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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기독교윤리는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 나타내는 것

교육&윤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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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시 카스텐 목사 / 국제스포츠연맹 대표 / 2014년 5월 1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4월 11일(2014년) ‘한국 교회 윤리적 삶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크리스천의 윤리: 로마서 12:1~21
케시 카스텐 목사(국제스포츠연맹 대표)


목회자의 자녀로 자란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윤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실 때면 저는 그것이 집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엄마를 사랑하는지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매일,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독교 윤리의 6가지 원칙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로마서에서 5개의 원칙을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다른 하나의 원칙을 찾을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절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1장까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관한 내용이고, 그 자비하심을 염두에 두고 실천하라는 것이 바로 12장부터입니다.

저는 1995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교회가 저에게 미쳤던 영향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 사업가에게 왜 미국교회에 600만 달러를 헌금했는지 질문했을 때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여 자신의 삶을 드리고자 하는 한 학생에게 왜 선교사로 헌신하느냐고 질문했을 때에도, 저녁 내내 기도하는 여인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에도, 그들은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들의 모습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신 희생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과 분리시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 대신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윤리의 원천이 되어버립니다.

2절입니다. 기독교윤리에 최우선적인 것은 이 세상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동성애 문제가 논쟁의 쟁점으로 대두되었을 때 저는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적인 가르침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은 동성애문제에 대해 세상의 양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을 찾기 위해 철학과 심리학, 사회학을 끌어왔습니다.

세상의 양식과 기독교는 달라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으로 생각하고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로마서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3~8절까지는 세 번째 원리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도덕적 개인주의를 택할 때 도덕적 명확성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백인이고 남아공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의 배경 아래 자란 제 흑인 친구는 제게 더 높은 도덕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몸을 이루어야 할 지체가 서로 분리되면 도덕적인 명확성도 분리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는 항상 연합체를 이루고 서로에게 배워야 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기독교가 각각의 모임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제 기독교 공동체를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 상호의존성, 투명성, 책임이 있고 서로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는 진정한 제자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4번째 원리입니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독특한 자기희생, 타인중심성,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9~13절까지는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더 존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재 실제적인 삶에서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모슬렘국가에서 많이 일하며 모슬렘들을 훈련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기독교원리를 모슬렘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이 모슬렘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과 같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에서 신뢰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독창성인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 예를 통해 기독교적 사랑의 독특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우리 아이들에게 빈곤층의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고, 상점에 데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것을 도와주도록 시켰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이 제게 달려와 그 아이가 고른 인형을 사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11살짜리 남자아이가 왜 인형을 사려고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눈을 크게 뜨고서 그 아이가 자기 선물을 고르는 대신 여동생을 위한 인형을 골랐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지금까지 새로 산 선물을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이인데, 일생 처음 얻은 새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불쌍한 여동생을 위해 양보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말라’ 이것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한국 교회들이 자신들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기독교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3명의 아이를 키우는 제 친구에게 4번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출산 후 제 친구와 그의 아내는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이가 너무 예쁘고 완벽합니다. 은혜와 자비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아이를 데려가 씻기고 다시 데려와서 유감스럽게도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아까와 똑같은 감사 기도를 해보아라. 아이가 완벽하다고 감사하다고 은혜의 충만함에 감사드린다고 나에게 기도해보아라.” 그러나 그 친구는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모습이 추하구나. 너는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사랑한 것은 아이를 통해 네가 얻을 만족이었다. 너는 네 아내도 사랑하지 않는다. 아내를 통해 네가 얻을 만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것은 네 자신 뿐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내가 얻을 만족에 대한 기대감을 사랑하는 것이지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 겁니다.

회교도는 공포와 기대감에 이끌려서 사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기대감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기대가 아니라 의도입니다. 기대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내게 만족을 주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도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향해 가지신 의도를 내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입니다. 기대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캐내어야 합니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14~21절에서 발견되는 원리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역경에 대한 독특한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악을 선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저주하지 말라 악을 선으로 이겨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열등적 원리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자만심, 이기심, 분노, 용서못함... 그런 것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세상의 종말은 결국 파괴가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더 우세한 원리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겸손, 용서, 이기심의 탈피, 악을 선으로 이김, 하늘에서 오는 이 우세한 원리로 이 세상을 지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이스 먼로라는 사람은 하늘의 원리로 땅을 통치하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어떻게 하늘의 원리로 이 세상을 통치하는 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 6번째 원리입니다. 로마서12장을 벗어나 에베소서 5장과 골로새서 3장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주로 가족을 통해 사회로 동화/ 전달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들이 신앙적인 도덕을 실제적으로 자신의 가정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아버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덕적 원리를 집으로 가져가는지를 가르쳐주는 커리큘럼도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집안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 전까지는 결코 기독교인으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의 미래에 부흥이 있다면 교회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가정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기독교가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부흥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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