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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교회 교권과 교리적 오용 파헤친 ‘면죄부 반박 95개조’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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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반박 95개조에 나타난 루터의 신학적 비판 / 정병식 교수(서울신대)

면죄부 반박 95개조 논제’는 성명서가 아닌 토론을 위해 내건 주장
회개의 신학적 의미ㆍ교황의 권한ㆍ면죄부 효력ㆍ연옥 문제 등 다뤄

“종교개혁의 촉매제가 된 루터의 면죄부 반박 95개조는 성명서 혹은 교리조항이 아니라 토론을 위해 내건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 교회의 교권과 교리적 오용을 파헤치는 매우 중요한 루터의 신학사상이 내포돼 있다.”

정병식 교수는 “루터는 면죄부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구원론과 죄론에 적용해 죄의 용서를 가져오고, 연옥의 형벌을 단축시킨다고 하는 거짓된 설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박했다”며 “면죄부 반박 95개 논제는 회개의 참된 신학적 의미, 교황의 권한, 면죄부의 효력, 연옥의 문제 등 네 가지 신학적 축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발표내용 중에서

1.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발표했다. 오늘날 다양한 각도에서 95개 논제를 조명해오고 있지만 루터의 95개 논제는 요한네스 발만(J. Wallmann)이 지적했듯이 성명서나 조항이 아니라 토론 목적의 주장들이었고, 대주교인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지침’(Instructio Summaria)이나 텟첼의 ‘면죄부 설교’가 루터의 행동을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95개 논제의 핵심 주제는 ‘면죄부 지침’과 ‘면죄부 설교’의 내용을 반박하며, 무엇이 옳은지 토론하자는데 초점이 잡혀 있다. 더 나아가 1518년 4월에 루터가 작성한 ‘면죄부논제 해설’과 비교해보면 95개조 논제에는 적어도 네 가지의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가 담겨 있다.

2. 루터는 텟첼의 면죄부 설교가 일으킬 목회적인 끔찍한 영향에 놀라 비텐베르크에서 1516년 7월 27일 면죄부 반대 설교를 했고,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반박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내걸었다. 성교회 문에 논제를 게시하는 것은 학문적 공개토론을 원하는 당시의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3. 루터가 면죄부에 대해 격노한 이유는 이 제도의 모든 가설이 ‘이신칭의’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칭의를 얻은 신앙인은 동시에 자신의 모든 죄로부터 용서와 모든 형벌에 대한 하나님의 사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인들의 공로와 합체시킨다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4. 95개 논제에 대한 내용개관은 학자들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7~8개의 큰 틀로 구분할 수 있다. 1~4조는 참회, 형별, 그리고 죄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5~7조에서 죄와 연관된 교황의 권한을 논제로 삼았다. 8~29조는 죽어서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면죄부, 30~35조는 살아 있는 자를 위한 면죄부를 논했다. 56~68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은 공로로써 소위 교회 보물에 관한 것이며, 69~80은 면죄부 설교의 부작용을, 81~91조는 면죄부에 대한 평신도들의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92~95조는 면죄부 설교에 대해 경고하면서 형벌을 피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95개조의 신학적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참된 회개는 무엇인가, 둘째, 교황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셋째, 면죄부는 구원의 효용성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네 번째는 면죄부와 연옥의 연관성에 대한 것이다.


5.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 면죄부는 중세 교회의 잘못된 참회 이해의 부산물이다. 본래 고대부터 죄용서의 기능을 가진 것은 세례뿐이었다. 그러나 세례는 종말론적이고 일회적이며, 시행시점을 기준으로 이전의 죄에 대해서는 효력을 갖지만 이후의 죄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이해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자가 죄를 범할 경우, 그는 교회의 거룩함과 정결함과 합치될 수 없었다. 교회는 세례 이후에 범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고, 그 해결책이 참회였다.

6. 고대 교회의 참회는 세례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역시 세례처럼 단 1회만 허용했다. 하지만 회중 앞에서 단 1회만 허용된 참회는 매일같이 죄를 범하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또 다른 유형의 죄의 고백이 등장하는 조건이 됐다. 실제로 6세기에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사적고해(Privatbeichte)가 생겨나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참회제도는 켈트교회의 사적고해를 그 기반으로 삼았다. 참회의 반복성과 가벼운 개인적 죄까지도 포함했다는 점에서 고대 교회의 공적참회와는 구별됐다.

 


7. 중세기의 참회는 마음의 뉘우침, 입술의 고백, 용서, 그리고 행위의 보속 순으로 진행됐다. 11세기 이후에는 마지막 행위의 보속이 금전의 기부로 대체되기도 하고, 12세기 이후부터는 사죄를 선언하는 용서의 형식이 ‘하나님이 너를 용서했다’에서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직설법적 형식으로 바뀌어 사제의 권위를 강화시키는데 오용되기도 했다. 다양한 종류의 행위의 보속을 규정해 놓은 책인 ‘참회서’도 등장했다. 사제는 이에 근거해 참회자에게 기도, 금식, 구제, 순례 등 객관적인 형벌을 정해줬다.

8. 역사적으로 십자군 시대에 활성화된 면죄부는 행위의 보속을 대체하는 것이며, 참회와 상관없이 죄로 인한 모든 형벌을 소멸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십자가 신학의 틀에서 보면 결코 불가능한 행위와 보답의 타산적인 설명이 그 속에 있다”고 쿠어트 디트리히 슈미트는 비판한다.

9. 한편으로는 교회가 죄를 범한 인간을 외면하지 않고, 그를 구하고자 절치부심하는 모습에서 바람직한 교회상을 보지만, 다른 한편 참회는 교회의 인위적 고안물로 신학적 오용의 단초가 됐다. 참회를 염두에 두고 반복해 죄를 범할 수가 있었고, 참회에서 요구되는 보속의 행위(satisfactio operis)는 결국 인간의 공로와 행위에 죄 용서를 종속시켜 하나님의 심판과 용서를 탈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10. 루터는 참회를 교회의 규정과 분리시키고,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참회란 신자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논제1). 이것이 그가 인용해 근거로 삼은 “회개하라”(마 4:17)는 말씀의 참된 의미라는 것이다. 논제2에서 루터는 이 말을 성례전적인 참회로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성례전적인 참회란, 곧 사제가 집례하는 고해와 보속의 참회를 말한다. 물론 회개는 오직 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1. 루터는 더 나아가 참회와 면죄부의 연관성을 차단시킨다. 진정한 참회는 면죄부가 없이도 완전한 용서의 충분조건이 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참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면죄부가 없어도 형별과 죄책으로부터 온전한 용서를 얻는다는 것이다.

 

 

12. 1505년 수도원에 입교하면서 루터는 중세적 경건의 실체를 모두 체험하게 됐다. 1515~1516년 로마서 강의는 ‘하나님의 의’에 관한 루터의 의문을 풀어주어 ‘이신칭의’라는 종교개혁적 통찰을 얻게 해주었다. 루터는 로마서를 통해 벌하고 징계하는 하나님 이미지를 극복하고,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 이미지를 얻었다. 그리고서 ‘의’는 참회와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때문에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3. 1518년 4월 초에 집필한 ‘면죄부의 가치에 관한 논제 해설’은 95개 논제에 대한 신학적 증빙이다. 루터는 ‘회개’에 대한 성서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신자의 전 생애가 참회의 삶이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루터는 일시적이며 방편적인 참회를 거부한다. 참회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참회는 내적이고, 지속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에 부합한 외적인 육신의 제어다. 논제2에서 성례전적 참회를 거부하는 것도 그것이 외적 참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례전적 참회는 교황과 교회법에 의해 등장했다. 따라서 성례전적 참회의 방편인 기도, 금식, 구제는 참회의 대용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따라서 신자가 기쁨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이다.

14. (교황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교황의 죄 사함의 권한은 베드로에게 준 천국열쇠(마 16:19) 본문에 성서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열쇠는 하늘과 땅에서 메고 푸는 권한의 상징이며, 죄를 용서하고 형별을 면해주는 데에도 작용했다. 교회에서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인 교황만이 이 열쇠를 가질 수 있었고, 그 권한은 교황에 의해서 감독과 사제에게 부여됐다.

15. 루터는 모두 19개 조항에서 면죄부론에 담겨진 교황의 잘못된 권한에 대해 반박했다. 우선, 죄 사함과 관련 교황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즉, 교황은 교회법에 의해 부과된 형벌만을 용서할 수 있다(제5조). 이것을 설명하고자 루터는 ‘면죄부 지침’이 은혜의 종류를 나열하듯이, 면죄부 해설에서 형별의 종류를 다섯으로 열거하고, 교황과 연관 내지 무연관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①지옥의 형벌 ②연옥의 형벌 ③자발적이고 복음적인 형벌-그리스도가 명한 것으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육체를 죽이는 것 ④하나님의 징계와 채찍 ⑤교회가 만든 형벌). 그 가운데 교황의 권한에 있는 것은 다섯 번째인 교회가 만든, 즉 교회법적 형벌 뿐이다. 물론 교황은 이 권한을 행사할 때에도 ‘용서의 적합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며, 오류가 없어야 한다. 교황은 그 외의 앞에 네 가지 형벌을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교황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음을 선언하거나 시인하는 정도이다.

16. 더 나아가 교황의 권한은 죽은 자와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연옥은 교황의 권한 밖의 일이다. 교회법의 형벌들은 현세에서 오직 산 자에게만 적용된다. 루터에 의하면 교황에게 가능한 것은 중보기도뿐이다. 그의 최선은 천국 열쇠의 힘이 아니라 중보기도를 통해 영혼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이다.

 

 

17. 그렇지만 루터는 열쇠의 전통에 대해 부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열쇠를 가진 자의 권한에 대해 신학적인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논제가 열쇠의 권세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존경의 자리로 회복시킬 것임을 확신했다.

18. (면죄부는 구원의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가?) 면죄부는 11세기에 프랑스 남부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원래는 구제와 건축을 위한 재원조달의 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11세기 말엽인 1095년 십자군 면죄부가 발행되면서 면죄부의 종류와 용도가 다양성을 갖기 시작했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 교회의 무오류성에 근거해 면죄부 제도 역시 오류가 없음을 보증해주고, 더 나아가 연옥의 죽은 자들에게 면죄부 사용 가능성을 인정했다. 면죄부를 실제로 연옥과 연관시킨 사람은 1476년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였다. 그는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영혼도 면죄부를 구입하면 교회의 중재를 통해 사죄를 얻는다고 선포했다.

19. 루터의 95개 논제 가운데 면죄부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룬 것은 63개조에 이른다. 그 가운데 면죄부의 효용성을 논하는 핵심 논제는 논제36~40까지다. 우선 면죄부는 죄 용서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논제76과 그 해설은 면죄부와 죄 용성의 경계가 더욱 분명하다. 루터는 면죄부는 결코 죄의 용서를 일으킬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오직 하나님만 죄를 용서할 수 있다. 교회는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용서했음을 선언할 뿐이다.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 됨’은 면죄부가 아닌 그리스도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면죄부의 소유에 있지 않고, 참된 그리스도인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20. 루터는 “면죄부는 아무 공적도 가져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면죄부를 구입하고자 돈을 쓰기보다는 먼저는 가난한 자를 위한 자선과 곤궁한 이웃돕기 그리고 공적 봉사(병원)를 목적으로 하는 건물에 헌금하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지적한다. 면죄부 구매를 위해 돈을 낼 수 있으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며 오히려 전자가 신적 계명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죄의 용서와 상관없는 면죄부 설교는 거짓이며 위선이다. 루터는 24조에 대한 해설에서 면죄부 설교자들이 면죄부를 구입하면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는 인상을 주며, 현실적인 죄 이외에 어떤 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설교하는 것을 비판한다.

 

 

21. 루터의 비판은 구원의 효용성이 없는 면죄부를 가지고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과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을 정죄하는 32조와 33조 해설에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루터는 사도행전 4:12과 15:11을 인용하며,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이름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면죄부는 다만 교회법에 관한 형벌만을 제거할 뿐임을 덧붙여 재차 설명했다. 루터는 면죄부가 결코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면죄부 지침’과 그 설교자들의 오용은 무지 및 무능력과 학식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루터는 보았다. 면죄부는 구원의 효용성도 없고, 구원의 확신을 매개할 수도 없다. 참된 회개만이 죄와 형벌의 용서를 가져오며,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통로가 없다고 루터는 강조했다.

22. (면죄부는 연옥에도 영향을 주는가?) 서구 기독교 신앙 속에 연옥이 자리한 것은 1150~1250년 사이다. 연옥은 12세기 후반에 탄생했고, 연옥을 통해 저승까지도 통제하고픈 당시의 사회적 욕구의 산물이었다. 루터까지도 ‘제3의 장소’라고 일컬었던 연옥은 그러나 ‘지어낸 것’일뿐, 성서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에서 단정한다.

23. 종교개혁기에 주요 쟁점 중의 하나였던 이 문제를 트렌트공의회는 1562년 3차 회기 중에 ‘부동의 교의’로 채택했다. 현대 가톨릭신학은 연옥을 어떤 장소가 아니라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연옥은 등장 이후 중세 교회에서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연옥에 대해 최초의 정의를 한 교황은 인노센트 4세(1243~1254)다. 그는 재임말기인 1254년 죽은 자들의 경미한 죄가 정화되는 장소를 ‘연옥’이라고 했다. 특히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207~1280)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눈부신 활동을 통해 13세기는 신학과 교의적 차원에서 연옥의 존재가 굳어진 시대였다. 연옥은 의심의 여지없이 존재하며, 하나의 장소로서 수용됐다.

24. 면죄부 반박 95개 가운데 연옥과 관련된 논제는 모두 9개조이며, 루터는 이때만 해도 연옥 자체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거스틴을 인용해 연옥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전통적인 개념을 상대화시킨다. 가령, 연옥은 정화의 장소가 아니라 형벌의 장소라는 것이다.

25. 연옥의 존재 여부에 대한 루터의 부정적 견해는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는 성서전체에서 연옥에 대한 기억은 쉽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제2마카비서 12장 46절에 연관지을 내용이 등장하지만 이 책은 정경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517년 당시 루터는 면죄부가 연옥의 형벌로까지 연장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연옥을 내세워 임종자에게 속죄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사제를 비판했다(논제10 해설). 임종자는 죽을 경우 교회법의 요구에서 자유하게 된다(논제13 해설). 다만 죄로 인하여 죽을 경우, 불안과 공포가 따르며 이것이 연옥의 형벌이라고 루터는 이해했다.

 

 

26. 또한 루터는 연옥이 공로 획득의 장소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모든 공로는 이 세상의 삶에서 획득하며, 죽음 이후에는 어떤 공로도 획득하지 않는다”는 어거스틴의 말로 근거를 삼았다. 연옥은 루터에 의하면 형벌과 두려움의 장소다. 또한 이 형벌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극복되며, 결코 면죄부로 되는 것은 아니다(논제19 해설).

27. 면죄부와 연옥의 연관에 대한 루터의 비판은 논제27 해설에서 더욱 격양된다. “헌금함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적 증거도 없고, 이성도 입증할 수 없다. 루터는 면죄부가 이득과 탐욕을 위한 것일 뿐, 연옥의 영혼과는 무관하게 보았다.

28. 루터의 면죄부 반박 95개조는 라틴어로 쓰였으며, 성명서 혹은 교리조항이 아니라 토론을 위해 내건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 교회의 교권과 교리적 오용을 파헤치는 매우 중요한 루터의 신학사상이 내포돼 있다. 논제는 1517년에 작성했기에 이 시기에 루터는 아직 연옥의 존재, 공로, 사제에게 하는 고해성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이해와 적용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루터는 아직 면죄부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구원론과 죄론에 적용해 죄의 용서를 가져오고, 연옥의 형벌을 단축시킨다고 하는 거짓된 설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29. 루터는 위에서 언급한 회개의 참된 신학적 의미, 교황의 권한, 면죄부의 효력, 연옥의 문제 등 네 가지 신학적 축을 중심으로 일시적이며 방편적인 참회를 가르치는 교회를 비판하고, 신자의 삶은 일생이 참회의 삶이어야 함을 성서를 토대로 주장했다. 루터는 이때까지만 해도 교황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교황은 교회가 교회법에 근거해 부여한 형벌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연옥에 있는 영혼과는 무관하다. 면죄부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그것이 구원의 효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며 사기다. 면죄부는 구원론적인 연관성이 전무하며, 교회가 갖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무가치한 것이다. 면죄를 연옥과 연관시킨 것은 교회의 해악이며, 발터 뢰벤이히의 지적처럼 중세 교회의 가장 나쁜 악습들 중의 하나다.

 

 

30. 한국 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 신학 현장에서 500여 년 전의 루터의 95개조와 그 속에 담긴 그의 신학 사상의 검토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루터 역시 당시 교회의 문제를 고민하며, 본질에 맞고 성서에 부합한 바른 교회의 회복이 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등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에 대한 집착, 교회의 세습, 교회의 대형화와 체인화, 실용성과 편의 위주의 예배 및 예전, 경쟁적인 성직자 양성의 남발 등 심각한 문제들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여전히 커다란 병폐가 되고 있다. 역사는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오는 바로미터다.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이 한국 교회 각성의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 위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와 한국교회사학회가 공동으로 지난 2013년 3월 23일 오전 10시 서울신대 우석기념관에서 ‘한국 교회의 위기와 대안’을 주제로 개최한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28차 논문발표회 및 한국교회사학회 제118차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에서 일부 발췌 및 요약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할 경우 해당 단체에 문의하면 된다.  

정병식, “면죄부 반박 95개조에 나타난 루터의 신학적 비판”,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ㆍ한국교회사학회-논문발표회 및 정기학술대회‘, 2013년 3월 23일, 서울:서울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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