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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십자가의 복음을 놓치면 타락한다

기독교 교육&윤리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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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순 목사 / 한국중앙교회 / 2014년 5월 1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4월 11일(2014년) ‘한국 교회 윤리적 삶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놓치면 타락한다
임석순 목사 / 한국중앙교회


고후 5:15 "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곧 자녀들의 목표가 되어야하는데 목표가 다를 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전에 저는 집회일정 때문에 강남 고속 터미널에서 완도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목포를 지나서 해남 쯤 도착했을 때 제 앞에 타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기사님에게 ‘이 차, 진도 가는 차 아닙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기사님은 ‘아닙니다. 완도행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진도를 갈 수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기사님은 ‘목포까지 다시 올라가서 갈아 타야하는데 이미 오후 6시가 넘어서 오늘은 차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목표지점이 다르면 출발은 같이 했지만 결국 되돌아가야 하고,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신앙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목표를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의 성장이 일차적인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목표를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경쟁하듯 이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일단 출발하여 어느 지점까지는 잘 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번영신학, 성장주의 등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것을 보고 이제 한국 교회는 ‘잘못 달려왔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목표를 향해 출발한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때 유럽교회들은 고공행진을 하며 성장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들은 타락의 길을 걸었고 그 부패와 타락의 중심에는 돈 문제가 깊게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말기에 물질은 전 유럽의 교회를 타락으로 몰고 갔고 급기야 교회를 카톨릭과 개신교로 분열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대규모의 재정이 들어가는 성당 건축과 성직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돈을 받고 구원표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교인들로부터 돈을 갈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잘못 왔다고 인식하는 자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지만 교회는 결국 큰 희생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다를 바 없습니다. 무한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와서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외형주의, 물질주의 등의 결과는 출발할 때부터 목표가 달랐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언제부터인가 목회자들이 재물에 눈을 돌리고, 돈과 관련된 문제가 독버섯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무한성장 가도를 달린 한국교회에는 언제나 ‘돈’문제가 혹처럼 따라 붙었습니다. 대형교회나 중소형교회 모두 ‘돈’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저마다 역겨운 냄새를 풍겼습니다. 재정권을 두고 갈등을 일으켜 교회가 분열되는 일이 흔해졌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목회자,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밑 빠진 독처럼 빠져 나가는 누수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물질에서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곳저곳에서 잘못 되었다고, 잘못 왔다고 말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되돌아가야합니다.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희생하고 대가를 치룰 때 한국 교회는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되돌아가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자녀를 향해 가지신 뜻, 하나님의 목표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내가 성장 하는 것, 내가 성화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내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목회자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닮는 것일까요?

첫째는,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초기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비록 학식은 부족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고 그 마음으로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둘째는, 주님의 생각을 닮는 것입니다. 생각이 같다는 것은 해석이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떠올리고 스스로 해석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에 맞춰지는 것이 주님의 생각을 닮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따르는 것을 닮아야 합니다. 따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은 때로는 깨우쳐 주시고, 때로는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현재 시간으로 끌어오게 하십니다. 때로는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하심으로 과거의 지식을 현재로 끌어오게 하시며 나를 강권하십니다.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길은 오직 주님을 닮아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을 닮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것은 복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복음은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탐욕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기에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십자가를 통해 내 자아를 죽이면 내 탐심, 내 욕심이 죽습니다.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를 놓치게 되면 타락입니다. 십자가를 놓치면 욕심, 이기심, 탐심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타락의 본질은 탐심, 즉 우상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5절은 말씀하십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가가 따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부터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복음주의 협의회가 이 대가를 지불하는 자리에 서서, 한국 교회가 다시 하나님의 목표를 향하여 가기를 소원하며 한국의 종교개혁이 여기, 이곳에서 일어나기를 결단하며 기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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