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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이슬람 신화, "기독교에서 차용했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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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가 지난 12월 17일(토) 오전 10시 30분 총신대 제1종합관 2층 주기철기념홀에서 '제117차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이슬람의 신화와 역사에서 보이는 기독교의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한 유해석 박사(총신대 선교대학원 교수)는 이슬람의 신화와 역사적인 이슬람을 소개하면서 기독교는 이슬람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성경내용과 유사한 이슬람 신화

이슬람 신화를 설명한 유 박사에 따르면 이슬람에서 천사는 빛으로부터, 진(Jinn, 악한 영들)은 무연의 불로부터, 인간은 검고 묽은 흙으로부터 창조됐다. 알라가 인간과 진들을 창조한 목적은 자신이 섬기게 하기 위해서다. 진들과 인간은 알라에게 자유의지를 선물 받았는데, 알라를 경배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

 

유 박사는 "알라가 창조했던 첫 번째 남녀(아담과 하와)는 사탄이 하는 일과 비슷하고,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강력한 진인 이블리스(Iblis)의 꾀임에 빠져 선악을 가리키는 나무 열매를 따 먹는 실수를 범하게 됐고,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세상에 보내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슬람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이렇게 죄의 대가로 천국에서 쫓겨났으므로 원죄를 믿지 않는다"라며 "천국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광야에서 방황하다 메카(Mecca) 부근에서 멈추었다가 아예 메카에서 살게 되었다. 아담은 알라를 경배할 장소를 찾아서 그곳에 카바(Ka’aba) 신전을 짓고 알라를 경배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유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슬람 신화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버지 몰래 큰 우상을 제외한 모든 우상을 다 부서뜨렸는데, 사람들로부터 추궁을 받고 결국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아내 사라와 함께 도망친다.

 

또한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이 일로 인한 사라의 시기로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메카에  데려다줬다. 이후 아브라함은 자신의 두 번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메카에 왔을 때, 알라를 경배하기 위해 이스마엘과 함께 신전을 지었다.

 

이 외에도 꾸란에 아브라함은 이슬람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한 유 박사는 "메카는 유일신을 위한 순례지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다시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라며 "꾸란은 알라의 뜻에 복종하는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메카에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에 의해 알라에게 제물로 바쳐진다"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이슬람과 우상숭배

유 박사는 "이슬람이 시작되기 전 아랍인들은 부족이나 가정에서도 우상숭배는 일반적이었다"라며 "유대인 부족이 지배적이었던 메디나에서도 부족 신들이 번성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유일신론을 전파하면서 아랍인들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우상숭배가 쇠퇴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알라의 선지자로 부름받았다는 무함마드의 출생과 성장, 부족 간의 갈등, 종교적 갈등 등을 설명한 유 박사는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인간은 알라에게 예배를 드리고 자선을 베풀어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설교를 하면서 전능한 우주의 창조주인 알라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충직한 신자들을 모았다"라며 "메카는 무함마드가 주장한 새로운 종교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무함마드에게 항복했고, 628년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 안에 들어가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오직 알라만을 위한 신전으로 선포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무함마드는 4년 후에 마지막 계시(꾸란 5:3)를 끝으로 62세의 나이에 죽었으며, 그는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알라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며 모든 무슬림들은 형제라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기독교, 이슬람 형성에 영향 끼쳤다

유 박사는 이슬람의 신화와 역사적 이슬람이 시작된 아라비아 반도는 기독교의 영향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이슬람의 형성과정에 기독교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바울이 갔던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의 중북부인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동부인 예멘과 오만 등을 간 것이 아니라 반도 북부에 있던 요르단 남부 지방을 방문하였던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라며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많은 종족들이 기독교를 접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유 박사는 "이슬람이 시작되었던 메카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력은 세 곳에서 형성되었다"라며 북서부의 시리아, 북동부의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아비시니아의 영향력이 예멘에 미쳤기에 그곳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리아의 기독교, 메소포타미아의 기독교, 아비시니아의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한 유 박사는 "이슬람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성경과의 유사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비잔틴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새로운 종교라고 여기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슬람을 많이 연구했던 다마스커스 요한네스(John of Damascus, 660-749)는 724년 많은 신학적 저서들을 남겼는데,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슬람을 '이스마엘파 이단'으로 분류하기도 했다"라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존 칼빈도 이슬람을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으로 이해했다"라며 "우리는 7세기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전통 기독교와는 다른 중간 형태의 기독교가 많이 있었으며 수많은 이단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은 이슬람교를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한 분파 혹은 이단으로 인식하였며, 이러한 인식에서는 이슬람 종교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기독교였고, 이를 차용한 결과물이라고 여겼다"라고 주장하면서 발표를 마쳤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선교지에서 개혁교회 건설의 요체들'(권효상 박사/고신대학원)과 '로잔운동이 한국교회와 하용조의 선교적 목회철학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노규석 목사/온누리M센터) 등 신진학자들의 발표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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