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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성령의 은사(열매), 과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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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술원, ‘한국교회, 성령의 은사와 열매’ 주제로 제47회 월례발표회 개최

 

2015년 9월 8일 기사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가 지난 9월 4일(금) 오전 7시 반도중앙교회에서 ‘한국 교회,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주제로 제47회 월례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 중 일부를 정리했다. <편집자 주>

 

# 성령의 최고의 은사는 ‘사랑’

한국 교회는 다른 어떤 나라의 교회들보다도 성령의 은사를 추구하는 교회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서도 방언, 예언, 병 고침, 입신, 환상, 꿈 등의 은사에 치중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이런 성령의 은사를 추구한(고전 12:8-10)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부정적이었던 것처럼 한국 교회의 상황도 부정적이다. 본문 고전 12:15-21에 보면 이런 성령의 은사를 추구한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하기도 하고,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하기도 하고, 반대로“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기도 하고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는 등 서로 비판하고 싸웠다.

 

이런 고린도교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도, 세계 교회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교인들이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교회들이 서로 싸워서 갈라지고 교파들이 나뉘었다. 성령을 강조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데 이런 부끄러운 결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방언, 예언, 병 고침, 입신, 환상, 꿈 등 성령의 은사를 강조한 한국교회의 윤리적인 모습은 어떤가? 목사들의 윤리적인 타락은 오래전부터 한국사회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아왔다. 총회장 선거, 교회연합회장 선거, 일부 신학대학의 총장선거에서 몇 억, 몇 십억 단위의 돈을 쓰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고, 이것이 관례화 되어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분명한 성직매매(simony)다. 사회선거에서는 이런 부정행위가 나타나면 선거무효가 되지만, 교회선거에서는 무효화되지도 않는다. 교회가 사회보다 훨씬 더 타락한 것이다.

 

이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교회가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16세기 종교개혁 직전의 중세교회의 타락상과 다를 바 없다. 교회 목사나 장로들이 교회 돈을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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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수가 수억, 수십 억에서, 무려 수백억, 수천 억대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교회성화도 못하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감히 사회 성화를 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교회 목사들의 성적(性的) 타락,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적 타락도 오래전부터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그런 목사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 탄로 났을 때,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회개하고 자복했는데, 한국의 목사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자복하지도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설교를 계속한다.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현상은 한국 목사들의 잘못된 목표들에 그 원인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목사들이 내세운 목표들이 무엇이었는가?

 

교인의 숫자 늘리기다. 교인이 얼마냐에 따라서 목사를 평가한다. 몇 천 명, 몇 만 명의 교회를 목회하고 큰 교회를 지으면 좋은 목사, 훌륭한 목사로 평가하고, 그렇지 못한 목사들은 무능한 목사로 무시당하기 일쑤다.

총회장, 연합기관의 장이 되는 것이다. 평신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로가 되는 것이다. 장로가 되지 못하는 평신도는 좋은 평신도로 대접받지 못한다. 이러한 목표들은 질적(質的)인 목표가 아니라 양적(量的)인 목표다.

 

 

이런 양적인 목표들은 성경이 말하는 질적 목표와는 거리가 먼 목표들이요 지극히 세속적인 목표들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질적 목표들은 무엇인가?

첫째, ‘의인’이 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목표는 “완전함”이다. 완전함이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켜 흠이 없이 사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 “완전함”이 한국교회 목사와 장로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이 “완전함”으로 목사와 장로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사랑’이다.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비판하고 싸우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고전 12:31에서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한 다음, 고전 13:1-2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방언, 예언, 믿음 등의 성령의 은사들이 사랑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은사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교회는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제쳐두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방언, 예언, 병 고침, 입신, 환상, 꿈 등의 은사들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최고의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랑의 은사가 있을 때에 다른 은사들도 빛을 발할 것이다. 만약 사랑이 없으면 다른 은사들은 무익한 것이 되고 만다.

 

 

바울은 고전 13:4-7에서 성령의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15가지로 제시한다. 그 사랑이란 “오래 참고 온유(친절)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또 바울은 갈 5:22-23에서“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9가지 성령의 열매는 고전 13:4-7에서 말하는 사랑과 4가지가 겹친다. 갈 5:22-23에서 말하는 9가지 성령의 열매도 크게 보아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목사, 장로, 성도들의 목표도 바울이 제시한 성령의 최고의 은사인 15가지 사랑과,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15가지 사랑과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갖춘 완전한 사람, 의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추락한 위신을 회복하고 다시 살아나서, 한국사회의 성화까지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임태수 박사, 호서대 명예교수>

 

 

# 성령의 은사는 교회 유익과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해야

은사는 개인의 영력의 자랑이나 교회의 양적 성공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화, 교회의 성화, 사회적 성화를 위하여 주신 것이다.

첫째, 개인적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이것이 성결이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옷입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성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성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6).


둘째, 교회적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교회적 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은 나의 구원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의 구원으로 나아간다. 나의 성화에서 교회의 성화로 나아간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의 갈등과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다.

교회의 지나친 양적 성장으로 인한 교인들의 영적 성숙 부재, 지나친 의인(義人)의식과 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경쟁, 비교인들과 처음 온자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 지나친 교역자 의존 및 숭배의식, 교회의 재정적 문제, 교회 직분의 계급의식, 교역자들의 각종 명예추구와 비리 등이 있다.

 

이는 고린도 교회처럼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나 제대로 성화되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사회적 성화로 열매 맺어야 한다. 신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신자들은 모든 일에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사도 바울은 아내, 남편, 자녀, 부모 된 자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18-21).

 

한국 교회는 “출구 전략으로 지역주민을 전도 대상으로 여기기 전에, 먼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선교적 교회나 마을 만들기는 모두 복음과 신앙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한국 교회는 진정성을 담보한 선교적 교회와 마을 만들기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성령의 은사란 자기 유익과 자랑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개인의 성결과 성화, 교회의 유익과 성화, 구리고 사회적인 성화, 아름다운 신자의 행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방언하는자, 예언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능력행하는 자는 자신의 신령함을 은사를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은사를 가진 자는 항상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불신을 받는 가운데서도 지역사회 속에 누룩처럼 스며들어가며 복음을 실천해 하나님 나라를 꽃피우는 교회들이 있다. 이런 교회들이야 말로 시대를 일깨우고, 사랑과 정이 오고 가는 진정한 마을을 만들어 가는 우리 시대의 희망이 된다. 이러한 교회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들이다.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장>

 

 

#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과 사용 방법

성령은 언제나 은사(恩賜)로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신자의 마음속에 거하는 성령은 역시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은사로 작용한다. 물론 은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요, 능력인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에게 전혀 없는 능력이 성령의 놀라운 작용을 통하여 주어지게 될 수도 있지만, 이미 주어진 재능이나 잠재되어 있던 재능이 성령의 감화 속에서 사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성령의 은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고전12:10).

그러면 이러한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은사의 목적은 지상에 세워진 교회로 하여금 주님의 사역이 잘 수행되도록, 그리고 각 신자들이 영적인 일꾼들이 되어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고전14:12)주시는 것으로, 특별히 교회의 직분과 관련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엡4:12).

 

성령의 은사는 각 신자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며, 그 믿음의 분량은 교회안의 공적인 직분으로 연결되어 교회의 복음사역과 연관된 일들을 효과적으로 성취시키는 능력과 자질이 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사의 목적은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일에 섬기는 능력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적게는 지역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섬기며, 크게는 전 세계의 민족과 인류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전 인류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에 있다고 할 것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사역에 일꾼으로 섬김을 말한다.

그러한 섬김은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교회의 영적 부흥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 복음전도의 역사, 이웃사랑의 실천의 역사에 쓰임 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자격과 자질을 갖춘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열매로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첫째, 가장 인격적으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열매로서 언제나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나타나게 된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얼마나 인격적인, 성숙한 인간성의 모습과 관련된 것이지를 성령의 9가지 열매와 연결시켜 설명하였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의 인격적인 가치들과 관계하여 성령의 열매로 표현하였다(갈5:22).

물론 성령의 열매는 인간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인격적인 소산물은 아니다. 그러나 인격의 완전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과제와 관련하면, 성령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성숙해져 간 신앙의 인격적인 모습은 성령의 열매와 관련하여 성숙한 인간성(영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는 일을 통해서 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도우기 때문이다. 바울은 엡4:13절에서 성령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강조하였고, 15절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라고 권고하였던 말씀에서 더욱 그러한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성화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교회의 질서를 따라 겸손히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에서 밝혀 본대로 교회공동체와 관련하여 교회 내에서 서로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전체를 세워 가는데 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형성하고 닮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은사의 사용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되지 않을 때, 은사의 사용은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의 사용은 차례대로 하는 것이 좋고, 질서를 따라 행할 것은 권고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요,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14:33).

또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는 겸손하게 사용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일을 경험하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함께 하는 자들로부터 인정받고 하는 본능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경험도 동일하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고린도교회의 경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방언의 은사를 공동체에서 자랑한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은 은사의 사용에 대한 충고한다. 방언의 사용은 반드시 통역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면서, 공동체의 모임에서 사용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깨달은 다섯 마디 말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사용할 때,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고 권한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으며,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일러준다(벧전4:10-11).

 

이것은 성령의 은사가 인간의 능력 자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 은사의 목적이기 때임을 이해하고 겸손히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셋째, 사랑과 정의 안에서 은사가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반드시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사모하고, 성령이 지금도 주시는 은사를 받아서 주의 일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로 활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은사의 사용에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바울이 고전13장 1-3에서 명시한 사랑을 전제하지 아니한 은사의 사용은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의 능력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을 전제하여 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적인 행동으로 은사를 사용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다.

은사는 언제나 사랑을 전제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역시 은사는 정의(正義)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한국교회가 수적성장의 한계와 지도자들의 도덕성문제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대두되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란 질문에 한 종교사회학자는 3가지 비움의 영성회복에 대하여 권고해 준 일이 있다. 그것은 비움과 바름과 나눔의 영성의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성령에 대한 체험도 중요하고 은사를 받는 것도 중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성령은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상에 세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들은 겸손히 주님을 섬기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이웃을 섬기며, 나아가 사회를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지극히 인격적인 모습으로, 겸손히 교회의 질서를 따라 은사를 사용되도록 힘써야 한다. 결코 그 은사를 자랑하거나, 자기과시나, 유익을 챙기는 일에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성령의 은사는 이웃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바울의 권고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일웅 박사, 전 총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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