념들의 집합체이고, 힘들은 영향력이면서 천사들을 뜻한다. 로고스는 이성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자에 해당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되어진 일들의 결과를 보고 그 생각의 과정을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개념들을 활용하셨다. 로고스는 창조의 도구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천사장으로서,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모습이 나온다. 필로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전제에서 천지창조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이데와 힘같이 이성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한다. 그것은 필로가 천지 창조 글을 쓴 목적, 이상 세계에 대한 창조는 실제 세계에 대한 창조 이전에 일어났다는 주장에도 부합한다. 필로의 로고스는 선재성, 율법의 계시성, 내재성을 가지고 있다.
필로와 요한 모두 유대교 전통에 서 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은 로고스의 아버지이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 대한 해석을 중시하며 하나님과 창조되지 않은 로고스를 연결시킨다. 필로는 로고스를 통해 보편성을 강조하고 요한복음 서론은 로고스의 계시를 역사라는 현장속에서 드러내고자 한다.
요한복음 서론은 시와 산문이 함께 어우려져 있다. 우리는 저자가 요한복음 1장 14-18절이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결론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한복음 서론이 갖는 특징은 5가지인데, 그 중에 둘은 필로의 로고스 이론과 공통점에 해당하고 나머지 셋은 그것과 차별화된다.
요한복음 서론에서 ① 로고스는 선재적이고, ② 하나님의 이름이 이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③ 거기에서 역사적 과거형 동사가 지배적이다. ④ 예수가 세례 요한처럼 이스라엘 땅에서 거부당하고 있다. ⑤ 로고스는 하나님이시다라고(18절) 고백하고 있다. 맨 마지막 항목은 요한복음 저자 요한의 신앙고백으로 간주된다.
유대인 필로에게서 로고스는 하나님 밑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로고스는 동등할 수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 서론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바, 요한복음 저자 요한에게서 로고스와 하나님은 동등하다. 필로와 요한복음 저자 사이 차이점은 작지 않다. 하지만 그들 모두 초기 기독교가 형성되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로서 그들이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교회론적 기능
이필찬 박사는 아래와 같은 목적과 내용으로 발표했다.
본 논문은 요한계시록의 하늘을 사후 전용의 공간으로 이해하는 이원론적 해석을 교정하고, 그 하늘이 지상 교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회론적 기능을 갖는 공간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요한계시록 본문을 중심으로, 그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되는 쿰란 문헌과의 비교를 시도하였다.
쿰란 문헌, 특히 「안식일 희생의 노래들」과 「호데욧」은 지상의 쿰란 공동체가 현재 이미 천사들과 함께 천상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또한 일곱 교회의 ‘천사’(ἄγγελος)를 교회의 천상적 대응체로 제시하고(계 1:20; 2-3장), 교회를 상징하는 24장로의 천상 예배 참여를 보여준다(계 4-5장).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 천상 예배의 중심에 어린양을 두어 기독론적으로 재구성한다. 요한계시록 7장의 144,000(1-8절)과 셀 수 없는 큰 무리(9-17절)는 하나의 교회가 지상과 하늘이라는 두 국면에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며, 이는 지상의 쿰란 공동체가 하늘의 총회에 현재 참여한다는 인식과 평행 관계를 이룬다(4Q403 1, 1:1-29).
그리고 쿰란 문헌에서 하늘의 현재적 복이 미래 종말적 복을 선취한다는 개념(4Q427 7, 2:1-23; 11Q14)은 요한계시록 7:15-17에서 미래 종말적 복의 선취의 내용과 평행된다.
또한 하늘과 땅의 전쟁이 동시적으로 전개된다는 쿰란 전승(1QM 4:11-13; 17:5-8)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미가엘의 하늘 전쟁 승리가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승리로 이어지는 서사와 긴밀히 상응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요한계시록은 쿰란 문헌의 천상 성전 사상을 수용하면서도 어린양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하늘을 교회의 현재적 예배 참여와 미래 종말적 승리와 축복을 보증하는 교회론적 기능을 갖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 왜 요한복음에 '축제'가 많이 나올까?
문우일 박사는 아래와 같은 목적과 내용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e`orth,의 함의와 기능을 필론(Philo of Alexandria)의 e`orth, 개념, 특히 ‘모든 날’(h`me,ra pa/sa) 절기 개념을 참조하여 문헌 비평하고, 사상사 관점에서 논하는 것이다.
‘축제’ 내지 ‘절기’를 뜻하는 e`orth,는 요한복음에서 이례적으로 밀도 높게 나타난다(17회). 공관복음이 e`orth,라고 소개하는 절기는 한 번의 유월절뿐이지만, 요한복음에는 적어도 세 번의 유월절과 한 번의 초막절과 한 번의 불특정 절기(5:1)를 e`orth,라고 한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은 한 번의 봉헌절(요 10:22), 네 번의 안식일(5:10, 16, 18; 7:22, 23; 9:14, 16; 19:31), 가나 혼인 잔치(2:1-11), 베다니에서의 만찬(12:1-2), 제자들과의 만찬(13:2-3) 및 조찬(21:12)을 추가하여, 예수의 공생애 전체를 축제와 절기, 잔치로 가득 채운다.
왜 그럴까? 흥미롭게도, 요한복음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같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한 필론의 현존 작품들은 e`orth,를 무려 110회 사용하고, 요한복음의 모든 절기를 철학 언어로 재해석하므로 요한복음 절기 이해에 희귀하고도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함에도 요한복음의 절기에 관한 선행 연구는 보겐(Peder Borgen, 1965)을 제외하고 필론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이 논문은 보겐 이후로 멈춘 논의를 재개하기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 고전기 이전의 호메로스, 고전기의 플라톤, 제국 시대의 플루타르코스와 에픽테토스, 그리고 유대 70인역이 e`orth,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간략히 문헌 분석하고, 이어서 필론과 요한복음에서 e`orth,의 함의와 기능을 차례로 논하겠다. 요한복음의 각 절기에 관한 상세한 분석이나, 실제로 요한복음이 필론을 활용했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 다니엘서와 누가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
안용성 목사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발표했다.
요한계시록을 잘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종말 사건들이 어떤 순서로 전개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대주의자들은 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 기록된 순서대로 사건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지만, 계시록에는 사건의 진행 순서를 벗어난 서술이 많다.
그에 반해 많은 성서학자들은 계시록에 같은 사건들이 여러 번 반복 서술된다는 요점반복이론을 따르며, 다니엘서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같은 사건들을 반복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에 일어날 서로 다른 사건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여러 번 서술함으로써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1장은 그것을 단순화 하여, 두 가닥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합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종말 환상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의 시대부터 종말의 완성까지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진행되는 중심 줄거리(1-22장)가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중심 줄거리에서 벗어난 두 삽입부(10:1-11:13; 12-14장)가 있다.
삽입부를 제외하면 모든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중심 줄거리의 뼈대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다. 일곱 인은 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일곱 나팔은 심판의 시작과 진행이며, 일곱 대접이 그 절정이다.
그 후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소탕한 후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지는 종말의 완성이 이어진다. 중심 줄거리가 본류라면 삽입부는 지류이다. 두 이야기는 제각기 흐르다가 15장에서 합류하여 종말을 향해 함께 흘러간다.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728x90
반응형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 > 성경과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열왕기상 13장, 하나님의 사람 "실패한 선지자인가?" (9) | 2025.08.07 |
|---|---|
| 레위기 11장,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규정의 신학적 의미 (3) | 2024.10.25 |
| 주인은 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을까? (1) | 2024.10.18 |
| 출애굽기 40장 35절에서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 (0) | 2024.10.18 |
| 누가-행전의 '돌아옴'이 지닌 두 가지 의미: "귀환과 회개" (0) | 2024.10.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