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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공공신학 과제는 ‘불의와 배제’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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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연구원, 카이로스 제3회 포럼서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공공신학’ 발표

 

2014년 8월 4일 기사

 


연구집단 카이로스(대표:김현준)가 지난 2일 오후 2시 서강대 다산관(603호)에서 ‘공공의 적, 공공의 신’(부제:한국개신교는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을 주제로 제3회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공공신학’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최경환 연구원(현대기독연구원)의 내용을 정리해봤다.

 

 

# 공공신학의 ‘공공성’과 ‘공론장’
 
최 연구원은 “공공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도 ‘공공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공공신학에서 말하는 공공성은 복음, 교회, 신학이 항상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영역인 공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즉, 신학은 창조, 역사, 문화, 사회, 인류 전체를 포괄한다는 뜻이다. 특히 공공신학은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교회의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최 연구원은 “이와 같은 내용으로 공공성을 정의한다면 공공신학은 공론장이라든가 민주주의적인 삶의 핵심인 공공선과 같은 특별한 이상으로서의 아젠다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공공신학의 과제를 단순히 교회와 세상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규정하거나, 신학은 항상 대중을 상대로 공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동안 기독교세계관이나 기독교사회윤리가 다루던 내용과 변별점이 사라짐으로 그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그는 “공공신학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는 그보다는 훨씬 실재적인 인식을 제공해야 한다”며 “공공신학은 보다 직접적으로 교회와 신학이 민주주의 이후 공적인 영역들에 끼치는 영향을 양방향으로 연구함으로 자신의 관심영역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
 
최 연구원은 공공신학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연구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1989)에서 공론장을 근대 서구 사회에서 발생한 공개된 토론장으로 설명한다.

18세기 이후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새롭게 도시의 시민 계급이 부상하고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그동안 국가 주도하거나 특정 지식인들이 생산해 낸 담론과는 다르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두터운 공공적 의사소통망을 형성했다. 이들은 자발적인 결사체를 만들어 사회 생활의 정치화를 이끌어 냈고, 신문을 통해 여론을 만들어 냈으며, 언론자유와 검열에 대한 저항투쟁을 이끌었다.

여기서 공론장은 어떤 특별한 공적 장소나 실행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공적인 의견들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정치세력이나 시장에 저항할 수 있으며 동등한 참여자들이 어떤 협박이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서로 비판적인 논의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최 연구원은 “공론장이라는 공간은 공적 장소나 사회성에 대해 보다 공개적이고 접근이 용이한 형식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하버마스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공론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 아니라 그 곳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다양한 의견들을 토론하고 수렴하는지, 즉, 공정한 의사소통의 조건 속에서 사회구성원간의 상호존중과 연대적 책임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규범이 어떻게 도출되는지에 대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버마스는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관심사들이 공적인 논쟁을 통해 모두의 관심사로 전환되고, 실천적인 정당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공적인 토론이 우리들의 의지를 이성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특히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와 사회비판 기획의 규범적 토대로서 ‘의사소통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한마디로 의사소통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상호이해를 위한 실천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이 세상에 대해 이러저러한 해석과 설명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주체성에 의해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사소통 합리성과 생활세계는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최 연구원은 “하버마스가 말하는 생활세계는 단순히 의사소통 과정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공통의 이해와 가치를 도출할 수 있는 근원적인 원천이자 근거다. 따라서 이 생활세계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어떤 진리주장이나 타당성 논증도 불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공론장을 지나치게 규범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는 점에 있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 사회의 공론장이라고 불리는 구조적 변혁에 대한 하버마스의 역사적이며 구조적인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하버마스가 현대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최 연구원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나왔다”며 “이들은 하버마스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공론장을 이데올로기화했다고 지적하며, 진정한 공론장은 실제로 참여에서 배제된 다양한 계층과 민중들을 반드시 포함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주장했다.
 
# 공공신학과 공론장
 
공공신학의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은 그 개념 규정의 모호성만큼이나 다양하다. 트레이시(David Tracy)는 공적인 삶 속에서 신학이 단순히 윤리적인 이슈들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학문으로서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했다. 즉, 신학이 공적인 담론 속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 물은 것이다.

특히 트레이시가 제시한 신학의 공적 영역은 교회, 학문, 사회다. 모든 신학은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유의미한 담론을 제공해야 하고, 이들의 관심사를 포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국내에 공공신학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개한 신학자는 스택하우스다. 스택하우스는 보편성과 합리성을 공공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삼는다. 공공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형식을 가져야 함으로 이는 개인적인 경건이나 교회 중심의 신학이 아닌 교회와 공론장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

 

 

반면, 공공신학을 보편성과 합리성, 세속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와는 달리 신앙과 공적인 삶의 관계를 보다 갈등적이고 투쟁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최 연구원은 “그루치(John de Gruchy), 꾸프만(Nico Koopman), 말루레케(Tinyiko Maluleke)와 같은 남아공의 신학자들은 보편성에 근거한 공공신학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신학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과 저항 담론에 집중한다. 이들은 공공신학이 사용되고 있는 맥락과 상황을 강조함으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신학의 초월성을 비판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들은 보편적인 공공신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이들이 말하는 공공신학의 ‘공공성’은 우리가 기존에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해방’이나 ‘저항’이라는 개념과 어느 정도 중첩된다.

이와 관련 최 연구원은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의미가 본래 어떤 협박이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시민들이 서로 비판적인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공적인 삶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남아공 신학자들의 논의를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오늘날 공공신학의 가장 큰 과제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차이와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구별된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며, 공론장의 주변부와 주변화된 이들을 기독교와 어떻게 연결해서 재구성할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최 연구원은 “결국 공공신학의 중요한 테마는 보편성과 특수성, 차이와 연대를 어떻게 적절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전적인 물음으로 다시 회귀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신학은 구체적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새롭게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학을 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위해 공간을 새롭게 창조해 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최 연구원은 “교회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어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세상에 증언하는 장소”라며 “우리가 공론장에서 만나는 낯선 자들은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게 해주며,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개방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배제에 눈을 감아 버리는 그리스도인은 가장 위선적인 바리새인이라는 본 회퍼의 지적은 오늘날 우리를 향한 충고일 것”이라며 “공론장의 타자의 자리에서 그들을 변호해주고, 그들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곧 보편적인 공론장으로부터 박탈된 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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