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자에게 물려 죽임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은 충분히 독자에게 실패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하나님의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늙은 선지자의 행동도 그를 사악하고 비열한 선지자로 보도록 이끈다. 그러나 야웨는 그들의 모든 활동 배후에 계시며 속임이라는 예상할 수 없는 그분만의 방법을 사용하셔서 여로보암과 자기 백성을 자신의 길로 돌아오게 만드신다. 먹지도 마시지도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는 야웨의 명령은 속는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야웨의 길을 걸어갔던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뒤따르는 그분의 백성을 통해 계속해서 지켜질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지켜지지 않음을 통해서까지도 야웨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방편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렇게 실패자로 평가받았던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금 그를 따르는 또 다른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명예를 회복받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의 철저한 실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정대준 박사)
아래 글은 한국구약학회가 지난 4월 14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개최한 <제128차 춘계학술대회>에서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과연 실패한 선지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정대준 박사(광신대)의 연구논문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하나님의 사람의 등장
그는 실패한 선지자인가?
정대준 박사(광신대)는 "열왕기상 12:26-33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견고한 집을 약속하셨던 야웨를 배신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을 만난다. 그 행동을 통해 여로보암은 스스로 견고한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그 뒤 곧바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으로 인하여 발생한 혼란을 수습할 사람으로 보인다"라며 "그러나 그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먹지도, 마시지도, 걸었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는 야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그로 인해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처벌받는 대표적인 실패한 선지자로 평가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 박사는 "열왕기상 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는 무명의 선지자의 표면적 불순종과 그로 인한 죽음은 독자에게 큰 충격을 전하기에 충분하다"라며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명명된 선지자의 실패, 즉 야웨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내레이터의 메시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참된 선지자는 히브리 성경 곳곳에서 야웨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공동체가 이해하기 힘든 상징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다"라며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정 박사는 자신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결론부터 정리했는데 다음과 같다.
"내레이터가 열왕기상 13장에서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성공한 선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성실히 이행하기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는 분주히 움직이고 말한다 ...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한 악하며 실패한 선지자로 보이지만, 죽기까지 순종한 참되고 성공한 선지자라는 사실을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밝힐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자인가?
정 박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열왕기상 13장에서만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 처음 불리는 인물은 모세다(신 33:1)"라며 "특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문구는 사람에게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천사와 같은 야웨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은 신적 존재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칭이 부여되기도 한다. 사사기 13장에서 야웨의 사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삿 13:6,8)"라고 설명했다.
또한 "히브리 성경에서 대부분의 특정 인물들, 즉 사무엘, 엘리야, 다윗, 하난, 엘리사 등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라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렸던 등장인물은 내레이터나 상대 등장인물이 그들을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면서 그렇게 지칭하지 않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들 모두는 야웨 하나님의 말씀을 그분의 백성에게 전하는 선지자적 임무를 담당하거나,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탕으로 백성에게 특정 제도를 선포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칭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본문에 언급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 박사는 "따라서 열왕기상 13장으로 돌아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등장하는 무명의 선지자인 하나님의 사람을 살펴본다면, 열왕기상 13장에서 내레이터는 무명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15번 부르고, 다시 그 사건을 언급하는 열왕기하 23:16-17에서 2번 그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는 선지자 엘리사를 제외하고는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하나님의사람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문구가 히브리 성경에서 사용되는 용례를 고려한다면, 열왕기상 13장의 하나님의 사람을 내레이터가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열왕기상 13장의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그 외의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해지는 모든 자는 단 한 번도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행동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행동과 말에 주의하며 내레이터가 그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
정 박사는 "여로보암 내러티브는 그가 백성들의 마음을 르호보암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우상을 만들고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올라가지 않고 자신이 만든 우상에 경배하도록 만든 일을 강조하는 문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며 "이때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고 제단을 향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에게 미묘하게나마 희망이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제단 앞에서 분향하고 있는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지만, 그는 훼파되고 더럽혀져 백성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려야 할 제단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그가 야웨께 돌아오기만 한다면 회복의 가능성은 아직 존재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내레이터가 여로보암 내러티브의 중심부에 하나님의 사람이 활동하는 모습을 배치했다면, 그 부분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이라는 점을 위의 문학적 구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라며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내레이터는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이 야웨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에서 기인한 징벌적 성격을 가지는지, 아니면 선지자로서 상징적 행동인지를 구분해 내야 한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인지 아니면 그를 성공한 선지자로 볼 수 있을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연, 늙은 선지자의 등장
정 박사는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 여로보암의 제압 시도, 여로보암의 손 마름,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를 통한 여로보암의 손 회복, 여로보암의 회유,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야웨의 명령 등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내러티브 속에서 우리는 조연인 늙은 선지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와 상대하고 있는 여로보암과 늙은 선지자의 말과 행동을 함께 고려하여 분석해야만 한다. 더불어 내레이터가 해설하고 있는 부분의 정보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심지어 거짓을 말할 수도 있지만, 내레이터는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과 주장에 따르면 열왕기상 13:11부터 등장하는 벧엘에 사는 늙은 선지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늙은 선지자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선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이 듦은 신체적인 쇠약을 의미할 수 있지만, 경험과 지혜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욥 12:12).28) 따라서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선지자들 가운데 경험 많고 지혜로운 자이거나, 혹은 선지자의 서열 가운데 높은 자리에 있는 자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나이 듦 때문에, 더불어 그가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더욱 선지자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정 박사는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먹고, 마시게 하려 한다. 그는 여기에서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선지자임을 밝히며 여기에 더해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알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야웨의 명령을 전달받았음을 밝힌다(왕상 13:18)"라며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이 절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터의 짤막한 언급이다. 내레이터는 담담하게 ‘그가 그를 속였다’라는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분에서 누가 누구를 속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문맥상 속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러한 모호함은 늙은 선지자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을지라도 늙은 선지자마저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속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일종의 틈을 만드는데 그 틈은 독자가 채워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속고 속는 것에 대한 문제
특히 "속임에 관하여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만약 늙은 선지자가 한 말이 거짓이고 속임수라면 야웨의 말씀을 빙자하여 거짓을 말한 죄로 그는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신 18:20).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라며 "무엇보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모든 예언은 야웨의 말씀이었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선언하는데(왕상 13:29-32),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죽어 마땅한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참 선지자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정 박사는 "속고 속는 것에 대한 문제는 히브리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 히브리 산파들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사사 에훗과 삼손의 이야기에서는 물론 다른 여러 곳에서 우리는 이러한 주제를 다양한 형태로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과 관련하여서도 분명하게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속고 속임은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열왕기상 13장에서도 그려지지만, 암시적으로 그것은 인간과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정 박사는 "히브리 성경은 속고 속음 속에서도 야웨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전한다. 열왕기상 13장에서도 야웨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속이시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실제적인 구원을 선언하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열왕기상 13장은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 즉 파멸로 끝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여로보암이 다른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즉 그를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비록 등장인물 개개인은 야웨께 속고 있지만, 그 속음을 통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죽기까지 속았던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해 낸 성공한 선지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또한 여로보암은 속음을 통해서 다시금 야웨께 돌아와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전달한 야웨의 메시지에도 여로보암은 다른 길로 돌아오기를 거절하여 자신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속화시킨다. 슬프게도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보지 못하며,35) 악행의 대명사가 되기를 자처한다"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사람의 재평가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정 박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표면적으로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야웨의 말씀을 선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분의 명령을 처음에는 잘 수행함으로 선지자로서의 본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선지자다움은 벧엘의 늙은 선지자를 만나면서 곧바로 무너지게 되며, 자신에게 주어진 야웨의 명령을 지키지 못함으로 치명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야웨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는 야웨께 불순종한 선지자, 혹은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으로 평가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하나님의 사람은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이 아니라 성공한 선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열왕기상 13장에서 여로보암의 아바타처럼 행동한다. 여로보암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될 것처럼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죽음의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그의 행보는 여로보암과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의 죽음은 자신의 불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로보암이 받을 심판을 향한 경고와 강력한 야웨의 메시지가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야웨께서 명령한 길을 걸었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죽음을 통하여 야웨의 뜻을 분명하게 여로보암은 물론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늙은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죽음에 이르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성공한 선지자가 되도록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야웨는 그들의 모든 활동 배후에 계시며 속임이라는 예상할 수 없는 그분만의 방법을 사용하셔서 여로보암과 자기 백성을 자신의 길로 돌아오게 만드신다. 먹지도 마시지도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는 야웨의 명령은 속는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야웨의 길을 걸어갔던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뒤따르는 그분의 백성을 통해 계속해서 지켜질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지켜지지 않음을 통해서까지도 야웨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방편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렇게 실패자로 평가받았던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금 그를 따르는 또 다른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명예를 회복받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의 철저한 실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라고 언급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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