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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원문] 에큐메니칼운동의 신학: 생명, 정의, 평화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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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박사(경동교회 담임)

 

2014년 5월 7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학술원이 지난 5월 2일(2014년) ‘부산총회 이후 WCC의 영성’을 주제로 개최한 ‘제21회 영성포럼’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제공 단체(자)와의 협약에 의해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 : 생명, 정의, 평화  / 박종화 박사(경동교회 담임)

1. 왜 <생명. 정의. 평화> 인가?

성서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생명, 정의, 평화, 이 세 가지는 각기 독특하면서 동시에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윤리학적으로도 그러하고, 신앙 고백적 실천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여기서는 우선적으로 이 세 가지 주제들의 상호 연관성을 중심으로 살피되, 그것이 어떠한 신학적 공감대와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세계교회는 최근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실천과제를 놓고 그 중심축으로 <생명, 정의, 평화>의 삼각 고리를 제안하고 있다. 결론 부분부터 말하자면 금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 까지 부산 Bexco 에서 개최된 <제 10차 WCC 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로 치루어 졌다. 그런데 이 주제는 갑자기 태동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의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다. 신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0년에 WCC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신 구교 및 기독교 단체들이 서울 잠실 펜싱경기장에 함께 모여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 세계대회”(World Convocation on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JPIC, Seoul)를 개최한 일이 있다.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역사상 구체적인 실천주제와 연대적 행동을 위하여 모인 경우가 JPIC 대회가 처음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이름이 “convocation"이라고 붙여졌다. 특별한 소명의식을 확인하고 실천하려고 전체가 함께 모였다는 뜻에서 말이다. 물론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한국 땅 ‘서울’이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한반도 상황이 그러했고, 또 한국의 교회가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이라는 테마에 모범적인 실천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때문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와 병행하여 이번 제 10차 총회를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WCC 중앙위원회는 JPIC 정신을 21세기를 향하여 그대로 계승하며 발전시킨다는 대 전제하에서 ”생명. 정의. 평화“를 주제로 삼기로 결의한 것이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양 대회를 통 털어 ”정의. 평화“는 그대로지만, JPIC 대회 때의 ”창조세계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이 이번 제 10차 총회의 경우 ”생명“(life)으로 용어가 바뀐 것이 새롭다.

 

물론 내포하는 뜻은 크게 보면 대동소이하다. 한 가지 배경을 말하자면, ”생명“ 주제는 한국교회가 KNCC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WCC 측에 제안한 것이고, ”정의와 평화“의 주제는 Asia 교회들이 모여 10차 총회의 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한바 있었다. 필자도 대표로 참석한 WCC 총회의 <총회준비위원회)(Assembly Planning Committee)에서 이 두 제안을 묶어 WCC 중앙위원회에 제출하여 최종적으로 이번 개최된 10차 총회의 주제로 삼기로 결정케 된 것임을 알려둔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세계구원의 역사에 진력하년서 교회가 세계구원을 위해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성서에서 찾아보니 그것이 이 땅에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샬롬”(shalom)으로 정리됨을 찾아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해주는 이 샬롬은 세 가지의 기둥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정의요, 둘째는 평화요, 셋째는 창조세계의 보전 곧 피조세계의 생명 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이 땅에 이룰 하나님의 선물이요 동시에 과제라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교회가 받은 은총이자 실천 과제인 “선교”와 “봉사”는 달리 부연하여 말하면 “살롬 선교”요 동시에 “샬롬 봉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신학적, 실천적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곧 “살롬”을 우리가 흔히 편의상 교회가 펼쳐야 할 복음 선교적 및 사회 봉사적 차원의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쳐가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선교와 봉사가 교회의 사명 내지 역할임과 동시에 교회 자체도 선교적 존재요 봉사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의 사명과 과제를 “church doing"이라 한다면, 교회 자체의 선교적 및 봉사적 존재를 ”being church"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 곧 교회론과 선교론 그리고 교회론과 봉사론은 상호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선교와 봉사는 교회 사명 이라는 한동전의 양면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교회 자체도 “샬롬 교회”로서의 틀과 내용을 존재론의 핵심으로 삼아야 하는 사명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 에큐메니칼 과제: “책임사회”와 “정의, 참여, 지속가능한 개발”

근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구원을 위하여 갈라진 교회들은 함께 모여야 한다는 “교회일치”(church unity)의 호소와 노력에서 출발한다. 갈라진 교회들이 하나의 교회로 연합하기 위한 모임이 태동했다. 그 공식적인 첫 모임인 1927년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F&O, Lausanne) 회의가 효시였다. 정교회와 성공회를 비롯하여 종교개혁 전통의 여러 교회들 가운데서 약 127 회원교회에서 약 400 여명의 총대가 모였다.

 

여기에서 교회일치운동의 기초가 선언되었다: 갈라진 교회들의 하나됨은 “다양성 속의 하나 됨”(unity in diversity)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양성”은 우선 교파전통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오랜 역사적 전통과 신앙고백 및 교회론적 체제를 지녀온 교파교회들(confessional churches)의 존재를 상호인정하면서 한 몸에 붙은 다양한 지체들처럼 “유기체적 연합”(organic unity)을 이루자는 제안이고, 이 제안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유효한 틀로 존중되고 있다.

 

이런 교회일치의 자각이 생긴 것은 신학적 사유나 토론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역사상 세계 진보와 발전을 낙관적으로 믿으며 전진하던 시대에 이미 세계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바로 지금의 시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라는 기치를 들고 1910년 스코틀랜드에서 첫 모임을 결성했다.

 

그것이 세계선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큰 획을 그은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IMC, Edinburgh, IMC의 명칭은 제2차 총회인 1921년에 확정))의 임시적 출범이다. 세계적으로 약 17개의 큰 세계선교단체들이 창립 멤버로 참석했었다. 첫 출범 후 발생한 세계 제1차 대전의 여파로 활동이 중단되다가 전쟁이 끝난 후인 1921년 미국의 New York/Lake Mohonk에서 모인 제2차 대회에서 정식 기구로 발족하게 된다.

 

 

세계 제1차 대전은 세계를 그 문화와 역사 및 정신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유럽에서는 전후의 위기상황에서 진즉부터 심각한 비극의 구조화가 시작된다. 1917년 에는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으로 공산주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태리에서는 무솔리니의 극우 팟쇼주의(Fashicism)가 등장한다.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잔혹한 나치가 위세를 떨친다. 이런 전후의 파멸적인 비극을 극복하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조직화하기 시작한다.

 

여러 차례의 사전 준비모임을 거쳐 15개국의 90여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봉사를 통한 교회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1925년 스웨덴에서 <생활과 사업>(Life and Work/L&W, Stockholm 1925) 세계대회가 문을 연다. “하나님만이 아버지 되시고 그의 모든 백성은 형제자매가 된다”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all peoples)는 신념으로 모여 이렇게 봉사를 통한 교회일치 결의를 다진다: “교리는 갈라지게 하나,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 (Doctrine divides; whereas service unites)고.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다시 힘을 모아 전후의 회복기에 들어간 시점인 1948년 WCC(World Council of Churches/Amsterdam)가 출범한다. 1948년 8월 22일 -9월 4일 까지 147 회원교단을 대표한 351총대들로 창립총화가 열렸다.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었다. 이 창립에는 F&O와 L&F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IMC는 1961년 제3차 총회부터 WCC에 합류하게 된다.

 

첫 총회는 하나되는 교회가 해야 할 봉사의 과제를 우선적으로 두 가지로 잡았다. 하나는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반 한다” (War is contrary to God)는 선언과 함께 당시 세계를 부정적으로 양분하던 ‘자유방임의 천민자본주의와 전제주의적인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그 대안으로 <책임사회론> (responsible society)을 에큐메니칼 윤리의 원칙으로 선언한다. 책임사회론은 특별한 이념을 말하기 보다는 하나의 기독교 윤리적 지침서라고 보면 되고, 기독교 정신에 의거하여 역사현실 속에서 “기본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고…….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국가가 사회적, 경제적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라는 기본전제(criterion)를 담은 입장을 제시한다.

 

60/70년대를 지나오면서 전 세계가 제3세계의 식민지 해방, 혁명운동, 인간화 고조 등을 위시한 급격한 사회 변혁의 과정에 들어서고,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가돌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세계와 개신교를 향한 ‘개방’ 조치가 이루어지고, 신구교 연합활동이 특별히 교회일치와 경제개발 참여에서의 공동협력의 장(예: 신구교 연합의 시회개발 평화운동인 SODEPAX 운동)이 열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서 WCC는 제 5차 총회(Nairobi 1975) 결의로 기왕의 책임사회론을 확대 심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롭고, 참여가 보장되며, 지속가능한 사회>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JPSS)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어놓는다.

 

여기서 “정의”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연합운동의 핵심요소이고, “참여”의 문제는 세계 곳곳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빈곤한 자들의 개발과정에 정당한 참여가 보장되어 노동착취를 막아 경제정의를 이루어야 함을 주장한 것이고,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무지막지한 개발로 야기되는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한 거부와 환경보호를 내세우는 새로운 책임사회론으로 보면 된다. 달리 말해서 인종차별, 여성차별, 식민지 와 제국주의적 불의의 구조를 개선하자는 “정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누려야할 생존권과 인권 및 복리를 위한 “참여복지” 그리고 개발로 파괴되는 환경을 보호하자는 “환경보전”이라는 실천적 과제가 그것들이다.

 

 

3. 에큐메니칼 과제(1): “정의, 평화, 창조세계 보전”

앞에서 제기한 JPSS의 경우 “지속가능성” 문제에 관한 의제개발이 정책채택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위 환경 친화적 개발, 곧 “지속가능한 개발”의 문제가 원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있으나, 특히 기독교 서구 자본주의가 자행한 경제적 착취, 환경의 파괴, 그에 더하여 종속화 되고 심화된 구조적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제3세계와 그곳의 교회들 입장에서 보면, “지속가능성” 내지 “환경 친화”라는 주장이 자신들의 경제개발을 막거나 아니면 다국적 기업을 통한 제1세계의 부의 독점화 명분 쌓기로 오해받고 오해하는 갈등이 증폭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샬롬”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대안을 JPSS가 충분하게 제시해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제안을 모색하기로 방향을 선회한다.

 

여기에서 대안으로 새로 등장한 것이 제6차 밴쿠버 총회(Vancouver, 1983)가 결의하고 첫 번 후속 세계대회(Seoul 1990)의 중심으로 등장한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PIC)이라는 원리인 것이다. ”정의“가 동일하게 변함없이 등장하고, 창립총회부터 제기되었던 ”전쟁 없는 평화“가 채택되고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대신에 신학적으로 더욱 포괄적인 의미에서 파악한 환경의 보전과 함께 인간의 구원과 동시에 환경세계 구원을 포괄하는 뜻을 담은 ”창조세계의 보전“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된 셈이다.

 

결국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 분이 주신 과제인 <샬롬>을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다만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던 ”지속가능한 개발“의 과제는 내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 WCC 내의 실천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하는 것으로 양해했고, 더 나아가 후일에 UN 총회 차원의 토론과 정책협의 과제로 넘겨져 구체적으로 Brazil Rio de Janeiro에서 개최된 UNCED(UN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1992)로 넘겨지고, WCC는 제 7차 총회(Canberra 1991) 결의로 민간단체의 대표기관 자격으로 위의 UNCED 회의, 곧 속칭 ”세계 환경 정상회의“(Earth Summit)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헌한 바 있다. 여기에서 UNCED가 채택한 ”27 가지 지속가능한 개발 원칙“(Rio 선언 1992)에 맞추어 WCC도 ”12 가지 지구촌 공동체 윤리“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일단 여기서는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또 이번 제10차 WCC 총회가 채택한 주제의 연속선상에서의 발전된 논의를 위해 JPIC가 내어놓은 <신학적 확언 10가지> (Ten Theological Affirmations)를 “제목”만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확언 1) 우리는 모든 권력행사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고 확언한다.
(확언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언한다.
(확언 3) 우리는 모든 인종과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확언한다.
(확언 4)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하게 창조된 것을 확언한다.
(확언 5)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민중의 공동체적 토대가 됨을 확언한다.
(확언 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이심을 확언한다.
(확언 7)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 전체의 근원이시오 유지자이심을 확언한다.
(확언 8) 우리는 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확언 한다.
(확언 9) 우리는 젊은 세대의 존엄성과 헌신을 확언 한다.
(확언 10) 우리는 인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확언한다.

 

JPIC 대회는 이러한 신학적 확언을 풀어서 일상생활에서의 개개인간, 집단 간, 국가 간, 국제간, 상호 협약을 맺어 (covenanting) 삶속에서의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에 나서기로 하고 실제로 계약 서명식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 있으며, 이것을 모든 회원교회와 교우들에게 강하게 추천하며 독려하고 있다.

4. 에큐메니칼 비전(2): “생명 . 정의. 평화”

총회 개최지로 한국의 부산이 결정되고 나서 한국과 아시아 교회들은 물론 세계교회협의회에서도 다양하게 총회 주제에 관한 토론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한국교회는 KNCC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생명>을 주제로 택할 것은 권고 했다. 물론 생명이 앞서 말한 JPIC에 나오는 <창조세계의 보전>을 포함하고 나아가 죽음의 문화에 대항할 “생명문화”의 창달이며, 동시에 인류 모두의 영적, 육적 생명을 하나님이 지켜주심을 확신하고 전파하는 과제를 우리들 교회가 합심하여 지녀야 한다는 취지였다.

 

아시아 교회협의회는 이번 부산총회를 계기로 아시아 대륙과 교회들의 긴급한 관심사항인 “평화와 정의”를 총회주제에 포함시켜달라는 제안을 했다. 필자도 총회주제를 선정하는 “총회 준비 위원회 위원”(Assembly Planning Committee)으로 참석하여 함께 토의를 했다. 결과는 한국교회와 아시아 교회의 제안을 과감하게 수용하자는 점에 거의 일치를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고 결의 하고 최종 결의기구인 총회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에 제청하여 동의와 결의를 얻게 되었다. 물론 이 주제를 단일 안으로 제기한 것은 아니다. WCC 전통에 따라 “교회와 세계의 일치”라는 또 다른 제안도 중앙위원회에 첨부하여 올렸다. 결과는 “생명, 사랑, 평화”가 채택된 것이다. 단 총회 중앙위원회는 “생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성서가 말하는 일치와 선교 및 사랑의 미래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필자도 적극 나서서 “고린도 전서 13:13”( 믿음, 소망, 사랑)을 모두 생명과 연결시켜 총회 부주제로 제안키로 하는 일에 진력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주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부주제: <믿음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교회일치와 선교>(Life Together in Faith: Unity and Mission)
< 소망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세계의 정의, 평화, 화해> (Life Together in Hope: Justice, Peace and Reconciliation)
< 사랑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공동의 미래> (Life Together in Love: a Common Future)

 

"생명“이 핵심이다. 그리고 생명의 양팔이 ”정의“와 ”평화“이다. 물리학자요 평화학자인 바이츠젝커(Friedrich von Weizsaecker)의 말대로 ”정의 없이 평화 없고, 평화 없이 정의 없다. 자유 없이 정의 없고, 정의 없이 자유 없다. 자연과의 평화 없이 인간세계의 평화 없으며 인간세계의 평화 없이 자연과의 평화 없다“(F. von Weizsaecker, Die Zeit draengt. Muenchen 1986, pp 115-116).

 

성서의 말씀을 빌면 “정의는 평화의 열매”(이사야 32:17)요, “정의는 평화와 키스한다”(시편 85:10).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요, 평화는 정의의 집일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하나님 나라”가 다름 아닌 “정의와 평화와 기쁨”(롬 14:17)이라고 단순명료하게 말한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의로운 평화를 사는 것이 “생명”이고, 평화의 집인 정의가 사는 것이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이요 동시에 사명으로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칭송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린다.

 

이번 10차 총회는 이 문제를 여러 신학토론제목의 <에큐메니칼 좌담>(Ecumenical Conversations) 프로그람을 통하여 활발한 토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했다. 한 주제 마다 90분씩 4번의 토론모임을 만들어 집중케 했다. 그 중에서 <생명. 정의. 평화>와 직결된 토론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생명, 정의, 평화를 보는 도덕적 판별력
- 교회 내에서의 남녀평등: 상호인정과 변혁적 정의
- 정의롭고 남녀평등의 교회를 위해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과 연대하기
- 기후변화에 맞서서 환경적 정의와 평화 만들기
- 생명의 경제: 빈곤 퇴치를 위한 탐욕극복방안
- 인간안보: 지속적 정의로운 평화 만들기와 인권옹호
- 정의로운 평화의 길: 함께 평화건설하기
- 한반도: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연대형성
- 평화와 자유를 위한 종교 간의 연대
- “중동”: 누구를 위한 정의이며 평화 인가?
- 어린이 권리육성을 위한 교회의 공동과제
- 치유와 건강 지향의 에큐메니칼 연대
- 디아코니아: 급격한 세계변화 속에서의 봉사

위에 열거한 에큐메니칼 주제는 단순한 신학적 내지 기독교 윤리적 개념정립의 차원을 넘어 교회가 또 기독교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대하며 행동에 옮길지를 모색했고 그 대안을 마련한 회의 이였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어의 <마당>이라는 이름하에 세계 각국의 교회와 단체들이 진행해왔거나 지속하고 싶은 생명, 정의, 평화 관련 실천내용이 서로 보고되고 전시되고 토론되는 현장을 80여개의 소위 “Workshop" 프로그람이 진행되었다. 이 지면에서는 위에 열거한 Ecumenical Conversations와 Madang Workshops의 구체적 내용을 전하지 못함이 유감이다. 곧 각종의 토론과 합의의 결실이 보고서 형태로 출간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오늘의 주제를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하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 연구자료의 각주 및 참고문헌은 원활한 게재를 위해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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