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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뱅의 삼위일체론, 신앙과 신학 견고하게 할 수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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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뱅의 삼위일체론, 신앙과 신학 견고하게 할 수 있다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16:43

깔뱅의 관계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연구 / 최윤배 교수(장신대, 조직신학) / 2014년 11월 15일 기사

 

깔뱅의 관계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연구 / 최윤배 박사

깔뱅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의 제1권 '창조주에 대한 인식'에는 그의 신론이 전개된다. 기독교 강요의 제1권은 18장으로 구성돼 있다. 깔뱅은 제1장부터 12장까지는 신 인식론과 계시론은, 제13장은 삼위일체론을, 제14장과 15장은 창조론을, 제16장부터 18장까지는 섭리론을 취급하고 있다.

   
▲ 최윤배 교수(장신대)
특히 깔뱅은 제1권 제13장의 제목을 "우리는 세 위격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한 본체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 속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로 붙였다. 삼위일체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깔뱅은 먼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중요한 두 가지 본질로서 하나님의 무한성과 영성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불가해성 및 초월성과 내재성을 언급하는 가운데, 범신론, 마니교의 이원론, 신인동형동성론을 비판하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방법으로서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적응 사상을 소개한다.

깔뱅이 삼위일체론은 반삼위일체론자들, 특히 세르베투스를 통해서 발전됐지만 그의 삼위일체론은 근본적으로 그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초기에는 삼위일체론의 신학 용어를 중심으로 까롤리와 논쟁했고, 그의 후기에는 주로 세르베투스와의 논쟁을 통해서 어느 종교개혁자들보다도 삼위일체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깔뱅은 올바른 고대교회의 전통과 성경을 근거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본질, 세 인(위)격들을 주장한다. 칼빈은 "내가 인(위)격(persona)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essentia) 안의 실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른 실재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전달할 수 없는 고유성을 통해서 구별된다"고 말한다.

또한 깔뱅은 각 인(위)격, 곧 실재(subsistentia)가 갖고 있는 고유성의 내용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그 구별에 대해 묵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성경이 말하는 구별은 다음과 같다. 곧, 성부는 일의 시초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이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으며, 그러나 성령은 그와 같은 모든 행동의 능력과 효력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했다.

결국 깔뱅의 경우, 성부와 성자, 성령 각각의 인(위)격은 하나님의 본질과 함께 다른 인(위)격이 갖고 있지 않고, 다른 인(위)격에게 양도할 수 없는 자신의 '유일한 고유성'을 갖고 있다.

깔뱅은 삼위일체의 삼위성을 무시하거나 희생시킨 사벨리우스를 중심한 양태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의 일체성을 무시하거나 희생시킨 아리우스를 비롯한 종속론을 비판했다. 그는 삼위일체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의 한 본질을 강하게 주장하고, 성부와 성자, 성령 각 인(위)격에 공통적으로 신성과 자존성을 부여하고, '본질수여자'(essentiator) 되심을 인정하고, "한 하나님과 한 신앙과 한 세례의 세 가지"를 신앙경험과 교회예전 차원에서 상호 인과적으로 관계시킴으로써 삼신론이나 종속론을 반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깔뱅은 삼위일체의 삼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인(위)격에도 양도할 수 없고, 각 인(위)격만이 갖는 고유성을 통해서 차별화되는 삼위의 구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양태론을 반박할 수 있었다.

박경수 박사(장신대)는 깔뱅의 '관계의 삼위일체론'에 대해 심도 있게 논증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깔뱅은 삼위의 구별과 상호 관계에 집중하기 전에 먼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깔뱅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논증한 뒤, 곧 이어서 성령의 사역과 위격을 통해 성령의 신성을 증명한다.

깔뱅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관계에서는 '확실한 구별', 즉 "구별이지, 분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깔뱅은 아들이 아버지와 구별되며, 또한 아들이 성령과 구별됨을 성경 구절들을 통해 논증한다.

깔뱅은 삼위 사이의 구별을 소위 삼위일체의 흔적을 통해서 증명하려는 어떤 '존재유비'의 시도도 전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삼위 사이의 구별을 묵과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말한다. 깔뱅에 의하면 본질이 아니라 질서와 경륜의 관점에서 삼위 간의 순서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것이다.

깔뱅은 "왜냐하면 각 인간의 마음은 아버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그로부터 나온 지혜를, 다음에 그 계획의 작정을 수행하시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들은 오직 아버지로부터만 나오고, 영(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동시에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깔뱅은 삼위 간의 구별은 하나님의 일체성과 모순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일체성을 증명한다. 그는 삼위성과 일체성의 밀접한 관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이 말을 직접 인용한다. 깔뱅은 "그리스도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으로 불리시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로 불리신다. 또한 아버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으로 불리시고, 아들과의 관게에서 아버지로 불리신다. 그가 아들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불리시는 한, 그는 아들이 아니시며, 그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로 불리시는 한, 그는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불리시고, 그리고 그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아들로 불리시는 한, 그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한다.

깔뱅의 삼위일체론, 특히 관계적 삼위일체론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유익하다. 첫째, 깔뱅의 삼위일체론은 성서주석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는 이미 기독교 강요(1536) 초판에서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성경에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라고 말했다. 성경이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고, 아들이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성령이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할 때, 동일한 성경이 어떤 불명료한 주장도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둘째, 깔뱅의 삼위일체론은 교회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연합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다. 비록 깔뱅은 고대 교부들의 주장들과 고대 에큐메니칼 신조들조차도 성경주석적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고찰했지만 고대 교부들의 주장들과 에큐메니칼 신조들이 성경에 일치하는 한, 고대 교회 전통들을 존중하고 발전시켰으며, 특별히 서방교회 교부의 문헌이나 동방 교부의 문헌을 편식하지 않고, 공히 수용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정신을 발휘했다.

셋째, 깔뱅의 삼위일체론은 교회론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다. 깔뱅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의 믿음과 교회의 세례를 밀접하게 결부시킨다. 깔뱅은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증거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천 가지와 동일하다. 바울은 하나님과 믿음과 세례, 이 세 가지를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이 하나로부터 다른 것으로 추론해 갈 수 있게 한다(엡 4장). 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사실로부터 하나님도 한 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세례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믿음이 하나인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세례의 실천이 중단된 적은 없을 것이다. 세례는 교회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져왔고, 베풀어지고 있다.

넷째, 깔뱅의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다. 박경수 박사는 "칼뱅에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는 사색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에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는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관된 실천적 교리였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깔뱅의 삼위일체론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공동체적 유익을 우리에게 준다. 최근 몰트만을 비롯해 '사회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의는 이미 보편화된 상황이다. 오늘날 특별히 다양하고도 복잡한 사회적, 공동체적 관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불화와 불통과 억압,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체성이 없는 다양성은 상호 분열을 초래할 수 있고, 다양성이 없는 일체성은 획일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이 두 경우에 인격적인 관계나 교제나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없다. 삼위와 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삼위 간에 가장 인격적인 교제와 소통의 관계를 가지신다. 삼위의 관계 속에 계시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시기를 원하신다. 관계적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 특별히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를 촉진시켜야 할 큰 사명에로 부름을 받고 있다.

한국 교회 대부분은 종교개혁 전통과 개혁신학 전통에 서 있기 때문에 개혁파 종교개혁자 깔뱅의 관계적 삼위일체론은 한국 교회의 뿌리를 재점검해 신앙과 신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한편, 위의 내용은 한국칼빈학회와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가 지난 11월 15일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에서 '칼빈의 유산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진행한 종교개혁신학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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