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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다" 고고학-역사적-해석학적 변증

by 데오스앤로고스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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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기독교변증 컨퍼런스' 개최
"성경, 신화인가 역사인가?" 주제로 진행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에게 '복음'의 진실성과 신뢰성 입증
구약, 고고학적-역사적-해석학적 입장에서 증명
창세기,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독특성 부각
다윗은 실존 인물이자 실제로 왕국을 다스린 인물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 및 예수이야기를 신화로 생각하고 있는 비기독교인들위한 기독교변증 컨퍼런스가 올해도 개최됐다.

 

청주 서문교회(담임:박명룡 목사)는 지난 11월 8일(토) 오전 10시 서문교회에서 기독교변증선교연구소(소장:박명룡 목사)와 변증전도연구소(소장:안환균 목사)와 함께 <성경, 신화인가 역사인가?>라는 주제로 '2025 기독교변증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해마다 열리는 기독교변증 컨퍼런스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응답하고, 역사적 근거에 기초해 성경의 신뢰성과 유일성, 복음의 진실성을 밝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에도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근거 위에 서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컨퍼런스는 현장 500명, 온라인 1,400여 명이 사전 등록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으며, 무엇보다 87여 명의 비기독교인들도 참여하는 등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됐으며, 박명룡 목사와 안환균 목사를 비롯해 황균관 박사(새들녘학당), 차준희 박사(연세대 교수), 이삭 박사(연세대) 등이 강사로 참여했다. 

 

 

 

 

 

 

# 성경, 왜 믿을 수 있는가? 
황윤관 박사

 

미국 LA작은자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황균관 박사는 기독교 변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을 언급했다. 황 박사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대화'이다. 

 

황 박사는 "변증 사역을 위한 출발점은 대화를 위해 지적인 면에서 누구나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공통의 토대 내지는 시작점을 계발하는 것이다"라며 "변증을 한답시고 자신이 속한 교단의 교리를 먼저 들이대거나 다짜고짜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경멸이나 반감을 더 깊게 가지게 함으로써 반기독교 정서의 확산에 기여하는 행동이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특히 이날 황 박사는 성경의 권위와 신뢰성을 강조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성경은 고대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지역의 환경 속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이라는 고대 문헌이 가지고 있는 혁명성과 현대성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성경의 여러 기사들이 준 이질감과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성경이 단순히 그 시대 중근동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의 산물이라면
이러한 혁명성이나 이질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의 각 글들은 각기 그 시대 고대인들의 손에 의해 고대의 언어로
고대의 표현 양식을 따라 쓰여졌지만 그 시대를 뛰어 넘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신적 개입의 한 증거라고 믿고 있다. 

성경에 내재된,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간섭을 드러내는 이 놀라운 메시지들이야 말로
성경 권위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신뢰성을 자연과학에서 찾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것은 아예 과학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서술된 성경의 권위를
근대 이후에 성립된 과학의 권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경의 신뢰성은 성경의 언어 묘사가 오늘날의 자연과학의 발견들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에 과학의 과정들을

표현할 어휘를 가지지 못한 고대인들의 서술이
오늘날의 자연과학과 일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넌센스다.

 

 

 

 

 

 

 

 

 

# 창세기,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베낀 것인가?
차준희 박사(한세대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차준희 박사는 전체 강의에서 [에누마 앨라쉬],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쉬] 등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 문서들과 구약의 창세기를 구체적으로 비교 평가하면서 창세기는 고대근동 신화를 베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소재로 삼은 것이고, 이를 통해 당시 신화를 반박 또는 조롱하면서 이와 비교되는 야훼 하나님의 독특성을 부각시켰다고 강조했다.

 

이날 차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성경은 '우리에게' 직접 주어진 책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한' 책이다. 즉, 성 경은 고대의 독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을 오늘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할 때는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단순히 읽기보다, 그것이 기록된 고대근동의 '문화의 강'을 따라가며 읽는 일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창세기 1~11장의 이야기는 고대근동의 문헌과 사상과 문화라는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성경 저자는 저작 당시의 시대와 정신과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경은 백지상태에서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아 기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기존의 문헌과 사상과 문화를 매개로 하여 주어진다. 성경의 일차적인 의미는 시기적으로 앞선 고대근동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라고피력했다.

 

특히 신화와 성경에 대해 비교하면서 "성경에는 신화가 없다. 즉 신화는 '다신론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라면, 성경에 신화는 없다. 성경은 야웨 유일신앙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나가고 있다. 성경은 야웨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은 다신론적인 신화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로 정의된다면, 성경에 신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차 박사는 "성경은 신화를 '탈신화화'하고, 신들을 '탈신격화'한다"라며 "고대 사회에서 태양과 달을 신으로 숭배했지만 성경은 태양과 달과 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으며(신 4:19), 고대 사회에서 '바다의 용'이라고도 불리는 리워야단 또한 두려운 신화적 존재이지만 성경은 그저 '큰 바다 짐승'으로 취급하고(창 1:21), 심지어 시편의 시인은 리워야단을 하나님이 지으시고 먹이를 주시고, 기르시는 장난감으로 격하시킨다(시 104:26~27)"라고 설명했다.

 

차 박사는 창세기 1~11장의 창조 이야기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를 비교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바벨론의 창세기로 알려진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는 창세기와 유사하게 보이는 부분이 일부 드러나기도 한다"라며 "태양과 달과 별들을 창조하고 뒤에 인간을 창조하는 것은 유사하다. 하지만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는 차이점이 더 두드러진다"라고 강조했다.

 

차 박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있다. 그분은 남신과 여신의 자녀가 아니며,
신의 성적 행위의 산물도 아니다. 창세기는 “창조”에 초점을 두는 반면,
『에누마 엘리쉬』는 주
조 지배권을 쟁취하기 위한 “신들 사이의 투쟁”과 관련된다.
『에누마 엘리쉬』에서 전체 창조는
거의 우발적인 것이다. 

창세기가 인간을 위한 알맞은 보금자리로 준비되고 있는 우주를 그리
며,
 인류의 창조를 창조자의 수고로 인한 승리의 절정으로 묘사하는 반면,
『에누마 엘리쉬』에서
인간 창조는 단지 부수적인 것이다. 

인간 창조가 마르두크의 생각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한 것은 마르두크의 아버지인 에아이다. 
즉 인류 창조는 창세기에서만큼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창세기에서 창조는 하나님의 생각이며 그분의 성취다.

 

 

 

또한 차 박사는 『아트라하시스』(Atrahasis)와 『길가메쉬』(Gilgamesh) 등 재앙적 대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대근동 문헌들과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를 비교 평가하면서 "창세기와 『아트라하시스』와 『길가메쉬』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신론이 다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밖에 없다. 『아트라하시스』에 있는 남신과 여신의 대가족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인간론도 다르다. 창세기 1장 대부분은 환경을 준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인간이 안전하게 거주하도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종종 그들 스스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고, 실제로 신들 사이에 치명적인 전투를 벌이는 반면에 창세기 1장은 평화로운 세상을 그린다"라며 "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들을 거부하려는 것 같다. 이는 우주에 대한 다른 비전을 그리기 위해서이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실 뿐, 수많은 남신과 여신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평화이지 불화가 아니었다. 세상은 인간의 거류를 위해 창조되었지, 신들이 묵었다가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천체를 창조한 것도 이러한 목적을 위한 봉사이지, 한 신이 경쟁자들에 대한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창세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먹을 식물들을 주신다.『아트라하시스』와 『에누마 엘리쉬』의 인간은, 상급 신들을 위해 땅에 물을 대고,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하는, 하급 신들을 해방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고대근동 사람들은 인간의 역할이 신들을 부양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신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를 착각이라고 가르친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에게 식물들을 음식으로 제공함으로써 인간을 돌보신다"라고 역설했다.

 

이날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차 박사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는 창세기 1~11장을 통해 고대 근동 이야기를,
특히
바빌로니아 자료들로
알려 있는 것들을 꾸준히 “바꾸어 말하는 것”에 주목했다.
창세기
는 창조에서 홍수에 이르는 세계 역사에 대해 “다신론” 대신에
“유일신론적 해석”을 제
공한다.
자연의 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신들” 대신에 창세기는 
모든 다른 힘들을
총체적으로 주관하는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인간을 “신들의 편의와 안
락을 위해 만들어진 부산물”로서 보는 대신에, 
창세기는 “세상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창
조”되었다고 말한다. 
“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시는 인
간”을 말한다.
“신들의 변덕” 때문에 인류에게 대참사가 들이닥쳤다고 보는 대신에,
세기는 인류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폭력에 심취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스
스로 위에 불러들였다고 말한다. 

바빌로니아는 생명이 진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창세기는
인류의 흩어짐과
많은 언어의 다양성이 하나님이 행동하신 증거라고 말한다.
이 행동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 다스린다고 착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희망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로운 계획에 있다.
하나님은 바빌론 남쪽 도시인
우르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서
새 인류를 이끌게 할 것인데, 새 인류는 아담과 노아와
바빌론이 실패한 것을 성취할 것이다.

 

 

 

 

# 구약성경, 꾸며낸 이야기인가? -고고학과 역사적 접근
이삭 박사(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이삭 박사는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이 고고학적 비문학적 자료와 교차할 때 얼마나 높은 신빙성을 획득하는지 입증했다.

 

이 박사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고고학 자료들은 여전히 다윗이 실존 인물이자 실제로 왕국을 다스린 인물이었음을 증명한다"라며 그 근거로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첫째, 1993년과 1994년에 오늘날 이스라엘 헐몬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텔 단(Tel Dan)에서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과
요세프 나베(Joseph Naveh) 발굴팀은 텔 단 석비(Tel Dan Stele)를 발굴했다.

이 석비는 다윗 왕조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 중 하나다.
아람어로 쓰여진 비문은 하사엘로 추정되는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을 무찔렀다고 자랑하는 승전비로,
그 9번째 줄에 '다윗의 집'(House of David)이라는 표현이 명확히 등장한다.

둘째, 예루살렘의 다윗성(City of David)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가장 집중적으로 발굴된 지역으로,
다윗 왕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다윗성은 오늘날 예루살렘 옛도시(Old City) 남서쪽에 위치한 힌놈(Hinnom)
골짜기와
남동쪽에 위치한 기드론(Kidron) 골짜기 사이,
실로암 샘(Gihon Spring)
주변에 형성된 좁고 긴 능선 지대이며,
초기 예루살렘 도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계단식 돌 구조물'이 발견됐고, 그 아래에서 기원전 10세기
초중반으로 편년되는 전형적인 토기가 발견됐는데,
이 건축물이 해당 시대인

다윗이 활동하던 시기에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다윗성 북쪽에 위치한 오펠(Ophel) 지역과
기브아티 주차장(Givati Parking Lot)에서진행되는 발굴 역시 예루살렘의
기원전 10세기 왕국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펠 지역은 성전산 남쪽 비탈로, 로몬 시대의 행정 중심지로 언급된다(왕상 9:15, 24).
2014~2021년까지 진행된 발굴을 통해 자르는 이곳에서 기원전 10세기로 편년되는
대형 성벽의 흔적과 성문터를 발견했다.
성경에 언급된
‘솔로몬 성문'(Solomonic Gate: 육방 성문 구조)과의 상관성을 시사한다.

 

 

이밖에 이 박사는 "하솔·므깃도·게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육방 성문과 포곽식 이중 성벽은 솔로몬의 건축 사업과 일치하며, 카르낙 신전 부바스티트 대문의 셰숑크 1세 지명록은 성경이 전하는 시삭의 침공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게 한다"라며 "또한 메사 석비와요르단 모압 평지의 고고학 자료는 오므리 왕조의 모압 지배와 메사의 반란을 성경와 정확히 대응시키며, 티글랏-빌레셀 3세·살만에셀 5세·사르곤 2세의 비문은 신앗시리아 제국의 북이스라엘침공과 멸망, 그리고 이스라엘 포로민들에 대한 신앗시리아 제국의 강제이주 정책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헤립의 라기스 부조와 연대기는 유다의 46개 성읍 함락과 예루살렘 포위, 그리고 조공 수납을 보여주지만 예루살렘 함락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성경의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서술과 일치한다"라며 "이처럼 고대 근동의 역사 문헌· 제국 비문· 레반트 고고학 유적이라는 삼중 증거는 성경의 사건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신화적 전승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앙의 기록일 뿐 아니라, 고고학과 제국 기록이 증명하는 역사적 현실이었다"라고 강의를 마무리했다.

 

 

 

 

 

 

 

# 예수 이야기, 신화인가 역사인가?
박명룡 목사

박명룡 목사는 신약성경의 예수 이야기, 곧 복음은 고대 신화에서 베낀 것이 아니라, 고대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적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고대 신비 종교들의 신화에 영향을 받아 유대식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는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의 주장들은 학문적으로 뒷받침될 수 없으며, 책의 주장을 믿을만한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첫째, 기독교가 발생하기 이전에 기독교의 주요 교리들을
모두 갖춘 고대 신비 종교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독교가 그 교리를 빌려 올만한 모본이 없었다.


둘째, 기독교가 발생하기 이전에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신들’은
아무도 없었다.
기독교가 그 내용을 빌려 오려면 기독교 이전에 죽고
부활한 신들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유명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

 

 

또한 박 목사는 기독교와 신비종교의 유사점과 관련해서도 "기독교가 신비종교를 모방한 사례도 있다. 예컨대, 기독교는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A.D. 1세기 내에 기록된 신약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A.D. 336년에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승인하고 선포하였다는데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가 시작 될 무렵이 아니라 기독교가 이미 성숙된 A.D. 4세기 이후에 발생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기독교와 신비종교의 유사점들은 A.D. 1세기나 그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독립적이었던 기독교가 베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혼합적이고 모방적이었던 신비종교들이 기독교와 경쟁하면서 기독교를 모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피력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은 탁월한 역사적 신뢰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단군 신화를 비롯해 조로아스터교, 불교 경전, 무함마드의 전기와 같은 고대 종교 경전들을 비롯해 공자세가, 노자도덕경,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로마 황제의 역사 기록  등 동서양의 고대 문헌들과 신약성경을 비교한 박 목사는 "단군(약 2,400년) , 조로아스터(약 1,000년), 부처(230-600년) , 무함마드(135년) 등 인물들의 이야기 기록은 그들이 죽은지 최소 150년에서 2,400여 년의 시간이 걸려 문서로 기록됐음을 말해주고 있다"라며 "이와는 달리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사복음서는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후 약 30년에서 6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예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의 죽음 후 약 18년에서 35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이 세상 그 어느 종교들 보다 매우 짧은 구전 전승 기간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신약성경의 역사성이 가장 탁월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세계 어느 종교의 경전에 비교하더라도 탁월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박 목사는 성경의 원본은 사라졌고 사본만 남아 있는 것과 관련해서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많은 신약 성경의 희랍어 사본들은 그 내용에 있어서 일치하는 정확성과 신뢰도가 매우 높다. 가이슬러(Geisler)와 닉스(Nix)는 고대 헬라인들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호머의 일리 아드와 신약 성경을 비교한 원문 편차를 제시한다. 15,600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리아드의 사본들을 분석한 결과 약 5%정도의 원문 편차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0행으로 되어 있는 신약 성경의 원문 편차는 0.5%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신약성경은 그 내용적인 면에서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배경 속에서 필사된 수많은 사본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원래 신약 성경이 쓰인 원본과 사본들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록된 문서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르친 말씀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특히 예수의 기록과 관련해서도 "신약성경이 아니더라도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신약 성경을 전혀 펼치지 않고서도 예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예수에 관한 기록을 남긴 대표적 일반 역사가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로마의 지방 총독 플리니와 루시안 등이 있고, 바빌론 탈무드에도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즉,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보면, ‘당시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의 순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요세푸스의 ‘플라비우스의 증언’에 보면 예수의 일생, 기적,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예수 이야기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영향으로 인해
신화화되었다는 잘못된 주장들
은 학문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 
오히려 역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예수님의 생
애와 가르침을 담은 사복음서는 
가장 탁월한 역사적 신뢰성을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일
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고대 동·서양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신뢰성도 
모두 거부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신뢰성은
고대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도 더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이야기는 실제 역사 이야기이
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그 내용
그대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예수는 역사다’고 말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 기독교 복음, 팩트 체크
안환균 목사


안환균 목사는 ‘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로고스(말씀)’의 의미를 중심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한 창조의 사건이 단순한 신앙 고백 차원의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합리적 근거를 지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안 목사는 "성경의 하나님이 말씀이시며 사랑이신 존재라는 진리를 기반으로 한 성경적 창조 신앙은 단지 종교적 교리 차원을 넘어,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존재론적 질문과 과학적 탐구에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라며 ‘기독교 = 창조질서’라는 명제의 진실성을 확인하면서 결론적으로 ‘기독교 복음 = 팩트’라는 사실을 확증했다.

 

안 목사는 "성경이 선포하는 창조의 원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한계를 가진 과학으로 다 설명될 수는 없다"라며 "과학은 어떻게 세계가 작동하는지를 탐구하고, 신학은 왜 그것이 존재하는지, 그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과학이 신학적 세계관과 모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나 신학의 증명 도구로 삼으려 할 경우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과학적 개념들을 초자연적인 종교적 주장을 증명하거나 합리화하는 근거로 삼고자 할 경우 논리의 비약이나 부당한 유추에 따른 범주 오류, 검증 불가능성, 과도한 환원주의에 해당한다는 비판이나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물리학적 현상과 신학적 속성을 동일 구조로 대응시키는 것은 상징적 유추나 비유 정도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과학적 논증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 목사는 "과학과 종교적 신념을 엇비슷하게라도 통합하려는 시도는 언제든 최대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독교변증은 창조 세계를 관찰하는 과학과 성경적 창조 사건의 공통 분모를 찾아 논리적으로 연결 지으려는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면, 그 창조 세계에서 말씀을 통한 창조 사건의 흔적들이 발견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특히 안 목사는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했다는 성경말씀과 관련해서 "과학은 물질의 근원이 비가시적 에너지라 말하고, 성경은 그 근원이 무(無)로부터 만물을 있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친다. 둘 다 가시적인 물질세계가 비가시적인 어떤 것에서 유래한다는 데 동의한다"라며 "비물질적 존재인 영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물질적인 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이셔서 모든 물리적인 것을 초월해 창조의 권능을 가지실 수 있다. 물질 자체가 비가시적 에너지에서 비롯되었듯,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에너지를 통해 물질을 창조하신 것은 과학적 개념과도 상충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로고스와 관련해서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곧 말씀의 성육신은 비가시적 하나님이 가시적인 존재로 시공간 안에 들어오신 사건이다"라며 "로고스의 성육신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사건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존재의 본질은 인격이라는 진리까지 계시되었다. 만물은 비인격적 법칙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적 지성과 의지에 의해 창조되었다. 자연주의 철학자나 과학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도 명백한 이 정답을 끝내 못 찾는다"라고 설명했다.

 

 

 

 

 

 

 

 

안 목사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오늘날 과학이 발견해낸 우주의 본질은 무작위성이 아니라
정교한 수학적·논리적 질서, 곧 로고스다. 
철학은 존재의 근거로 로고스를 탐구했고,
과학은 로고스가 만든 정밀한 질서를 관찰했다면, 

성경은 그 로고스가 인격적인 하나님이며,
인간이 되어 역사 속에 오셨다고 증언한다(요 1:1, 14). 


그분은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씀하시는 
살아 있는 로고스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영혼이 바깥세상의 자연만물을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 세상의 자연만물을 지으신 분이 자신이 만난 
그 성경 속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영혼 깊은 속까지 실감되어서다.
새들의 지저귐,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바람에 살랑이는 작은 잎사귀 하나까지도
그에게는 다 하나님의 손길이요 숨결이다.

 

 

강의을 마무리하면서 안 목사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십자가 사건은 이 자체로만 따로 떼어서 본다면 그냥 종교적인 특정 교훈을 가진 사건으로만 비칠 수 있어 그 전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말씀이시며 사랑이신 존재이며,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이 창조질서를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만 이 십자가 사건의 우주적인 의미와 가치에도 올바로 눈뜰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십자가 사건은 그렇게 만인을 아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 만인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사건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만인의 죄를 대신해서 안 죽으셨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의 죄를 대신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죄라도 빠진다면 그 죄가 내 죄일 수도 있다. 예수님이 지고 가신 ‘세상 죄’(요 1:29)에 포함 안 된 죄가 없다는 게 한량없는 은혜다. 이 구속의 은혜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이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과 사랑이라는 세상의 절대 이치, 곧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팩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다 듣고 누려야 할 좋은 소식이다"라고 덧붙였다.

 

 

 

 

 

* 위 기사에 게재된 사진은 한국성결신문에서 제공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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