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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예배 후의 예배’가 진짜 …예배와 삶 분리하는 이원론 극복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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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경 속의 예배 갱신과 본질 회복:개혁신학 관점에서

/ 오태균 박사(총신대)

 

“예배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선포하고, 상연하고, 그리고 노래하는 것이다. 예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또한 예배는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예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다.”

오태균은 “예배 갱신은 단지 외형적인 모습을 변모시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들의 삶의 지표가 되는 성경에서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 진정한 갱신의 출발점이 된다”며 “성경의 지평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지평, 교회 전통의 지평,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 지평 등을 고려해야 하는 다중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훌륭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적, 역사적, 목회적 측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간략하게나마 핵심적인 이슈들을 점검하고 한국 교회 예배 갱신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며 연구의 취지를 설명했다.

 

# 발표내용 중에서

1. 1643~1648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근거해 만들어진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을 보면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분명 예배에 대한 조항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와 지혜에 근거한 답변이다. 예배의 성공은 신자로서의 성공이여, 예배의 실패는 어김없이 신앙생활의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2. 신약성경에서의 헬라어 단어 ‘proskuein’는 절하다, 경배하다, 예배하다 등으로 번역돼 있는데, 이 단어는 사람이나 천사 같이 피조물에게 보이는 행동이 아니며, 더군다나 사탄이나 우상에게 적용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최대의 존중, 최상의 감사, 그리고 최선의 섬김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3. (예배의 정의)예배를 의미하는 영어 worship은 고대영어 weorthscipe에서 유래됐는데 이 역시 최상의 가치, 존겨의 의미를 갖고 있다. 기독교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봉사란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반응, 즉, 감사와 찬양, 봉사와 복종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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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는 감정주의, 엘리트주의, 사람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의 예배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연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5. 현대인은 예배를 통해 나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는 자세보다 예배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열망이 강하다. 이것은 마치 구약에서 최초의 예배인 가인의 예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예배는 창조주이신 그 분 앞에 나아와 자신을 드리는 것이며,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6. (예배의 중요성) 예배는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우리가 창조되고 또한 재창조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다. 둘째,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예배와 관련성이 있다.

 

 

출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모세에게 하신 지속적인 명령, 즉 “그들을 가게하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기리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이중소유권(사 43:1~2)을 주장하신다. 이 이중 소유권의 목적이 바로 예배다. 셋째, 교회의 다양한 기능, 즉 예배, 전도, 교육, 그리고 봉사에서 예배는 중심에 있다. 넷째, 예배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해진다.

 

7. (예배의 성경적 근거) 신약 성경 속의 예배는 크게 4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회당 혹은 성전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둘째, 소위 아가페 혹은 사랑의 만찬이라는 불리는 공동식사를 자주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는 회당에서의 예배가 사라지고 가정에서 모임을 갖게 됐다.

 

셋째, 공동식사 후에는 성만찬을 거행했다. 넷째, 엄격하게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방언과 예언 등과 같은 은사 사역이 모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2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와 네 번째 전통은 사라졌고, 예배와 성찬식만 남게 됐다.

 

8. (초대교회의 예배) 초대교회 교부 이후 예배에서 시와 찬미와 찬양이 교회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어떤 형태로 예배를 드렸는지 역사적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 헬라 문화의 편견 때문에 초대 교회 이후에는 음악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와 찬미와 찬양을 멀리했다. 콘스탄틴 시대의 명설교가 암브로스는 음악의 재능이 있어 찬송가들을 작곡했으며, 5세기에는 교황 고레고리 대제에 의해 교회 음악이 어느 정도 확립됐지만 정작 예배 가운데서 찬송가는 악기 없이 제창으로 드려졌다. 이는 찬송과 세속적인 음악을 구별하려는 의도였다. 어거스틴의 예배관은 종교개혁자들이 예배의 개혁을 외칠 때 성경과 더불어 가장 참조된 신학적 사조다.

 

 

9. (중세기의 예배) 예배의 시간은 길어졌다. 어떤 경우는 3~4시간을 넘었다. 음악이 많이 사용됐고, 기도와 성경의 본문에 리듬을 붙여 노래로 개발했다. 성가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으며, 수많은 가사와 곡을 가진 기도와 찬양이 만들어졌다. 예배는 점차 말과 노래의 청각을 위한 향연장으로 변질됐다.

 

예배는 또한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기쁨을 주기 위해 변해감에 따라 점점 값비싼 예배당이 돼갔다. 중세교회는 예배에서 말씀보다는 성례전이 더 강화됐다. 화체설을 믿었기 때문에 결국 성찬식의 전유물로 전락함으로써 성찬 고유의 의미조차 상실하게 됐다. 결국 예배의 타락은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도전에 직면하게 됐고,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폐단을 개혁하는데,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시행한 것이 바로 예배의 개혁이었다.

 

10. (종교개혁자들의 예배) 개혁자들의 예배 개혁에 관한 공동 관심사는 크게 4가지다. 첫째, 그들은 중세의 미사를 거부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예배를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반복으로 보는 잘못된 예배관 때문이었다. 당시 성도들은 미사를 통해 연옥으로부터 영혼의 해방 등 각종 주술적인 결과들을 기대했다.

 

미사를 통해 구원을 사들이는 수단이 됨에 따라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인 은혜의 성격을 훼손시켰다. 둘째,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거부했다. 셋째, 초대교회부터 예배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말씀의 회복을 주장했다.

 

이미 중세의 미사 속에서는 음악, 예복, 그림 등의 다른 예전 요소들로 인해 말씀의 중심성이 손상된 상태였다. 마지막 네 번째, 에배가 자국말로 드려져야 한다는 점과 예배는 말씀과 성례라는 이중구조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11. 초대교회 예배의 형태는 성전의 전통과 상응하는 성례전과 회당의 전통을 연결하는 말씀이 잘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중세 서방 교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씀보다 성례전을 강조했다. 반면,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을 강조하다보니 성례전이 약화됐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돼 말씀 중심의 개신교 예배의 모습을 갖고 있다.

 

12. (청교도들의 예배) 성직자들은 오늘날의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성찬식 테이블 앞에서 성도들과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죄의 고백과 회개의 시간을 가졌으며, 그 후에 목회자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식을 거행했다.

 

이런 예배 형식은 19세기에 들어와서 성찬식 테이블은 사라졌고,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 그리고 성도들이 다같이 한 자리에 앉게됐다. 18시게이에 가족들이 모여 앉았던 좌석들이 사라지고, 오늘날과 같은 장의자가 등장했다. 즉, 설교자들은 강단에 올라가 설교하고, 성도들은 강대상을 바라보게 된 구조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13. 복음이 한국에 들어올 당시의 무속적 영향 역시 예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땅에서의 축복을 강조하는 신학적 성향은 기독교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라기보다 개개인의 축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오점을 남겼다. 예배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이루고자 하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공적 예배보다 사적인 동기에서 예배를 이용하는 경우에까지 이르렀다.

 

 

14. (탈형식적예배의 기원) 현대 예배형식의 갱신은 가톨릭의 제2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자국어 예배와 문화화 강조에 따라 찬양의 패턴이 전통적인 형태와 리듬을 벗어나 포크송 혹은 팝 스타일의 음악에 맞춘 찬송가들이 도입됐다. 또한 전자오르간 대신에 일상생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타, 플롯, 각종 전자 악기 등이 예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15. 미국에서 탈형식적 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한국 교회의 경배와 찬양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구도작 예배로 소위 열린예배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교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구도자는 불신자라는 용어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도자는 과거에 교회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적어도 구도자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한 때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지만 교회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영적으로는 갈급한 부류의 집단들이다.

 

이들이 교회를 떠났던 이유는 주일 설교가 자신의 삶과 너무 무관하며, 자신들이 참석하는 예배가 지루했으며, 교회에서 헌금을 너무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설교자의 설교는 너무 죄책감을 유발시킨다는 이유 등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예배의 형식은 신학적, 예전적 고려에서가 아니라 목회적, 선교적 성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극 등의 도입이 그 예다.

 

16. (탈형식적 예배의 긍정적 영향) 탈형식적 예배를 시도하는 교회들의 주된 관심은 예배 자체보다는 복음전도에 있다. 탈형식적 예배가 목회적, 선교적 확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나타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으며, 그 욕구를 예배를 통해 표현한다.

 

교회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여러 자질 중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황을 늘 고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탈형식적인 예배는 수동적인 방관자로서의 참여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축제이다.

 

17. (탈형식적 예배에서 고려해야 할 점) 오늘날 예배가 문화를 따라가고, TV프로그램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즐겁게 하고, 종교적 소비주의를 만족시킨다면 이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18. 올바른 예배를 정립하기 위해 첫째, 올바른 예배신학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신학’이란 결코 한 사람, 한 교회의 특정한 성향에 의해 결정될 사항이 아니다.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신학적 원리는 특별계시, 즉 말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 역사를 통해 형성돼 내려온 예배에 대한 이해, 관습,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

 

19. 둘째, 예배에서의 교회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인위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적 기능을 경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영성은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서의 치열한 삶 속에서 경양되기 쉬운 우리의 감정을 억제시키며 우리의 심층적 영성을 일깨운든데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 넷째,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탈형식적 예배의 형태를 취함으로 젊은이들의 문화적 코드를 고려해 예배의 구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선교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현재 실시하는 많은 예배는 미디어 전문가의 눈에는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예배를 갱신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배 인도자는 어느 일정 기간 동안은 예배 인도자로 충분한 교육과정을 거친 후에 현장에서 사역해야 한다.

 

21. 진정한 예배의 갱신은 세속의 요구에 맞춘 예배문 개정이나 새로운 예배공학적 디자인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예배영성의 회복, 예배의 신학적 차원과 이해의 회복이 예배 갱신 운동의 기본과제다.

 

22. (예배의 갱신과 본질 회복의 과제) 첫째, 말씀의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말씀이 말씀되기 위해서는 진리되신 말씀이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는 선지자의 자세로 전해야 한다. 탈형식적 예배를 통해 자칫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로 흐르기 쉬운 현장에서 말씀선포는 선지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탈형식적 예배의 시작에서 성도들에게 지나친 죄책감을 주지 않기 위해 주로 위로설교, 심리적 설교로 성도들의 심령을 ‘feel so good'으로 만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23. 둘째, 성찬이 회복돼야 한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성례전을 ‘보이는 말씀’이라 했다. 예전을 행할 때, 그것은 곧 말씀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찬식을 자주해야 한다.

 

셋째, 축제의 장으로서의 예배가 회복돼야 한다. 오늘날 예배자들은 적극적인 참여자라기 보다는 수동적 태도의 구경꾼, 방관자의 위치에 있다. 예배의 갱신은 온 예배자들이 함께 동참하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예배는 의식이 아닌 생동성과 역동성이 넘치는 축제다.

 

24. 넷째, 예배 후의 예배에 대한 강조다. 예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자 가장 큰 오해는 이를 단순한 종교의식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성도들은 예배를 일상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워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한 왜곡된 해석과 확대된 해석으로 사람들은 예배를 잘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복주신다는 기복적인 신앙에서 기인된다. 설교자는 예배당을 나서는 성도들에게 “이제부터 여러분의 진정한 예배가 시작됩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주일예배를 마무리해야 한다. 주일예배는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25. 성경적 예배는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 공동체,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현재 속에서 과거, 미래 모두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 위 내용은 한국기독교정보학회가 지난 2009년 5월 23일 오전 10시 총신대(제1종합관 세미나실)에서 ‘디지털 환경 속의 예배와 교육’을 주제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의 발표논문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단체의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오태균, “디지털 환경 속의 예배 갱신과 본질 회복:개혁신학 관점에서”, 한국기독교정보학회-2019년 춘계학술대회, 2009년 5월23일, 서울:총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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