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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하나님의 선교’로 교단 넘는 연합선교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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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선교의 성격과 과제 / 김은수 교수(전주대, 선교학)

 

“에큐메니칼 선교는 강력한 복음전도를 추진하며 거기에 우선권을 두는 복음주의 선교에 비해 선교 열정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은수 교수는 “에큐메니칼 교회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회복되어야 한다”며 “1961년 교회(WCC)와 선교(IMC)가 통합됐을 때 선교가 교회의 이차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외치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선교라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연구내용 중에서


1. 에큐메니칼 선교는 교파선교에서 초교파 선교로, 서구선교에서 6대륙 선교로,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복음전도에서 통전적 선교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2. 한국 교회는 선교를 위한 에큐메니칼 협력의 좋은 전통을 갖고 있었다. 1884년~1885년에 미국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는 첫 입국부터 협력했고, 1889년 호주장로교 선교사가 입국하자 ‘선교연합공의회’를 구성했다. 1893년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 장로교의 선교사들은 ‘장로회 정치형태를 가진 선교공의회’를 구성했다. 한국 교회 연합정신은 1924년 조선에수교연합공의회를 탄생시켰고, 오늘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이르게 됐다.

 

3. 한국 교회의 해외선교 초기 단계에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지는 못했으나 세계 교회와 더불어 그리고 교파를 초월한 에큐메니칼 협력선교가 그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4. 기독교 선교는 전통적인 기독교 대륙에서 비기독교의 3대륙에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6대륙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

다. 이같은 ‘6대륙 선교’에 관한 기본 사상은 1928년 예루살렘 IMC대회에서 시작돼 1963년 멕시코 CWME대회에서 완성되어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의 지리적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

 

이제 선교의 전선은 모든 세계이며, 보내는 교회와 받는 교회의 전통적인 구분은 물론 오래된 교회와 새로운 교회 사이의 온정주의적 관계도 없고, 해외선교와 국내선교의 구분도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하나의 공동의 과제와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의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5. 20세기 전반의 이러한 흐름은 그 후 급속히 비서구 중심의 선교로 이어졌고, 21세기 오늘날 이미 남반구 선교시대가 도래되었다. 그 가운데 한국 교회의 사례는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아시아 대륙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파송해왔고, 선교사 파송 규모 역시 한국 교회의 양적인 성장처럼 놀라운 양적 증가율(1990~2000년 동안 492%)을 보였다.

 

6. ‘하나님의 선교’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복음주의 신학자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에 의해 수용됐다.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대체로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이며 해외선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에 비해 에큐메니칼 단체들은 후켄 다이크의 현재적이고 종말론적인 입장을 받아들이며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는데, 그는 교회중심적 선교를 강하게 비판했다.

 

 

 

 

 

 

7. 한국의 많은 대형 교회들은 맥가브란의 교회성장 선교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결국 신도들을 교회 안으로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구속사적이며 동시에 종말론적인 균형 잡힌 신학에 근거해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함께 이루어지는 통전적 선교의 회복이 필요하다.

 

8.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치적, 사회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급진주의적인 신학이라는 인식이다. 또 다른 오해는 복음주의 선교와 적대되는 개념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통전적 선교와 관련 존 스토트는 로잔 대회에 참여한 제3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며 “모든 피조물 앞에 지금 여기에서 샬롬의 왕적 통치가 이루어지고 그의 기쁜 소식이 드러나고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이 기쁜 소식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우주적인 전체적 구원의 통전성”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는 WCC의 전유물이 아닐뿐 아니라 복음주의 선교관과도 적대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개인구령뿐만 아니라 전체 피조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와 구원활동에 참여하는 통전적 선교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된다.

 

9. 성찬적 친교를 통해 하나 된 교회는 더욱 힘 있게 세상을 향해 선교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적인 선교는 비판의 대상이며, 이 일치에는 반드시 함께 하는 공간의 장소가 중요하다(일치와 공동의 선교사명).

 

 

 

 

 

 

10. 에큐메니칼 선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대화의 선교다(타종교와의 대화). 대화가 에큐메니칼 선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61년 뉴델리 총회였고, 선교신학에서 중요한 용어가 되도록 기여한 사람은 요셉 시틀러다.

 

선교에 있어서 대화란 개종을 위한 수단도 아니며, 동시에 상대방과의 편안한 담소도 아니라는 기초 위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즉, 기독교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대화여야 하고,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

 

11. 토착화와 관련 에큐메니칼 선교라고 하더라도 혼합주의는 정체성과 관련해 다음 세 가지 점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문화 안에서 그 정체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기독교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셋째,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창조적 관계구조, 즉 세속적 문화의 컨텍스트 안에서도 하나님은 활동하시고 섭리하셔서 창조적인 질서를 이루어가신다는 인식이다.

 

 

 

 

 

 

12. 가난한 자를 위한 선교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대표적 주제다.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서 오늘날의 구원은 정체성, 인간화, 그리고 해방이다. 가난은 멜버른에서 하나의 신학적인 개념이 됐다. 가난하게 만드는 이 세계의 현실을 분석해 그 원인을 규명하고, 가난의 구조적인 모순과 형태를 조사함과 동시에 과연 누가 가난한 자인가를 정의해보려고 노력했다.

 

선교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면 선교의 일차적 과제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관심을 두어야 함을 멜버른은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와 가난한 자를 동일시함으로써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 각처의 상황 속에서 선교를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13. 에큐메니칼 선교의 과제는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모든 교회는 주로부터 하나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선교 도구이기 때문에 교단을 넘어 선교를 위해 연합하고 하나되어야 한다.

 

* 위 내용은 한국연합선교회(KAM)가 지난 2010년 12월 13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 발제문에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김은수, “에큐메니칼 선교의 성격과 과제”, 한국연합선교회-학술대회(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 2010년 12월 13일, 서울: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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