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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로마가톨릭 마리아론, ‘신심’의 산물일 뿐 성경적 근거 없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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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이상웅 교수,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비판

 

2014년 10월 13일 기사

 

“마리아는 우리 인간들 중에 가장 탁월한 믿음의 헌신을 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리아론은 전통과 성도들의 일반적 신심에 근거해 가톨릭 교황들이 결정한 교의들로써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이상웅 교수(총신대)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주창하는 교의들 가운데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비판되어졌던 것들이 많이 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사소한 변화는 있었지만 근본젃인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바르게 파악하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로마가톨릭은 성경과 전통의 이중 권위, 교황권의 수위와 무류성, 연옥설과 면죄부, 세미 펠라기우스적인 구원관 등 개신교회와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지만 로마가톨릭의 ‘마리아론’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신학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 개혁신학회가 지난 11일 오전 11시 총신대 제2종합관에서 ‘개혁신학과 로마가톨릭주의’를 주제로 가을학술대회를 개최한 자리에 발제자로 참여했던 이상웅 교수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본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을 주제로 발표하며 ‘마리아론’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신학적 입장에서 비판했다.

 

 

 

다음은 이상웅 박사의 발제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본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 이상웅 박사(총신대)

 

 

 

마리아론의 기본 4대 교리는 △마리아의 동정성 △마리아의 신적 모성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원죄로부터 면제된 무흠수태) △마리아의 승천교의다. 또한 가톨릭에서 마리아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한국가톨릭교회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펴낸 ‘올바른 성모신심’에 의하면 마리아에 관한 주요 교리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등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론의 권위자인 조규만 주교 역시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로서 이상의 네 가지 사항을 말한다.
 

 

 

마리아의 신적모성의 교의

 

첫 번째 동정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가톨릭은 ‘천주의 성모’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낳은 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함)라고 하는 것이다. 조규만 주교(마리아, 은총의 어머니: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8)에 따르면 이와 같은 명칭을 마리아에게 처음 사용한 교부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아타나시우스 등이다.
 

그러다가 네스토리우스에 의해서 이 호칭을 마리아에게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마리아는 단지 그리스도의 인성만 낳았으므로 그리스도를 낳은 자가 적합한 표기”라고 주장하다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과 논쟁에 불이 붙게 됐다.
 
그 결과 431년 소집된 에베소공의회는 키릴의 입장을 받아들여 신경에 반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교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성을 따라서는 동정녀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에게서 출생했다”라는 구절을 신경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은 자, 즉 하나님의 어머니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로마가톨릭은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신적 모성’ 교의가 의미하는 바는 결코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가, 여신이라든가,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래한다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조규만 교수는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고 교의적 의미를 설명한다. 개혁주의교회는 에베소회의와 칼케돈회의의 결정을 성경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호칭을 견강부화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인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즉, 마리아가 잉태한 분이 단지 죽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에서 내 주의 모친 혹은 초대교회 신경이 채용한대로 ‘데오톨로스’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이 용어를 근거로 해서 마리아에 대해 다양한 호칭들(공동구속자, 공동중개자)과 특권들, 다른 마리아 교의들을 추가해 나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이 호칭에 근거해 “예수의 인격적인 면모에서 마리아의 인격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비판해야 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 교의

 

로마가톨릭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마리아론의 두 번째 교의는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 이전까지 뿐 아니라 출산 중에도, 그리고 평생에 동정녀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의 출산 이전 뿐 아니라 출산중과 출산 이후 평생동안 동정녀였다고 하는 교의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첫 아들”이라고 호칭하거나(눅 2:7) 요셉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마 1:25)고 명시허가나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마 13:55, 막 3:31~35).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설교되듯이 이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요셉과의 사이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서 낳은 자녀들이라고 한다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 교의는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톨릭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자기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신 사건(요 19:25~27)을 들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한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의 신학적 의미로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으로 이해하고, 평생 동정성을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온전한 봉헌’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헌신은 교회론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도 지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이러한 교의가 성경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앙의 조항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되는”(마 19:12) 가능성도 인정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제도와 부부 간의 성을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우리 개혁교회는 바빙크의 명쾌한 신학적 지적대로 마리아의 평생동정성에 대산 소신이 경건을 이유로 수용할만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조항은 아니며 그 어떤 경우에도 마리아에 의해 서약의 방식으로 취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의

 

1854년 피우스 9세의 회칙에 의해 이 교의는 최종 결정돼 선포됐다.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도 아무런 이의 없이 통과됨으로써 이 교의는 가톨릭교회의 정통교의 중 하나로 확정됐다. 무염시태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에 원죄의 모든 오점으로부터 자유가 보존됐다는 것을 지지하는 교의’를 말한다.
 
피우스 9세는 1848년에 신학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무염시태 교의를 연구하게 했고, 그 결과 17명이 찬성하고 3명만 반대했다. 그리고 603명의 주교들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56명만 반대했다. 주교들의 90% 이상이 찬성했기 때문에 피우스 9세는 1854년 회칙을 통해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신학자들도 이 교의가 성경에 직접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과 역사 가운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초대교부들 가운데는 이러한 사상을 직접적으로 주장한 이도 없었다. 특히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주장했던 아우구스티누스조차도 이 교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적 교의로 자리 잡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 교의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것에 가톨릭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위해서 그 분의 거처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며,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감에 근거해 교의로 정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인간이 원지를 갖고 태어나며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만이 우리를 원죄의 사슬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점을 성경적인 교리라고 믿고, 이 점에서 마리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가톨릭신자로 있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윌리엄 웹스터는 무염시태 교의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고, 초대교회에는 이단들이 주장한 교리이며, 오직 근거가 있다면 소위 ‘무오한’ 교황의 회칙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가톨릭 학자들이 자랑삼아 말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무염시태 신앙은 오래되고 널리 용인된 신자들의 신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리아 몽소승천 교의

 

로마가톨릭 교도권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된 무염시태 교리를 결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랜 논의 끝에 피우스 12세는 1950년에 발표한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나님’을 통해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몽소승천 교의는 “원죄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상 삶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고, 초대 교부들 가운데서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교도권이나 학자들은 중세의 다양한 문헌들과 오래된 가톨릭 신자들의 일반적 신심에 호소하면서 이 교의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리아 몽소승천 교의는 성경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사실상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중세의 위경적인 문헌들에서나 발견되지 초대 교부들이나 심지어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사상이다.
 
겔라시우스나 호르미시다스 같은 교황들은 그런 문헌들을 이단적인 문헌으로 정죄한 바가 있다. 따라서 마리아 승천 교의는 성경적인 교의가 아니라고 우리는 반박해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의 마지막 생애에 대해서나 죽음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마리아가 우리 모든 인간과 동일하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으로서 원죄를 타고 났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는 마리아 역시도 모든 아담의 후손들과 동일한다고 봐야 한다. 결국 육체적 사망과 더불어 어떤 형태이든지 매장돼 그 육신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하나님을 낳은 자라는 칭호는 에베소공의회(431년)와 칼케돈공의회(451년)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이는 칭호이지만 그러한 칭호를 사용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의 몸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 분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무염시태나 몽소승천 교의는 전혀 성경적인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초기 교부들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써 로마가톨릭 신자들의 오래된 성모신심에서 비롯돼 가톨릭 교도권이 교회의 교의로 결정하고, 권위를 부여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리아의 중재자 지위와 역할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의 4대 기본교리 외에도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가톨릭에 의해서 강조된 마리아의 사역은 바로 ‘중재자’, 혹은 ‘공동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가톨릭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중보자)이심을 힘써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재자로서의 마리에 대한 신앙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극단적인 입장과 중용적인 입장 등을 보게 된다. 극단적인 입장이란 가톨릭에서 표현하는 대로 마리아숭배다. 예를 들면 중세 말 혼란스럽던 시기에 마리아에게 기적적인 도움을 청하며 그를 여신으로 숭배했던 민심의 경우다.
 
사실 가톨릭교회는 중재자 마리아 사상 혹은 신념이 초기부터 형성돼 왔다. 그들의 성경적 근거는 가나혼인잔치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마리아의 역할(요 2:1~12)이다. 또한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120문도 속에 마리아가 동참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들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 중에 한 일들을 가리킬 뿐이지, 마리아가 몽소승천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는 사상의 근거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 근세에 이르러서도 여러 가톨릭 신학자들과 교도권에 있는 자들에 의해 마리아의 중재사상은 강화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포했고, 또한 ‘하늘의 여왕’, 혹은 천지의 모후로서 성자와 함께 교회를 다스린다고 선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교회헌장’에 따르면 “마리아는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성모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받으신다 …,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 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 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와 표지로서 빛나고 계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등으로 선언하고 있다.
 
더군다나 마리아의 중재권과 그에 의지한 마리아 공경과 신심은 마리아를 위한 여러 전례들 속에 그리고 가톨릭에서 주기도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성모송(아베 마리아)에 간단명료하게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성무님의 뜻에 따른 묵주의 9일 기도, 성바오로수도회 엮음).
 
하지만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마리아중재자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보자되심을 명백히 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위반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다. 물론 로마가톨릭 교도권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유일중재자 되심에 대해 분명하게 인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공식적인 문헌들을 세심하게 다 살펴보고, 그들의 실제적인 마리아 공경의 내용을 관찰해본다면 마리아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 그 위상이 높여져 있으며, 때로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자비롭고 은혜로운 중재자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가나혼인 잔치에서 곤경에 처한 혼인 잔치집과 그리스도 사이에 중재를 한 역사적 사건이나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마리아의 모습을 근거로 해서 마리아가 죽고 난 후에 하늘로 올려져 그리스도의 보좌 옆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며 우리에게 은혜의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소위 가톨릭이 말하는 성자의 통공은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성도들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지, 죽은 마리아와 성자들과 현재 지상에 남아 있는 신자들이 서로 교제하고 그들의 잉여공적을 힘입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죽은 성도들과 지상에 남아 있는 성도들 사이에 서로 직접 교제해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준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교제 혹은 교통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마리아에게 돌려진 여러 가지 존칭들(하늘의 모후, 교회의 어머니, 공동 구속자, 공동 중재자, 은혜들의 중재자 등)과 중재자 역할에 대한 교의나 공적 결정들이 대부분 성경적인 근거가 아니라 교부들이나 중세 스콜라신학자들, 그리고 근현대의 가톨릭 신학자들과 교황들의 결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간파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교의화 작업에 있어서 기존 가톨릭 신자들의 신심 내지는 공통 의식을 중시한 결과일 때도 적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즉,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 대한 일반 신자들의 강력한 신심에서 받아들여졌던 바를 교의로 결정했다라고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은 오직 성경이라는 규범을 따르지 않고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서 교의학적 규범을 찾았던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신학과 유사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또한 한스 큉에 의하면 가톨릭의 마리아론은 결국 교황중심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한다면 하나님의 어머니 혹은 하나님을 낳은 자라고 하는 표현은 개신교도 인정하는 공의회들에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공의회가 가졌던 원 의미를 훼손함 없이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평생동정녀 교의는 경건을 위해서 필요할진 모르나 구속력 있게 신앙의 조항으로 삼는 일은 과도한 처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염시태나 몽소승천 교의의 경우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이 전통과 일반적 신심에 근거해 가톨릭 교황들이 결정한 교의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솔라 스크립투라의 원칙에 근거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우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우리의 찬양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한다. 기도 역시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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