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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교회③> 이혼,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본문

성경과 신학

<고난받는 교회③> 이혼,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16:23

이혼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 소기천 교수 / 2014년 10월 22일 기사

 

현재 한국 교회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 사실 개혁은 고난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개혁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가 현재 겪는 고난에 대해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 교회 스스로 자기욕심에 끌려 고난을 자초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국개혁신학회가 지난 10월 11일(2014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개혁신앙과 고난 받는 교회’를 주제로 제37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 교회 고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개혁신앙에 근거한 참된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마련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을 '고난받은 교회' 연재형식으로 일부 정리해서 싣는다. <편집자 주>


이혼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 소기천 교수(장신대, 신약학)

   
▲ 소기천 교수(장신대, 신약학)
현대 가정 문제에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상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이혼이다. 이혼으로 인해 사회와 교회의 기반이 되는 가정이 붕괴됨으로 말미암아 사회는 물론 교회라는 공동체도 불안정한 상태에서 고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개혁신앙의 관점에서 이혼은 간음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많다. 그리스도인인 남편과 아내는 성서의 가르침대로 한 몸이므로 결코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서에 근거한 개혁신앙의 전통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천하면서 오늘날의 교회는 성도들의 이혼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초기 교회 당시의 상황과 가르침에만 의존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 아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신앙은 성서에 근거한 신앙의 원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혼에 대해 성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혼은 절대 불가한가? 가능하다면 성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 구약의 율법서에 나타난 이혼

레위기 전체의 주제는 ‘거룩’이다. 레위기 21장 7절과 13~14절은 이혼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진다. 21장 1~9절은 제사장들, 10~15절은 대제사장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며, 16절부터는 아론의 자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해당 7절에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식물을 드리는 자이므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혼당한 여인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대제사장에게 해당하는 13절에서는 대제사장의 결혼 대상을 숫처녀로 한정하고 있으며, 14절에서는 과부를 결혼 불가 대상자 목록에 추가하고 있다. 대제사장에게 결혼 불가 대상이 확대 적용된 것은 대제사장에게 거룩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각자의 직분에 따라서 요구되는 거룩의 정도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혼과 재혼에 관한 언급이 거룩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거룩에 대한 요구로서 결혼 명령이 제한되어진 본문은 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어지는 거룩이며 또한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거룩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을 소유한 야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과 결혼에 관한 엄격한 기준이 성서적 개혁신앙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이해는 오늘날의 사회적 통념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래된 성서의 가르침이기에 개혁신앙에서 중시해야한다. 더구나 하나님께 몸 바친 제사장들의 경우 이혼한 여인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구절을 통하여 오늘날 평신도와 엄연히 구분되는 성직자들의 경우에 이혼한 후 재혼을 함부로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신명기 24장 1~4절은 구체적 금지로 되어 있다. 4절의 내용은 이혼한 여인이 재혼했는데 새 남편이 죽은 이후에 전 남편이 다시 그 아내와 재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의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재혼을 가증한 일로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혼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혼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이혼은 이혼증서나 언약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혼증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원리에서 보면 결혼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인데 인위적인 이혼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곧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의 뜻만이 난무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임, 제사의식의 위반, 가사 노동의 태만(아침에 빵을 태우거나 불을 꺼뜨린 경우) 등을 이유로 이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명기의 본문은 이혼 일반에 대해 다룬 것이 아니라 남편과 이미 이혼한 사실이 있는 여인이 다시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룬 것이 그 핵심이다. 그 이유는 본래의 남편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이 있다.

즉, 이혼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었고 그 이후 다시 전 남편과 결합한다면 이는 간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덧붙여서 이 구절이 대단히 남성 중심적일지라도, 그 핵심은 22장의 여성 보호적인 내용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내용의 핵심은 만일 남편이 부정으로 오해해서 여인을 잘못 내쫓았을 경우 그 여인을 다시 데려와야 하고(신 22:19),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범한 남자는 그 여자와 이혼할 수 없다(신 22:29)는데 있다. 이는 당시의 열악한 여성을 보호하고 여성의 인권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이혼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성서적 원리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개혁신앙은 이 원리를 중시하여 여성이 함부로 이혼을 당하여 남성 중심적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여성인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구약의 예언서에 나타난 이혼

이사야 50장 1절에는 아직 이스라엘이 아비 없는 자식처럼 팔려간 것은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 때문이며, 그 어미는 쫓겨났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언약을 통해 자신의 의무로 삼았던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하나님을 고발한다.

이와 같은 고발에 대한 답변은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버리는 것은 심판 절차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피고인의 행동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에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어머니와의 이혼이나 자녀 매매 비유가 이스라엘의 정치적 멸망을 가리킨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것은 다른 아닌 이스라엘의 죄다.

예레미야 3장 1절과 8절에서 이스라엘의 죄는 부부관계의 이혼 혹은 추방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예레미야 3장의 경우 는 부부간의 실질적인 이혼을 말한다기보다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기 위한 결혼 은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말라기 2장 10~16절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런 특수한 지위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그들의 선조들과 맺으신 언약의 규례를 따라 확증되었고, 이스라엘은 그 언약의 규례를 따라 살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방 신들을 섬기는 여인들에게 장가든다면, 이는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다. 즉 이방인과의 통혼은 하나님께 범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행동은 배신행위이므로 피해를 막으려면 그 사람들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

11절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이방신 숭배자들과의 결혼이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성결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혼 언약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여 맺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내쫓긴 여인들을 변호하기 위해 나서신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신다.

히브리인들은 ‘옷’을 부부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 여기서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란 부부관계에서 폭력적이고 불의한 태도로 행동하는자를 말한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부분을 “조강지처가 싫어져서 내쫓는 것은 제 옷을 찢는 것과 같다”로 번역하였다.

이혼과 관련된 말라기의 구절들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성품은 결혼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말라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명기 24장 1-4절의 지시를 넘어서고 있다. 말라기의 가르침은 개혁신앙이 받아들여야 할 가장 성서적인 가르침이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신명기서의 가르침을 넘어서 말라기서가 결혼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이혼 자체를 금지하는 가르침은 성서적 개혁신앙의 기초가 될 말한 가르침이다.

종합해볼 때, 성적인 범죄와 이혼에 대한 본문들은 일관되게 불순종과 죄의 이야기들로 해석되어 왔다. 이스라엘 내에서 이 계명은 점차로 확대되어 온갖 형태의 성적인 부정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반하는 범죄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혼인의 신성함을 가장 극명하게 밑받침해 주는 예언은 이혼이라는 악한 관행을 폭로하는 말라기에 의해 제시된다. 말라기 선지자는 혼인을 하나님이 증인으로 서신 한 남자와 그 아내 사이의 깨뜨릴 수 없는 언약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말라기서의 가르침은 이혼을 하나님께서 금지하신다는 성서적 개혁신앙의 근본이 될 수 있다.

# 신약성서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이혼

예수께서 이혼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는 기사를 담고 있는 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는 이혼의 합법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이혼법이 나오게 된 이유, 즉 인간 마음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이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니라는 것, 즉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인간이 나눌 수 없다고 밝힌다. 이혼의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은 아예 나와 있지 않다.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께서는 이혼 후 재혼한 사람이나 이혼한 사람과 결혼한 사람 모두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혼이 허락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들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는 형식을 지닌 누가의 말은 세 가지 점에서 독창적이다.

첫째, 이혼의 절차가 실제로 재혼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둘째, 예수께서 간음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약과 전통 율법에서는 결혼한 남자가 정혼하지 않은 여자와 성적 관계를 가져도 간음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결혼한 여자는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항상 간음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말씀에 의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도 동일한 의무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즉 부부의 권리에 관해서 남편과 아내를 동등한 입장에 서게 하고 있다. 어떤 쪽에서의 음행도 간음이며, 단지 아내만의 음행이 아닌 것이다.

셋째,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승인하고 있는 일부다처를 배제한다. 남편이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두 번째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그는 첫 번째 아내에게 간음을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 없이 재혼하는 것은 간음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이혼 후에 재혼을 간음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실제적인 이혼과 일부다처와 남자만의 음행을 배제하고 있다.

이혼과 관련된 마태복음 19장 3-12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은 9절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마태의 예외조항, 즉 이혼이 허락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마태는 그 이유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31-32절은 이혼의 정당한 사유로 음행을 들고 있으며, 이혼한 사람의 재혼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누구든 이혼한 사람과 결혼하면 간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더해서 마태복음 19장 3-9절에서는 오직 음행만이 이혼 사유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음행에 의한 이혼의 경우만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재혼은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한다.

예수는 가장 근본적인 정신을 상기시키면서 이혼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며, 법적인 예식도 두 당사자의 재혼 승인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모세율법이 남성들에게 이혼의 합법적인 길을 터준 것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이혼 후에 여성이 당하는 인권적인 수모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안하셔서 인권보호의 차원에서 이혼과 재혼을 간음이라고 규정하셨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의 상황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절대 윤리적 차원을 다루어야 하는 성서적 개혁신앙의 근본이 될 수 있다. 상황윤리가 보편주의의 입장이라면, 절대 윤리는 특수주의의 입장이기 때문에 개혁신앙이 중시해야 한다.

# 바울서신에 나타난 이혼(고전 7:10~16)

바울은 이혼에 관한 가르침도 그리스도적 소명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이혼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내에 대해서는 “갈라놓다” 동사를 사용하고, 남편에 대해서는 “떠나다” 동사를 사용하는데 둘 다 ‘이혼’을 지칭하는 기술적인 용어로 양자의 의미가 결코 다르지 않다.

둘 다 ‘이혼’으로 번역될 수 있는 헬라어 단어들은 집을 나가거나 배우자를 유기하는 행위와 방과 식탁을 따로 쓰는 행위 같은 것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염두에 둔 바울의 사도적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 상태로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곧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세상 일에 마음을 흩트리는 것보다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
도인들은 갈라설 수 있긴 하지만 갈라선 후에는 독신으로 살거나 아니면 다시 화해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있는 가정의 신성함을 중시하면서, 주님의 명령 곧 주님을 섬기는 일에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기여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원칙에 굳게 서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혼에 관한 소명의식이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배우자 한 명이 비그리스도인일 경우(12~16절)와 관련해서 바울은 자신의 판단과 예수의 판단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 배우자가 결혼생활을 지속하지 않으려고 할 경우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이 비그리스도인 배우자와 헤어질 것을 권유한 것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결혼이 부정의 근원이라고 여기기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믿지 않는 배우자의 불신적 태도에 이해 속박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먼저 주도적으로 이혼을 요구하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평 중에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15b절 이하). 비그리스도인 배우자의 이혼 요구에 비록 거리낌없이 헤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대로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상대방과 함께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해석은 선교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비그리스도인 배우자를 신성한 결혼관계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결혼 관계를 거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배우자를 개종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 결혼은 종말의 빛 아래에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이지만 임박한 재림 때문에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했다면, 부부는 간음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며 사랑과 화평으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결혼에 관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행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바울은 더구나 부부가 결혼하면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몸은 남편이 또한 남편의 몸은 아내가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한 이후에 서로 분방하지 말고 혹시 기도할 경우가 생긴다면 아주 잠시 동안만 분방이 가능하다고 언급한다.
이혼에 대해서 바울은 서로 갈라서지 말라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여기서 비록 바울이 가정의 창조적 질서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혼하지 말 것을 주님의 명령이라고 표현한 것 속에는 분명히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데려오면서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선언하신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가정의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창조신앙에 근거한 가정의 질서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이혼을 강력하게 금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혼을 유일하게 한 가지 조건의 경우에 허락하기도 한다. 곧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에 있어서 이혼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혼하라고 제안한다. 오늘날 흔히 제기되는 이혼 사유 중에서 성격의 차이라든지 배우자의 부정의 문제가 여기에 결코 개입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신자끼리 만난 결혼의 이혼 문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단지 여기서 언급하는 불신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도 신앙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한 후에 신앙적인 이유로 부득이하게 이혼을 할 때에도, 주의할 사항으로 바울은 이혼을 “화평 중에” 실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더구나 고린도전서 7:16은 이러한 이혼의 경우에 신자가 불신 배우자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이혼의 신중함을 거듭 제안하고 있다. 곧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한 이상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그 배우자에게 복음전도의 기회가 주어진 것인 만큼 함부로 이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주제가 선교적 의무이다.

곧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하나님의 선교에 부합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결혼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보수적인 율법 이해를 개혁신학이 계승할 것을 우리에게 올바르게 보여주고 있다.

# 이혼은 장려되거나 당연한 일 아냐

구약과 신약을 통해 이혼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 본 결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항은 이혼은 결코 장려되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한 여자도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일도 역시 권장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약의 경우에는 성적인 범죄와 더불어 이혼은 불순종과 죄로 해석되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경우에 예수께서는 더욱 급진적인 견해를 취하면서 신명기의 이혼 규례마저도 부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완악함과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불가피하게 요청되는 상황 때문에 이혼을 허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하였음을 덧붙인다.

바울은 예수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이혼 문제와 관련된 당시 교회의 정황을 종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선교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즉,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제도이므로 부부가 간음죄를 범하지 말고 사랑과 화평 가운데서 거룩한 생활을 하되, 불신자인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는 그가 요구할 경우에 한해서 이혼을 허락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이혼한 후에는 혼자 지내거나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데 힘쓰라고 권면한다.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는 모두 근본적으로 이혼을 금하고 가정 제도를 거룩하게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성서를 근거로 한 이혼에 관한 개혁신앙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이혼을 허용한 경우는 소극적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 세상적인 이유로 이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다. 종말론적 상황에서 바울이 이혼의 사유로 유일하게 거론하고 있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신앙적인 이유로 이혼문제가 제기 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아주 소극적으로 이혼을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혼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서 자신의 이혼을 합법화하고 있는 오늘의 종말론적 상황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너무나도 준엄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이혼인가? 더구나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합당한 이혼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이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바울의 교훈이다.

시대가 변천하면서 오늘날의 교회는 성도들의 이혼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초기 교회 당시의 상황과 가르침에만 의존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 아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적으로 이혼을 기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혹은 갈등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관점에서 보든지 분명한 것은 이혼이 당사자와 그의 가족, 특히 자녀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 가운데 중요한 것은 정서적 문제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와 같은 종말론적 현실을 인정하고 이혼을 예방하는 차원과 이혼으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이중적인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특별히 전자와 관련하여 교회는 이혼에 관한 성서에 근거한 개혁신앙적 가르침이 올바르게 성도들에게 전달되고 인식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결혼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부름 받은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이므로 그 소명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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