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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패, 반드시 막아야 한다

교육&윤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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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웅 목사 / 덕수교회 원로 / 2014년 5월 1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4월 11일(2014년) ‘한국 교회 윤리적 삶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윤리적 실패는 힘의 남용 때문: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패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손인웅 목사 / 덕수교회 원로

 

   
 
버트란트 럿셀의 <the power>라는 저서에서 물리적인 힘과 경제력과 영향력(도덕적 능력)을 이야기하였다. 일차적으로는 물리적인 힘(군사력)이 제일 강하게 작용하고, 이차적으로는 경제의 힘이 강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능력이 가장 강하다고 했다. 최후의 승리는 도덕적 승리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핵을 들고 설쳐대는 북한이나, 부정직한 역사관을 가진 일본이나, 경제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해 보려고 발돋움하는 중국도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은 철저히 참회하고 진실과 정직으로 높은 도덕적 능력을 길러나가서 청도교 신앙 위에 세워진 미국과 함께 앞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힘(권력)’은 개인과 공동체와 세계를 지탱하고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그 힘을 남용하지 않고 선용할 때에만 인류의 행복과 창조주의 영광을 위한 共同善이 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서 평화의 도구이다. 우리가 아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삼손이 가장 힘센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힘을 선용하지 못하고 남용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우리는 “한국교회의 윤리적 삶을 진단하다”라는 발표회에서 한국교회의 윤리적 위기의 심각성을 진단하기 위해서 사사 삼손을 나실인의 실패의 모형으로 그의 처절한 참회와 죽음에 대해서는 진정한 회개의 모형으로 삼고자 한다.

1. 나실인 삼손의 시작은 좋았다(삿 13장 1-25절)

삼손은 아버지 마노아와 아내의 독실한 신앙의 열매로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믿음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별된 사람으로 ‘나실인’이라는 구별된 여호와의 종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아버지 마노아는 삼선을 위해서 기도하며 양육하여 삼손은 영감을 받아 큰 능력을 행하였는데 그 힘의 원천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밝히고 있다(삿 13:24-25). 그 능력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선용하도록 주신 은사였다.

2. 삼손은 그 힘을 남용하였다.

삼손은 물리적 힘을 남용하였고 경제적인 힘도 잘못 사용하였다. 그리고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여서 실패의 올무가 되었고, 나실인의 거룩한 은사와 영력을 오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나실인의 언약을 주심으로 모든 능력의 통로로 삼으셨다. 그러나 삼손의 영적인 타락이 그의 윤리적 실패와 그의 가정과 삶의 파탄을 초래하였고, 종래에는 육체의 모든 능력마저 거세당하고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탕자로 전락하였다. 그러한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그를 붙들어 주셔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능력을 회복시켜 주셨지만 굴러 떨어져가는 그의 죄성이 그를 끌고 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훈련되지 않은 힘으로는 강력한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나실인 삼손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욕망의 열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끝없이 질주하였다. 물리적인 힘은 눈이 없기 때문에 괴력으로 전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충돌사고나 추락사고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나실인 삼손은 끓어오르는 정욕을 불태우면서 소돔 고모라 성을 기웃거리다가 이방 여인들에게 붙들려서 육체와 영혼을 노략질 당하였다. 블레셋 여인 드릴라의 미모와 유혹에 눈이 어두워진 삼손은 결국 자신의 능력 출처의 비밀을 누설함으로 머리가 깎이고 두 눈이 뽑혀서 나실인에게 내리시는 모든 능력을 박탈당하고 쇠고랑을 차고 육중한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 나실인 삼손은 육체의 힘도, 경제적 힘도, 가정의 행복도, 성적인 정욕도, 나실인으로서의 성직도 몽땅 박탈당하게 되었다. 헉슬리는 “현대인은 두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깎이고 거세당한 채 쇠고랑을 차고 거대한 문명의 맷돌을 돌리는 삼손과 같다”고 했다. 삼손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힘을 목적으로 생각할 때 과학이나 경제력이나 거룩한 종교의 힘, 교권까지도 파멸을 몰고 온다. 중세의 거대한 가톨릭교회가 인류를 암흑의 세계로 전락하게 하였고, 서양의 기술문명과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서방의 교인들을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게 만들었다. 성직자들이 교권에 눈이 뽑히고 드릴라에게 몸을 빼앗기고 물질에 노예가 되어 현대문명이라는 거대한 맷돌을 돌리며 어지럼증에 걸려 허둥거린다.

3. 실패한 삼손의 최후는 아름다웠다.

나실인 탕자는 철저한 실패를 통해서 육체와 마음과 영혼은 모두 부서지고 깨어진 몰골로 다곤 신전 앞에 원숭이처럼 끌려나와 블레셋 방백들의 노리개가 되어 재주를 부리며 그들의 흥을 돋웠다. 나실인 삼손은 이방인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어 맛 잃은 소금처럼 무참하게 버림받아 짓밟히게 되었다. 삼손의 이야기는 여기서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상처 입은 나실인 삼손의 영혼에 한줄기 생명의 씨가 살아나기 시작하여 그의 자라나는 머리카락과 함께 힘을 길어 올리게 되었다. 나실인은 칠흑 같은 영혼의 어둠을 뚫고 끊어질듯 이어질 듯 한 실낱같은 기도소리가 신음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삼손은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저 원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합니다”하고 기도한 후 힘을 다하여 다곤 신전의 두 기둥을 끌어당기니 그 신전이 무너져 이방신 다곤의 방백들과 백성들 3,000여명과 함께 장렬한 순교를 하였다. 삼손은 대담하게 죄를 범하였지만 대장부답게 죽음으로 회개도 철저히 하였다. 삼손은 진정한 참회는 죽음으로 해결하는 것임을 가르쳤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한다. 삼손과 같이 겁 없이 죄를 범하는 종교지도자들도 삼손 같은 회개를 한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새로워지고 희망의 날이 밝아올 것이다.

4. 목회자들의 힘의 남용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1) 자신에게 부여된 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2)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사용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진단 평가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롤모델로 삼아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께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십자가상에 뛰어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최후의 유혹을 이기시고 아버지 뜻에 순종하신 절제된 힘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선한 일을 위해서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는 그의 힘을 단호하고 강한 모습으로 선용하셨다.
4) 권력의 자기중심성과 제도교회의 권력이 강화되면 집단적 자기중심성이 증폭되고 지도자가 물리적 힘을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때 교회 자체가 갖는 강제력 때문에 파괴적인 힘이 강하게 발동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자정능력이나 순수한 사랑이라는 도덕적 호소 내지는 합리적 설득으로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 이기적이고 강제적인 힘을 제어하거나 견제하기란 매우 힘들게 된다. 그러므로 권력의 비정상적 강제성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 윤리적 방안의 마련이 요청된다. 견제집단의 감시, 비판, 제도개선, 정책수립 등 제동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양심을 감시 감독하고 통제하여 바른길로 인도하는 기계적인 제어장치가 모든 분야에 보편화되어있다. 인간은 24시간 감시받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기계문명의 순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윤리학에서도 사람의 행동을 바르게 안내하는 윤리적 규범을 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윤리적 규범을 제정하여 운영함으로 보다 더 좋은 윤리적 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계에도 계명들이 있어서 윤리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성경은 대단히 수준 높은 십계명과 산상보훈 같은 윤리강령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계명을 근거로 하는 윤리적 규범들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그보다 더욱 구속력 있는 법률까지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규범을 준수하는 실천력을 강화해야만 효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 실천력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의지가 성화되어 윤리적 실천능력을 강화하는 교회공동체의 공동노력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나가는 말

목회자는 순간에 살면서도 영원 속에서 살아가는 여유를 가지고, 마라톤 경주와 같이 목회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흐르는 물에 빵을 던지는 사람과 같이 멀리 보는 눈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흐르는 물과 같이 순리를 따라서 기다릴 줄도 알고, 피해갈 줄도 알고, 필요할 때는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흐르는 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소유해야 하며, 언제나 낮은 곳에 마음을 두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향을 가지고 가난하고, 어렵고, 고통당하는 교우들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노자 도덕경 上善若水). 목회는 아름다운 과원을 가꾸는 농부와 같아서, 항상 부지런해야 하고, 진, 선, 미를 가꾸어 거두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목회자의 궁극적인 목표로 하나님 앞에서 좋은 평가는 받는 것이어야 하고, 자기가 섬기는 교회가 주님 앞에서는 단장한 신부가 되어 칭찬받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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