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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한국교회, 성경적 시간관과 종말론 가르쳐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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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이단 집단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권호덕 박사(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장)

 

“신천지 이만희는 자기들만 옳고 깨끗하다고 여기고, 기성 교회를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점에서 완전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권호덕 박사는 “이만희의 경우 성경을 해석하는 일정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문법적-역사적 해석방법’도 모르고 있다. 그가 성경을 해석한 것을 보면 너무나 난해하고 자의적이고 규칙도 없어 보인다”며 “사실 그의 모든 발언은 학문적인 비판이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발표내용 중에서

1. 모든 이단들이 그러하지만 신천지는 기성교회를 혹평하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한다. 따라서 먼저 우리는 이들이 기성교회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만희는 그의 저서에서 자주 기성교회는 타락하고 부패하여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고 비판하며 참 목자를 따를 것을 강조한다.

 

2.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8장 8-9절의 ‘둘째 나팔과 불붙는 큰 산과 피가 된 바다와 배’를 설명하면서 성도들이 거짓 교리를 받아들여 죽임을 당했다고 비판한다. 요한계시록 11:15-19의 ‘일곱째 나팔과 성전 안에 있는 큰 우박’을 설명하면서 이방목자들이 백성들을 죽였다고 비판한다.

 

기존 교회의 지도자들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계 13:11-15)으로 본다. 요한계시록 13:16-18에 나오는 두 짐승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두 거짓 목자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들이 교권자임을 지적한다. 그 외에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14:4에 나오는 ‘여자’를 17장에 나오는 음녀로 보고 소위 타락한 기성 교회 목사와 연관시킨다. 요한계시록 17:1-4에 나오는 음녀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주관하는 목자로서 제사장(총회장: 원장)의 지위에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18:12-14의 ‘바벨론의 상품’을 설명하면서 기성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모두 타락한 세속 물품임을 강조한다.

 

3. 역사속에 등장한 모든 이단들의 공통점은 성경을 자연인의 사고방식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한 점과 그들이 선호하거나 추구하는 한 주제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신천지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신천지의 창립한 이만희의 저서나 신천지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분석하면 이들이 어디에 쏠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4.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책의 종교라는 점이다. 즉 우상숭배 같은 것은 지양하고 성경을 읽고 배우며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데 성도의 삶이 쏠려 있다. 교회사는 성경관에 따라 여러 가지 교단으로 나누어지고 각 공동체의 특징을 드러낸다. 어떤 한 이단들의 정체성을 규명할 때도 그들의 성경관을 점검하게 되면 그들의 문제점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신천지는 어떤 성경관을 지니고 있을까?


‘신천지’는 성경을 긍정적인 것을 본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 알려주시기 위해 기록한 것이 성경 말씀이다” 다음과 같은 발언도 여기에 속한다. “성도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획한 뜻을 읽는 것이다”이들은 심지어 “성경은 기록되기 이전에는 본래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요 1:1)”라고 말하며 성경을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이들은 성경의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성경의 내용은 크게 역사, 교훈, 예언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사요 교훈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예언은 앞으로 이루어질 장래사이다. 성경에서 본 바 역사는 지나간 과거사에 불과하나 예언이 응한 때는 과거의 역사가 거울이 된다.

 

그 이유는 나타날 종말의 사건이 아담 때, 노아 때, 롯 때, 모세 때, 초림 예수님 때와 같다고 한 것처럼 장래에 나타날 사건이 과거의 사건을 빙자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이 응한다고 가르친다. “역사, 교훈, 예언 중 예언은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로 기록되었고 이룰 때는 이 순리대로 응한다”문제는 이만희가 성경 전체를 균형 있게 연구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관심사를 중심으로 성경을 다룬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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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만희가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성경 본문을 열거한 다음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이만희는 이 구절에서 종말과 연관된 중요한 단어가 있으면 이와 연관된 성경의 이곳 저것에서 내용을 끌어들여 해석을 시도한다. 그 다음 그는 이 본문과 연관되는 참조 성경 구절을 열거하고 마지막으로 이 참조 성경구절을 참조하여 나름대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그에게서 본문 비평이나 문헌 비판 같은 것은 물론 문법적 역사적 해석방법을 기대할 수 없다.

 

6. 이만희는 성경에 나오는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이 미래 곧 자기 시대에 이루질 내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석한다. 이만희는 자기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주제를 위해서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자의적으로 인용하여 그것을 합리화 하는 해석을 시도한다.

 

7. 이만희에게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삼위일체론이 있을까? 우선 그가 사용하는 삼위일체 용어만 보아도 이들의 삼위일체론이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성령’이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저서 ‘계시’의 개요 부분에서 초월계와 자연계를 영계와 육계로 나누고 영계를 하나님과 사단의 세계로 니눈다.그는 사단에 속한 악령에 대한 대칭으로서 하나님께 속한 성령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의 성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8. 이만희가 사용하는 ‘하나님’, ‘예수’ 그리고 ‘성령’ 사이의 관계를 보면 그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예수와 성령을 동일한 분으로 본다. 이만희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 또한 삼위는 되나 일체는 안 된다”라고 못 박는다. 이만희는 이 ‘이기는 자’의 위상과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께서 ‘이긴 자’에게 임하여 하나 되어 성전의 보좌에 앉은 것이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으로 보고 이 ‘이긴 자’를 예수와 동등하게 취급한다.

 

9. 이만희는 인간 창조를 영적 창조에 예속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만희가 영적인 세계를 현상 세계인 육적 세계 배후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본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발언은 플라톤의 현상계와 이데아 세계를 생각나게 한다. 만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 창조 대상 내용이 육이 아니요 영이요 속사람이라고 주장한다.

 

10. 이만희는 창조된 인간을 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만희가 인간의 삼분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이만희는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일을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을 설명하면서 삼분설을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11. 이만희는 죄를 ‘배도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배도를 도(道)의 말씀에서 떠나 다른 교리에로 가거나 다른 비진리의 길을 가는 것 또는 언약한 자가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을 배도로 설명한다.이만희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다며 섬겨오다가 하나님을 떠나 뱀 말을 받아들이고 따라간 것을 배도라고 지적한다.

 

 

12.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다루는 인간 이해 곧 ‘육신에 따라’ 사는 인간과 ‘성령에 따라’ 사는 인간 그리고 ‘육 안에’ 있는 인간 등 세 가지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 결과 인간과 성령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 구원 문제에서 펠라기우스주의 오류에 빠지는 것 같다.


13. 이만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이해했을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한 분으로 구약에 예언하신 하나님이 빠른 구름을 타고(사 19:1) 예수님께 임하여 약속하신 것을 함께 이루신 분이(요 19:30)라고 한다.

 

14. 동시에 이만희는 예수의 육체를 부인함을 통해 가현설적인 성향도 보인다. 이만희는 계시록 1장에서 사도요한에게 지시한 예수님이 육체가 아니라 영이며 예수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 성령은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이 아니라 악령에 대칭되는 성령을 의미한다.

 

15. 이만희는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설명하면서 거기에 나오는 ‘이긴자’를 “하나님 나라의 교적부에 등록된 사람이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대언의 목자이며,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할 때(계 3:1-6)(71). 또 이만희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설명하면서(계 3:7-13) 여기서 ‘이기는 자’(12절)가 특별한 인물임을 지적한다.

 

그는 말하기를 이 ‘이긴 자’는 예수님의 새 이름이요 새 이스라엘이며, 새 예루살렘이고 동시에 그가 새 예루살렘의 목자라고 한다(75).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이 ‘이긴자’가 출현할 영적 새 예루살렘의 때라고 한다(76).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 시작된 신천지 공동체의 그 지도자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16. 이만희는 말세에 나타날 한 목자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는 신약에 예언하신 예수님이 구름 타고 어떤 한 사람 곧 ‘이긴자’(사도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에게 임하여 자기가 약속한 것을 이룬다고 한다(15). 이만희는 이 목자를 ‘사도요한 격인 목자’라고 표현한다(21,) 그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받은 목자가 아니고, 성경 66권 안의 여러 선지자들과 같이 직접 성령으로부터 계시를 받은(계 10:8-11, 계 22:6-8) 대언의 목자라고 한다.(21).

 

17.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7장의 ‘인 맞은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 144,000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144,000인은 오늘날 다시 창조될 영적 새 이스라엘(142)이라고 해석한다. 또 그는 요한계시록 7장의 ‘흰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새이스라엘의 구성원을 말한다.

 

18. 이만희는 자기들만 옳고 깨끗하다고 여기고 기성교회를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점에서 완전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만희의 경우 성경을 해석하는 일정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문법적-역사적 해석방법’도 모르고 있다.

 

그가 성경을 해석 것을 보면 너무나 난해하고 자의적고 규칙도 없어 보인다. 오직 자기의 관심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관계된다고 생각되는 모든 성경구절을 끌어들인다. 이를 위해 그는 소위 비유법과 알레고리해석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의 이런 성경 해석방법은 그의 발언 전반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도록 만든다. 사실 그의 모든 발언은 학문적인 비판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만희는 정통 기독교 삼위일체론을 모른다. 그가 설명하는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로 볼 수 있고 다만 자기 고유의 삼위일체론을 말하는데 성령 자리에 ‘이긴 자’를 포함시켜 자기를 은연중에 신격화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만희는 하나님이 인간의 영 내지 속사람을 창조한 것이지 육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가 인간을 영들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을 악하다고 보고 영적인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영지주의적인 성향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만희에게는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의 몸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것, 인간은 성령의 추진으로 그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성경적인 성령론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문제를 규명할 때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성령을 좇아’(kata pneuma), ‘육신을 좇아’(kata sarka), ‘육신 안에’(en sarki) 같은 용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만희는 죄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차원에서 정의 내리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설명한다. 배도론을 설명할 때에 인간에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다는 것보다는 비진리의 길을 간 것을 배도로 설명한다. 이만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인성과 참신성을 부인하고 역동적인 군주론에 근거한 예수를 말한다.

 

즉 예수는 단순히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만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기까지 순종함을 통해 의를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내용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진리를 깨닫고 앎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기서 영지주의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바른 성령론이 없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펠라기우적인 성향이 많이 드러난다.

이만희가 신천지를 설명하면서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인 것은 사도 요한 격인 목자이다. 이 목자는 하나님의 장막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 새 땅 새 이스라엘의 144,000인에게도 내려올 때 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368). 문제는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19. 이 모든 문제점들은 바른 성경 해석방법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질문이 생긴다. 왜 이만희 사상에 이렇게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이다.

 

성경의 인간은 과거의 한 시점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눈길을 향하도록 하는가 하면, 항상 미래 한 시점 곧 예수의 재림 시점으로 눈길을 향하게 한다. 과거 지향적인 성향과 미래 지향적인 성향은 현재의 영적인 긴장을 일으켜 타락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동안 기성교회 목회 지도자들은 성경적인 시간관 내지 종말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현실중심적인 축복을 추구하여 성경 전체를 균형 있게 설교하지 못했다. 성경은 이만희 보다 더욱 체계적이며 설득적인 종말론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인간이란 시대가 불안하면 자기 미래를 보장해줄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성향이 있다. 성경은 지금 이 시대를 교회의 비하 내지 고난 받는 시대로 가르친다. 이 고난 속에서 미래의 한 시점을 바라보게 만들어 소망을 가지게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성도들을 방치해 놓은 것이다.

 

* 위 내용은 기독교학술원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2012년 6월 1일 오후 4시 기독교학술원 세미나실에서 ‘신천지 교리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주제로 개최한 ‘제22회 월례발표회’ 발표자료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단체의 발표문을 참고하면 된다.

 

권호덕, “신천지 이단 집단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기독교학술원-제22회 월례발표회, 2012년 6월1일, 서울:기독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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