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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듬주일 공동예배 설교문> 하나님 나라와 생명문화

목회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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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 9월 13일 생명보듬주일 선포하고, 설교 및 교육 자료 배포

데오스앤로고스  |  thelogos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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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8  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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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가 9월 13일 주일을 '생명보듬주일'로 선포했다. 생명보듬주일은 한국 교회가 이 땅의 상처입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고, 생명문화 확산과 자살예방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것으로 공동예배 설교문과 교육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와 생명문화’라는 공동예배 설교문과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청소년을 위한 설교문, ‘잘 지내고 있니? 우리 마음!’이라는 청소년 공과는 라이프호프 홈페이지(http://lifehope.or.kr)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공동예배 설교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2015년 생명보듬주일 공동예배 설교문

<하나님 나라와 생명문화>
조성돈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운영위원장)

# 본문: 이사야서 11:1-9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주님의 평화와 사랑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에 자살이 큰 문제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인데, 무려 10년간 1위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가지고 세계에서 1위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도 10년 동안 1위를 한다는 것은 더욱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살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로 1위를 했고, 무려 10년 동안 그 1위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참 부끄럽고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약 1만5천 명 정도 됩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3년에도 우리 국민 1만 4427명이 자살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를 일(日)로 나누어보면 하루에 약 40명 정도가 자살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숫자로 나열하면 여러분들이 실감이 안 나실 것입니다. 요즘 육군 1개 사단이 약 1만 명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1년에 육군 1.5개 사단 정도의 인원이 자살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2년이 되면 약 3개 사단이 자살로 죽은 것이죠. 요즘 초등학교 한 반에 학생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도시나 지방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대략 25명 정도 됩니다. 그러면 하루에 약 1.5개 반 정도의 인원이 자살로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틀이 되면 초등학교 3개 반 정도의 인원이 자살로 죽는 것이죠.

최근에 한국인들의 사망원인을 보면 1위는 암입니다.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암으로 가장 많이 죽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4위에 자살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살로 인해서 죽는 사람의 숫자가 네 번째로 많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당뇨병이 나오고, 폐렴, 호흡기질환 등의 병명이 나옵니다. 심지어 교통사고롤 죽는 사람은 9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살이 4위에 있다는 것이죠.

자살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당뇨병 환자보다 더 많고, 교통사고로 인해서 죽은 사람보다 많다면 우리 주변에서 그러한 환자나 사고자보다도 많은 자살사망자나 생존자들을 보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당뇨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살로 인해 죽었다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 당뇨병 환자보다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뇨병 환자라고 다 그 병으로 죽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그로 인해 죽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즉 우리 가운데 자주 보게 되는 당뇨병 환자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고자 하는 유혹과 괴로움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자살의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에 없다면 우리는 그 만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것입니다. 결코 그러한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들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터놓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은 사회적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자살은 이 사회가 책임져야할 보건의 문제로 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우리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예방이나 방지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한 해에 1만 5천명이나, 또 하루에 40명이나 자살로 죽어 가는데 이 사회가 관심도 없고, 책임도 질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건 분명 잘 못된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로 인해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 모두 메르스의 공포로 인해서 생업에도 지장을 받고,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 병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 긴장을 하고, 그 확산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심지어 초기에 그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장관이 물러나야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186명 감염에 36명 사망이었습니다. 물론 수고해 주신 분들의 노력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렇게 큰 위험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한 사람이라도 이 병으로 인해서 사망에 이를까 싶어서 온 사회는 조심했고, 서로 협조했습니다.

2009년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유행병이 있었습니다. 신종플루입니다. 그 때 우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도 않고, 각 곳에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심지어 교회에도 영향이 미쳐서 교회 출석이 크게 감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감염자가 300만 명에 사망 26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도 우리는 큰 공포 가운데 신종플루에 감염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혹시 병이 옮겨질까 하여 각 곳에 열을 재는 도구를 갖다놓고 사람들을 스캔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망자가 260명이었던 것은 결국 보건당국과 온 국민이 협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쓰는 노력 정도를 자살예방에 쏟는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인데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서로 노력하고, 정부와 보건당국이 힘을 합쳐서 예방하고 치유한다면 이렇게 많은 우리 국민들이 자살로 인해서 죽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찌보면 이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병도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 나라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살피고, 그러한 마음이 들 때 치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그러한 사람을 보면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한게 현실입니다. 정말 우리가 손을 내밀어 사람들을 잡아주면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날 텐데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이 자살의 유혹은 교인이라고 비켜가지 않습니다. 교인 가운데서도 자살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형제, 자매들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먼저 우리 가운데 마음과 환경의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주변에 돌아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작은 도움이라고 나누며 기도하면 먼저 우리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가 오실 때 나타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입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 나라는 바른 가치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며 먼저 바른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4-5절을 보면 메시야가 오시면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먼저 바른 가치에 기준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공의, 정직, 말씀, 성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면 그 기준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치가 흔 들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공의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매일 뉴스를 통해 들리는 이야기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횡포입니다. 소위 말하는 갑질문화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유명 아파트의 경비원이 분신하여 자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것은 힘없는 이 경비원을 괴롭혔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공의가 사라진 것입니다.

정직은 이미 우리를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연일 들리는 소문은 믿고 먹을 음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재료를 속이고, 과정을 속여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양심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음식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치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릅니다. 삶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방황을 사회학자들은 아노미라고 합니다. 규범을 떠난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를 심리학자들은 불안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안정되지 못하고 막연하게 두려움을 갖게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가치를 잃어버리고 나면 아노미의 상황에서 불안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나라가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 세계 1위를 10년이나 했으니 정말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원래 이렇게 자살이 많았을까요? 아닙니다. 자살이 급증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998년에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왜일까요? 예, IMF 사태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명이 채 못 되었습니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로 죽은 사람이 숫자를 나타내는 이 자살률이 10명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살률이 10명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IMF 사태 이전에는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98년 18.4명으로 뛰어오릅니다. 그 후 잠시 주춤하다가 2002년부터 꾸준히 늘어나서 현재는 약 30명 정도가 됩니다.

약 15년 사이에 자살률이 약 3배가 늘어난 것입니다. 2위를 하는 나라가 일본이나 헝가리 정도인데 이들의 자살률은 약 20명 정도 머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살률로는 부동의 1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나라가 자살공화국이 되었을까요? 저는 이것은 우리가 잘 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IMF 사태 이후 우리는 경제중심의 사고에 빠져 들었습니다.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죠. 돈이 사람을 평가하고,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꿈이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고 그냥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과학자, 의사, 선생님, 대통령 등이 아니고 그냥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던 관계없으니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니 이것은 이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연령별로 보았을 때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40대와 50대입니다. 특히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자살을 세 배나 많이 합니다. 즉 40대와 50대의 남자들이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국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직장을 다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어려움을 겪는 때입니다. 어쩌면 퇴직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이들은 혼란을 겪습니다.

자신은 가장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자신을 퇴물로 여깁니다. 돈을 벌어다주는 기계였는데 기계가 고장 난 것입니다. 결국 삶의 가치를 잃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른 가치를 세우는 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 귀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길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른 가치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메시야가 오실 때 이루어질 그 가치를 우리의 삶에서 이루며 삶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공의, 정직, 말씀과 성실인 줄 믿습니다.

2. 하나님 나라는 평화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하며 이사야 선지자는 꿈을 꿉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표범이 어린 염소와, 사자가 송아지와, 곰이 암소와, 젖먹이가 독사와 함께 지내며, 함께 뛰어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이끌어 냅니다. 이 그림을 우리의 마음속에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또는 훌륭한 화가의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해 보면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러한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바로 이와 같이 이리와 표범, 사자와 곰이, 그리고 독사가 무서운 맹수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 맹수들이 다른 짐승을 죽이고, 먹는 것이 아니라 같이 친구가 되는 세상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강자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이 세상의 연약한 자들을 짓밟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만인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느 학자는 이 사회를 ‘절벽사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절벽과 같이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육, 취업, 결혼, 주택과 같은 것들이 우리 앞을 절벽과 같이 가로막아서 더는 나아갈 수 없도록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학자는 ‘팔꿈치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서로가 경쟁을 하며 팔꿈치로 서로를 밀쳐내고 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사회는 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를 밀치고, 절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살아남은 자를, 그 가운데 승리한 자를 찾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은 맹수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여러분 맹수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린 양과 송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어린 아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맹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살며,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친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문화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생명이 해함을 받을 일도 그리고 생명이 상할 일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때 이 세상에서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 자살이 이렇게 만연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사회를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결국 가치의 기준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그런 것을 폭넓게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때부터 이 사회에서는 죽음을 선택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가정이 어렵게 되거나, 삶이 실패하고 절망하게 될 때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이루어진 한 설문조사를 보니 우리 청소년 아이들에게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약 30%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지난 1년 동안 30% 정도가 자살을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지난 1년 간 몇 번 그런 생각을 했는가입니다. 그랬더니 네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한참 자라나야할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가치관을 잡고 생각을 정립해야할 우리 아이들이 지난 일 년 동안 30%가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도 일 년에 네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사회에서 자살이 줄어들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며 이런 생각으로 살아갈 때 자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이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우리 어른들이 은연 중 그런 가치관을 심어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이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그 죽음의 문화는 대를 이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확률이 아주 높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한민국은 자살의 대물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살을 줄이는 방법은 바로 이 죽음의 문화를 극복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생명의 문화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생명은 교회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고 또한 우리가 경험한 바입니다. 바로 이 생명을 이 사회와 나눈다면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앙의 관점으로 이끌어간다면 결국 우리는 이 죽음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살을 만들어 내는 죽음의 문화 가운데서 생명의 영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죽음의 영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성경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우리의 믿음이, 생명으로 향하는 우리의 믿음이 이 땅에 충만해질 때 그곳에는 상함도 해함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표현하기를 ‘물이 바다 덮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문화이며, 또 생명의 문화입니다. 이 생명의 문화가 이 세상을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충만하게 될 때에 상함과 해함도 없고, 자살도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혀를 차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워만 해서는 이 자살의 사회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사회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죽음의 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행동하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영으로 죽음의 영을 이겨내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기반한 생명의 문화로 이 세상을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충만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생명의 세상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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