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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개혁주의 예배는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예배"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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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연구(5) * 


 

서창원 교수, 예장합동 ‘2014 개혁주의신학대회’에서 강조

 

2014년 8월 22일 기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이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말씀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를 통제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예배’다.”
 
예장 합동총회가 지난 21일 오전 10시30분 삼일교회(송태근 목사)에서 ‘21C 개혁신학의 개혁의 길을 묻는다:예배학의 개혁신학적 이해와 목회적 적용’을 주제로 개최한 ‘2014 총회개혁주의 신학대회’(4차 서울경기)에 강사로 참여한 서창원 교수(총신대 신대원)가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개혁주의 예배신학’을 주제로 발표한 서창원 교수의 발제 내용을 ‘Q&A’ 문답형식으로 정리해봤다.

 

 

[Q] 현대 교회 예배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A] 첫째, 현대 교회의 예배는 과거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와의 연속성이 결여돼 있는 전혀 새로운 예배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없었던 소위 열린 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 형태가 기존 예배와의 분리 형태로 번져가고 있다.

각종 전도집회 혹은 부흥회와 같은 집회의 특성은 음악과 악기 사용에 대한 강조, 죄인 회개를 위한 초청 메시지와 전파되는 메시지를 듣고 믿고 작정한 자들이 강단 앞으로 나오라는 제단초청에 있다. 이와 같은 집회의 주 목적은 교인 생산이지 회개한 심령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서 올바로 섬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위험한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견지해오고 있는 구원론의 무용화 또는 성경적인 교회론의 파괴를 조장하는 요소들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예배가 실험의 대상인가? 청년 예배와 일반적인 예배로의 분리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과거에 집회형태로 모이던 것이 이제는 버젓이 예배로 둔갑한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전무하고 대부분 교세확장의 한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교회가 그동안 강조해 온 절대적 가치를 무시하고, 상대주의적 가치관에 치중되어서 심지어 성적 구분과 결혼관, 진리와 비진리, 참과 거짓,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상이다.
 
셋째, 구약에서의 가르침보다 신약에서의 가르침, 율법보다 은혜를, 의보다 긍휼을 더 중시하는 경향, 형식을 타파하고 예배자의 임의로운 선택에 맞추는 자유분방함이 예배의식에 영향을 주어 신학적 및 실천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Q] 현상적인 예배현상을 제대로 분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성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과 내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구약에서의 하나님과 신약에서의 하나님이 다른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신구약 성경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그 예배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인간이 창조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높이 들어낼 수 있는 방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표출되는 예배와 지음받은 것들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의 신비는 하나님과의 교통에서만 성취된다. 즉, 예배를 통한 신비로운 창조주와의 교통이 노동의 신성함을 유지하게 하고, 그 뜻하신 바를 달성하게 한다.
 
[Q]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인가? 우리의 정성과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닌가?
 
[A] 성경의 교훈, 혹은 하나님의 뜻은 예배의 형식과 내용이 반드시 사람들이 고안해 낸 무엇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에 근거한 것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예배 역시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든, 또 경제 규모가 어떠하든 헛된 인간들의 종교적 욕구충족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경의 충족성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예배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는 무엇인가?
 
[A] 우리는 예배의 대상자가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십계명은 인간이 누구를 경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경배할 것인지 규정하고 있다. 예배의 대상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경외하는 자가 됐다. 그러므로 지음받은 존재이며, 무엇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만을 경외함이 마땅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내는 최고의 방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음을 받았고, 구속함을 받은 인간 누구도 높임을 받는 말이나 행위는 용납해서는 안된다.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경배의 대상자가 아니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오직 그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Q] 예배방식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A] 십계명은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는 명령은 예배의 내용과 동기 및 목적이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답과 아비후의 최후는 오직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는 다른 불로 분향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감이 예배자의 임의적 선택이나 결단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자들은 그에게 나아가는 방도를 예배자의 임의대로 하지 않는다. 더욱이 예배자의 안목에 따라 예배 성공의 여부를 가늠한다고 헛소리 하지 않는다.
 
십계명의 제2계명을 주목해야 한다. 2계명은 세 가지 요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이 통제해야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를 주관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말씀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를 통제해야 한다. 셋째,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지하심과 엄숙하심은 그 분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시는 그 분의 위협들 속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만이 예배방식을 규정할 수 있고, 그 잣대 또한 기록된 계시의 말씀 안에서 찾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그대로 수용했다. 말씀에 기초한 예배의 규정적 원리에 따른 예배 모범은 보편성과 공교회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편이다.

 

 

[Q]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예배신학이 제시하는 예배요소는 무엇인가?
 
[A] 성경읽기와 말씀선포, 성경적 기도와 성경적 찬송의 회복, 성례(세례와 성찬) 거행, 헌금, 축복선언 등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은 철저하게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한 분임을 드러내는 방식이어야 하며, 온 백성들 중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예배 참여자들의 자기 정성과 헌신의 분출은 헛된 예배가 되게 할 뿐이다.
 
신학과 예배는 분리할 수 없다. 성경에 충실하고자 하는 개혁신학은 개혁교회의 예배를 규정한다. 신학을 무시한 예배형태는 뿌리 없는 나무다.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을 인정하는 겸손과 온유로,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는 예배이어야 한다.
 
작금의 한국 교회처럼 예배의 다양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성경적 예배의 회복이야 말로 교회 개혁의 길잡이이며, 성도의 교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신령한 은혜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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