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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한국교회 정치적 설교가 저항할 실체는 ‘엘리트 카르텔’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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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연구(27) * 


 

 

윤성민 박사, 한국설교학회서 ‘정치적 설교’의 방향성 제시


2015년 10월 19일 기사

“한국의 정치적 설교가 저항해야 하는 실체는 ‘엘리트 카르텔’이다. 엘리트 카르텔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엘리트 카르텔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목회자는 예수의 밥상공동체와 십자가 신학을 가르쳐야 한다.”

윤성민 박사(한신대)이 한국설교학회가 지난 10월 17일(토) 오전 10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개최한 ‘제22차 정기학술대회’에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주장했다.

 

‘정치적 설교:독일 설교학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윤성민 박사는 “현재까지도 보수 교단의 대부분 교회에서는 사회적 주제에 관한 설교를 금기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독교인의 참된 모습이다. 따라서 정치적 설교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 교회 강대상에서는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공공의 영역인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한 문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다루는 설교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그는 “한국의 정치적 설교는 교인이 기독교적 정신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며 “특히 한국의 정치적 설교가 지향해야 하는 실체는 무엇보다 ‘엘리트 카르텔’이다”라고 주장했다.

윤 박사는 “엘리트 카르텔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 지배를 가능케 하는 것은 비대한 정부, 비생산적인 국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법원과 정당 시스템”이라며 “한국 교회는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이다. 설교가 이런 문제까지 다룬다면 한국 사회는 성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윤 박사는 왜 한국 교회가 정치적 설교를 함에 있어서 ‘엘리트 카르텔’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일까? 독일의 정치적 설교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정치적 설교의 방향성을 제시한 윤 박사의 발표 내용을 일부 정리했다.

 


# 독일설교학에서 말하는 것

1. 독일설교학에서는 설교와 정치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윌프리드 엔게만은 모든 설교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창조의 특성을 가진 공적인 연설이고, 그 시대의 회중과 동행하면서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당파성은 죽음을 대항하고, 인간의 삶을 위하고, 억압을 대항하고, 그들의 자유를 위하고, 부패를 대항하고, 치유를 위하고, 폭력을 대항하고 자유를 위한다. 새로운 정치적 설교에서는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나 있어야 한다.

3. 정치적 설교는 ‘실체’에 저항하는 설교다. 정치적 설교 안에서 정치적 위치와 저항해야 할 목표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설교의 어려움은 그 목표의 복잡성이 더해지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있은 후에만 올바른 정치적 설교가 가능할 수 있다.

4. 정치적 설교는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이야기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21세기 정치적 설교는 정확함과 세심함, 그리고 성서적이고 비유가 풍부하며, 융합적이고 문학적이어야 한다.

5. 정치적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본문뿐만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다. 회중들은 설교자의 행동에서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말로만 정치적 설교를 할 수 없다. 실천 이성의 소유자들만 정치적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6. 정치적 설교에서는 사회비판에 대한 상투적인 말투나 선입견, 그리고 복잡성을 피해야 한다. 정치적 설교는 사회적 현상이나 정치적 요구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요구한다. 정치적 설교는 정확한 인식과 신중한 검토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7. 정치적 설교는 책임을 동반한다. 성서의 권위를 가지고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와 윤리를 말해야 하고, 회중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설교이어야 한다.

 

 

#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정치적 설교

9. 한국 교회의 대다수 교인들은 교회와 사회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신앙과 삶이 분리돼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정치적 설교를 하기 위해 전(全) 복음에 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10. 한국의 세대집단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형성기에 반공 체제라는 제약하에서 제도화됐고, 이러한 제약은 반공체제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발전 국가를 통해서 우파 독점의 정당체제와 정치사회를 통해 계속되고 강화됐다.

11. 해방과 6.25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을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게 한 박정희, 전두환 독재자를 경제개발을 이룬 대통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 시절에는 군사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정치적 대안들이 탄압을 받으면서 동시에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발전했다.

12.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 우파 이외의 정치적 대안이 봉쇄된 ‘좌파 없는’, 또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해방 세대와 6.25 세대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권과 정치세력을 싫어한다. 교회에서 설교자가 진보적인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말하거나 설교하면 이 세대들의 반발을 겪게 된다.

13. 386세대라고 불렸던 86그룹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면서 진보적인 정치사회 의식과 태도를 갖게 됐다. 교회에 대한 이 세대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진보 교단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보수 교단과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86그룹은 민주화 운동 가운데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좌파 정당인 민누노동당의 공헌을 이루었다.

 

 

14. 교회 구성원 중에서 86그룹이 대다수라면 설교자가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에 관한 진보적 정치세력에 대해 언급해도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한국의 우파 계열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한다면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반면, 한국 교회 대다수는 해방과 6.25 세대와 86그룹이 함께 모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정치적 발언은 더욱 더 부담스럽다.

15. 그런데 오늘날의 88만원 세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저항과 투쟁을 하지 못하는 세대였다.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의 신세대는 정치적 문제보다는 개인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88만원 세대는 정치적 주제의 설교보다는 위로와 치유가 있는 설교를 선호한다. 한국의 정치적 설교는 88만원 세대에게도 무거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16. 그렇다고 한국 교회는 정치적 설교를 포기하면 안된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사회와 국가가 바람직하지 않을 정도록 비민주적일 때, 교회는 선교적 입장에서 사회의 민주화와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7. 실제적으로 교회 현장에서 설교자가 서로 다른 정치적 포지션을 가진 세대들에게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지 못하더라도 성서와 기독교 전통이 추구하는 가치와 세계관을 가르칠 수 있다. 성서는 독재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서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절이 많다.

 

# 한국사회에서 저항해야 할 실체: 엘리트 카르텔

18. 한국의 정치적 설교가 저항해야 할 실체는 엘리트 카르텔이다. 후진국에서는 독재정권이 나타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시장 로비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의료보험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은 독재 국가는 아닌 엘리트 카르텔형 국가다.

19. 카르텔을 구성하는 엘리트는 주로 정치인, 고위 관료, 언론 소유주, 군부지도자, 대기업 등이다. 엘리트 카르텔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비대한 정부, 비생산적인 국회,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법원과 정당시스템이다. 이탈리아, 한국, 아르헨티나, 이스라엘이 여기에 속한다.

20. 김영란 전 대법관은 “엘리트 카르텔을 부패한 엘리트들”이라고 말했다. 이드른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쳐 법까지 개정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21. 대한민국에서는 땀의 대가로만 사회 리더가 될 수 없다. 토마스 케른 교수와 알렉산더 류저 연구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조사한 적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지도자가 되려면 부모가 재력이 있어야 하고, 서울대 혹은 연세대와 고려대를 나와 미국에 유학을 가든지, 일정 기간 영미권에 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2. 18, 19대 국회의원들을 조사해보니 18대 국회의원 90%가 대학을 졸업했고, Ph. D. 소유자도 25%나 됐다. 법학 출신이 30%로 가장 높았다.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취득한 학위가 압도적이었다. 서울대 출신들은 38%가 넘고, 고대와 연세대는 각각 9%가 조금 안됐다. 19대 국회의원들도 비슷한 결과였다.

23. 토마스 케른 교수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어떤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는데, 이것을 ‘규범적 동형화’라고 말했다. 국민이 어떤 규범 혹은 제도에 집단으로 쏠려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엘리트 카르텔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24. 한국사회를 붙잡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권세가 바로 엘리트 카르텔이다. 이 시스템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사회적 조직의 가장 최고의 원리를 ‘계급화하며’, 지배와 종속자, 승자와 패자, 내부자와 외부자, 존경받는 사람과 부끄러운 사람 등의 ‘수직적 계급’을 만들어 버리는 권세들을 말한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도 경제적 계급이 존재하는 나라다.

25. 예수는 개별적인 사탄의 세력과 대면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이고 정치적 권세와도 대면하셨고, ‘권세와 사회적 세계에서의 소외의 구조’의 영성에 도전하셨다. 이제 교회는 엘리트 카르텔의 영향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해야 한다.

 

 

26. 엘리트 카르텔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교인에게 예수의 밥상공동체와 십자가 신학을 가르쳐야 한다. 정치적 설교도 설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독교 전통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사회적 지평에서 복음을 해석해야 한다.

27. 교회는 세상의 권세에 저항하면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복음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재통합의 효과를 잊어버렸다. 따라서 십자가 신학을 말해야 한다. 예수의 밥상공동체를 말해야 한다. 죄인이라고 정죄를 당하면서 버림받은 사람과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예수와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28. 한국 교회가 예수의 정신을 갖는다면 나 자신만 잘 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것이다. 사회의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일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29. 지금 당장 내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자산 가치를 높여줄 정치인이 아닌 한국사회 구성원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투표를 던질 수 있는 시민들이 교회를 통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30. 한국 교회가 한국사회의 한계점들을 바르게 인식하고, 극복하는 일에 헌신하게 된다면 한국사회는 교회를 통해 더 발전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한국 교회는 정치적 설교를 해야 한다.

31. 정치적 설교에는 언제나 비폭력의 저항을 강조해야 한다. 기독교의 비폭력 저항은 십자가와 부활이 그 중심에 흐르고 있어야 한다.

32.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독교인의 참된 모습이다. 정치적 설교는 바로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정체적 설교는 세대별로 다르게 변해야 한다. 체제 비판이 중요하지만 체제 비판만으로 현대사회를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33. 정치적 설교에서는 모든 세대가 추구할 수 있는 성서적 가치를 우선 말해야 한다. 엘리트 카르텔ㅏ의 문제의 심각성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교를 다룬다면 한국사회는 한국 교회 강단을 통해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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